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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 볼 책 - <두 여자와 두 냥이의 귀촌일기> (미디어일다, 2011)

싱싱한 유기농 만화

올해 초 농한기 때 변산공동체 분들이 서울에 잠깐 왔다. 그이들을 보고, 평소 농사지을 거라고 말하면서도 막상 준비한 건 하나도 없던 내가 부끄러웠다. 그래서 미루던 귀농운동본부 회원에 등록, 강의를 신청하고 귀농 관련 사이트를 들락거렸다. 그러다가 우연히 여성주의 저널 인터넷 사이트 '일다'에서 연재 중이던 만화 '권경희 임동순의 전원일기'를 봤다. 애니메이션 회사에서 일하던 두 여자가 시골로 내려가 살아가는 이야기였다. 재밌어서 열심히 봤다.
 
올봄에 갑자기 편집 일을 하게 되면서 귀농학교 강의도 한 번밖에 못 가고, 만화도 자주 못 봤다.

9월이었나? 이 만화가 책으로 나온다는 소식을 들었다. '전원일기 팬'이니까 당연히 출판 기금 마련 일일주점 티켓을 샀다. 권경희, 임동순 씨가 너무 궁금해서 일일주점에 갔다가 만화 캐릭터와 똑같은 두 사람을 보고 깜짝 놀랐다. 잘 보고 있다고 인사를 하면서도 신기했다.

그리고 한 달 정도를 기다려 <두 여자와 두 냥이의 귀촌일기>를 봤다. 책은 젊은 여자 둘이 농촌에 갔을 때 일어날 법한 일들을 조목조목 재밌게 그리고 있다. 처음 밭농사를 지을 때 좌충우돌 겪는 경험이나 동네 사람들과의 관계, 몸 놀리며 게으르게 살고자 하는 그이들의 모습이 나온다.


때로 힘들고 지치고 외로울 때가 있었을 것 같은데 만화 속 그이들은 유쾌하고 별 걱정이 없다. '나는 꼼수다'를 웃음소리와 기발한 광고, '깔때기' 때문에 일단 재밌어서 듣게 되는 것처럼, 이 책도 일단 재밌어서 보게 된다.

돈 없이도 행복한 유기농 만화! 언뜻 보면 잔잔하고 투박해 보이는 만화인데 싱싱한 대사들에 빵 터졌다. "너희가 뭘 심든 이 밭에선 쑥이 날 것이다!", "난 할머니가 니들보다 먼저 시집가실 수 있다에 한 표! 찌릿!", "누가 시금치를 모종한댜? 걍 솎아 먹어 가며 키우는 거지. 결국 시금치들이 별로 자라지도 못하고 꽃을 피우며 시드는 모습을 지켜봐야 했다." 만화를 보면 참 좋은데, 글로 설명하려니 힘들다.

여자 둘이 시골에서 살면 위험하지 않냐는 물음에 "우린 나이도 많고 예쁘지 않아서 괜찮아. 절대 튀어선 안 돼요. 몸매가 드러나는 옷은 절대 금물. 현지 언어 마스터 필수. 혹시 누가 여자로 볼까 봐 몸무게 4~5 킬로그램씩 늘린 거야" 하는 부분에서는 재밌기도 했지만, 여자가 시골에도 내려가기 힘든 세상임이 새삼 느껴져 씁쓸하기도 했다.

그리고 부모님의 "도대체 시골구석에서 어찌 벌어먹고 살려는 거냐?"는 물음엔 "그냥 우리는, 벌어먹지 않고 땅을 일구어 기른 것을 먹고 싶을 뿐이랄까. 만약 도시에 그냥 살았다면 몹쓸 공기 마시고 몹쓸 음식 먹는 도시 빈민일 거고. 잘돼 봐야 아파트 한 채, 소형차 한 대, 그리고 그걸 마련하느라 생긴 다수의 성인병! 그리하여 우리가 행복하게 사는 것이 부모님께도 효도하는 것이라 믿으며 산다"고 '쿨'하게 답한다. 다른 건 몰라도 이 부분은 꼭 우리 부모니께 보여 드려야지.

윤지은 기자 / 일하는 사람들의 잡지, 월간 <작은책> 198호 20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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