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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험으로 말하다

거리가 나를 더 잘볼 수 있게 한다

그 여자들의 물결 일다 2011. 11. 23. 16:33

<일다> 윤하의 딸을 만나러 가는 길 (28)

릴(Lille)에서 9년만에 만난 미리암과 에릭 부부는 나를 무척 반가워했다. 지금까지 난 그들을 예전에 살았던 집주인 정도로 생각했던 것이 사실이다. 마침 프랑스에 왔기에 안부인사나 나눌 요량으로 연락을 한 것인데, 미리암은 오래 전에 연락이 끊긴 친구를 다시 만난 듯 반가워하며, 당장 릴로 자기 가족을 보러 오라고 재촉했다.

 
미리암뿐만 아니라 그녀의 남편 에릭조차 나를 오랜 친구로 생각하고 있는 것 같았다. 당시에는 그저 인사나 나누며 오고갔던 그가 스스럼없이 농담을 해가며 친하게 대하는 데는 적응이 잘 되지 않았다.
 
실제로 사는 동안, 그들이 나를 친구로 여긴다는 느낌을 받은 적은 없었다. 나는 그저 그들의 세입자였고, 한편으로는 돈을 받고 아이들을 돌봐주는 베이비시터일 뿐이라는 걸 모르지 않았다. 어쩜 그들도 나를 다른 세입자들과 별다르지 않게 생각했었지만, 수년만에 내가 다시 연락한 그 순간 나를 오랜 친구로 인정했을지도 모른다.

 

                                ▲ 릴의 기차역인 '릴플랑드르역'     © 윤하

난 그곳에서 일주일간 머물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주말에는 아이들 없이 미리암 부부와 북부해안에 위치한 앙블르뙤즈(Embleteuse)라는 작은 마을의 별장에도 다녀왔다. 아이들없이 그들과 시간을 보내는 건 처음이다. 그래서였을까? 한번도 물은 적 없는 질문을 에릭이 해왔다.

 
“윤하야! 너 결혼은 안 하니?”
“나는 이혼녀야!”
“이혼을 했다구?”
 
이혼을 했다는 내 말에 에릭도, 미리암도 놀라는 눈치가 역력했다.

“너희들이 주목하지 못했을 뿐이지, 나는 항상 마담이었다구! 내가 이혼한 건 18년 전이야. 난 게다가 딸도 있어.”
 
내 대답에 그들은 더 놀라는 모습이었다.
 
프랑스에서는 미혼 여성인 경우에는 ‘마드무아젤’을, 결혼 경험이 있는 여성들은 ‘마담’이라는 호칭을 항상 이름 앞에 쓴다. 그래서 집 계약서나 내 우편물에 주의를 기울였다면, 내 이름 앞에 쓰여있는 ‘마담’이라는 호칭을 보기도 했을 것이다. 내게 이 질문을 더 전에 했더라도 같은 대답을 했을 터였지만, 그들 집에 사는 3년 동안 이 질문을 받은 적이 한번도 없었다. 그래서 잠시 그들과 딸에 대해 화제 삼게 되었다.
 
말이 짧은 게 어떤 면에서는 장점이라는 걸 발견한 건 바로 그 때였다. 이혼에 대해서도, 딸에 대해서도, 내가 얼마나 구구절절 말이 많고, 변명이 많은지 그날에서야 알았다. 부족한 불어실력 때문에 내 심리를 그들에게 자세하고 구체적으로 설명할 수 없었다. 나는 이렇게 말했다.
 
“딸은 전남편과 새엄마와 살고 있어.”
 
미리암은 안타까운 표정으로 물었다.
 
“왜? 네가 키우지 못했니?”
“내가 키우지 못한 게 아니라, 내 선택이었어!”
 
그녀는 내 대답이 이해가 안 간다는 표정으로 바로 되물었다.
 
“왜?”
 
나는 이 질문의 대답을 불어로 어떻게 해야 할지 찾을 수가 없었다.
 
“왜냐하면... 내가 이기적이라서이겠지.”
 
그래, 이것보다 더 정확한 대답이 있을까? 여러 가지 표현을 들어, 내가 아이를 키우지 않은 이유를 그럴듯하게 말하곤 하지만, 이보다 더 분명하고 정확한 대답은 없겠다는 생각이 대답을 하고 나서야 들었다.
 
미리암의 질문이 이어졌다.
 
“아이는 만나니?”
“아니, 아이가 어렸을 땐 내가 만나길 원하지 않았어. 딸을 위해서라고 생각해서였는데, 그건 나의 실수였어. 지금은 아이가 원하지 않아서 못 만나고 있어.”
“네 마음을 아이에게 말했어?”
 
미리암은 안타까운 표정으로 다시 물었다.
 
“아니, 시간이 좀 더 필요한 것 같아. 그녀도 나로 인해 지금의 가족들과 관계가 나빠지는 걸 원하지 않아. 다행스럽게도 딸의 새엄마는 아이에게 정말 상냥해. 딸을 위해서 참 잘된 일이지.”
“그래, 그건 정말 다행이다.”
“그렇지? 딸에게도 내게도 행운이라고 생각해.”
“행운이 많은 윤하가 아이에게 생명도 주고, 행운도 준 것 같다.”
 
미리암은 이렇게 말하며, 상냥하게 나를 위로했다.
 
우리는 앞서 내가 얼마나 운이 좋은 사람인지 이야기를 나눈 뒤였다. 그들이 집을 세놓을지 확실하게 결정내리지 않은 상태에 있을 때 내가 방을 구하러 왔고, 그들은 나를 보고 방을 세놓아야겠다는 결심을 굳혔다고 했다. 일반적으로 프랑스에서는 방에 세들 때, 보증인이 필요하다. 그러나 나는 보증인도 없이 그들의 집에 세를 얻을 수 있었다. 또 두 가지 암 수술을 받았지만, 건강하게 5년 동안 항암에 성공한 것 모두 큰 행운이라며, 깔깔거렸더랬다.
 
미리암의 이 말을 듣고서야 내가 딸을 낳은 건 기적처럼 생각하면서, 딸에 대한 새엄마의 상냥한 태도에 대해서는 그다지 신경쓰지 않았다는 걸 기억해냈다. 늘 뭔가 다른 뜻이 있어서 그럴 거라는 둥, 광적인 집착이라는 둥, 고마워하기는 커녕 항상 폄하하는 태도를 보였던 것이 사실이다.
 
18년 넘는 기간 동안, 자기가 낳지도 않은 아이를 사랑과 정성으로 키운다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아무리 꿍꿍이 속이 있다고 해도 또 광적인 집착이라면 더더욱, 몇 년 간은 가능할 몰라도 그렇게 긴 세월을 아이에게 한결같이 정성을 보인다는 건 진정으로 그녀를 사랑할 때라야만 가능하다는 걸 인정하려 하지 않았다.
 
나는 미리암과 에릭에게 아이에 대해서도, 그 간의 사건에 대해서도 더 말하지 않았다. 그러고 보면 더 말할 것도 없었다. 중요한 건 바로 이런 것들 뿐이겠다는 생각을 했다. 우리는 그 정도에서 말을 멈추었다.
 
정말 중요한 깨달음은 멀리 떠나올 때야라만 가능한가보다. 먼 거리가 늘 내게 객관적으로 볼 수 있는 눈을 준다. 무엇보다 다른 문화의 다른 사람들을 통해서 늘 내 모습을 더 잘 보게 된다. 오늘은 진정으로 딸의 새엄마에게 고마운 마음이다. 그녀를 만나게 된다면, 가장 먼저 고맙다는 말을 하고 싶다. 아니, 할 수 있겠다.

윤하 / 미디어 <일다>
www.ildar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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