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일다] 전강희가 초대하는 무대: 유쾌한 <십이야> 소통의 힘을 보여주다 

올해도 어김없이 셰익스피어의 극이 풍년이다. 이달 일본에서 들어오는 공연 팀들도 셰익스피어의 극을 가지고 들어온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모두가 그를, 정확히 말하자면 그의 극을 사랑한다. 그 안에 전 세계 어디에서나 통할 수 있는 보편성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모두가 그의 작품을 자기 나라의 것으로 만들고 싶은 욕심을 낸다. ‘누가 더 잘하나?’ 경쟁하듯 열심히 무대에 셰익스피어를 올린다.

 

▲ 극단 여행자의 <십이야> 

 
우리나라에도 국가 대표격 선수들이 몇 사람 있다. 이번에는 양정웅이 <십이야>로 출사표를 던진다. 그는 무대 위에 한국적인 이미지를 그리는 연출가이다. 셰익스피어라는 보편성과 양정웅이라는 특수성이 만난다. 어떻게 화학반응을 일으킬 것인가?
 
양정웅 연출의 <십이야>는 셰익스피어의 플롯을 충실하게 따라가고 있다. 풍랑을 만나 헤어지게 된 쌍둥이 남매(세바스찬, 바이올라)가 다시 조우하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사랑과 소동을 다룬다. 가장 큰 차이가 있다면 그의 극에서는 남자 배우들이 모든 등장인물들을 소화한다는 점이다. 예전 우리의 남사당패, 또는 셰익스피어 시대의 배우들처럼 말이다.
 
남자배우들만 출연해 ‘여성성’을 표현하다
 
극단 ‘여행자’의 남자 배우들은 여성의 역할을 맡았지만 여성의 몸짓을 과장되게 따라 하지 않는다. 어색하게 과장된 여성성으로, 관객이 극에 몰입하는 것을 방해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들은 남성의 목소리를 숨기지 않은 채로 본래 성을 드러낸다. 하지만 이들의 거친 남성성은 그들의 이름을 통해서 순화된다.
 
등장 인물들의 이름은 우리 들녘에 있는 꽃의 이름을 따서 붙여졌다. 홍가시, 청가시, 섬초롱, 꼭두서니풀, 패랭이 등이 그들의 이름이다. 꽃의 이미지가 거친 남성성에 부드러운 여성성을 부여한다. 그래서 짐짓 꾸미지 않아도 그들의 연기는 여성을 표현하기에 어색하지 않다.
 
공동으로 이루어진 각색은 극의 속도를 빠르게 유지하는 것을 기본 골자로 한다. 빠른 속도에 유쾌함이 깃든다. 이는 배우들의 연기 방식으로 이어진다. 재빠른 발놀림은 몸의 움직임을 가볍게 보이게 한다. 배우들의 잘 짜인 연기는 극의 흐름에 생동감을 불어넣는다.
 
홍가시(바이올라)를 연기한 김상보의 섬세한 표정연기와 여성 못지않은 풍부한 감정표현은 관객의 시선을 처음부터 끝가지 사로잡는다. 등장인물들이 많아 자칫 흐려질 수 있는 극의 흐름을 한 방향으로 밀고 나아가는 데에 큰 역할을 한다.
 

▲ 서울남산국악당  공연 소개 영상 중에서 스틸 컷  

 
섬초롱(올리비아) 역의 오민석은 단아한 모습부터 발랄한 모습 모두를 한 인물 안에 잘 담아내었다. 꼭두서니풀(페스테) 역할을 한 김진곤은 광대다운 모습으로 시종일관 무대를 누빈다. 공연 사이사이 극에서 빠져나와 관객과 대면하는 장면들을 다양한 연기의 결로 효과적으로 실현한다.
 
맥문아재비(토비 경)의 전중용도 다소 중요함이 덜할 수 있는 서브플롯에 균형을 잡아준다. 안태랑(산자고, 오시노), 이국호(쑥부쟁이, 말볼리오), 성민재(해국, 안토니오), 정우근(청가시, 세바스찬), 한인수(패랭이, 앤드류), 최민규(비수리, 마리아)도 각자의 역을 충실히 소화하여 극에 재미를 더해 준다.
 
배우들의 연기는 탄탄하면서도 동작 자체가 크기 때문에 동시에 엄청난 에너지를 뿜어낸다. 관객은 에너지가 충만한 배우의 몸을 통해서 셰익스피어의 본래 극이 주는 것 이상의 의미를 발견한다.
 
우리 고유의 것으로 세계적 보편성을 획득하다
 
무대와 객석의 새로운 관계 맺기가 이루어진다. 여기에는 극장의 모양도 한몫 해낸다. 낮은 무대와, 그리고 이 무대를 반원으로 둘러싼 객석의 위치는 배우와 관객 사이의 물리적인 거리를 좁힌다. 물론 배우들이 관객석 통로 사이사이를 오가며 직접 관객에게 말을 걸었던 탓도 크다. 낮은 무대는 관객에게 말 걸기가 수월하고 관객도 위압감을 느끼지 않는다. 과하지 않게 관객의 참여를 유도하여 웃음을 효과적으로 유발한다. 연출가가 의도한 정서적인 효과와 관객이 느끼는 정서적인 효과가 동일하다.
 
단풍색의 거대한 무대는 배우들의 움직임이 많아서 산만해 보일 수 있는 여지가 있다. 하지만 화려한 색상의 무대를 빈 무대처럼 활용하고, 거기에 단순한 색의 조명을 사용함으로써 강약조절에 성공한다. 라이브로 연주되는 전통음악도 빠르고 가벼운 배우들의 몸짓과 잘 어울린다. 몸짓에 맞는 북소리, 목관악기 소리 등이 적절한 템포로 관객의 몰입에 도움을 준다.
 
양정웅의 <십이야>는 셰익스피어의 극보다 문학적인 고상함이 떨어질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는 문학적인 텍스트의 빈자리를 현존하는 배우들로 채워 넣었다. 배우가 보여주는 몸짓이 우리만의 독특한 것일지라도, 범세계적인 보편성을 획득하기에 손색이 없었다. 셰익스피어가 표현하고자 했던 혼돈의 세상이 우리의 양식으로 새롭게 표현되었다. 보편성과 특수성사이의 간극은 관객에게 새로운 경험의 기회를 제공했다.
 
무대 위의 배우들은 공연 내내 아주 즐겁게 연기했다. 이 공연에서는 관객이 이들의 즐거움을 그대로 느낄 수 있었다. 이것이 바로 소통의 원천이다.  (전강희)
 
□ 공연: 서울남산국악당 기획공연 “십이야(十二夜)”
□ 일정: 2011년 11월 11일~20일 저녁 7시30분, 토/일 오후 3시, 월요일 없음
□ 장소: 서울남산국악당
□ 제작: 극단 여행자
□ 연출: 양정웅
□ 출연: 안태랑, 전중용, 이국호, 오민석, 김대진, 김진곤, 성민재, 정우근, 한인수, 김상보, 최민규
□ 문의: 02)2261-0512~5

미디어 <일다> 바로가기 www.ildaro.com

댓글
  • 프로필사진 여강여호 세익스피어 희곡들은 많이 읽었다고 생각했는데...
    '십이야'는 늘 읽어봐야지 하면서 여태 읽지 못했네요.
    남자들만 출연하는 연극 '십이야'......대전에서도 한다면 꼭 보고 싶네요.
    2011.11.19 08:21
댓글쓰기 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