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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험으로 말하다

그해 여름, 공장에 취업하다

그 여자들의 물결 일다 2011.07.26 16:00
<일다> 윤하의 딸을 만나러 가는 길 (16) 그해 여름, 취업일기
 
대학을 졸업한 해, 취직할 공장을 찾아 그늘 한 점 없는 불볕의 공단 거리를 헤맸던 때는 지금처럼 뜨거운 7월 중순 즈음이었다. 당시는 일이 너무 힘에 부쳐 2주 만에 전등공장의 조립 일을 그만 둔 직후였고, 미적거리다간 용기마저 떨어지겠다 싶어서 서둘러 다른 공장에 취직 하려고 애쓰던 때였다. 그래서 찾은 곳이 당시 ‘도트프린터’의 메인보드를 만들어 대기업에 납품하는 작은 전자회사였다.
 

그 당시, 대학졸업 사실을 숨기고 공장에 취직하는 건 정말 힘든 일이었다. 그러나 내겐 전혀 어렵지 않았다. 부모님과 함께 사는 주소지와 전화번호, 이런 확실한 신분을 드러내는 서류를 보고 내가 위장취업을 하는 운동권일 거라고 의심하는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20여 년 전, 많은 학생운동 출신들은 노조활동조차 보장되어 있지 않은 노동현장을 변화시키고, 노동자들의 인권의식을 높여주기 위해 공장에 취직하는 걸 매우 영예롭게 생각했다. 노동운동은 내게도 매력적으로 느껴졌다. 누군가 노동운동을 선택한다는 건 그가 정말 용감하고 사상적으로 투철한 사람이라는 걸 반영하는 지표이기도 했다. 그러나 이런 결정을 내리기가 결코 쉽지 않았다.
 
대학을 졸업한 자식이 노동자가 되는 걸 좋아하는 부모는 없었다. 그래서 내가 아는, 노동운동을 하는 선배들은 공장밀집 지역에서 활동하기 위해 하나같이 집을 나왔다. 이런 과정에서 거의 다 부모와는 사이가 나빠지고, 시간이 지나면서 그래도 자식을 포기할 수 없는 부모들이 마음을 열 때 쯤, 슬그머니 집을 드나들며 다시 부모자식 간의 관계를 회복하는 식이었다.


그러나 나는 그렇게 하고 싶지 않았다. 그건 대학 4년 동안 힘들게 등록금을 내주신 부모님을 배신하는 행위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결심한 것이 허락을 맡는 것이었다. 난 ‘부모님께 허락을 받아 공장에 취직한다’를 목표로 정했다. 내 이 계획을 들은 동료들은 입을 모아, “말도 안 돼! 그게 가능하니? 네가 공장에 취직하지 않으려고 하는 거구나!”했다. 그들에게 난 담담하게 대답했다.
 
“아니, 공장에 취직할 거야! 꼭 부모님께 허락을 받아 취직할 거야!”
 
그러고는 용기를 내어 부모님께 내 계획을 힘들게 밝혔을 때, 예상대로 부모님은 너무 놀라고 황당해 하셨다. 대학을 졸업한지 5개월이 넘도록 취직할 생각은 하지 않고 뭔가 궁리하듯 왔다 갔다 하던 아이가 밝힌 계획이 노동자가 되겠다는 것이다.
 
어머니는 “학생운동을 하는 것도 오냐오냐하며 봐주었더니, 이제 이런 식으로 뒤통수를 치냐! 너 죽고 나죽자!”하시며, 결국 내 머리채를 휘어잡으셨다. 어머니의 폭력적인 반응에 놀란 아버지는 어머니를 내게서 겨우 떼어 놓고, 단둘이 얘기하자며 방으로 날 데리고 들어가셨다. 그 자리에서 노동운동에 대한 내 열의를 밝혔다. 아버지는 늘 우리 남매들에게 하고 싶은 것을 하라고 하셨고 그래서 학생운동을 하는 내가 탐탁하지 않았음에도 지원과 지지를 아끼지 않으셨던 터였다.
 
내 계획을 다 들으신 아버지는 이렇게 제안하셨다. “우리 둘 다 조금씩 양보하자. 너는 원하는 공장을 다니도록 해라. 하지만 공장 때문에 집을 나가 사는 건 반대다. 집에서 다닐 수 있는 공장에 다닌다면 찬성하마.” 나는 아버지의 제안에 깜짝 놀랐다. 아버지의 제안은 내가 그때까지 한 번도 생각하지 못했던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집에서 가장 가까운 서울의 한 공단에서 취직할 곳을 찾아 나섰고, 이렇게 부모님 허락을 받아 집에서 다니는 상황이다 보니 취직하기가 더 수월했다.
 
회사 관계자와 동료들에게 고등학교 졸업 후 지금까지 장사를 하시는 부모님을 대신해 집에서 살림을 했고, 동생들이 어느 정도 큰 상황에서 나도 사회생활이 하고 싶어 취직을 하러 나왔다고 했다. 사람들은 그런 내 말을 한 치의 의심 없이 믿었다. 어리바리한 모습과 행동에서 사회생활을 하지 않았다는 건 한 눈에도 알 수 있었고, 게다가 대학을 졸업했다는 걸 상상하는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머리채를 잡으셨던 어머니는 취직을 한 직후에는 “시원하게 다녀라”하시며, 옷과 왕골가방을 사주셨다. “공장을 다니더라도 책은 읽어야 되지 않겠니? 그래서 좀 큰 가방을 샀다”는 말을 덧붙이시며, 어머니는 애잔한 표정으로 선물을 내미셨다. 그러나 선선히 내 계획을 찬성해주신 아버지는 그 후 한 달 가량 내게 말을 시키지 않으셨다. 아버지는 서로 양보했지만, 결국 내가 당신의 기를 꺾었다고 생각하신 듯했다.

아버지가 다시 내게 말을 걸기 시작하신 건 결혼한 언니부부와 당시는 남자친구였던 전남편과 형제, 자매들이 모두 모인 가족 모임에서였다. 아버지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윤하가 뭔가 훌륭한 일을 하려고 마음먹은 것 같다. 그리고 얼마간 지켜보았는데, 잘 할 것 같다. 열심히 하도록 해라.”
 
아버지의 이 말씀은 내게 많은 용기를 주었다. 그러나 공장일이 마음에 들고 재미있는 건 결코 아니었다. 공장에 취직을 하고 나서야 드디어 내가 그렇게 힘들다는 공장 일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내가 정말 ‘노동자’가 되어 있었다. 결코 녹녹치 않은 일을 하고 있었다. 그러면서 날씨는 점점 더 더워지고 있었다. (윤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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