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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험으로 말하다

동성커플, 아이를 결심하기까지

그 여자들의 물결 일다 2011.07.26 07:30
<일다> 김산의 "두 엄마 육아일기" 2회 

※<일다> www.ildaro.com 새 연재가 시작되었습니다. 캐나다에서 동성 파트너와 함께 아이를 양육하고 있는 ‘김산’님이 “두 엄마의 육아일기”를 통해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줄 예정입니다. 한국사회의 단단한 이성애 각본을 흔들어 줄 ‘이반(동성애자) 양육’ 칼럼 연재에 많은 관심 바랍니다. – 편집자 주


변심과 항심 ‘아이를 결심하기까지’  

 

아이가 태어난 후로 안면통과 치통이 심하게 왔다. 감기기운도 있어서, 관련된 증상인 줄 알고 참다가, 감기가 나은 위에도 가시질 않아 결국엔 치과의사에게 가봤다. 스트레스성 턱관절염 증상이란다.
 
“스트레스라고요? 설마요, 지금 얼마나 행복한 순간인데요.” 내가 웃으며 물었다. 아마도 아기를 보고 하루 종일 웃어대는 일이 그간 안 쓰던 근육을 무리하게 했나 보다. 의사 왈, 스트레스나 행복감이나 인생의 큰 변화를 맞이하는 차원에서 우리 몸이 느끼는 건 비슷할 수 있단다. 수수께끼지만, 모순이 공존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는 듯도 하다.
 
파트너가 임신한 지 3개월이 넘어 안정기에 접어들면서 아는 이들에게 임신 사실을 알리기 시작했다. 밥이나 차를 마시며 얘기하는 상황이면, 축하한다는 말 뒤에 천천히 건네오는 질문. 아이를 낳아 기를 생각을 어떻게 하게 된 것인지 궁금하단다. 동성커플로서 아이를 기르는 것이 만만한 일이 아님을 짐작하고, 순수한 호기심이든, 함께 걱정하는 맘에서든, 아님 먼저 경험한 사람으로서 독려하는 의미에서 묻는 거다.
 
특히, 개중엔 내가 꽤 최근까지도 아이를 낳거나 기르는 것에 대해 그리 관심을 보이지 않았음을 알기 때문에 묻는 경우도 있고, 파트너와 날 둘 다 아는 사람들은 “하필” 내가 아닌, 파트너가 아이를 낳기로 한 것에 대한 놀라움의 표현이었다.
 
아이를 갖는 것에 대한 생각의 변화
 
먼저, 왜 내가 변심(?)했는가에 대한 답변부터 시작해야겠다. 맞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다. 어릴 적부터 아이를 낳는 것을 비롯해, 결혼이나 가정생활을 하는 게 영 낯설고 내 인생에 걸맞지 않은 것처럼 느껴졌다. 일찍 자라버린 몸과 조숙한 태도 덕분에 “여자애답게” 그것도 “현모양처” 감으로 비춰지기 일쑤였지만, 성역할 체계 안에 쉽게 자리매김이 안 되는 자아상이 내 직감체계 속에 일찌감치 깊숙이 들어와 있었다. 여성주의자로서나 이반(동성애자)으로서의 정치성/정체성을 인식하기 훨씬 전이다.
 
물론 여성이반으로서의 정체성/정치성은 이성애 결혼제도에 대한 비판의식을 날카롭게 키워주었고, 내 몸과 인생을 재생산의 도구로 먼저 보는 시선들을 곱게 넘길 수 없었다. 예를 들자면, 10년 전쯤 북미에 와서 만난 한국인 이반남성이 자기랑 결혼해서 아이를 같이 낳으면 좋겠다고 제안했다. 부모에게도 효도하고 윈-윈 아니냐고. 그것도 마치 그런 제안이 나의 여성성과 젊은 몸에 대한 칭찬인 것처럼, 옆에 있던 내 전 애인을 은연중 평가절하하면서.
 
지금 같으면 (나중에 더 얘기가 나오겠지만, 아이를 갖고 싶은 여성이반 커플 입장에선 정자 기증인을 찾는 게 만만치 않은 일이다.) 정자 기증인의 조건으로 나름의 협상을 해볼만한 제안일 수도 있겠다. 하지만 당시엔 자기의 대를 잇고 싶은 이의 안하무인 제안 이상 내게 아무 의미가 없었다. 되려, 그런 일들을 통해 아이에 대한 관심이 더 멀어졌다고 보는 게 맞다.
 
근데 왜 바뀌었나? 파트너도 나도, 사귀던 처음 4,5년간 아이를 가지는 것에 ‘관심 없음’을 연거푸 확인하던 차였다. 그런 얘길 하게 된 계기는, 조카들을 보며 너무 귀여워하는 자신들의 모습에 대한 성찰이었다. 이렇게 애들이 예쁘면 우리가 아이를 가지고 싶어하는 건가 하면서 말이다. 하지만 둘 다 아니라고 자신 있게 대답하던 과정에서, ‘낳는 데 관심 없어도 기르는 건 다를 수 있겠다’는 정도의 생각을 하게 되었던 것 같다.
 
이런 생각들을 엿본 이들의 응원(?)도 한몫 했다고 본다. 파트너가 따르는 할머니가 뜬금없이 ‘너희도 아이 있음 잘 기를 텐데’ 라고 얘기하신 것이라든지, 진보적인 동네에서 만난 일반커플 친구들이 임신 소식을 나누며 아이에 대한 내 의향을 묻고는 주춤하는 나에게 ‘세상을 바꾸는 가장 큰 저력은 아이들을 잘 키워 대안세력을 만드는 것’이라고 말해서 맘의 파장을 일으킨 일, 그리고 파트너의 오랜 여성 이반친구가 아이를 낳았다며 우릴 ‘이모’라고 초대한 일 등등.
 
입양을 할까?
 
낳지 않고 기를 수 있다면? 입양이 선택인 것 같았다. 사실 ‘입양’은 파트너를 만나기 전부터 궁싯거리던 주제다. 내가 입양을 하고 싶다는 차원에서보단, 90년대 중후반부터 북미와 한국에서 결집하기 시작한 한국입양아 운동가들을 만나면서, 이 주제의 심각성을 인식했다고 보는 게 맞을 것 같다.
 
한국은 전쟁 이후 고아가 된 아이들을 북미와 유럽으로 입양 보내기 시작하여, 경제성장 이후에도 꽤 오랫동안 ‘입양아를 보내는 나라’ 상위순위를 놓치지 않았다. 그 배경을 살펴보면, 결혼을 통한 재생산만이 적법한 이성애정상가족 제도로 인해, 한국의 미혼모들은 아이를 포기하게 되기 십상이었다. 또 단일민족 혈연주의가 뿌리깊기 때문에, 한국 사회에서 유색인종 자녀를 둔 기지촌 여성 등은 편견 없이 자녀를 양육하기가 어려웠다.
 
입양된 걸 천만다행으로 생각하는 이들도 물론 있지만, 해외입양에 반대하거나 개선을 주장하는 운동가들은 ‘국가의 역할’에 대해 문제를 제기한다. 입양아들은 백인중심의 사회에서 심각한 정체성 혼란을 겪고 인종차별과 각종 폭력에 노출되기 때문이다. 많은 입양아들은 한국이 무책임하게 대량 입양을 허용해 온 것에 대해 비판하고 있으며, 또 입양아를 보내는 데서 오는 ‘수익’을 빌미로 이 같은 현실을 방관해온 혐의가 있다고 지적한다.
 
때문에 혈연 중심의 가족관계를 넘어서고, 내 안의 모성성을 긍정하는 방식으로서 ‘입양’을 생각해보다가도, 과연 내가 북미에서 ‘한국입양’의 역사적 구조적 폭력을 되풀이하지 않고 아이를 키울 수 있을까 자신이 없었다. 또 나처럼 법적으로 싱글인 한 (한국에서는 싱글, 캐나다에서는 사실혼 관계로 되어있다), 한국에서의 입양은 거의 불가능한 상황이다.
 
그럼, 한국아이를 입양하지 않고 북미에서 백인아이를 입양해 기르면 어떨까. 적어도 북미의 입양 상황에서 드러나는 인종간 불평등 관계—백인 입양양육인과 유색인 입양아—에 도전해볼 수 있는 계기가 될 수는 있을 것이다.
 
사실 인종간 불균등 관계를 대변하는 입양과 그로 인해 정체성의 혼란을 겪는 유색인종 입양아의 경험은, 역사적으로 훨씬 더 거슬러 올라갈 것이다. 우연히 접한 <오리카>란 실화 바탕의 소설에도 그 흔적이 묻어있다. 18세기 말 프랑스 귀족에게 입양된 세네갈 여성이 죽음을 앞두고 평생을 시달려온 우울증의 근원, 즉 백인귀족사회나 흑인노예사회에서 모두 환영받지 못하는 존재로서의 자각과 그로 인한 고립과 고통을 기록하고 있다.
 
그럼 내가 상상하는 전복은 이런 인종적 불평등에서 오는 입양아들의 고통을 방지할 수 있을 건가 생각해봤다. 되려, 아이의 평생을 걸 위험부담은 마찬가지가 아닐까 싶었다. 아이가 자신의 피부색으로 분류될 백인 주류문화에 동화되길 바라지 않는 내 맘이 아이에게는 부담과 상처를 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그로 인해 나와 아이의 관계가 멀어지게 될 수도 있음에 대한 우려도 적쟎고.
 
또, 파트너의 동의와 분담체계 없이 나 혼자의 생각으로는 안 될 일. 유색인종인 내 파트너는, 북미 안에서 입양은 긍정적이되, 백인입양은 섣부른 생각이란 의견을 분명히 밝혔다. 대신 아이를 여럿 기르기로 결정할 경우, 서로가 동의할 수 있는 입양에 대해 가능성을 닫지 않고 현재진행형으로 남겨두기로 했다.
 
파트너와 살림을 차리고서 “이변이 생겼다”
 
이쯤 해서 내 파트너 필명을 “훈”이라고 소개한다. 훈은 여기서 태어나 자라면서 인종관계에 대한 정치적 견해가 날카롭다. 감정의 기복이 느껴지지 않는 과묵한 성격에, 군살 없는 중성적 외모다. 훈과 같이 5년을 사귀면서도 따로 살림을 하다가 (북미에선 레즈비언들이 사귀기 3일만에 살림 차린다고 놀리는 말이 있는데, 우리 경우는 아니었다.) 결국 사는 공간을 합쳤다. 첨엔 세를 들어 같이 살다가 이런 저런 계기로 갑작스레 집을 함께 마련하게 되었다.
 
헌데, 집을 산 지 얼마 되지 않아 이변이 일어났다. 훈이 자기가 아이를 낳을 수 있을 것 같다고 했다. 턱이 빠지는 줄 알았다. 너무 놀라서. 내 안에 있던 편견이 작동해서일까. “여성적” 외모를 가진 나도 관심이 없는 임신/출산을 “중성적” 태도를 가진 훈이 변심하리라고는 상상치 못하는 바였다. 입양이 법적으로 어렵다는 걸 의식한 걸까, 아님 연세 많은 할머니의 격려 때문이었을까, 아직도 훈 스스로조차 정확한 동기를 기억하지 못한다.
 
그렇게 놀라고는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난 제정신 반 아닌 정신 반으로 반가움과 고마움을 표했다. 진심이냐고 몇 차례 걸쳐 물었다. 이런 말은 한 번이어도 진정성을 의심해선 안 되는 것이거늘, 더군다나 과묵한 훈이 한 말인데, 너무 좋아하는 내가 (왠 굴러온 떡인가 하며) 속물인 것만 같아 자꾸 확인했다.
 
훈이 임신한 사실은 많은 이들을 놀라게 만들었다. 훈의 정체성에 대해 이해하는 친구들도 그 용기에 놀라고 (왜 용기라고 하는지는 나중에 더 알게 될 것이다.) 만삭이 되어서야 임신이란 걸 알아본 동료들도 티가 나지 않는 임신에 놀랐다. 누군가는 9개월이 되어서도 맥주로 인해 부른 배 정도로 생각했다고 농을 친다. 훈이 나보다 젊은 것을 이유로 나 “대신” 훈이 임신하게 되었다고 짐작 추정하는 이들이 적지 않지만, 이 구구절절한 변심과 항심을 다 일일이 드러낼 수 없어, 굳이 부인하지 않고 가끔 맞장구도 쳐준다.
 
독자들은 어떤가 난 궁금하다. 우리의 변심과 항심이 여전히 수수께끼라 느끼는지, 아님 복잡한(?) 경로를 들으며 고개를 끄덕이는지. 다음 편도 이보다 덜하지 않은 구구절절한 내막, “어떻게 아빠 없이 애를 낳아요?”를 선보일 예정이다. (김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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