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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다> 이경신의 도서관 나들이(48) 프란츠 알트의 ‘생태적 경제 기적’
쏟아지는 비에도 아랑곳없이 도서관은 사람들로 북적거린다. 사람들 사이를 요리조리 비켜 서가를 헤매다 수개월 전 시간에 쫓겨 미처 다 읽지 못하고 반납한 프란츠 알트의 책, <생태적 경제 기적(양문, 2004)>이 문득 떠올랐다. 그 책을 찾던 중에 그의 또 다른 책 <지구의 미래(민음인, 2010)도 함께 빌릴 수 있었다. 날씨가 궂어도 운이 좋은 날이다.
‘생태가 없으면 경제도 없다!’
프란츠 알트는 경제와 생태를 화해시키면, 즉 에너지, 교통, 농업이 생태적으로 바뀌면, 경제 기적이 일어난다고 믿는다. 이러한 믿음은 ‘경제는 생태에 종속’되어 있다는 생각, ‘생태가 없으면 경제가 없다’는 생각과 연결되어 있다. 경제가 생명을 소중히 여기고 주어진 한계를 인정할 줄 알 때, 차원 높은 삶이 보장되고, 생태적으로 풍요로운 삶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생태를 무시하고 윤리적 가치에 무관심한 자유주의 시장경제는 어떤가? 환경오염과 기후변화를 야기하고 경제적 불평등, 남녀 불평등을 조장해 실업을 증가시키고 생태적 위기를 가중시켜 왔다. 경제적, 사회적, 생태적, 도덕적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생태적 관심에 기초한 성숙한 경제, 즉 ‘생태사회적인 시장경제’로 나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이 생태적인 경제야말로 우리를 ‘생태적 경제 기적’이라는 희망찬 미래로 안내할 수 있다는 것이다.
여기서, 경제 기적을 일으키려면 무한한 경제성장이 더는 불가능하다는 인식에서 출발해야 하고, 지금 우리는 경제의 외적 성장이 아니라 ‘내적 성숙’을 도모해야 할 때라는 철학자의 이야기를 깊이 새겨들어야 하리라. 대량실업과 생태위기가 어디 독일만의 문제일까? 햇살처럼 눈부신 ‘전망’, 즉 ‘생태적 경제기적’에 마음이 설렌다. 우리의 미래일 수 있으니 말이다.
모두를 위한 태양에너지로 위기탈출
철학자가 제시하는 위기탈출의 열쇠는 바로 ‘태양’이다.
사실, 온실가스를 배출해 지구환경을 오염시키고 기후이상을 야기하는 석탄, 석유, 가스와 같은 화석연료도 문제지만, 화석연료를 대체하기 위해 제안된 원자력 에너지도 사고위험, 테러위협에 노출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핵폐기물을 남긴다는 점에서 인류 생존을 위협하긴 마찬가지다.
이처럼 생태위기가 에너지문제와 직결되어 있으니, 생태적 에너지로 전환해야 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태양에너지로의 전환’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태양에너지는 무제한적으로 사용할 수 있다. 어떤 에너지원도 태양에너지처럼 제한 없이 저렴하게 작동하지는 못한다. 태양 에너지 시설은 적은 비용으로 경관의 손상 없이 설치될 수 있다. 그것도 전력과 난방, 냉방이 필요한 바로 그곳, 즉 자기 집에 말이다. 분산적인 에너지 공급은 재생 방식으로서, 소음이 없고 오염 물질의 방출이 없으며 후속 비용의 발생 없이 이루어진다. 그리고 그 돈은 그 지역에 머문다.”
(프란츠 알트, <지구의 미래(민음인, 2010>, ‘빌 게이츠는 왜 독일의 태양 에너지 주식을 구입할까?’)
값싸고 안전한 에너지인 태양에너지를 사용한다면, 에너지로 인한 환경오염도, 에너지부족도 문제일 수 없다. 우리가 원자력에 매달리지 않더라도 전 세계는 재생 가능한 ‘태양 에너지’ 덕분에 우리의 필요를 웃도는, 충분한 양의 에너지를 얻으니까. (프란츠 알트는 태양, 물, 바람, 식물에서 얻을 수 있는 재생 가능한 에너지를 기본적으로 태양에너지로 본다. 태양광, 태양전지, 태양수소는 직접적인 태양에너지요, 물, 바람, 바이오매스는 간접적인 태양에너지로 간주한다.)
문제는 에너지에 대한 잘못된 인식과 정책, 그릇된 생산과 소비이다. 프란츠 알트는 에너지에 대한 우리의 태도가 문제라고 지적한다. 여전히 재생 가능한 에너지가 비싸다고 반대하는 사람들은 환경파괴비용을 계산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화석연료가 지나치게 싼 값에 공급되는 문제는 회피한다. 햇빛이 충분치 않은 곳에서는 태양에너지를 이용할 수 없다고, 태양에너지는 저장이 안 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만 해도 정보가 부족해 편견에 사로잡혀 있다. 흐린 날씨에도 산란방사선을 열로 바꿀 수 있으며, 태양에너지도 1년 내내 저장가능하다.
에너지의 생태적 전환에 들어가는 비용은 일자리 창출로 이어질 수 있고, 누구나 어디서나 마음껏 이용할 수 있는 것이 태양에너지이기 때문에 누구도 태양에너지를 쟁취하기 위해 전쟁을 벌이는 일은 있을 수 없다는 점도 주목하자. 고갈되는 가스와 석유에 집착한 낡은 정치가 자연과 인간의 착취, 전쟁을 일으키는 것에 반해, 태양에너지는 우리에게 평화를 보장한다.
그러나 우리가 아직까지도 에너지의 생태적 전환을 착수하지 못하는 까닭은 기술보다 정치적 의지가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철학자는 한탄한다. 에너지 전환이 제 때 이루어져야 한다는 인식을 공유한다면, 정치적 의지는 그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프란츠 알트에 의하면, 진정한 민주정치는 태양에너지로 전환을 가능하게 하는 ‘태양정치’와 더불어서만이 가능하다. 지역분산적인 에너지 생산구조에 기반을 두고 있어 사람들이 거대경제에 좌우되지 않기 때문이다.
결국 길 잃은 경제도, 방향을 상실한 정치도 태양의 인도를 받아 길을 헤쳐 나갈 일만 남은 것 같다.
생태적 기적이 안겨 준 미래의 삶
나는 책을 읽으며 철학자와 함께 미래를 꿈꾼다.
사람들은 대부분 집에서 일한다. 밖에서 일해야 하는 사람들은 집 가까운 곳에 직장이 있어 걸어가거나 자전거나 대중교통을 이용한다. 혹시 원거리 출장을 가야 할 일이 있으면 기차를 탄다. 국내이동을 위해 비행기를 이용하는 사람은 없다. 국내항공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제 더는 ‘남자는 바깥일, 여자는 집안일’이라는 고전적 역할분담은 의미가 없다. 남녀 각자 적당한 시간에 반나절 정도 직업노동을 하고, 나머지 시간에는 가사노동, 육아와 같은 가정일을 공평하게 분담해서 한다. 가족 모두 충분한 휴식을 취하고 삶을 즐길 여유를 갖는다.
도심에는 자동차가 사라져서 축제를 비롯해 다양한 문화 활동이 벌어진다. 공기도 깨끗하고 소음도 없고 길을 다니기 안전한 도시, 쾌적하고 한가로운 도시, 생태적으로도 문화적으로도 풍성한 도시에서 살아가다 보니, 굳이 장거리 여행을 떠나는 사람도 없다.
아, 상상만 해도 여유로운 삶이 아닌가!
이 철학자의 말대로, 돈 버는 일을 적게 하니 물질적 수입은 감소할 수 있지만 비물질적인 가치를 추구할 수 있어 삶의 질은 더 높아질 수 있을 것이다. 그는 자신이 내보이는 미래의 ‘전망’이 유토피아가 아니라 다가올 현실이라고 단언한다.
이 기적 같은 일이 현실일 수 있기 위해서는 우리가 지금 제대로 알아야 하고, 알고 있는 것을 하나씩 실천에 옮겨야 한다. 직접 집에다 태양에너지 시설(태양광 집열판과 태양광 발전기)을 갖춰 놓고 온수, 냉·난방을 해결하고, 화장실은 빗물을 받아 사용하며, 이동의 97%를 대중교통에 의존하며 살고 있다는 철학자는 정말로 알고 있는 것을 행동에 옮기고 있는 중이었다.
‘보다 적은 소비를 통해 보다 나은 삶’으로 나아간다는 것이 결코 포기도, 희생도, 금욕도 아니고 기쁨일 수 있다는 이야기가 여운으로 남는다. 밖에는 비가 억수같이 퍼붓지만, 책을 읽는 동안 희망에 벅차서인지 따사로운 햇살 아래 있는 것처럼 아늑했다. (이경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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