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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다> 日 여성신문 '페민'이 전하는 현지상황과 여성들 목소리
[후쿠시마 제1원자력발전소가 있는 후쿠시마현 남쪽에 인접한 이바라키현에 사는 여성의 모유에서 4월 21일, 방사성 요소가 검출되었다. 모유에서 방사성물질이 검출되리라는 것은 예측되었던 바다. 하지만 그것이 현실로 드러났을 때의 충격은 상당한 것이었다. 어린이는 방사능에 민감하다. 그러나 지금 일본은 어린이들의 안전을 지킬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3월 11일 대지진 이후 한 달 반이 흐른 지금, 일본 현지의 상황과 시민사회의 움직임은 어떠한지, ‘일다’와 제휴관계에 있는 여성언론 ‘페민’의 편집장 아카이시 치에코씨가 전한다. -편집자 주]
<일다> 독자 여러분, 안녕하세요?
<페민>의 직원들과 회원들은 잘 지내고 있습니다. 도쿄에서도 방사능을 걱정하기는 하지만, 저는 수돗물을 마시고, 비를 맞지 않도록 주의하고, 가끔 안정요소를 다량 섭취하고, 다시마를 먹고, 정상 운행을 재개한 전철을 타고 회사에 다니고 있습니다. 계획 정전은 거의 끝나 이전과 비슷한 생활입니다. 하지만 피해지역의 복구가 진행됨과 동시에, 원자력 피해를 입은 후쿠시마의 상황은 심각성을 더해가고 있습니다.
지진과 쓰나미에 의한 막대한 피해로 사망자는 3만 명을 넘었습니다. 아직까지 신원이 확인되지 않은 시신도 많습니다. 그러나 그대로 방치할 수 없기 때문에 매장이나 화장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언론에서는 시신의 모습을 비추지 않으므로 일반 시민들이 시신을 직접 볼 일은 없지만, 화장터가 부족해서 도쿄의 화장터까지 풀 가동되고 있다고 합니다.
가족을 잃은 사람들의 슬픔, 부모를 잃은 아이들의 상황을 전해 듣습니다. 어린이들은 보호시설에 들어가기보다 친척들이 맡는 경우가 많은 듯합니다.
피난소 생활도 한 달 넘어가면서 그곳 사람들에게도 상당한 피로가 쌓여있으리라 생각됩니다. 가설주택 건설도 시작되었고, 2차 피난소로 옮기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식료품, 물자, 가솔린 등의 물류 체계와 도로는 상당히 복구되었고, 도호쿠 신칸센 열차는 혼슈의 최북단 아오모리까지 개통될 예정입니다.
많은 자원봉사자들이 도호쿠를 찾아 흙탕물을 닦아내고, 물자와 식사 등을 배급하는 등 쓰나미의 뒷수습을 하고 있습니다. 5월 초 일본은 일주일 연휴에 들어가는데, 이때 더 많은 자원봉사자들이 피해지역을 찾을 것으로 보입니다.
자원봉사단체들 간의 정보 교환을 위해, ‘동일본 대지진 지원네트워크’가 결성되어 정부와 협상도 진행하고 있습니다. 그동안 해외 원조를 주로 해오던 민간단체들도 모두 모여 도호쿠 지역에 들어가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습니다.
1995년 한신 아와지 대지진 때도 6천명이 사망하는 등 막대한 피해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때는 가옥이 전파, 혹은 반파되었어도 집에 돌아가 중요한 물품이나 추억이 깃든 물건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번 쓰나미로 모든 것을 쓸려 보낸 사람들에게는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습니다. 하루하루 쓰나미의 위력을 새삼 느끼게 됩니다.
자원봉사를 하고 있는 사람에게서 들으니, 도호쿠 지방 사람들은 ‘인내심이 강하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것이 정말 좋은 것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괜찮은지 물어보아도 자신이 처한 어려운 상황이나, 해줬으면 하는 바람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고, 오히려 도움을 주려 하는 자원봉사자들을 좀처럼 지역사회에 받아들여주지 않는다고 합니다.
피해지역에서 여성들의 이야기를 듣기는 더욱 어렵습니다. 더구나 가족 단위로 피난해 있을 경우, ‘남편들은 자신의 의견을 말해도 여성들은 발언을 하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각지에서 듣습니다.
‘일치단결’ 기치 하에 여성들의 목소리는 가려져
얼마 전, 피난소 운영에 여성의 관점을 반영하라는 우리의 요구가 내각부 남녀공동참획국으로부터 각 도도부현을 통해 피난소에 전달되었습니다. 피난소에 칸막이와 남녀분리 탈의실, 조명이 밝은 남녀분리 화장실을 마련하고, 여성들을 피난소 운영에 참여시키라는 내용입니다. 하지만 이 통지는 현장에 제대로 반영되지 않고 있습니다.
칸막이 없는 피난소에는 아이들을 위한 공간도 없어, 어머니들이 밤에 깨어 우는 아이들의 소리를 신경 쓰느라 고충이 심하다는 호소를 들었습니다. 칸막이 설치를 피난소 대표가 허가하지 않거나, 여성들의 공간을 만들어달라는 여성단체의 요청에 마을 공무원들이 응하지 않는 경우도 있어, 속옷을 말릴 장소조차 마땅치 않습니다.
‘재해’라는 비상시에는 지금까지 쌓아온 여성들의 권리나 목소리는 사라지고, 다시금 성별 역할이 강화되어버립니다. 더군다나 재해복구 같은 힘을 쓰는 작업에 여성들이 참여하기는 쉽지 않기 때문에, 여성의 가치는 더더욱 폄하됩니다.
후쿠시마현에서 피난 온 여성들과 이야기를 나눠보았습니다. 주로 대가족이 함께 피난한 경우가 많고, 이 경우 여성들은 ‘며느리로서의 역할’을 해야 하는 경우가 많아, 자신만의 생각을 이야기하기가 어려운 것 같습니다.
성폭력 피해에 대한 소식도 조금씩 전해오기 시작했습니다. 16년 전 한신 아와지 대지진 때에는 칠흑 같은 피해지역에서 강간을 당했다는 상담 보고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객관적인 조사자료가 없었던 탓에, 구조를 요청한 여성은 ‘허위사실을 날조했다’는 비난을 받아야 했습니다.
이번에는 객관적인 조사를 바탕으로 여성들의 목소리를 전달할 수 있도록, 시민사회가 ‘피해여성 지원네트워크’ 설립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저 역시 그 일원입니다. 피해지역에서 여성에 대한 성폭력이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을 기사화했으면 좋겠다고 대형언론사의 기자에게 말한 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에 대한 반응은 “지진 후 일본이 일치단결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이야기에 반하는 것은 쓸 수 없을 것”이었습니다.
텔레비전 공익광고에는 연예인들이 등장해서 “일본은 훌륭한 나라다” “힘내자, 일본”이라고 되풀이해 말합니다. 지진피해자들은 최선을 다해 힘을 내고 견디고 있습니다. 이 이상 무엇을 더 하라는 걸까요. 이러한 광고는 일본의 국가주의와 전체주의를 부채질 하는 것 외에 아무 의미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사람들에게 일어나고 있는 일은 동일하지 않습니다. 이야기는 수없이 많고 다양합니다. 그런데도 왜 ‘단결해서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이야기만이 용인되는 것일까요. 언론은 지금과 같은 시기에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일까 생각하게 됩니다. 그 전에 해야 할 일은, 피해자에 대한 보상이나 생활재건을 제대로 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드는 일일 것입니다.
정부는 복구지원회의를 소집했습니다. 그런데 이 회의에 참여시킨 여성극작가는 이전에도 여성의 권리에 대해 심각한 발언을 한 인물로, 페미니스트들은 실망하고 있습니다. 그뿐 아니라 일본이 토건국가, 보다 강력한 남성중심주의 사회로 회귀하는 게 아닐까 염려하고 있습니다.
방사능에 방치되고 있는 후쿠시마 어린이들
▲ 4월 10일 도쿄에서 열린 원자력 반대 집회 © 페민
후쿠시마 제1원자력발전소에서는 심각한 사태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노심용융이 일어나 원자로 안정에 1년은 걸릴 것이라고 예측되는 가운데, 사용이 끝난 연료의 저장용 풀에서도 방사성물질이 나와 핵반응이 계속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우려되고 있습니다. 얼마 전에는 방사성 물질에 오염된 물이 다량 방출되기도 했습니다.
원자로 설계기술자 중 한 사람은 이번 원전 사고는 쓰나미가 일어나기 전, 지진에 의해 원자로나 배관에 문제가 생겨 발생한 것이라 지적합니다. 이런 가운데 20킬로미터 권내로 지정된 피난구역 바깥쪽에도 방사선 적산량이 연간 20밀리시벨트 이상에 달할 것으로 예측되는 구역이 ‘계획 피난구역’으로 추가 설정되었습니다. 하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방사선으로 오염되어있다고 해도, 사람들은 좀처럼 납득하지 못하는 상황입니다.
후쿠시마현 중심부의 코리야마시나 후쿠시마시에서 높은 방사선 수치가 확인되고 있음에도, 현은 4월 6일에 초중학교 개교를 실시했습니다. 이에 따라 어린이들도 학교로 돌아왔습니다. 마치 인질을 잡아두는 것 같은 양상입니다.
‘방사능 측정 프로젝트’라는 시민단체가 후쿠시마현 내 초중학교 교정이나 배수구의 방사선을 측정하니, 연간 누적 피폭량으로 환산할 경우 20밀리시벨트를 초과하는 곳이 많았다고 합니다. 문부과학성은 4월 19일, 어린이들이 연간 20밀리시벨트까지는 피폭되어도 큰 피해가 없다고 갑작스레 기준을 바꿔버렸습니다. 이 수치는 근로기준법에서 18세 이하의 노동이 금지되는 방사선량입니다. 그러나 문부과학성은 “근로기준법의 수치는 몰랐다”고 말할 뿐입니다.
독일의 <슈피겔>지는 신속히 이 소식을 전하며 “일본의 초등학생이 독일의 원자력발전소 노동자와 마찬가지의 피폭을 당하고 있다”고 보도했습니다. 어린이들이 교정에서 마스크도 하지 않은 채 뛰어 놀고 있는 것입니다. 후쿠시마현의 한 여성은 “하다못해, 최소한 어린이들이 노는 교정의 표토라도 들어내줬으면 한다”고 호소합니다.
그리고 4월 21일 시민단체가 모유를 검사한 결과, 모유에서도 방사능 요소 131이 검출된 것입니다. 이런 일이 용인될 수 있을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후쿠시마 현민은 현 바깥으로 피난하는 데 주저합니다. 아무리 어린이들이 피폭될 거라고 이야기해도, 부모들은 거기까지 생각하고 싶어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더구나 방사선 어드바이저라고 하는 야마시타 교수는 후쿠시마 현내 각지에서 강연을 열어 “지금 같은 피폭양은 문제없다” “괜찮다”고 이야기하고 있고, 그 이야기를 믿는 사람들도 늘어나고 있습니다.
지금의 상황은 후쿠시마 어린이들을 방사능에 그대로 방치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몇 년 후, 이 어린이들 중 상당수가 갑상선 이상으로 암이 발병할 수 있겠지요. 러시아 체르노빌 원자력발전소 인근에서 일본을 찾은 파벨 씨는 ‘다양한 질병’과 ‘면역력 저하’가 일어날 것이라고 경고했습니다. 그리고 피폭과 빈곤이 찾아올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내셔널리즘, 일본은 1945년 이후 변하지 않았다
생각해보면 지진대국인 일본에서 50기 이상의 원자력발전을 만들어 가동한다는 것 자체가 비정상입니다. 그런데도 원자력발전을 반대하는 목소리는 아직도 작습니다. 4월 10일에는 1만7천5백명이 도쿄에 모여 반핵 집회를 갖기도 했지만, 이 정도까지 고통을 겪고 있는데도 여론조사에서는 원자력발전이 존속되어야 한다고 대답하는 사람이 절반에 이릅니다. 대부분 국민들은 “원자력발전은 무섭지만, 원전이 없다면 정전이 일어나기 때문에 (중단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도쿄전력은 원전으로 건강상 피해를 입은 사람, 집에서 살 수 없게 된 사람, 직업을 잃은 사람, 농산물의 피해, 기업의 피해 등을 보상해야 합니다. 하지만 앞으로 일어날 건강피해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여러 가지 포석을 깔고 있으리라 생각됩니다. 현 내의 초중학교 어린이들이 향후 갑상선 암에 걸린다 해도 인과관계가 인정되지 않겠죠.
누구에게 책임이 있을까요? 애초에 원자력발전 사고가 상상을 초월한 쓰나미에 의한 것인지, 내진설계에 문제가 있었는지에 대해 기업의 책임을 추궁하는 목소리는 약하기만 합니다. “모두 힘내자. 일본에는 힘이 있다”는 텔레비전 광고가 흘러나올 때마다, ‘일억 총결전’이라며 사람들을 전쟁으로 끌어 모아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에 큰 피해를 주었던 시대와 달라지지 않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최근 종종 생각하게 되는 것은, 일본이 민주주의 국가도, 인권을 중시하는 국가도 아니었다는 점입니다. 1945년 패전 이후 일본이 민주주의 국가로 변모했다고들 하지만, 일본사회에는 전쟁 전 체제나 군국주의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윗사람이 하라는 대로 하는 것, 정보를 공개하지 않는 것, 언론이 사실을 전하지 않는 기민이 계속되고 있는 것입니다. 어떤 여성은 두 딸이 지진대책이라며 전쟁 때와 똑같은 방공 두건을 쓰고 학교에 갈 때마다, “전쟁 전과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았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합니다.
이 나라와 이 사회가 변하기는 정말로 어려울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면서도, 저는 희망을 버리지 않도록 다양한 경로로 지금의 상황과 우리의 의견을 계속해서 전하고자 합니다. (아카이시 치에코 / 번역: 고주영)
* 여성저널리스트들의 유쾌한 실험 <일다> 즐겨찾기 www.ildaro.com
[후쿠시마 제1원자력발전소가 있는 후쿠시마현 남쪽에 인접한 이바라키현에 사는 여성의 모유에서 4월 21일, 방사성 요소가 검출되었다. 모유에서 방사성물질이 검출되리라는 것은 예측되었던 바다. 하지만 그것이 현실로 드러났을 때의 충격은 상당한 것이었다. 어린이는 방사능에 민감하다. 그러나 지금 일본은 어린이들의 안전을 지킬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3월 11일 대지진 이후 한 달 반이 흐른 지금, 일본 현지의 상황과 시민사회의 움직임은 어떠한지, ‘일다’와 제휴관계에 있는 여성언론 ‘페민’의 편집장 아카이시 치에코씨가 전한다. -편집자 주]
<일다> 독자 여러분, 안녕하세요?
<페민>의 직원들과 회원들은 잘 지내고 있습니다. 도쿄에서도 방사능을 걱정하기는 하지만, 저는 수돗물을 마시고, 비를 맞지 않도록 주의하고, 가끔 안정요소를 다량 섭취하고, 다시마를 먹고, 정상 운행을 재개한 전철을 타고 회사에 다니고 있습니다. 계획 정전은 거의 끝나 이전과 비슷한 생활입니다. 하지만 피해지역의 복구가 진행됨과 동시에, 원자력 피해를 입은 후쿠시마의 상황은 심각성을 더해가고 있습니다.
지진과 쓰나미에 의한 막대한 피해로 사망자는 3만 명을 넘었습니다. 아직까지 신원이 확인되지 않은 시신도 많습니다. 그러나 그대로 방치할 수 없기 때문에 매장이나 화장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언론에서는 시신의 모습을 비추지 않으므로 일반 시민들이 시신을 직접 볼 일은 없지만, 화장터가 부족해서 도쿄의 화장터까지 풀 가동되고 있다고 합니다.
가족을 잃은 사람들의 슬픔, 부모를 잃은 아이들의 상황을 전해 듣습니다. 어린이들은 보호시설에 들어가기보다 친척들이 맡는 경우가 많은 듯합니다.
피난소 생활도 한 달 넘어가면서 그곳 사람들에게도 상당한 피로가 쌓여있으리라 생각됩니다. 가설주택 건설도 시작되었고, 2차 피난소로 옮기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식료품, 물자, 가솔린 등의 물류 체계와 도로는 상당히 복구되었고, 도호쿠 신칸센 열차는 혼슈의 최북단 아오모리까지 개통될 예정입니다.
많은 자원봉사자들이 도호쿠를 찾아 흙탕물을 닦아내고, 물자와 식사 등을 배급하는 등 쓰나미의 뒷수습을 하고 있습니다. 5월 초 일본은 일주일 연휴에 들어가는데, 이때 더 많은 자원봉사자들이 피해지역을 찾을 것으로 보입니다.
자원봉사단체들 간의 정보 교환을 위해, ‘동일본 대지진 지원네트워크’가 결성되어 정부와 협상도 진행하고 있습니다. 그동안 해외 원조를 주로 해오던 민간단체들도 모두 모여 도호쿠 지역에 들어가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습니다.
1995년 한신 아와지 대지진 때도 6천명이 사망하는 등 막대한 피해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때는 가옥이 전파, 혹은 반파되었어도 집에 돌아가 중요한 물품이나 추억이 깃든 물건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번 쓰나미로 모든 것을 쓸려 보낸 사람들에게는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습니다. 하루하루 쓰나미의 위력을 새삼 느끼게 됩니다.
자원봉사를 하고 있는 사람에게서 들으니, 도호쿠 지방 사람들은 ‘인내심이 강하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것이 정말 좋은 것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괜찮은지 물어보아도 자신이 처한 어려운 상황이나, 해줬으면 하는 바람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고, 오히려 도움을 주려 하는 자원봉사자들을 좀처럼 지역사회에 받아들여주지 않는다고 합니다.
피해지역에서 여성들의 이야기를 듣기는 더욱 어렵습니다. 더구나 가족 단위로 피난해 있을 경우, ‘남편들은 자신의 의견을 말해도 여성들은 발언을 하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각지에서 듣습니다.
‘일치단결’ 기치 하에 여성들의 목소리는 가려져
얼마 전, 피난소 운영에 여성의 관점을 반영하라는 우리의 요구가 내각부 남녀공동참획국으로부터 각 도도부현을 통해 피난소에 전달되었습니다. 피난소에 칸막이와 남녀분리 탈의실, 조명이 밝은 남녀분리 화장실을 마련하고, 여성들을 피난소 운영에 참여시키라는 내용입니다. 하지만 이 통지는 현장에 제대로 반영되지 않고 있습니다.
칸막이 없는 피난소에는 아이들을 위한 공간도 없어, 어머니들이 밤에 깨어 우는 아이들의 소리를 신경 쓰느라 고충이 심하다는 호소를 들었습니다. 칸막이 설치를 피난소 대표가 허가하지 않거나, 여성들의 공간을 만들어달라는 여성단체의 요청에 마을 공무원들이 응하지 않는 경우도 있어, 속옷을 말릴 장소조차 마땅치 않습니다.
‘재해’라는 비상시에는 지금까지 쌓아온 여성들의 권리나 목소리는 사라지고, 다시금 성별 역할이 강화되어버립니다. 더군다나 재해복구 같은 힘을 쓰는 작업에 여성들이 참여하기는 쉽지 않기 때문에, 여성의 가치는 더더욱 폄하됩니다.
후쿠시마현에서 피난 온 여성들과 이야기를 나눠보았습니다. 주로 대가족이 함께 피난한 경우가 많고, 이 경우 여성들은 ‘며느리로서의 역할’을 해야 하는 경우가 많아, 자신만의 생각을 이야기하기가 어려운 것 같습니다.
성폭력 피해에 대한 소식도 조금씩 전해오기 시작했습니다. 16년 전 한신 아와지 대지진 때에는 칠흑 같은 피해지역에서 강간을 당했다는 상담 보고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객관적인 조사자료가 없었던 탓에, 구조를 요청한 여성은 ‘허위사실을 날조했다’는 비난을 받아야 했습니다.
이번에는 객관적인 조사를 바탕으로 여성들의 목소리를 전달할 수 있도록, 시민사회가 ‘피해여성 지원네트워크’ 설립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저 역시 그 일원입니다. 피해지역에서 여성에 대한 성폭력이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을 기사화했으면 좋겠다고 대형언론사의 기자에게 말한 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에 대한 반응은 “지진 후 일본이 일치단결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이야기에 반하는 것은 쓸 수 없을 것”이었습니다.
텔레비전 공익광고에는 연예인들이 등장해서 “일본은 훌륭한 나라다” “힘내자, 일본”이라고 되풀이해 말합니다. 지진피해자들은 최선을 다해 힘을 내고 견디고 있습니다. 이 이상 무엇을 더 하라는 걸까요. 이러한 광고는 일본의 국가주의와 전체주의를 부채질 하는 것 외에 아무 의미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사람들에게 일어나고 있는 일은 동일하지 않습니다. 이야기는 수없이 많고 다양합니다. 그런데도 왜 ‘단결해서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이야기만이 용인되는 것일까요. 언론은 지금과 같은 시기에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일까 생각하게 됩니다. 그 전에 해야 할 일은, 피해자에 대한 보상이나 생활재건을 제대로 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드는 일일 것입니다.
정부는 복구지원회의를 소집했습니다. 그런데 이 회의에 참여시킨 여성극작가는 이전에도 여성의 권리에 대해 심각한 발언을 한 인물로, 페미니스트들은 실망하고 있습니다. 그뿐 아니라 일본이 토건국가, 보다 강력한 남성중심주의 사회로 회귀하는 게 아닐까 염려하고 있습니다.
방사능에 방치되고 있는 후쿠시마 어린이들
▲ 4월 10일 도쿄에서 열린 원자력 반대 집회 © 페민
후쿠시마 제1원자력발전소에서는 심각한 사태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노심용융이 일어나 원자로 안정에 1년은 걸릴 것이라고 예측되는 가운데, 사용이 끝난 연료의 저장용 풀에서도 방사성물질이 나와 핵반응이 계속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우려되고 있습니다. 얼마 전에는 방사성 물질에 오염된 물이 다량 방출되기도 했습니다.
원자로 설계기술자 중 한 사람은 이번 원전 사고는 쓰나미가 일어나기 전, 지진에 의해 원자로나 배관에 문제가 생겨 발생한 것이라 지적합니다. 이런 가운데 20킬로미터 권내로 지정된 피난구역 바깥쪽에도 방사선 적산량이 연간 20밀리시벨트 이상에 달할 것으로 예측되는 구역이 ‘계획 피난구역’으로 추가 설정되었습니다. 하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방사선으로 오염되어있다고 해도, 사람들은 좀처럼 납득하지 못하는 상황입니다.
후쿠시마현 중심부의 코리야마시나 후쿠시마시에서 높은 방사선 수치가 확인되고 있음에도, 현은 4월 6일에 초중학교 개교를 실시했습니다. 이에 따라 어린이들도 학교로 돌아왔습니다. 마치 인질을 잡아두는 것 같은 양상입니다.
‘방사능 측정 프로젝트’라는 시민단체가 후쿠시마현 내 초중학교 교정이나 배수구의 방사선을 측정하니, 연간 누적 피폭량으로 환산할 경우 20밀리시벨트를 초과하는 곳이 많았다고 합니다. 문부과학성은 4월 19일, 어린이들이 연간 20밀리시벨트까지는 피폭되어도 큰 피해가 없다고 갑작스레 기준을 바꿔버렸습니다. 이 수치는 근로기준법에서 18세 이하의 노동이 금지되는 방사선량입니다. 그러나 문부과학성은 “근로기준법의 수치는 몰랐다”고 말할 뿐입니다.
독일의 <슈피겔>지는 신속히 이 소식을 전하며 “일본의 초등학생이 독일의 원자력발전소 노동자와 마찬가지의 피폭을 당하고 있다”고 보도했습니다. 어린이들이 교정에서 마스크도 하지 않은 채 뛰어 놀고 있는 것입니다. 후쿠시마현의 한 여성은 “하다못해, 최소한 어린이들이 노는 교정의 표토라도 들어내줬으면 한다”고 호소합니다.
그리고 4월 21일 시민단체가 모유를 검사한 결과, 모유에서도 방사능 요소 131이 검출된 것입니다. 이런 일이 용인될 수 있을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후쿠시마 현민은 현 바깥으로 피난하는 데 주저합니다. 아무리 어린이들이 피폭될 거라고 이야기해도, 부모들은 거기까지 생각하고 싶어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더구나 방사선 어드바이저라고 하는 야마시타 교수는 후쿠시마 현내 각지에서 강연을 열어 “지금 같은 피폭양은 문제없다” “괜찮다”고 이야기하고 있고, 그 이야기를 믿는 사람들도 늘어나고 있습니다.
지금의 상황은 후쿠시마 어린이들을 방사능에 그대로 방치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몇 년 후, 이 어린이들 중 상당수가 갑상선 이상으로 암이 발병할 수 있겠지요. 러시아 체르노빌 원자력발전소 인근에서 일본을 찾은 파벨 씨는 ‘다양한 질병’과 ‘면역력 저하’가 일어날 것이라고 경고했습니다. 그리고 피폭과 빈곤이 찾아올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내셔널리즘, 일본은 1945년 이후 변하지 않았다
생각해보면 지진대국인 일본에서 50기 이상의 원자력발전을 만들어 가동한다는 것 자체가 비정상입니다. 그런데도 원자력발전을 반대하는 목소리는 아직도 작습니다. 4월 10일에는 1만7천5백명이 도쿄에 모여 반핵 집회를 갖기도 했지만, 이 정도까지 고통을 겪고 있는데도 여론조사에서는 원자력발전이 존속되어야 한다고 대답하는 사람이 절반에 이릅니다. 대부분 국민들은 “원자력발전은 무섭지만, 원전이 없다면 정전이 일어나기 때문에 (중단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도쿄전력은 원전으로 건강상 피해를 입은 사람, 집에서 살 수 없게 된 사람, 직업을 잃은 사람, 농산물의 피해, 기업의 피해 등을 보상해야 합니다. 하지만 앞으로 일어날 건강피해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여러 가지 포석을 깔고 있으리라 생각됩니다. 현 내의 초중학교 어린이들이 향후 갑상선 암에 걸린다 해도 인과관계가 인정되지 않겠죠.
누구에게 책임이 있을까요? 애초에 원자력발전 사고가 상상을 초월한 쓰나미에 의한 것인지, 내진설계에 문제가 있었는지에 대해 기업의 책임을 추궁하는 목소리는 약하기만 합니다. “모두 힘내자. 일본에는 힘이 있다”는 텔레비전 광고가 흘러나올 때마다, ‘일억 총결전’이라며 사람들을 전쟁으로 끌어 모아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에 큰 피해를 주었던 시대와 달라지지 않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최근 종종 생각하게 되는 것은, 일본이 민주주의 국가도, 인권을 중시하는 국가도 아니었다는 점입니다. 1945년 패전 이후 일본이 민주주의 국가로 변모했다고들 하지만, 일본사회에는 전쟁 전 체제나 군국주의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윗사람이 하라는 대로 하는 것, 정보를 공개하지 않는 것, 언론이 사실을 전하지 않는 기민이 계속되고 있는 것입니다. 어떤 여성은 두 딸이 지진대책이라며 전쟁 때와 똑같은 방공 두건을 쓰고 학교에 갈 때마다, “전쟁 전과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았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합니다.
이 나라와 이 사회가 변하기는 정말로 어려울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면서도, 저는 희망을 버리지 않도록 다양한 경로로 지금의 상황과 우리의 의견을 계속해서 전하고자 합니다. (아카이시 치에코 / 번역: 고주영)
* 여성저널리스트들의 유쾌한 실험 <일다> 즐겨찾기 www.ildar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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