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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험으로 말하다

이혼하면 자녀를 만나지 않는게 좋다?

그 여자들의 물결 일다 2011. 5. 2. 14:41
<일다> 윤하의 딸을 만나러 가는 길 (9) "만나야 정이 쌓이죠!" 
 
대학 후배인 현정이를 만나야겠다는 생각이 든 건 정말 최근의 일이다. 프랑스로 유학을 떠나기 직전에 만난 것이 마지막이었다. 귀국한지 9년이 다가오도록 한 번도 생각나지 않았던 현정이가 몇 달 전 불현듯 떠올랐다. 지난 수첩을 뒤지고, 주변 친구들에게 전화를 해 현정이의 연락처를 물어보았지만, 그녀와 소식이 닿는다는 사람은 찾지 못했다.
 
“갑자기 현정이는 왜?" 궁금해 하며 묻는 친구에게,
“응, 보고 싶어서!” 라고 짧게 대답하고는 전화를 끊었다.
 
그러다 며칠 전 늦은 밤, 우연히 서랍 깊숙이서 그녀의 명함을 발견했다. 현정이를 만날 수 있을 거란 기대로 잠을 설치며, 날이 밝기를 기다렸다. 그리고 다음날 흥분된 마음을 가다듬고 그녀의 사무실에 전화를 했다. 통화만 된다면 당장이라도 그녀를 만나러 달려가리라 마음먹고 있었다. 그러나 대답대신 ‘없는 번호’라는 말만이 공허하게 울릴 뿐이었다. 허탈함에 맥이 풀렸다.
 
이혼할 당시 주변 어른들은 아이에게 준 상처는 이혼으로 충분하니, 딸을 위해서조차 그녀를 만나지 않는 것이 좋겠다고 내게 수없이 말씀하셨다. 그들은 하나같이 이렇게 말했다.
 
“네가 딸을 만나려 하면 할수록 아이를 혼란스럽게 할 뿐이다. 자식을 버리는 어미는 없어! 너 하나만 참으면 모든 사람이 편하다.”
 
그리고 그들의 말을 잘 따르고 있는 내게, 하나같이 ‘참 잘하고 있다’는 격려도 아끼지 않았다.
 
나도 그들이 말한 대로 하는 것이 부모된 도리라고 생각했던 게 분명하다. 그러면서 나를 칭찬하는 그 말들에 격려 받으며, 내가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늘 생각했다.
 
그러나 세월이 한참 흐른 어느 날 문득 든 생각은, 내가 어른들의 칭찬이나 격려를 결코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이 결코 아니라는 것이다. 항상 어른들의 의견을 무시하고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행동해 왔으면서, 어떻게 그들의 격려에 이토록 자극 받았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곰곰이 그때를 더듬어보면 내 마음이 그들의 마음과 같았던 것 같다.
 
그렇다. 마음 아프지만, 그때 내 마음이 그랬다. 아이를 만나려고 하지 않은 건, 딸을 이유로 전남편을 자꾸 만나야 되는 상황이 싫었고, 그에게 아이를 만나게 해달라고 조르고 싶지도 않았다. 그러나 어쩌면, 아이가 부모의 이혼으로 겪어야 할 심리적 문제들을 지혜롭게 풀어나갈 자신이 없었기 때문은 아니었을까?
 
물론 당시 내 주위에, 아이를 만나지 말라는 조언만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현정이를 마지막 본 날, 그녀는 내게 말했다.
 
“언니가 아이를 안 키우는 것에 대해 제가 뭐라고 할 말은 없지만, 아이를 안 만나는 건 절대로 안돼요.”
 
당시에도 이미 아이를 안 본지 6년이 넘고 있던 차였다. 현정이는 딸과 똑같은 경험을 가지고 있는 후배였다. 그녀가 간난 아기였을 때, 부모는 이혼을 했고, 성인이 될 때까지 친어머니를 만나지 못한 채 살았다. 그날, 그녀는 20대 중반이 되어서야 처음으로 만난 친어머니 이야기를 꺼냈다.
 
“엄마는 우는데, 나는 담담하더라고요. 정이 없어서…. 언니, 그냥 이렇게 살면 안돼요. 아이와 마음을 나눠야 정이 쌓이고, 부모 자식 간의 마음이 만들어져요.”
 
나는 그날 현정이의 이 말을 귀담아 듣지 않았다. 이미 오래 전에 아이를 안 보기로 결심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이가 너무 보고 싶을 때면 머리에서 정신이 빠져나가는 듯한 증상을 여러 차례 경험한 나로서는, 이 땅에서 딸을 안보고 산다는 것이 너무 고통스러웠다. 그래서 결심한 것이 유학이었다. 남들처럼 학문탐구를 더 하려고 떠난 유학이 아니었다. 딸을 만날 수 없는 먼 곳으로 떠나야 한다고, 시간이 필요하다며 떠난 유학이었다. 그렇게 떠나는 내게 그녀의 말은 잘 들리지 않았다.
 
무엇보다 생모에게 별로 정을 느끼지 못한다는 현정이의 말을 들으면서도, 나는 그녀의 말이 잘 이해가 안 갔다. 나는 속으로 ‘우리는 그렇지 않아. 세월이 한참 흘러 다시 만난다 해도 우리는 사랑으로 넘칠 거야!’라고 자신만만하게 생각한 것이 솔직한 고백이다. 그러면서 그녀의 말을 무시했다. 그러나 이렇게 세월을 빠져 나와 딸을 만나고, 그녀와의 관계가 내 기대처럼 순조롭게 풀리지 않으면서야 현정이의 말이 생각났다.
 
어리석게도, 이혼을 해본 적도 없고 자식과의 분리를 경험한 적도 없는 사람들의 조언에는 그토록 귀를 기울이고, 자기의 경험을 거론하면서 간절하게 조언하는 현정이의 말에는 관심을 기울이지 않은 나 자신이 한심스럽다. 당시 ‘딸을 만나면서 살아야 한다’며 안타까워하던 현정이의 눈빛이 떠오른 건 더 최근의 일이다. 그녀를 만나고 싶었다. 그녀에게 “네 말이 맞았다”고, “네 말을 들었어야 했다”고 꼭 말해주고 싶었다.
 
내가 그때 현정이의 말을 귀담아들었더라면, 지금처럼 딸과의 분리 때문에 이토록 고통스럽지 않았을 것이다. 무엇보다 아이가 자라는 모습을 보면서 살 수 있었을 것이다. 아무리 전남편을 만나기 싫고, 조르기 싫었어도, 아이를 만나게 해달라고 매달리고 쫓아다녔다면, 전남편도 거절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아니,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딸이 오랫동안 새엄마를 생모로 알고 살아가게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진실한 삶을 살지 못하도록 딸을 둘러싼 어른들의 공모에 나도 가담을 했고, 누구보다 내가 가장 철저하게 이 상황을 주도하지 않았나 싶다. 내가 생모의 자격으로 아이를 만나면서 살았더라면, 그녀가 감당해야 할 혼란이 있었을지라도 오랫동안 철저하게 거짓에 싸인 삶을 살지는 않았을 것이다.
 
자신의 친어머니는 따로 있고, 지금 키워주는 사람은 새어머니라는 것, 그것을 인정함 속에서 아이와의 관계를 잘 풀어갈 수 있는 방법을 모색했어야 옳았다. 설사 그 현실이 상처가 되어 아이에게 큰 시련을 준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그녀의 몫으로 남겨 주었어야 옳았다.
 
속절없이 세월을 빠져 나와 발등을 찍으며 후회를 하지만 되돌릴 수는 없다. 나는 그렇게 하지 못했고, 그리고 지금 이 자리에 있다. 바로 이 자리에서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을지는 아직도 잘 모르겠다. 그러나 옛날처럼 어리석은 짓은 하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하고 또 다짐하는데, 밤이 깊어만 가고 있다. (윤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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