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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다] 경륜.경정 발권업무가 여성건강에 미치는 영향  

<경륜장에서 발매종사원으로 일하는 A씨는 지속적인 어깨 통증에 시달렸다. 매표업무를 하다 보니 어쩔 수 없는 것이라 생각하며 참고 일했다. 그러나 날이 갈수록 통증은 심해졌다. 더 이상 견딜 수 없어 병원을 찾은 A씨의 상태는 심각했다. 통증의 원인은 ‘유방암’, 그것도 말기. A씨는 의사로부터 ‘더 이상 손쓸 방법이 없다’는 말을 듣고 돌아와야 했다.>
 
A씨의 사례는 지난 3일 공공운수노조(준) 국민체육진흥공단 비정규직 지부가 마련한 ‘경륜.경정 발매노동자 여성노동권’ 포럼에 참석한 한 발매원의 증언을 토대로 구성한 것이다.
 
극단적인 사례처럼 생각될 수도 있지만, 발매노동자들이 업무와 관련해 겪고 있는 근골격계 질환의 실상을 고스란히 드러내주고 있다. 사례에 등장한 발매원이 심각한 어깨통증을 방치하게 되었던 것은, 어깨통증은 발매원들이 ‘일상적으로’ 경험하고 있는 증상이기 때문이다.
 
하루 1천건 이상 매표, 96.4%가 어깨통증 호소
 
국민체육공단 경륜.경정장 중 수도권 12개 지점에서 195명의 발매원을 대상으로 실시된 근골격계질환 및 직무스트레스 실태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96.4%가 근골격계 질환으로 인한 통증을 호소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중 의학적인 판단이나 처치가 필요한 사람의 비중도 73.3%에 달했다. 국내 산업계 평균이 40~50% 정도인 점에 비해 매우 높은 수치다.
 
국민체육진흥공단 비정규지부 김성금 사무국장은 “한 해 한두 명씩 어깨 아파서 퇴직하는 직원이 생긴다”고 말할 정도다.

▲ 국민체육공단 경륜.경정장 발매원들의 근골격계질환 및 직무스트레스 실태조사를 진행한 김철홍 인천대학교 노동과학연구소 교수  ⓒ 일다

 
실태조사를 진행한 김철홍 인천대학교 노동과학연구소 교수는 근골격계 질환의 경우 성별에 따라 발생빈도의 차이가 크다고 지적했다. 같은 일을 할 경우, 여성이 남성보다 적게는 2배, 많게는 7~8배 더 높게 발생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요인은 불편한 자세, 과도한 힘의 사용, 반복성이 높은 작업, 휴식 부족 등 직업적인 요인에서 비롯된다고 설명했다.
 
실태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88.4%가 하루 처리하는 매표건수가 ‘1천 건 이상’이라고 응답했다. 김철홍 교수는 “2천 건 이상의 응답도 있다”고 혀를 내둘렀다. 무엇보다 “이것이 특정 시간대에 집중되는 것이 문제”라고 한다. “고밀도의 노동집약적 업무”로 “일을 몰아쳐서 하면 한번 고장 난 몸은 회복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위험하다는 것이다.
 
김 교수는 발매원들이 부자연스러운 발권 자세로 인해 높은 수준의 ‘정적 피로’를 호소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보통의 경우, 팔은 바닥을 향해 내려가 있는 것이 자연스러운 상태이다. 그런데 발권을 위한 작업대가 발매원이 아닌 발권기에 맞추어 설계되다 보니 발매원들의 몸에 맞지 않고 높아 어깨 근육을 계속 긴장시키게 된다는 것이다.
 
이 자세에 맞추려면 의자 앞 쪽으로 당겨 앉게 되고, 척추 받침대 노릇을 하는 의자 등받이의 도움도 받을 수가 없게 된다. 이는 척추에 부담을 주어 척추관련 질환을 발생시킬 위험을 증가시킨다. 일반적으로 ‘서 있는 것’보다 ‘앉아 있는 것’이 더 편할 것이라는 생각과 달리, 허리 디스크에는 서 있을 때보다 앉아있을 때 더 큰 부담이 가해진다. 또한 허리를 앞 쪽으로 구부릴 경우에는 서있을 때 가해지는 압력의 20배의 부담을 허리가 지게 된다.
 
노동자의 건강, 사업주는 책임지려 하지 않는 문제
 
특히 발권업무가 경주와 경주 사이 15분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 집중되어 이루어지다 보니, 발매노동자는 손, 손목, 손가락을 혹사하게 된다.
 
김철홍 교수는 근골격계 질환으로 입는 피해를 철사 부러뜨리기를 예로 들어 설명했다. 철사를 휘면 부러지지 않는다. 그러나 자꾸 꺾었다 폈다 반복하면 스트레스를 받고 따끈따끈해지는 상태가 된다. 그리고 결국 ‘파열’된다. “운동은 몸이 지칠 때쯤 쉽니다. 그러나 노동은 쉬지 못하지요. 그 차이입니다. 운동보다 더한 강도로 몸이 지치고 나서도 일합니다. 안 다칠 수가 없지요.”
 
우리나라는 근골격계 질환 예방을 위한 법적인 근거를 갖추고 있다. 2003년 7월 1일부터 시행중인 관련법에는 작업환경에서 근골격계 질환의 유해요인을 조사하고 개선하는 조치를 취하도록 되어 있으며 이를 위반한 사업주는 5년 이내 징역, 5천만 원 이하 벌금을 물도록 되어 있다. 또한 예방관리 프로그램도 실시하도록 되어 있다. 그러나 현실의 벽은 높다.
 
김 교수는 “작업장의 구조적인 문제는 책상 등을 고치기만 하는 것이라 상대적으로 개선이 쉽다”고 보았다. 그러나 문제는 반복성의 높은 작업, 부적절한 휴식 등 노동강도(생산성)과 관련한 요인이다. “이익과 관련한 것이라서 사업주가 절대 건드리려고 하지 않는다. 우리는 이 부분을 봐야 한다.”
 
성희롱, 위협, 모욕… 직무스트레스 가중시키는 매출평가
 
발매노동자들을 대상으로 한 이번 실태조사에서는 근골격계질환 뿐만 아니라 발매원들의 직무스트레스에 대해서도 조사가 이루어졌다. 결과는 심각했다. 설문 중 ‘고객으로부터 성희롱을 경험하였다’는 응답이 71.4%, ‘인격모독’을 경험한 비율은 96.4%에 달했다. ‘위협’을 당한 경험도 94.9%나 되었다. 이렇다 보니 직무스트레스지수 평가는 국내평균 50.59점보다 30%나 높은 64.27점을 나타내고 있었다.
 
발매원들은 노동자들의 직무스트레스에 대한 대책을 세워야 할 공단 측이 오히려 이를 가중시키는 방식으로 운영을 바꾸어나가고 있어 더욱 문제라고 지적한다.
 
로또와 마찬가지로 경륜, 경정, 경마 등도 한 경주에 10만 원 이상 베팅을 할 수 없도록 법적으로 상한선이 규정되어 있다. 따라서 고객이 한 경주에 10만 원짜리 구매표를 여러 장 발행해줄 것(연속발행, 속칭 ‘연발’)을 요구한다고 해도 발매원들은 들어주어선 안 되는 것이 원칙이다. 그러나 고객들은 판돈을 키우려는 욕심에 연속발행을 요구한다.
 
공단 또한 발매원들에게 연속발행을 유도하고 있다는 것이 발매원들의 주장이다. 공단은 2007년부터 갑자기 비정규직 발매종사원을 대상으로 1년에 한 번 인사평가를 시행하기 시작했다. 연달아 3번 최하등급 (D등급)을 받으면 계약해지가 된다.
 
전체 평가점수를 100점으로 볼 때 ‘발매건수’가 10점을 차지한다. 국민체육진흥공단 비정규지부 김성금 사무국장은 “더 큰 문제는 지점장 점수”라고 말한다. ‘책임감 및 성실성, 사회성 및 협동성’에 대해 지점장이 평가하도록 되어있는데 35점이나 차지한다.
 
김성금 사무국장은 ‘지점장 점수’가 사실상 ‘매출 평가’라고 지적한다. “지점장은 매출이 높은 사람에게 높은 점수를 줘요. 이 부분에 대해 문제제기 하면 지점장 고유권한이라 간섭할 수 없다고 말합니다. 지점장의 눈 밖에 난 직원이 여기서 부당한 평가를 받으면 해고를 피할 길 없는 거죠.”
 
매출액에 대한 부담과 고객의 협박에 가까운 요구 사이에서, 발매원들은 무리하게 연속발행을 할 수 밖에 없는 상황으로 몰리게 된다.
 
근무환경 “바꾸려면 얼마든지 바꿀 수 있다”
 
공단 측이 ‘이윤추구’에 ‘올인’하면서 하루 경주 수도 15경주에서 18경주로 늘어났다. 15 경주가 있을 때는 한 경주 당 매표 시간이 25~30분 정도였는데, 18경주를 하게 되면 15분 내에 표를 사야 한다. 짧은 시간 동안 빨리 돈을 주고 받다 보니 예민해진다. 돈이 모자라면 발매원이 물게 한다. 스트레스가 커질 수밖에 없다.
 
“고객도 어디에 베팅을 할지 생각을 해봐야 할 것 아니겠어요. 매표 시간이 30분 정도일 때는 시간에 여유가 있어 미리 와서 사는 경우가 많았어요. 확실히 금액 사고가 덜 났어요.” 국민체육진흥공단 비정규지부 김성금 사무국장의 말이다.
 
발매원들은 “매표시간이 늘어나면 욕하는 사람이 줄어든다”고 잘라 말한다. “대부분 표를 못 사서 욕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도박장’에서 보이는 고객들의 험한 행동들도 “바꾸려면 얼마든지 바꿀 수 있다”는 것이다. (박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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