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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다] 이경신의 도서관 나들이(38) 늙음에 대하여③ 
 
얼마 전 만났던 94세 할머니는 “내가 이렇게 오래 살 줄 몰랐어”라고 한탄조로 말씀하셨지만, 예나 지금이나 다들 ‘장수’는 축복받은 일로 여기며, 오래 살기 위한 노력은 눈물겨울 정도다. 평균수명이 늘어난 오늘날, 우리 인간은 도대체 얼마나 오래 살 수 있는 걸까?
 
인간은 얼마나 오래 살 수 있을까?
 
▲ 생물학자 스티븐 어스태드의 책 <인간은 왜 늙는가>(궁리, 1999)

 
공식적으로 세계 최고령자였던 114세인 미국 할머니가 지난 달 말일에 사망했다는 뉴스를 보았다. 최근 5년간을 살펴보면, 최고령자들은 112세에서 116세 사이에 사망한 것으로 보인다. 1997년 122세의 나이로 사망한 프랑스 잔 칼망 할머니의 세계 공식 최장수 기록을 깬 사람은 지금까지 없다. 그 만큼 120세의 벽을 넘기가 쉽지 않다는 뜻일 것이다.
 
물론 나이를 정확히 확인할 수 없는 비공식 기록으로는 120세 이상을 산 노인들이 적지 않다.  심지어 130세를 넘었다고 주장하는 노인들도 있다. 2007년에 131세로 알려진 그루지아 할머니나 134세에 사망했다는 남아공화국 노인 등. 우리나라에도 작년, 122세 할머니의 존재를 놓고 떠들썩했었지만, 알고 보니 실제 나이는 100살이셨다.

생물학자 스티븐 어스태드는 자신의 저서 <인간은 왜 늙는가(궁리, 1999)>에서 나이 확인이 힘든 곳에서는 ‘나이 부풀리기’가 흔한 일이라서 지금까지 등장한 130세 이상의 놀라운 장수기록들이 의심스럽다고 지적한다.
 
하지만 그는 향후 3,40년이 지나면 노화조절약품이 개발될 것이며 그 약을 복용한 사람들 중에서 150세 최장수 기록을 거뜬히 달성할 수 있으리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래서 그는 생물인구통계학자인 스튜어트 J. 올샨스키와 2000년에 ‘2050년까지 누군가 150세 이상을 살 수 있을 것인가’를 두고 내기에 돌입한다. 가까운 미래에 획기적인 수명연장은 불가능하다고 보는 올샨스키와 달리, 어스태드는 우리와 함께 2000년을 살고 있는 여자아이들 가운데 150세까지 살 후보가 존재할 것이라고 믿는다. 과연 누가 내기에서 승리할까?
 
지금껏 그래왔듯이 인간은 수명 연장의 노력을 포기하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비약적으로 수명이 늘어날까? 어떤 개인의 최대 수명이 얼마로 늘어나건, 수명을 계속적으로, 또 비약적으로 연장시키는 것이 과연 좋은 일인지는 여전히 의문스럽다.
 
늙음은 고쳐야 할 질병이 아니다
 
최대 수명에 대한 관심은 죽음에 대한 두려움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닐까? 죽음이 두려우니, 죽음을 최대한 늦출 수 있기를 바라는 건 당연하다. 그런데 이 죽음과 떼어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늙음이다. ‘늙어서 죽는다’는 말이 있듯이, 늙음이 우리를 죽음으로 이끌고 간다고들 생각한다. 그래서 늙음도 죽음만큼이나 부정하고 싶은 것이다.
 
과학자들도 노화를 시간이 지나면서 모든 신체 기능이 점점 쇠퇴하는 ‘노쇠’로 보고 있으며, 노화가 인간에게 죽음을 야기하는 여러 원인들 가운데 주된 원인이라는 데 동의한다.
 
그런데 현대 생물학에서는 고대 인도나 고대 중국에서와 달리, 생명체가 늙는 것을 자연스러운 일로 받아들인다. 노화가 완전한 상태, 정상 상태에서 이탈한 비정상 상태가 아니기에 늙음은 고쳐야 할 질병이 아니다. 비록 자연적 노쇠를 인정하긴 해도, 잘못된 음식섭취, 신체적 외상, 지나친 감정소모가 노화를 야기한다고 설명한 고대 인도 의학서나 도에서 멀어져 음양의 균형이 깨어져 노쇠 하는 것으로 보았던 고대 중국인의 생각과는 확연한 차이를 보인다.
 
과학자들의 말대로라면, 우리는 늙는 것은 피할 수 없고, 노쇠하면 죽는 것이 당연하다. 노화과정은 생명체에 따라 다르고, 개개인마다 차이가 나는 생리현상이지만, 늙지 않는 생명체도, 죽지 않는 생명체도 없다. 이 점에서 인간도 예외일 수 없다.
 
우리는 왜 늙는가
 
▲ 생물인구통계학자인 스튜어트 J. 올샨스키의 <인간은 얼마나 오래살 수 있는가> (궁리, 2002) 

 
이처럼 우리 인간을 죽음으로 이끌고 가는 노화, 이 노화의 원인에 대해서 진화 생물학자들은 어떤 대답을 주고 있나?
 
사실, 다윈 때부터 20세기 중반에 이르기까지 지배적인 노화이론은 ‘종의 이익이론(good-of-the-species theory)’이었다. 이 이론에 의하면, 한정된 자원을 놓고 진화하기 위해서는 노화를 통해 늙은 개체를 제거하고 젊은 개체로 세대교체를 이뤄야 한다. 이때 노화는 개체에게는 이익이 안 되더라도 종의 이익에 부합한다는 것이다. 오늘날에도 여전히 대중들과 의학계는 이 이론을 널리 받아들이고 있지만, 현대의 발전된 진화생물학은 진화의 단위를 ‘종’이 아니라 ‘유전자’로 인식하기 때문에 ‘종의 이익이론’을 과학적으로 신뢰할 수 없는 이론으로 본다.
 
게다가 수세기동안 집단적으로 믿어온 또 다른 노화이론이 있는데, 그것은 ‘생명활동속도 이론(rate-of-living theory)’이다. 생명체의 “에너지 소비속도(대사속도)와 그에 따른 생화학 작용의 속도가 노화를 유발하고 조절한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에너지 소비를 줄여 생명체의 세포에 손상을 주는 자유라디칼을 느리게 생산해서 노화를 늦춘다는 생각은 너무 단순할 뿐만 아니라 그릇된 것으로 밝혀졌다. 인간의 수명이 평균대사속도에 비해 결코 짧지 않다는 것을 주목할 때, 인간이야말로 이 이론의 예외사례다.
 
그러면, 현대 생물학의 대표적인 노화이론인 ‘노화의 진화이론(evolutionary aging theory)’을 간단히 살펴보자.
 
생명체의 최대 목표가 바로 생식이니, 번식의 역할을 완수한 개체는 언제든지 버려질 수 있다는 생각에서 출발한다. 생물학적 수명의 한계도 성장, 생식에 관한 유전 프로그램에 따른 것으로 본다. 생존과 생식에 해로운 유전자들은 생식기간 이후로 밀려난다. 이 유전자들은 생애 초기에는 정상이었다가 생애 말기에 비정상적으로 변한 것이라고 한다. 생애 말기의 암 유발 유전자나 알츠하이머 유전자도 생애 초기에는 유익한 유전자였다니 놀랍다.
 
진화란 한 개체의 완전함을 추구하는 과정이 아니라, 번식에 유리한 방향으로의 변화를 뜻할 뿐이다. 따라서 번식만 잘 끝내면 유전자로서는 성공이다. 적대적인 환경 속에서라면, 개체가 자기 신체를 유지하기보다 자손을 번식하도록 자연선택이 이루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원래 인류도 다른 생명체와 마찬가지로, 척박한 외부 자연환경 속에서 살아남아 번식하기 위해 힘든 투쟁을 해왔고 생식기간을 넘어 생존하기도 쉽지 않았다. 올샨스키가 지적한 것처럼, 생명의 역사 속에서 노화로 인한 자연적 죽음은 극히 드문 현상이었다.
 
그러나 20세기에 들어와서 인간은 외부 환경보다 내부 한계로 인해 생명을 위협받게 되었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의학의 발달 덕분에 인간은 생식기간이 지난 후에도 살아남을 수 있을 정도로 수명이 연장되었기 때문이다. 여기서 생식기간이란 단순히 생식가능한 기간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자녀, 손자녀를 양육하는 기간까지 포함하는 것이다.
 
인간처럼 생식기간이 끝난 후 장기간 생존하게 되면, 초과생존이 되어 기능장애가 나타날 뿐만 아니라, (유전적 질병을 포함해서) 질병에도 취약해져 죽음의 위협에 노출될 가능성이 급격히 증가한다고 한다. 특히 “심장혈관계의 막힘(심장병, 심장마비), 면역 체계의 약화(전염병), DNA 손상의 누적(암), 골격 체계의 약화(골다공증), 감각 체계의 약화(시각, 청각 상실) 등”과 같은 만성적인 질병에 시달리게 된다.
 
결국, 평균수명이 늘어났다는 것은 병약하고 무기력한 노년이 길어져 죽음의 시기가 뒤로 미뤄졌다는 뜻이다. 더불어, 노화에 의한 죽음을 맞이할 사람들이 더 증가했다는 의미로 해석한다.
 
올샨스키는 노화로 인한 죽음을 맞이할 수 있는 현대인이 행운아인 것처럼 이야기한다. 그러나 오래 살면 오래 살수록 만성질병 보따리를 장수축하선물 마냥 한 아름 껴안고 죽음의 문으로 뛰어들어야 한다면? 이런 식이라면 무조건 오래 사는 것이 복은 아닐 것이다. 94세 할머니의 호소가 자꾸 귀가를 맴돈다. “여기저기 다 아파서 꼼짝을 못해. 2년 전부터는 바깥나들이도 혼자 못해. 죽지 못해 살아.” (이경신) * 일다 즐겨찾기 www.ildar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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