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콰-헤리’(안녕히) 탄자니아를 떠나기 전 마지막 끄적거림이다. 그녀의 모습이 담긴 사진을 바탕 삼아 손이 가는 대로, 실제 모습보단 그녀로부터 받은 인상에 의지하며. 애써 씩씩해하던 그녀는 별로 윤택하지 않은 가정의 맏이였다. 직장 일이 끝나면 예의 밥짓기와 손빨래가 그녀의 몫이었고 건사해야 할 동생들도 많았다. 아니, 내겐 다섯 명의 동생이 있다면 많은 건데 그녀도 그리 느낄진 모를 일이다. 무슬림이라 항상 머리를 꽁꽁 싸매고 지냈는데 그림을 그리는 과정에서 사라졌다. 어린 나이에 가정을 돌보는 그녀에게 자유로움이 필요해 보여서였을까. 사심 없고 성실했는데, 지금도 그 성격 그대로 살고 있는지…. 그러고 보니 그녀와 대화할 때 영어를 썼는지, 현지어로 소통했는지도 가물가물하다. 오랜 시일 같이 있었어..
여성주의 저널 일다 www.ildaro.com 30. 남아공을 떠나며(최종회) 애비(Abby)와 장(Jang)은 대학에서 만난 동갑내기 부부입니다. 만 서른되던 해 여름 함께떠나, 해를 따라 서쪽으로 움직인 후 서른둘의 여름에 돌아왔습니다. 그중 100일을 보낸 아프리카에서 만난 사람과 세상의 이야기를 나누려합니다. www.ildaro.com '흑인을 위한다'는 활동가들의 인종주의를 보며 집 나간 플로렌스가 돌아온 건 며칠 전이었다. 플로렌스는 센터의 살림을 맡아하는 도우미다. 짐바브웨 출신인 그녀는 매번 비자를 갱신하러 북쪽 국경에 가야 했고, 우리도 겪어본 '국경'은 끝없이 행렬을 이루어 남아공으로 들고나는 주변국 출신 노동자들에게 고압적이기 그지없었다. 일이 잘 풀리지 않아 며칠이 걸릴지 모르겠다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