굿이 곧 삶이고, 삶이 곧 굿이로구나 www.ildaro.com 다큐멘터리 영화 굿을 처음 본 것은 1998년, 스물세 살 무렵이었다. 그해 홍익대 앞, 지금의 자리에 공연예술 극장 가 개관을 했고, 극장 앞 피카소 거리를 한바탕 떠들썩하게 만든 개관 기념 공연이 열렸다. 그 공연의 정점을 찍은 것은 황해도 만신 이해경의 등장이었다. 혈관을 요동치게 하는 풍물 가락에 몸을 싣고, 이해경 만신은 화려한 원색의 무복들을 여러 차례 바꿔 입으며 ‘신들린’ 무대를 펼쳤다. 무대 아래 숨죽인 이들에게는 마치 천 길 낭떠러지처럼 보였을 작두 끝에 그녀가 올라선 순간, 객석의 환희는 경이로 바뀌었다. 염색머리에 귓바퀴에는 주렁주렁 피어싱을 매단 ‘홍대패션’으로 치장한 젊은 여성의 입에서 ‘굿이 최고다’, ‘끝내준다’..
상실을 애도하기, 새로운 신뢰를 형성하기 저는 어느 종합병원에서 일을 합니다. 건물의 가 측으로 계단이 나있고, 계단을 따라 내려가다 보면 여러 병실로 연결되는 입구들을 마주하게 됩니다. 계단은 꽤 비좁고 어두컴컴합니다. 마음에 가장 남는 것은 그 차갑고 어둡고 좁은 계단에 웅크리고 앉아, 누군가를 잃은 듯한 슬픔을 왈칵 토해내지도 못한 채 소리 죽여 흐느끼는 사람들입니다. 때로 그 흐느낌은 텅 빈 계단에 울려 퍼지기도 합니다. 돌아선 채 구부러진 등이 괴로움에 들썩거리는 모습을 보고 있자면, 차가운 계단 위에 방석이라도 깔아주고 힘없는 어깨 위로 담요라도 덮어주고 싶은 심정입니다. 그 등이 너무도 외롭고 슬퍼 보입니다. 그 계단은 어느 정도까지는 슬픔의 시간을 허용해주기 위해 자리하는 의미 있는 공간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