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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숙영의 Out of Costa Rica (21) 버자이너 다이얼로그③

<버자이너 모놀로그>의 ‘옮긴이의 말’에는 이혼 후에 고통의 시간을 보내던 이브 엔슬러가 이스라엘 출신의 심리치료사인 애리엘을 만나 치유되었다는 내용이 나와 있습니다.

“남편과 막 헤어졌던 그때 난 끔찍했다. 어린 시절의 악몽이 되살아나기 시작했고 완전히 공포에 사로잡혀 있었다. 그때 애리엘은 너무도 친절하고 관대하게 나를 치유시켰다.”
 
이브의 소울메이트 애리엘

▲<아름다운 딸들(Beautiful Daughters)> 영화 제작 과정. © Deep Stealth Production 
 
이브 엔슬러의 파트너 애리엘 오르 조단(Ariel Orr Jordan)은 미국 뉴욕에서 오랫동안 심리치료사로서 일하면서 성폭력 및 아동학대의 생존자들을 치유하기 위한 활동에 주력하였습니다. 또한 연극과 영화, 텔레비전 드라마들을 다수 연출한 창작자이기도 합니다.
 
어린 시절 성적 학대를 받은 바 있는 애리엘은 성폭행피해자들뿐만 아니라 가해자들과도 심리치료 작업을 하였고, 특히 성폭행피해경험자들과 가해경험자들을 대면시키는 치료프로그램을 수백회 이상 수행하였습니다.
 
오랜 시간 동안 우울증에 시달려온 이브는  애리엘을 만나면서 소울메이트를 찾았다고 여기게 됩니다. 그녀는 애리엘의 도움을 받아 어두웠던 어린 시절이 남긴 것들을 정면으로 응시하는 기회를 가집니다.
 
“내 소년에게서 나온 소녀를 때렸다” 

애리엘이 다른 영화감독과 함께 공동 연출한 <아름다운 딸들(Beautiful Daughters)>이란 제목의 영화가 있습니다.
 
 
이 영화는 남성이었던 여성들, 다시 말해 성전환수술을 통해 여성이 된 남성들이 이브 엔슬러의 <버자이너 모놀로그> 공연을 만들어가는 과정을 따라가는 동시에 이 연극에 참여한 트랜스젠더 여성들의 실제 인생을 보여 주는 다큐멘터리입니다.
 
원작자인 이브 엔슬러도 영화에 나옵니다. 그녀는 트랜스젠더 여성들을 인터뷰하여 그녀들을 위한 새로운 모놀로그를 써서 트랜스젠더 버전의 <버자이너 모놀로그> 제작에 관여합니다. 영화에 나오는 트랜스젠더 여성들 중 일부는 이 연극에 참여함으로써 ‘커밍아웃’합니다.
 
아래의 독백은 이브 엔슬러가 트랜스젠더 여성들과의 인터뷰를 바탕으로 새로 써서 개정본에 넣은‘그들은 내 소년에게서 나온 소녀를 때렸다……아니면 그러려고 했다’편으로부터 인용한 것으로서 우리 말 번역본에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나에게 강제로 배당된
페니스를 매달고 다닐지라도
나는 언제나 내가 소녀인 줄 알았다
그들은 그것 때문에 나를 때렸다
(중략)
내 소년에게서 나온 소녀를 때렸다
아니면 그러려고 했다"
 
“아름다운 딸들”
 
영화 <아름다운 딸들>은 여러 주에 걸친 오디션과 리허설, 개막공연 시 무대 뒤에서 벌어지는 난리법석, 할리우드 스타와 LGBT 인사들이 포함된 다채로운 관객들의 흥겹고 떠들썩한  모습, 연극 공연 실황 등을 담고 있다고 합니다.
 
이 영화를 소개하는 글 중에 “몸을 사랑하고 존중함으로써 자아를 확립”한 “이 여성들이 어떻게 삶을 견디고 성공했는지 보여준다”는 어구가 있는데, 표현 자체로는 그다지 새롭게 들리지는 않지만, 트랜스젠더 여성이라는 그녀들의 특별한 조건이 이 어구들을 새로운 시선으로 읽게 만듭니다.
 
그러나 트랜스젠더 여성들을 위한 <버자이너 모놀로그>의 ‘그들은 내 소년에게서 나온 소녀를 때렸다……아니면 그러려고 했다’편은 아래와 같이 쓸쓸하게 마무리됩니다. 그녀들은 변신에 성공하였지만 새롭게 소속된 곳에서‘이민자’의 정서를 안고 살아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나는 이제 여성의 영역에 산다
그러나 당신은 이민자들이 어떻게 느끼는지를 알 것이다
사람들은 어딘가 다른 곳에서 온
사람을 좋아하지 않는다
사람들은 당신이 섞이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비록 그녀가 아름답다 하더라도
그리고 그녀가 들을 줄 알고
매우 친절하다 할지라도
그들은 그가 모호함과
사랑에 빠지는 것을 원치 않았다
그들은 그만큼 사랑을 무서워하고 있었다.>
 
‘아파트먼트 모놀로그’
 
▲<The Vagina Monologues> (Random House,2001) 개정판 표지에 담긴 저자의 공연 모습.  

 
한편 2005년 7월의 뉴욕 타임즈에는 ‘아파트먼트 모놀로그(The Apartment Monologues)'라는 제목으로 두 사람이 헤어지면서 그들이 함께 살던 아파트의 소유권과 더불어 <버자이너 모놀로그>의 수익 배분에 관한 소송이 시작되었다는 기사가 실려 있습니다.
 
에리엘은 자신이 <버자이너 모놀로그>의 공동창작자이고 “당신의 버자이너가 말할 수 있다면 무슨 말을 할까요?”라는 제목으로 자신이 진행한 심리치료워크샵이 <버자이너 모놀로그>의 탄생에 영감을 주고 토대가 되었기 때문에 수익을 반분해야 한다고 주장한 반면, 이브 측은 이를 부인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사실 이브는 <버자이너 모놀로그>의 집필계획을 세우도록 독려하고 조언한 사람이 파트너 애리엘이라는 점을 밝힌 바 있습니다. <버자이너 모놀로그>의 ‘감사의 말’에서는 애리엘과 함께 작품을 ‘잉태’했다고 표현했습니다.
 
그러나 애리엘이 아무리 <버자이너 모놀로그>의 창작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하더라도 공동창작의 인식이 두 사람 사이에 분명하게 존재하지 않았다면, 애리엘의 주장대로 공동창작자의 자격을 인정받기란 어렵지 않나 합니다.
 
만약 공동창작에 대한 합의가 있었다면 애초에 연극이 제작되고 대본이 출판될 당시에 공동창작물로 발표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두 사람은 결혼하지 않았고 자녀도 없지만, 마치 이 소송은 부부의 이혼 후에 재산분할 및 양육권을 놓고 다투는 소송처럼 다가옵니다. 그 뒤 소송이 종결되었는지, 종결되었다면 어떤 결과가 나왔는지에 대해서는 기사를 찾을 수 없었고, 이 두 사람이 혹시 재결합했는지에 대해서도 알 길이 없습니다.
 
우리 말 번역본의 저자프로필에는 이브가 “현재 파트너 애리엘 오르 조단과 함께 뉴욕에서 살고 있다”고 되어 있지만 아무래도 이는 이 커플의 결별 이전에 작성된 상태 그대로 실린 것으로 보입니다.
 
‘치유의 천사, 분노와 창조의 천사’
 
▲ 천사 애리엘  © 출처: 위키피디아      

 
어느 인터뷰에서 이브는 참다운 자신감은 <버자이너 모놀로그>의 성공과 함께 비로소 왔다고 술회합니다. “이 세상 속에서 당신의 가치를 느낄 수 있어야 삶이 바뀝니다.”사랑하고 사랑받는 것만이 그녀에게 다가 아니었고, 그녀는 더 넓은 세상에서 존재증명을 할 필요를 느낀 것입니다.
 
동시에 그녀는 <버자이너 모놀로그>의 성공을 기뻐하면서도“<버자이너 모놀로그> 이전의 내 삶을 사랑했다”고도 말하고 있어서, 나비가 되기 전 고치 속의 삶에서만 가능한 어떤 행복을 그리워하는 것 같기도 합니다.
 
‘애리엘(Ariel)’은 천사의 이름으로 천사 애리엘은 물을 관장하는 ‘자연의 천사(Angel of Nature)’라고 하고 치유의 천사, 분노와 창조의 천사로 불리기도 한다고 합니다.

이브의 삶은 이브에게 친아버지의 성적 학대와 폭력이라는 씻기 어려운 상처를 주었지만 비슷한 고통을 겪은 ‘천사’ 애리엘을 만나 그의 도움으로 상처를 치유하고 분노를 승화시켜 창조의 길로 들어설 기회도 주었습니다.
 
비록 청산할 일만 남았다 하더라도, 그녀가 <버자이너 모놀로그> 맨 앞장에 다음과 같이 남긴 헌사는 부동의 문자로 남아 그녀의 한 시절을 계속 기념할 것입니다.
 
“내 보지를 뒤흔들고 내 사랑을 폭발시킨 애리엘에게”- <버자이너 모놀로그> (이브 엔슬러 지음, 류숙렬 옮김)  이어진 글 보기-> 우리들의 버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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