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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숙영의 Out of Costa Rica (26) 버자이너 다이얼로그 ⑧ 
 
이제 다시 코스타리카의 학교 친구들이 하는 <버자이너 모놀로그> 공연으로 돌아갑니다. 아직 연극은 끝나지 않았습니다.
 
지금 무대 위에 서 있는 친구는 누구인지 알 수 없습니다. 환하던 조명이 거의 꺼지고 그녀의 머리 위로 단지 작은 별 하나 정도의 불빛만이 아스라합니다.
 
어두워서 그녀가 누구인지 알 수 없는 것은 아닙니다. 장승처럼 침묵 속에 가만히 서 있는 그녀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감싸는 긴 옷을 입고 있습니다. 머리카락 보일라 꼭꼭 숨기고 얼굴마저 가리고 있어서 그녀가 누구인지 도저히 알 수 없습니다.

▲ 애니메이션 <페르세폴리스> 중. 차도르를 입은 여자 어른들과 히잡을 쓴 소녀 마르잔. 

 

그녀가 입은 저 치렁치렁한 옷의 이름은 ‘부르카'입니다.
 
부르카 아래서

 
마치 당신이 남부끄러운 동상이라도 되는 양
당신의 몸 전체를 뒤덮는
거대한 검은 천을 상상해 보라
 
날씨가 덥다고, 아주 덥다고 상상해 보라
당신이 천 속에 갇혀 있다고 상상해 보라
어둠 속에서 천 속에서 익사한다고
이불 속에서 애원하고 있다고
 
<버자이너 모놀로그>에는 ‘부르카 아래서’라는 제목의 모놀로그가 있습니다. 이 모놀로그의 도입부에는 다음과 같은 부연설명이 나옵니다. “이 글은 단순히 부르카에 대한 것만은 아닙니다. 부르카를 입는 것은 명백히 문화의 문제이고 선택의 문제입니다. 이 글은 여성의 선택권이 없는 시공간에 관한 것입니다.” 
 
이슬람 문화권의 여성들이 입는 전통의상에는 여러 가지 종류가 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부르카는 가장 극단적으로 여성의 몸을 가리는 옷입니다.
 
히잡(hijab)은 머리에 두르는 간소한 스카프로서 우리나라의 길거리에서도 외국인 무슬림 여성들이 이것을 머리에 쓰고 다니는 것을 가끔 볼 수 있습니다. 차도르(chador)는 얼굴은 보이되 온몸을 감싸게 되어 있어 마치 우리나라의 조선 시대 여성들이 외출할 때 입었던 장옷 같습니다.
 
니캅(niqab)과 부르카(burka)는 얼굴마저 가리는데, 니캅은 눈 부위는 드러낼 수 있지만, 부르카는 눈 부위를 망사로 처리하여 최소한의 시야만 확보하게 하고는 눈을 포함한 얼굴 전체를 다 가리게 되어 있습니다.
 
코스타리카에서 부르카를 보다
 
코스타리카에서 부르카를 처음 보았습니다. 친구들의 연극 <버자이너 모놀로그>에서 본 게 두 번째이고, 처음 본 것은 학교 수업 시간이었습니다.
 
유럽인권법 시간이었는데, 강의를 맡은 교수님은 네덜란드 사람이었습니다. 네덜란드는 국제사법재판소와 국제형사재판소가 위치해 있어서 국제법을 실행하고 연구하는 사람들이 많이 모여 있는 곳입니다. 또한 유럽에서 최초로 동성결혼이 합법화되고 중독성이 비교적 낮은 마약 사용이 합법화되어 있는 등 개방적이고 자유로운 나라로도 알려져 있습니다.
 
바로 그런 네덜란드 사람답게 - 스테레오타입화시켜 말하자면 - 제대로 다듬지 않고 아무렇게나 넘긴 백발 섞인 머리와 수염, 맥주 배라 부르면 딱 맞을 튀어 나온 둥근 배, 격식을 따지지 않은 자유로운 옷차림을 하고 다녔던 그 교수님은 충실하고 학구적인 강의를 해서 우리 학생들로부터 좋은 평가를 받고 있는 편이었습니다.
 
그의 수업 시간 중에 부르카에 대한 토론을 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무슬림 이민자들이 많은 유럽에서는 근래 들어 니캅과 부르카 같이 얼굴까지 가리고  입는 여성들의 이슬람식 복장이 논란이 되어 이를 허용하지 않는 방안이 논의되어 왔습니다. 토론은 바로 이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교수님은 우리들에게 부르카가 어떤 것인지 실물을 보여 주려고 수업 시간에 가져왔습니다. 원래 학교에 있던 것인지 아니면 교수님이 개인적으로 구해 온 것인지는 잘 모르겠는데, 나중에 연극 <버자이너 모놀로그>에 친구들이 사용한 것도 그 부르카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교수님이 수업 시간에 보여준 것은 푸른 색깔이었지만 어두운 조명 밑에서는 거무스름해 보였습니다.
 
“자, 여러분, 여러분들이 이걸 입고 외출해야 한다고 생각해 봐요.”교수님은 원하는 사람은 앞으로 나와서 입어보라고 하였습니다. 우리 학생들 중 몇몇이 나가서 직접 걸쳐 보았습니다. 저는 그 속에 끼진 않았습니다. 굳이 입어보고 싶은 생각은 들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톨레랑스와 부르카

  
▲ 눈 주위를 망사로 처리하여 최소한의 시야만을 확보하고 전신을 가리는 부르카. 출처:위키피디아

 
유럽 국가들 중에서 가장 먼저 자국 내에서 부르카를 금지하기로 결정한 나라는 프랑스입니다. 프랑스는 서유럽에서 무슬림 이민자가 가장 많은 국가라고 합니다. 프랑스에서는 얼굴과 온몸을 가리는 이슬람식 복장을 공공장소에서 착용하지 못하게 하는 법안이 제정되어 올해 7월에 하원에서, 9월에 상원에서 통과되었습니다.
 
이번 법 제정의 이유로는 공공장소에서 얼굴을 가리면 신원을 식별하기 어려워 곤란을 야기한다는 점과 여성인권을 침해하는 요소가 있다는 점, 그리고 프랑스의 가치관과 맞지 않는다는 점 등이 열거되고 있습니다.
 
이른바 ‘톨레랑스(tolerance: 관용)'의 나라로 불렸던 프랑스가 소수자인 이민자들에게 복장의 자유를 인정하지 않기로 한 이번 법률 제정은 생각해 볼 거리들을 던져 줍니다. 올해 4월에 “프랑스의 이슬람식 베일의 이면(Behind France's Islamic veil)”이란 제목으로 나온 영국 BBC의 리포트에는 이 문제에 대한 프랑스 인들의 시선이 다음과 같이 담겨 있습니다.
 
“왜 우리가 중세식 전통으로 돌아가야 하죠?” 이슬람식 복장 금지법안 제정을 최초로 촉구한 사람들 중 하나라는 어느 공산당 소속 국회의원은 이렇게 표현합니다. “제가 보기에, 긴 베일을 걸치고 얼굴을 가린 여성은 꼭 이동식 관 속에 있는 것 같습니다.”
 
이 리포트에 등장하는 무슬림 여성 켄자 드리더(Kenza Drider)의 의견은 다릅니다. 이 여성은 외출할 때면 얼굴을 가리는 니캅을 착용합니다. 그것은 자신의 자발적인 선택이고 법이 금지하더라도 계속 얼굴을 가리고 외출을 할 거라면서 프랑스 정부를 비판합니다. “외국인들이 통합을 원치 않는 게 아니라 국가가 그들을 끌어안기를 거부하고 있어요.”
 
자유, 평등, 박애

 
무슬림 여성인 켄자와는 달리, 프랑스의 여성주의 철학자 엘리자벳 바당테르(Élisabeth Badinter)의 의견은 1789년 대혁명 이후에 자리 잡은 프랑스의 공화주의적 이념과 정교분리에 기반을 둔 세속주의적 가치관에 근거를 두고 있습니다.
 
바당테르는 개인이 어떤 종교이건 가질 수는 있지만 그것은 사적인 영역에 속하는 일이고, 외부에서 눈을 가리는 이슬람식 복장은 프랑스 공화국의 3대 이념 - 자유, 평등, 박애 - 중 특히 평등에 위배된다고 주장합니다. “얼굴을 가리는 여성은 저보다 우월한 위치에 있는 거죠. 그녀는 저를 보지만 제가 보는 것은 거부하니까요.”
 
그러나 모로코 이민자 가정 출신으로 프랑스에서 태어난 켄자는 자유, 평등, 박애를 이렇게 해석합니다.“자유란 양심과 표현의 자유를 뜻하지요. 평등이란 외국인을 함부로 판단하지 않는 것이고 박애란 프랑스 시민을 프랑스 국민들이 지지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녀의 해석은, 인종이나 민족과 상관없이 모든 사람은 있는 그대로 존중받을 수 있는 권리를 지닌다는 주장으로 들립니다. 특히 박애의 의미를 말하면서 켄자는 프랑스 시민과 프랑스 국민을 구별하여 부르고 있는데, 이는 프랑스에서 살고 있는 모든 사람들은 프랑스 시민이라고 할 수 있으므로 기존의 프랑스 사람들, 즉 프랑스라는 ‘국가’의 국민들이 이민자들과 이방인들도 함께 살아가는 시민으로 인정하고 포용해야 한다는 뜻인 것 같습니다.
 
물론 무슬림 여성들도 다 제각각 다른 입장을 가지고 있을 것입니다. 켄자처럼 반발하는 여성들도 있지만 더 이상 니캅이나 부르카를 걸치지 않고 외출하지 않아도 되는 것을 좋아하는 여성들도 분명히 있을 것입니다.
 
이슬람식 베일의 이면
 
공공장소에서 얼굴을 가리는 이슬람식 복장의 착용을 금지하는 프랑스의 법은 6개월간의 계도기간을 거친 후에 내년 상반기부터 시행된다고 합니다. 이를 어기고 복장을 착용하는 여성에게는 벌금 150유로(약 23만원)가 부과되고, 여성에게 착용을 강요한 남성은 최고 징역 1년 형과 벌금 3만 유로(약 4,500만원)가 부과됩니다.
 
직접 착용하는 여성보다도 착용을 강요하는 남성에게 훨씬 더 무거운 형벌을 부과하기로 한 점이 눈길을 끕니다. 이 법률을 제정한 사람들은 이러한 복장이 남성 중심 문화의 산물이기 때문에 지금도 여전히 무슬림 여성들이 아버지나 남편 같은 가족 내 남성의 ‘강요’로 인해 베일을 두를 것이라는 가정 하에 이런 조항을 두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오랜 차별적 습속이란 반발도 낳지만 순응도 낳아서 문화의 일부가 되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은 강요받지 않아도 자연스레 실행하게 됩니다. 또한 여성들에게 차별적인 관습이 반드시 가족 내 남성들이 ‘강요’하는 방식으로만 유지되는 것은 아닙니다. 할머니나 어머니 같이 여성 가족들이 딸이나 손녀들도 자신들이 그랬던 것처럼 계속해서 전통을 지키도록 교육하고 요구하는 경우들이 흔하기 때문입니다. 이는 지난번에 살펴 본 여성 성기 절제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입니다.
 
게다가 자신의 민족적 정체성을 지키기 위해 의식적으로 전통을 선택하는 여성들도 분명히 존재합니다. 위에서 소개한 무슬림 여성 켄자가 자신은 강요받는 게 아니라 자발적으로 니캅을 두른다고 말한 것처럼 말입니다. 특히 외국에서 이방인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자민족의 전통을 고수하는 것에는 비합리적인 구석이 있더라도 절실한 이유가 있기 마련입니다.
 
민족적 정체성 지키기와 여성의 역할
 
 
▲ 다큐멘터리 <우리학교> 중. 민족의상을 입은 재일조선인 여학생들. 

 
문득 재일조선인들의 민족학교에 대한 다큐멘터리 영화 <우리 학교>가 떠오릅니다.  이 영화를 보면 민족학교를 다니는 재일조선인 여학생들은 남학생들이 양복 식 교복을 입는 것과 달리 하얀 저고리에 검은 치마, 한복을 입고 학교에 다닙니다.
 
겨울에 한복을 입는 게 추워서 안에 옷을 껴입어 보기도 하지만 추위를 다 막을 수는 없습니다. 또한 재일조선인을 증오하는 극우파 일본인들에게 쉽게 공격당할 수도 있기 때문에 소녀들의 한복 입기는 단지 불편함 이상의 문제입니다.
 
영화 안에서 왜 꼭 한복을 입어야 하느냐고 여학생들 중 일부가 문제제기를 하고 이를 놓고 학생들이 토론하지만, 민족적 정체성을 지킨다는 대의명분이 있기에 결국 한복은 계속 입는 일이 필요하다는 것으로 결론이 납니다.
 
그 토론 장면에 관해 더 자세히 기억해 내고 싶어 영화 <우리 학교>에 대해 검색을 해 보니 이 대사를 찾을 수 있었습니다. “조선 땅 안에서는 내면만 잘 지키면 됩니다만 일본에 사는 우리들은 내면과 외면 모두를 다 잘 지켜야 합니다. 그래서 겨울에 좀 춥더라도 저고리에 치마를 입습니다.”
 
이러한 그들의 노력은 분명 애틋합니다. 그러나 영화 속에서 “왜 남학생들은 입지 않는데 여학생들만 한복을 입어야 합니까?”라는 질문이 제기되어 치열하게 토론되지 못한 데 대한 아쉬움이 남습니다. 왜 민족적 정체성을 위해 외면까지 잘 지켜야 하는 일을 여성만이 담당해야 하는 것일까요? (다음에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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