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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숙영의 Out of Costa Rica (27) 버자이너 다이얼로그 ⑨ 옷 속에서 길을 잃다
<여성주의 저널 일다> 공숙영
* 코스타리카에서 유학하고 돌아온 필자 공숙영은 현지에서 마주친 다양한 인상과 풍경을 기록하고자 합니다.
학교에는 이슬람 문화권으로부터 온 친구들이 적지 않게 있었습니다. 그들과 직접 부르카 금지에 관해 토론했으면 좋았을 텐데 유감스럽게도 그런 기회는 가지지 못 했습니다.
게다가 인권법 전공자 중에 무슬림이 없었기 때문에 네덜란드인 교수님과 함께 부르카 착용에 관해 토론했던 그 수업시간에 정작 무슬림, 특히 당사자인 무슬림 여성의 목소리는 들을 수 없었습니다. 다른 과에는 히잡을 쓰고 다닌 친구가 있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그들만의 리그
우연히 학교에서 무슬림 남성들이 모이는 것을 본 적이 있습니다. 빈 강의실에 혼자 앉아 책을 읽고 있을 때였습니다. 중동 지역 국가로부터 온 친구가 들어와 창문 밑으로 가서 큰 종이를 바닥에 깔더니 엎드려 절하며 기도하는 것이었습니다.
이윽고 다른 중동 지역 친구들도 모여 들었습니다. 알고 보니 그들은 모두 무슬림으로서 빈 강의실에서 회합을 가지고 예배를 드리는 모양이었습니다. 먼저 온 친구가 절을 한 방향이 이슬람의 성지 메카가 있는 쪽이었나 봅니다.
그들은 평소처럼 미소 지은 얼굴로 깍듯하게 인사를 건네었을 뿐 저에게 나가 달라고 양해를 구하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계속 제가 거기 있는 것은 부담스럽고 부적절하게 느껴져서 책을 챙겨 나왔습니다.
무슬림 페미니스트의 목소리
▲ 이집트 출신 페미니스트 언론인 모나 엘타하위(Mona Eltahawy) © monaeltahawy.com
무슬림 여성의 목소리를 들을 기회는 모나 엘타하위(Mona Eltahawy)가 코스타리카의 우리 학교를 방문해서 강연회를 하면서 생겼습니다. 미국 뉴욕에 거주하는 모나는 세계의 여러 주요 통신사와 언론사에 아랍 세계와 이슬람 문화권의 이슈에 관한 리포트와 기고활동을 활발히 하는 저널리스트이자 칼럼니스트입니다.
무슬림 여성이지만 모나는 히잡 같은 것을 걸치고 있지 않았습니다. 흘러내린 긴 검은머리에 검은 테 안경을 쓰고 청바지를 입은 그녀는 자신을 ‘무슬림 페미니스트’라고 소개하였습니다.
이슬람 원리주의 체제 하에서의 여성탄압를 비판하는 그녀의 강연이 끝나자 뒤에 앉아 있던 학교 친구 중 누군가가 이렇게 중얼거렸습니다. “무슬림 페미니스트라니, 모순 아니야? 왜 계속 무슬림으로 남으려 하지?”
모나의 개인 홈페이지에 있는 프로필을 찾아보니 그녀는 이집트에서 태어나 영국, 사우디 아라비아, 이스라엘에 산 경험이 있고 자신을 “자부심 있는 자유주의 성향의 무슬림(proud liberal Muslim)”이라고 부른다고 되어 있습니다.
또한 그녀는 기고 외에 강의와 연구도 하며 무슬림 가정에서의 정의와 평등을 위한 범세계적인 운동을 위한 단체의 멤버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여성의 존재를 지우는 부르카
▲ 부르카를 입은 여성들, 아프가니스탄. 사진 출처: 위키피디아
올해 3월 영국 옵서버(The Observer) 지에 실린 프랑스에서의 부르카 금지 논쟁을 둘러싼 지상토론에서 모나는 부르카 금지를 찬성하는 입장의 글을 썼습니다. “무슬림 여성이자 페미니스트로서 나는 프랑스뿐만 아니라 이 세상 어디에서도 여성의 얼굴을 가리는 베일의 금지를 지지한다”라고 시작하는 그녀의 글은 매우 단호합니다.
모나는 ‘니캅과 부르카 같은 복장을 여성에게 종용하는 이데올로기는 여성의 권리를 믿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또한 얼굴과 전신을 가리는 여성의 복장은 코란의 메시지가 아니고 다수의 무슬림 학자들이 정한 것도 아니라고 주장합니다.
“나는 니캅과 부르카를 싫어한다. 왜냐면 이것들은 여성의 존재를 지워버리고 또한 위험하게도 여성의 존재가 그렇게 사라지는 것을 신앙으로 치환시켜 버리기 때문이다. 마치 덜 보일수록 신에게 더 가까이 갈 수 있는 것처럼 말이다.”
그러나 동시에 그녀는 유럽의 인종주의자들이 부르카 금지를 이용하여 외국인혐오와 이슬람혐오를 부추긴다는 점을 지적합니다.
“나는 이슬람식 베일 뒤에 도사리고 있는 무슬림 우파 이데올로기가 싫지만 유럽 우파들의 외국인혐오증도 똑같이 싫다.”
결론적으로 모나는 잘못된 이데올로기의 틈바구니에서 여성들이 희생되어서는 안 된다고 강조합니다.
“무슬림 여성들을 지지하는 최선의 방법은 우파적인 인종주의와 니캅과 부르카를 낳은 무슬림 우파, 양자 모두 반대하는 것이다.”
그녀가 ‘무슬림 우파’라고 부르는 경향은 여성인권을 포함하여 인권을 탄압하고 국민을 억압하여 체제를 유지하려고 하는 극단적 이슬람 원리주의 세력의 흐름을 의미하는 것으로 해석됩니다.
부르카가 여성의 권리인가
▲ 1923년에 설립된 ‘이집트 페미니스트 연합(The Egyptian Feminist Union)’은 아랍권 최초의 전국적 여성운동체로서 호다 샤아라위(Hoda Shaarawi)가 설립하고 초대 회장을 맡았다. © modernegypt.info
또한 모나의 홈페이지에서 그녀가 부르카 금지법안 찬성토론자로 등장하는 동영상도 볼 수 있었습니다. 반대토론자 역시 미국에서 저널리스트로 활동하는 무슬림 여성이었는데 모나와는 달리 머리에 히잡을 두르고 있습니다.
이 여성은 무슬림 여성의 베일 착용이 강제적인 게 아니라 자발적인 것이라고 주장하면서, 무슬림 사회의 변화는 무슬림들이 스스로 합의하여 이루어야 하는 것이지 외부의 개입이나 강요는 곤란하다고 강조합니다. 또한 그녀는 이슬람 문화권 내의 여성 지위의 향상을 위해 훨씬 더 중요하고 시급한 실질적인 현안이 많이 있는데 왜 베일 착용에 관심을 과하게 기울이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비판하였습니다.
이에 반해 모나는 위에 소개한 기사에 썼듯이 무슬림 여성들에게 몸과 얼굴을 가리게 하는 이슬람 사회는 여성 인권을 인정하지 않게 마련이라는 의견을 제시합니다. 애초에 무슬림 여성들이 베일로 몸과 얼굴을 가리게 된 것은 남성 지도자들의 결정이었기 때문에 무슬림 여성의 이슬람식 베일 착용을 ‘권리’라고 부르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것이 모나의 생각입니다.
그러면서 그녀는 호다 샤아라위(Hoda Shaarawi)라는 이집트의 선구적 페미니스트의 일화를 소개합니다. 호다는 1923년에 이탈리아에서 열린 국제여성회의에 참석하고 귀국하는 길에 카이로의 기차역에서 얼굴을 가린 베일을 벗어던지면서“이것은 과거의 유물”이라고 선언한 것으로 유명하다고 합니다.
이렇듯 서로의 입장 차이를 확인한 이 두 무슬림 여성은 미묘한 미소를 머금은 채 앞으로 더 논의하고 협력을 모색하자는 말을 주고받으며 토론을 마칩니다.
“알라 신은 나를 싫어하시나 보다”
▲ 방글라데쉬의 수도 다카, 전국여성노동조합센터의 세계여성의 날 집회, 2005년 3월 8일. 사진출처: 위키피디아
한편 모나가 나오는 또 다른 동영상은 ‘이슬람 페미니즘?’이라는 제목이 붙어 있습니다. “이슬람과 페미니즘이 양립 가능한 가치인가?”가 토론의 주제인 이 동영상에서 모나는 미국의 백인 여성 저널리스트와 대화합니다.
이슬람 페미니즘의 성립 가능성에 대한 신념을 피력하는 모나의 얼굴은 다소 절박해 보이기까지 하고, 질문을 던지는 쪽은 어쩐지 회의적으로 보입니다.
자신이 만난 어느 무슬림 여성이 “알라 신은 나를 싫어하시나 보다”라는 말을 해서 슬펐다고 토로하는 모나를 화면으로 보며 코스타리카에서의 강연회 때 어떤 친구가 “무슬림 페미니스트는 모순”이라고 논평하던 게 다시 떠오릅니다.
제가 참석했던 강연 내내 모나는 말하면서 줄곧 손을 움직였습니다. 그녀의 손목에는 여러 개의 굵은 팔찌가 끼워져 있어 그녀가 손짓을 할 때마다 팔찌끼리 서로 부딪혀 달그락달그락 쟁그랑쟁그랑 소리를 내었습니다. 앞자리에 앉아 있었던 저는 그녀의 목소리와 더불어 소음인지 화음인지 팔찌들이 계속 내는 소리에 귀를 빼앗기고 있었습니다.
문득, 전통과 신앙 안에서 어떻게든 용을 써서 변화를 만들어보려는 모나와 같은 무슬림 페미니스트들의 존재가 손을 흔들 때마다 소리를 내던 그 팔찌들 같이 느껴집니다.
과연 그녀들은 할 수 있을까요? 민족적, 종교적 정체성을 고수하면서도 차별을 척결하고 억압을 타파하여 존엄을 회복할 수 있을까요?
당신이 숨 쉬고 있으면서
질식한다고 상상해 보라
새장 안에서
중얼거리고 소리치지만
아무도 듣지 않는다고 상상해 보라
내가 당신이 있는 그 어둠 속에 있다고 상상해 보라
나는 거기 갇혀 있다
나는 길을 잃었다
거기 옷 속에서
- 이브 엔슬러, <버자이너 모놀로그>, 부르카 아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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