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난설헌, 작품을 통해 다시 본다 허난설헌(본명 허초희, 1563~1589)은 역사적으로 알려지지 않은 몇몇 여성 문인들 가운데, 황진이와 더불어 그 시작 능력이 천재적이라고 평가받은 예술가다. 그러나 남성 문인들에 대한 평가가 작품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반면, 여성 문인들에 대한 평가는 외적 조건이 기준이 된다. 즉 황진이의 경우 기생의 신분으로 뭇 남성들을 유혹한 자유분방한 여성이라는 이미지가 강하다. 그리고 허난설헌은 반역을 꾀하다 귀양 간 허균의 누이이자, 남편에게 소박맞고 자식마저 잃은 불행한 여성으로 기억된다. 불행한 ‘여류’ 예술가의 이미지. 고등학교 교과서를 통해 소개된 허난설헌의 작품들은 주로 기다림에 지쳐 돌아오지 않는 남편에게 원망을 표출한 시다. 하지만 ‘님’에 대한 기다림과 한이라는..
지난 1월 말, 눈이 엄청나게 쌓인 하천변을 서둘러 나가 본 것은 순전히 눈 때문이었다. 어린 시절 이후 이렇게 눈이 많이 쌓인 길을 걸어보는 건 처음인 것 같아, 더욱 설레고 들뜨고 했다. 그러다 문득, 눈싸움을 하자고 졸랐던 원영이 생각이 났다. 작년 겨울, “선생님! 눈이 저렇게 많이 왔는데, 눈싸움은 하셨어요?” 원영이는 들어서자마자 내게 물었다. “눈싸움? 아니!” 그 대답에 안타깝다는 표정으로, “눈싸움을 못하셨다니! 그럼, 있다가 공부 끝나고 우리 눈싸움하러 가요.” “…….” 거기에 별 대답이 없자 그녀는 재차 대답을 요구했고, 너무 심하게 조르는가 싶어 딱 잘라 안 한다고 거절했더니 실망감을 감추지 못하는 눈치였다. 그러고 보니 눈싸움은 어렸을 때도 해본 적이 없다. 나는 허리를 깊이 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