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서사의 가능성…억압된 말들의 귀환[페미니스트의 책장] 최은영 소설집 『쇼코의 미소』 『쇼코의 미소』를 처음 딱 읽고 책을 덮으면, 부드럽고 따뜻한 기분이 든다. 아름다운 이야기책을 읽은 것처럼 소중한 마음이 차오른다. 그러나 혼자서 조용히 이야기를 잘 곱씹어보면, 이상하게도 이것은 그리 아름답기만 한 이야기들은 아니다. 삶의 초라하고 추악한 단면들이 그의 이야기 속에 어떤 치장도 없이 선명하게 드러나 있다. 쇼코의 미소에 서려 있는 서늘함처럼, 문득 터져 나오는 미진의 분노처럼, 알 수 없이 단절되어버린 어떤 관계의 날카로움처럼 이 따뜻한 이야기들은 칼을 품고 있다. 그래서 『쇼코의 미소』를 다시 펼쳤을 때, 스스로 질문해보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여기서 느꼈다고 생각했던 온기는 대체 무엇이었을까...
“자신을 온전히 받아들인 사람이 가진 자기확신을 봤죠”트랜스젠더퀴어 10인의 초상화를 전시한 ‘활동가’와 ‘예술가’ 인터뷰 살면서 “여자가 그런 건 쫌…”이라는 말은 자주 들어봤다. 여성으로 보인다는 것 때문에 겪은 일들을 나열하자면 끝이 없지만 “여자예요, 남자예요?”라는 질문을 받은 적은 없다. 머리카락이 꽤 짧았을 때도 그랬다. 화장을 해서? 키나 몸집이 크지 않아서? 몸의 곡선이 드러나는 옷을 입어서? 목소리 때문에? 정확한 이유야 알 수 없지만 분명 어떤 이유가 날 여성이라고 구분할 수 있게 했기 때문일 것이다. 여성으로 보이기 때문에 겪은 일들은 때때로 날 꽤 화나게 만들었지만 그게 문제였을 뿐, 내가 스스로를 여성이라고 인지하는 데엔 별 문제가 없었다. 세상이 나에게 지정해 준 여성이라는 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