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생자 전시나 정치적 놀음에 그치지 않도록 얼마 전 자동차를 타고 가던 중에 일어난 일이었습니다. 뒤에서 갑자기 어마어마한 소음이 들려왔지요. 백미러로 뒤를 보니 망가진 승용차 한대가 도로한가운데 서있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멀어지면서 그 차는 점점 작게 보이다가 결국 보이지 않게 되었습니다. 제가 탄 차와 부딪혔을지 모르는 아찔함에 가슴을 쓸어 내리다가, 한 순간 부딪혔을 수도 있었겠다 하는 생각, 갑자기 내게 고통이 닥쳐왔을 수도 있었겠다 하는 생각, 그리고 어느 한가한 오후에 고통이 닥쳐왔을 사고당사자를 생각하다가, 결국 그도 언젠가 고통을 피해간 저의 기억에서 잊혀지고 말 것이라는 생각이 한꺼번에 밀려왔지요. 매 순간 이렇게 누군가는 고통을 피해가고, 누군가는 마치 운명인 마냥 고통에 맞닥뜨려야 하..
연필깍지를 만들어 아이들과 나누며 “선생님, 제게도 요만한 연필이 드디어 생겼어요!” 자리에 앉자마자 제법 흥분된 표정으로 승찬이는 엄지와 검지로 연필 크기를 그려 보이며 말했다. “그래? 그럼, 선생님이 그걸 꽂을 수 있는 깍지를 줄까?”했더니, 바로 “네!”하고 대답하며 받아 든다. 옆에 있던 수빈이에게도 “수빈이도 하나 줄까?”했더니, 그녀도 좋단다. 나는 볼펜이나 사인펜 같은 필기도구를 다 쓰면 그 깍지를 잘 챙겨놓았다가 몽당연필을 꽂아 쓰기도 하고, 원하는 아이들에겐 주기도 한다. 또 그렇게 깍지에 끼워 쓰던 연필이 손톱만큼 작아져, 정말 더는 쓸 수 없게 된 것들도 통에 잘 모으고 있다. 그걸 갖고 싶어하는 아이들도 가끔 있는데, 나는 그들에게 “안돼! 연필을 계속 쓰면 이렇게 돼. 너희들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