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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필깍지를 만들어 아이들과 나누며

“선생님, 제게도 요만한 연필이 드디어 생겼어요!”
 
자리에 앉자마자 제법 흥분된 표정으로 승찬이는 엄지와 검지로 연필 크기를 그려 보이며 말했다.
 
“그래? 그럼, 선생님이 그걸 꽂을 수 있는 깍지를 줄까?”했더니, 바로 “네!”하고 대답하며 받아 든다. 옆에 있던 수빈이에게도 “수빈이도 하나 줄까?”했더니, 그녀도 좋단다.
 
나는 볼펜이나 사인펜 같은 필기도구를 다 쓰면 그 깍지를 잘 챙겨놓았다가 몽당연필을 꽂아 쓰기도 하고, 원하는 아이들에겐 주기도 한다. 또 그렇게 깍지에 끼워 쓰던 연필이 손톱만큼 작아져, 정말 더는 쓸 수 없게 된 것들도 통에 잘 모으고 있다. 그걸 갖고 싶어하는 아이들도 가끔 있는데, 나는 그들에게 “안돼! 연필을 계속 쓰면 이렇게 돼. 너희들도 해보렴!”이라고 말하며, 결코 주는 법이 없다.
 
아이들에게 물자절약 정신을 키워주겠다는, 뭐 그런 대단한 교육자적인 마음으로 그러는 것은 아니다. 너무 마음에 쏙 들어, 정말 주고 싶지 않아서 그러는 거다. 그러면 자기도 몽당연필을 많이 모을 거라고 야심을 밝히는 아이들이 꼭 있다.
 
실제로 현정이는 내 것보다 훨씬 짧은, 손톱보다도 작은 몽당연필을 가지고 와 자랑을 하기도 했다. 나는 그들이 보여주는 몽당연필에 진정으로 감탄하는데, 그런 내 반응을 보고 아이들은 스스로를 대견스러워하며 즐거워한다.
 
아이들과 깍지에 낀 몽당연필을 쓰면서, 우리가 어렸을 적 ‘물자절약의 상징’으로 여겼던 몽당연필을 오늘날은 ‘가난의 상징’처럼 생각하는 아이들이 있다는 데 놀랐다. 한 학생은 내 몽당연필을 보고 “왜 가난한 것처럼 이런 걸 써요? 우리 엄마는 연필이 이-만해지면 버리라고 하세요” 라고 말했다. 나는 그 말을 하는 아이의 표정 속에서 그런 엄마의 행동을, 그의 표현대로 말한다면 ‘부자스러운’ 것처럼 생각한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나는 그저 담담하게 “몽당연필을 쓰는 건 가난한 거랑은 상관없어. 이렇게 깍지에 끼워 쓰면 한참을 더 쓸 수 있는데, 그냥 버리면 너무 아깝잖아” 라고 대답했다. 그도 이 간단하고 단순한 이유가 금방 이해되는 표정이다.
 
승찬이의 어머니도 어느 정도 짧아진 연필은 버리게 한단다. ‘연필 잡는 습관이 나빠져서’ 그렇게 하신다는데, 승찬이는 “이렇게 깍지에 꽂아 쓰면 아무 상관없을” 거라며, 제법 좋은 해결책을 찾은 듯 즐거워했다.
 
아이들은 참으로 쉽게 변한다. 그들은 나와 공부할 때 깍지에 낀 연필로 글자 쓰는 걸 좋아하고, 또 내게서 깍지를 얻어가기도 하고, 그렇게 쓰고 있는 몽당연필을 가져와 자랑을 하기도 한다. 또 나는 부지런히 기회가 있을 때마다 몽당연필을 끼울 깍지를 만든다. 내 마음에 쏙 드는 걸 달라고 할 때는 아까운 마음이 슬며시 고개를 들어도, 참으로 큰맘(!) 먹고 선뜻선뜻 준다. 그 깍지들이 그들과, 또 그들의 세상을 조금씩 바꿔놓을 거라고 믿으면서.
 
그래서 이 작은 몽당연필들은 ‘아주 아주 큰’ 세상의 희망이다.
일다
▣ 정인진 (교육일기에 등장하는 아이들의 이름은 가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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