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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널리즘 새지평

기륭전자 비정규직 노동자들, 6년의 투쟁

그 여자들의 물결 일다 2010. 10. 29. 09:00

죽도록 일하느냐, 죽도록 싸우느냐 
[르포] 단식농성 중인 기륭전자 비정규직 노동자들, 6년의 투쟁

                                                                                                                 <여성주의 저널 일다> 희정 
 
 
기륭 여성 노동자들의 싸움을 알고계시지요? 100여일의 단식, 고공농성, 그리고 6년간의 싸움. 기륭전자 노동자들은 유명합니다.
  

▲ 단식 중인 윤종희 조합원     ©희정 
 
그러나 저는 기륭을 잘 모릅니다. 가뭄에 콩 나듯 농성장을 찾을 뿐입니다. 그럼에도 기륭에 대한 글을 쓰는 이유는 상황이 너무 열악하기 때문입니다.
 
기륭공장이 있던 자리에 새로운 건물을 짓겠다고 포클레인이 들어오고, 노동자들은 단식을 합니다. 곧 경찰병력이 와 기륭노동자들을 연행해갈 거라 합니다.
 
그러나 제가 말하는 열악한 상황은 지금의 기륭을 말하는 게 아닙니다.
 
오랜 싸움으로 다져진 그녀들은 아마 경찰에게 맞고 끌려가도 며칠 뒤면 싸움을 새로이 시작할 거라 믿습니다. 제가 글을 쓰는 이유는 6년 전, 기륭 그녀들 때문입니다.
 
매일 12시간 중노동, 월급은 100만원 남짓
 
6년 전, 그녀들은 기륭전자에서 일을 했습니다. 윤종희 조합원에게 그때를 물었습니다.
 
“2005년 당시, 일이 엄청 많았어요.”
“어느 정도였는데요?” 
“잔업이 100시간 쯤 됐어요.”
 
100시간이라……. 계산을 해봅니다. 30일 내내 하루에 3, 4시간씩 잔업을 해야 100시간이 됩니다. 하루도 쉬지 않고 12시간 가까이 일을 했다는 이야기입니다.
 
일을 마치고 집으로 오면 누가 해주는 밥상 앞에 앉을 수 있는 처지도 아닙니다. 12시간 근무를 하고 돌아와 식구들에게 늦은 저녁을 먹이고, 밀린 빨래를 하고, 아이들 도시락 반찬을 준비하는 가사노동이 그녀들을 기다리고 있었겠죠. 그렇게 받은 돈이 당시 기본급 641,850원, 잔업․특근비를 포함하면 100만원 정도였다고 합니다.
 
잦은 해고, ‘잡담했다’며 문자로 해고통보도
 
저임금과 고된 노동도 문제였지만 그녀들을 괴롭힌 건 잦은 해고였습니다. 회사에서 통계를 낸 해고자 수가 한 달에 30여 명에 달합니다. 일 년에 해고자가 300명이 넘는다는 거지요. 당시 기륭전자 생산직 노동자 수가 300여명이었습니다. 해고의 이유는 사소하고, 통보 방식은 잔인했습니다. 
 

▲ 농성장 한 쪽, 꽃상여를 둘러 멘 포클레인     ©희정 
 
“잔업이 그렇게 많았는데, 일이 잔뜩 밀린 공정으로 또 투입시키는 거예요. ‘너무한 거 아니냐’라고 조장에게 한마디 했어요. 그게 업무지시 불응이 된 거죠. 그런데 그걸로 해고시키긴 그러니까 잡담했다면서 해고시켰고, 그게 ‘잡담해고’예요. 그것도 문자로 연락받았고요.”
 
그래도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녀들은 기륭이 <휴먼닷컴>에서 잠시 ‘빌려온’ 노동자였으니까요. 기륭전자의 물건을 만들고, 기륭전자 공장에서 일하고, 기륭전자 조반장의 지시에 따라 일했으나 그녀들은 ‘휴먼닷컴’의 직원이었습니다.
 
재미있는 것은 기륭전자에 계약직도 있다는 사실입니다. 정규직, 계약직, 파견직 노동자가 한 공장 한 라인에서 같은 물건을 만듭니다.(이 중 정규직은 15명, 계약직은 40여명, 나머지는 파견직입니다) 같은 일을 하지만 월급과 대우는 천지차이였습니다. 정규직이 하면 ‘실수’인 일이, 파견직이 하면 ‘해고 사유’가 되곤 했습니다.
 
회사는 한 발 더 나갑니다. 최저임금에 성과급이나 퇴직금을 지급할 필요도 없는 파견 노동자가 황금알을 낳는 거위처럼 보였나 봅니다. 정규직을 해고시키기 시작한 겁니다. 그 자리에 파견직을 앉혔지요. 당시 기륭전자 임원들은 조회 때마다 “영원한 정규직도, 영원한 계약직도 없다”고 소리 높였습니다. 그전까지 기본급은 형편없어도(기륭 정규직 10년차 연봉이 다른 회사 초봉 월급과 비슷했다고 합니다) 정규직원이라는 것만 믿고 살아온 정규직 노동자들은 불안을 느낍니다.
 
이에 2005년 7월 정규직, 계약직, 파견직 노동자들이 함께 노동조합을 세우게 됩니다. 쉬는 시간 10분 만에 150여명의 노동자가 조합가입원서를 작성하며 노동조합은 직원들의 지지를 얻습니다.
 
노조 설립에 대량 해고 감행한 사측
 
노동조합이 만들어지자 회사는 대규모 해고를 감행합니다. 이에 맞서 노동조합은 노동부에 불법파견 판정 신청을 했습니다. 당시 파견노동자들의 업무지시를 기륭 관리자가 했고, 생산도 기륭 정규직들과 똑같은 라인에서 했습니다. 허울뿐인 파견업체를 내세운 불법적인 고용이었지요.
 
그해 8월, 노동부는 기륭전자에 불법파견 판정을 내립니다.
 
‘이제 복직이구나’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노동부의 시정조치는 정규직으로의 복직이 아니었습니다. 그동안 부려먹은 파견노동자들을 해고시키면 불법파견이 시정되는 거였습니다. 파견노동자들이 하던 일을 하도급으로 전환하면 그것이 시정이었습니다. 회사에는 겨우 500만원의 벌금이 부과됐습니다. 기륭 노동자들의 싸움은 길어집니다.
 
2008년 기륭전자를 지금의 최동렬 회장이 인수합니다. 6년 동안 기륭전자는 최대주주가 4번이나 바뀝니다. 그 과정에서 자본금 15억짜리 회사가 395억에 팔리는 등 비상식적인 일들이 일어납니다. 기륭노동자들의 주장에 따르면, 건실한 제조업체였던 기륭이 매매차익과 자금세탁을 위한 수단인 투기자본으로 변모한 것입니다. 생산라인은 하도급을 주기 시작하지요. 회사도 부지를 이전했습니다. 기륭전자는 참 많은 변화를 겪었습니다.
 
그러나 단 하나 변하지 않는 것이 있습니다. 노동조합에 대한 태도입니다.
 
‘당신들은 기륭 직원 아니라 휴먼닷컴 업체 직원이다.’
 
이것이 변하지 않는 기륭전자의 입장입니다.
 
투쟁, 협상 그리고 회사의 반복되는 약속파기
 
기륭 그녀들의 싸움은 거세집니다. 조합원 전원 단식, 94일간의 김소연 분회장의 단식, 고공 농성, 한나라당 원내대표실 점거……. 처음 공장에 들어가 농성을 했을 때, 한밤중에 회사가 스피커 볼륨을 최대로 올리고 뽕짝을 틀어대 경기 일으키게 놀랐던 것은 이제는 추억일 뿐입니다. 막내동생뻘 되는 용역직원에게 욕을 먹고 매를 맞고, 심지어 경찰에게 연행되는 과정에 성추행도 당했습니다. 무엇보다 서러운 건 김소연 분회장이 올라간 철제 탑을 용역들과 구사대 직원들이 흔들며 “차라리 죽어!”라고 외치던 일입니다. 우리가 그렇게 아무것도 아닌 존재들인가, 그녀들은 많이 울었습니다.
 
험한 싸움 뒤에는 협상을 하겠다는 회사의 약속이 따라왔고, 다시 약속 파기가 이어졌습니다. 올해 8월, 긴 교섭 끝에 얻은 ‘정규직원으로 조합원 10명을 채용하겠다’는 약속이 조인식을 앞두고 파기됩니다.
 
가리봉에 있는 옛 기륭공장 터에 건설업체가 포클레인을 앞세우고 왔습니다. 그곳에 아파트형 공장을 짓겠다고 합니다. 그리고 ‘기륭’이라는 이름을 쓰겠다고 합니다. 건설을 맡은 시공사에 물으니 최동렬 회장이 노사문제는 다 해결됐다고 했다고 합니다. 무엇이 달라졌기에 문제가 해결됐다고 말한 걸까요?
 
기륭 노동자들은 포클레인을 막았습니다. 그리고 그 위에 김소연 분회장과 기륭 싸움에 함께해온 송경동 시인이 올라갔습니다. 폭이 좁은 포클레인 위에 있는 것은 위태로워 보입니다. 맞은편 옥상에는 기륭조합원 2명이 단식을 합니다.
 
노동자들의 요구, “부당 해고했으니 복직시키라는 것 뿐”

  ▲ 사측의 농성장 철거 시도에 포클레인에서 떨어지겠다고 맞서고 있는 송경동 시인과 분회장     ©희정 
 
10월 16일, 불법점거를 진압한다면서 경찰이 병력을 이끌고 기륭에 왔습니다. 6년간의 싸움이 이어지는 사이 조합원들은 결혼을 하고 아이도 나았습니다. 조합원 한 명이 농성장에서 놀고 있는 아이를 급히 업습니다. 다른 조합원은 경찰에게 “오지 마! 우릴 다 죽일 셈이야!”라고 소리를 지릅니다.
 
포클레인 꼭대기에 선 송경동 시인이 경찰에게 가까이 오면 떨어져 버리겠다고 합니다. 기댈 곳 없이 밧줄 하나 잡고 선 그를 보는 데 아찔합니다. 주변에서 울음이 터집니다. 그가 걱정되어 울고, 6년 동안의 자기 설움에 겨워 웁니다. 완강하게 저항한 끝에 경찰이 오늘은 물러가기로 합니다. 그제야 송경동 시인은 자리에 주저앉습니다.
 
“꼭 이렇게 까지 해야 합니까.”
 
그가 자조하듯 말합니다.
 
돈 잔치를 할 만큼 월급을 달라는 것도 아니고, 놀고먹던 사람이 직장을 내놓으라고 떼를 쓰는 것도 아니고, ‘부당하게 해고했으니 복직시켜라. 기륭에서 일했으니 기륭노동자로 복직시켜라’라는 요구조차 이렇게 힘들다니. 이렇게 오래 싸워야 하다니.
 
저임금으로 부릴 수 있는 파견직, 계약직 노동자들이 없다면 기업들이 놓치게 될 이익도 참으로 클 겁니다. 그들은 불법파견 싸움으로 대표되는 기륭 노동자들의 싸움이 이겨서는 곤란하겠지요.
 
그녀들이 고공농성을 하던 2008년, 이명박 대통령은 기륭 최동렬 회장을 우수중소기업인 대표로 발탁해 중국순방단에 포함시켰습니다. 기륭 노동자들은 조심히 말합니다. 최동렬 회장만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닐 거다. 그 뒤에는 정부가 있는 거다. 그 말은 단지 추측에 불과할까요.
 
최저임금 파견 노동이 만연한 사회에서
 
윤종희 씨에게 싸움을 한 걸 후회한 적 없냐고 물었습니다.
 
“싸움을 안 하고 여길 떠난다고 달라질 것 같지 않아요. 생계문제 때문에 직장을 구한 조합원들 중에 안정적으로 일하는 사람이 없어요. 5,6년 사이에 벌써 서너 차례씩 해고되고, 밥 먹을 시간도 없어 저녁 시간 10분 동안 김밥하고 우유 하나 먹고. 하도 손을 험하게 써서 손톱이 다 빠지고……. 다들 힘들게 살아요.”
 
눈물 흘리는 이가 열 명의 조합원뿐이라면 양보했을 겁니다. 100여 시간의 잔업, 최저생계비 수준에 머무는 저임금, 일상적인 해고를 당하는 게 자신들 10여 명뿐이라면 싸울 명분도 없었겠지요.
 
890만 비정규직 중 98%가 임시직을 겸하고 있다고 합니다(통계청, 2008년 8월 기준). 최저임금 파견 노동자가 만연한 사회에서 기륭의 그녀들은 죽도록 일하느냐, 죽도록 싸우느냐, 이 두 가지 선택 중 후자를 택한 것뿐입니다.
 
10월 28일 현재 기준, 농성 1838일, 단식 17일. 기륭 그녀들은 오늘도 싸우고 있습니다. 그리고 6년 전 기륭 그녀들은, 지금 어딘가에서 파견직, 임시직, 계약직이라는 그 불안한 이름을 달고 일하고 있습니다. (희정)
 
<이 기사는 한국언론진흥재단의  언론진흥기금지원을 받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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