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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은지의 ‘신체활동과 여성건강 이야기’ (1) 운동과 우울증  
 
[편집자주]<박은지의 ‘신체활동과 여성건강 이야기’>는 여성들이 많이 경험하고 있는 질병 및 증상에 대한 이해와, 이를 예방하고 개선하는데 도움을 줄 수 있는 신체활동의 효과에 대해 살펴볼 것입니다.
 
필자 박은지님은 체육교육과 졸업 후 퍼스널 트레이너와 운동처방사로 일을 한 후, 지금은 연세대학교 체육연구소에서 신체활동이 우리 몸에 미치는 생리학적인 영향에 대한 연구를 하고 있습니다. 한국사회에서 '운동과 스포츠'라는 영역은 아직까지 여성에게는 척박한 곳이라고 생각해 여성들이 편하고 올바르게 운동할 수 있는 공간을 개척해나가려는 꿈을 가지고 있습니다. 
 
살다보면 기분이 우울해지는 일들은 심심찮게 찾아온다. 친구와의 다툼, 부모와의 갈등, 삶에 대한 고민 혹은 누군가의 죽음 등 혼자 감당하기에 고된 일들은 끊이지 않고 찾아온다. 그때마다 찾아오는 우울감과 절망감 중 대부분은 시간이 지나면 어느 정도 회복이 되고, 극복할 수 있게 된다. 하지만 시간이 아무리 지나도 회복이 안 되고, 오히려 점점 심해져서 일상생활에 지장을 줄 정도로 우울함이 사라지지 않는다면 이것은 병이 된다.
 
우울증은 분명한 병으로 마음의 병인 동시에 몸과 뇌의 병이다. 우울증의 증상은 다양하여 우울감을 느끼지 않는 우울증도 있으며, 일반인이 ‘우울증’이라는 병과 일시적으로 ‘우울한 것’을 구별하는 것은 쉽지 않으므로 전문적인 진단과 치료가 필요하다.

하지만 우울증이나 불안장애와 같은 정신질환자의 약 30%, 그리고 우울증을 경험하는 사람의 절반 이상이 전문적인 도움을 받지 않는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
 
취약계층의 여성, 우울증 발병위험 높아

▲ '2008 국민건강통계’에 의하면, 여성의 정신건강은 남성보다 낮은 수준에 있다.  ©일다 
 
보건복지부와 질병관리본부에서 발표한 보고서를 보면 ‘여자의 정신건강이 남자보다 낮은 수준’이라고 쓰여 있다. 여자는 남자보다 스트레스 인지율과 우울증상 경험률이 높았고, 자살 생각률은 남자 11.8%, 여자 22.9%로 여자가 남자보다 2배가량 높았다. 또 연령이 높을수록, 소득수준이 낮을수록 스트레스 인지율, 우울증상 경험률, 자살 생각률은 높아졌다.
 
우울증과 관련된 인구통계학적 변수들을 밝힌 연구들에 의하면 우울증의 위험인자로는 ‘여성, 낮은 연령의 인구집단, 낮은 사회경제적 상태, 이혼이나 별거의 결혼상태’ 등으로 나타나 취약계층의 여성에게서 특히 발병위험이 높음을 알 수 있다.
 
세계보건기구(WHO)에 의하면 우울증을 앓는 사람 중 10~15%는 결국 자살에까지 이를 수 있다고 한다. 2009년 통계청 자료에 의하면 우리나라 여성의 자살률은 인구 10만 명당 2001년 8.6명, 2004년 14.9명, 2005년 15.6명, 2007년 18.1명으로 계속해서 증가하는 추세다. 이것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평균의 약 3배에 달하는 수치이다. 또 2008년에는 우리나라에서 자살로 사망한 사람이 1만 2858명으로 40분마다 1명꼴로 자살을 선택해 OECD 회원국 중 헝가리 다음으로 자살률 2위에 올랐다. 특히 10대에서는 자살이 여성의 사망원인 1위를 차지하고 있다.
 
운동의 우울증 호전효과를 밝히는 연구 줄이어
 
상담과 약물치료를 요하는 중증 이상의 우울증이 아니라면 음악이나 미술, 신체활동을 통해 우울 증상을 개선시킬 수 있다. 특히 신체활동, 운동이 우울증에 효과적이라는 사실이 근래의 연구들에서 속속 밝혀지고 있다.
 
보건복지부 지정 우울증임상연구센터는 최근 30년 동안 우울 증상을 보인 사람을 대상으로 운동요법에 대한 연구를 재분석한 결과, 걷기 등 단순한 운동도 우울증 치료에 도움을 주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또 영국에서는 2005년부터 주 3회 이상, 매일 30분 정도 약간 숨이 찰 정도로 걷는 것을 우울증 진료지침에 포함하고 있다. 그리고 독일 베를린 자유대학의 페르난도 디메오 박사는 영국의 '스포츠의학' 최신호에 발표한 연구보고서에서, 우울증이 심한 사람이 유산소 운동을 하면 짧은 시간 안에 기분이 호전돼 약효 발생까지 시간이 오래 걸리는 항우울제 투여보다 효과가 나은 것으로 밝혀졌다고 말했다.
 
운동으로 우울증을 개선한 여성들
 
실제로 신체활동이 우울증을 예방, 개선한 사례는 많고, 다양하다. 내가 직접 경험한 사례를 몇 가지 소개하겠다. 먼저 20세 여성 A씨의 이야기다.
 
“그 당시 나를 둘러싸고 있는 모든 상황이 분노스러웠어요. 난 잘못한 것이 없는데 친구들도 다 적으로 돌아서고, 마땅히 의지할 사람도 없고, 부모님과의 사이는 최악이고...그러면서도 이 상황을 바꿀 수 없는 내 자신이 제일 밉고, 원망스러웠습니다.”
 
A씨는 괴롭게 만든 또 다른 큰 이유는 “외모에 대한 열등감”이었다. 그녀는 “뚱뚱한 내 모습이 싫었고, 이 모습 때문에 겪는 수모들이 나를 수치스럽게 했다.”라고 털어놓았다. 자살을 생각한 것도 부지기수. 그러던 중 A씨는 세상을 향한 분노와 몸에 대한 열등감을 털어내기 위해 무술을 배우기 시작했다.
 
“주먹을 지르고, 발을 높이 차올리고, 고함을 지르면서 해방감이라는 것을 느꼈어요. 내 몸을 내가 통제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면서부터 ‘세상으로부터 날 지킬 수 있겠구나’라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자신감이 생기자 A씨는 스스로를 테스트해보고 싶은 욕심이 생겼고 대회에 나가서 메달을 따기도 했다. 또 불의를 봤을 때 적극적으로 저항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고 한다. 이후, 학교 여자 화장실에 숨어든 치한을 잡아다 경찰서에 넘기기도 하고, 밤길에 친구에게 시비를 거는 술 취한 아저씨의 팔을 꺾어서 그 사람이 도망가게 만들기도 했다. A씨는 “그때부터 비로소 타인과 당당히 눈을 마주볼 수 있는 용기가 생겼다”고 말했다.
  
▲ 29세 여성 B씨는 마음 맞는 동료들과 농구를 하며 우울감을 떨칠 수 있었다.     © 일다

 
다음은 29세 여성 B씨의 이야기다. B씨는 대학 졸업 후 일 때문에 혼자 서울로 올라와 고시원에서 지내게 되었다. 처음 접하는 환경들이 낯설었고, 어릴 때부터 소심했던 성격 탓에 새로운 사람들을 잘 사귀지도 못했다고 한다. 게다가 새로 시작한 일은 B씨가 감당하기엔 너무나 힘든 감정노동을 요구하는 것이었다.
 
“밤에 고시원에 돌아오면 캄캄한 관 속 같은 그 방이 싫어서 매일 불을 켜고 잠을 잤죠. 방을 정리하지도 않아서 좁은 방에 쓰레기가 가득차서 나중엔 벌레가 날아다녔어요.”
 
그때 B씨를 구원해준 것이 바로 “농구”였다. 회사체육대회에서 농구선수로 출전해 팀이 우승하게 된 것을 계기로, 마음 맞는 동료들끼리 주말마다 농구를 하는 모임을 만들었다.
 
“다행히 동료 중에 농구를 좋아하는 친구가 있어서 그 친구가 적극적으로 사람들을 모으고, 장소를 마련해주었어요. 농구 규칙이나 기술, 그런 것 하나도 모르고 시작했는데 마냥 즐거웠어요. ‘나와 같이 땀을 흘리는 사람들이 있구나’하는 생각에 외로움도 많이 없어지고, 몸도 건강해지고.”
 
운동하면 분비되는 ‘행복호르몬’
 
운동이 이처럼 우울증을 예방 및 개선하고, 일시적으로도 기분을 좋게 만들어주는 이유는 무엇일까? 최근의 연구들은 그 이유를 운동으로 분비가 활성화되는 호르몬에서 찾고 있다.
 
영국 노팅엄 트렌트대학의 엘렌 빌레트 박사는 '영국 스포츠 의학' 최신호에 발표한 연구보고서에서 유산소 운동이 에너지, 기분, 주의력 등과 연관이 있는 뇌 속의 자연분비 물질 페닐틸라민의 분비를 촉진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고 말했다. 페닐틸라민은 뇌 속의 화학물질로 흥분제 암페타민과 비슷한 작용을 하기 때문에 유산소 운동을 하는 사람들에게 쾌감을 유발하는 것으로 생각되는 물질이다.
 
이 외에도 운동을 하는 사람에게서는 기분을 좋아지게 하는 화학물질들이 많이 분비된다. 그 중에 하나가 베타 엔돌핀이다. 운동 중에 우리 몸 안에서 분비되는 베타 엔돌핀은 강력한 진통효과를 발휘하는 화학물질인데 이 구조가 마약과 비슷하다.  베타 엔돌핀과 같은 중추신경계의 화학적 전달물질로 인해 나타나는 대표적인 현상이 ‘러너즈 하이(runner's high)’이다.
  
▲ 운동을 하면 기분을 좋아지게 하는 화학물질들이 많이 분비된다. 그러나 여성들은 사회적 편견 때문에 신체활동을 꺼려하게 되기 쉽다. 사진은 영화 '슈팅라이크베컴' 중    

 
마라톤과 같은 장거리 달리기를 하다가 고통스러운 고비를 넘기면 일순간 고통이 사라지면서 기분이 매우 좋아진다. 이것을 ‘러너즈 하이(runner's high)’ 또는 ‘운동 하이(exercise high)’라고 한다. 학자들은 이러한 현상을 유발하는 물질로 내인성 오피오이드 펩티드(opioid peptide)에 주목하고 있는데 이것은 아편, 모르핀, 헤로인과 같은 마약과 유사한 구조와 기능이 있는 물질이다. 이 물질은 통증을 완화할 뿐 아니라 뇌의 기억력 향상과 감정 조절을 도와주는 역할을 한다. 베타 엔돌핀, 베타 리포트로핀, 다이노르핀이 내인성 오피오이드 펩티드에 포함된다. 이런 물질이 분비되면서 러너즈 하이를 느끼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베타 엔돌핀 분비가 증가하지 않아도 러너즈 하이는 나타날 수 있다. 일부 연구자들은 중추신경계의 또 다른 화학적 전달물질인 모노아민(monoamine)이 러너즈 하이와 관련이 있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운동을 하면 대표적인 모노아민인 노르에피네프린(norepinephrine)과 세로토닌(serotonin)의 농도가 변화된다는 것이다. 이 화학물질은 우울증과 깊은 관련이 있는데 이 물질의 수치가 비정상적으로 높은 경우 사람의 감정은 우울해진다. 하지만 운동을 하면 뇌에서 이 물질의 분비가 줄어들도록 조절하므로 우울증을 완화하는 효과를 나타낸다.
 
운동을 하면 기분이 좋아진다는 것을 뒷받침하는 또 하나의 흥미로운 연구 결과는 좌뇌-우뇌 이론이다. 좌뇌는 언어적, 논리적, 분석적 사고를 담당하고, 우뇌는 감정적, 공간적 사고를 담당한다. 이 좌뇌와 우뇌의 상호작용이 잘되어야만 우리는 정상적인 생활을 영위할 수 있다. 그런데 사람이 스트레스를 받거나 피곤하면 좌뇌와 우뇌에 혼동이 발생한다. 예를 들면 우뇌에서 일어난 생각을 좌뇌로 가져와서 언어적인 표현을 하기가 힘들어지는 것이다. 흥분하거나 화를 내면 말을 더듬는 것처럼 말이다. 연구결과는 이렇게 좌뇌와 우뇌의 소통에 혼란이 생겼을 때 약 30분 정도 가볍게 조깅을 하면 이런 혼동이 해소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몸의 움직임이 마음을 움직인다.
 
나는 신체활동이 우울증을 개선하고, 예방하는 것이 단순히 활성화된 몸 안의 생화학적 작용 때문이라고만은 생각하지 않는다. 또 신체활동이 우울증을 완벽하게 치료할 수 있다고도 결코 생각하지 않는다. 신체활동 외에도 사람마다 우울한 기분을 떨쳐버리기 위한 자신만의 방법들이 있을 것이고, 그 방법들이 건강을 해칠 위험이 없는 긍정적인 내용의 것이라면 그걸로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첫 번째로 중요한 것은 정서적, 신체적으로 이상 징후를 보일 때 본인이 뭔가 잘못되고 있다는 사실을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 후에 병원 등의 전문기관에 찾아가 본인의 우울증 여부를 진단받은 후 정도에 따라 적합한 치료를 받아야 한다. 모든 질병은 조기에 발견하고, 치료해야만 빨리 건강해질 수 있고, 합병증을 방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두 번째는 치료에 도움이 될 수 있는 다른 방법들을 동원하는 것이다. 다른 사람과 대화를 하는 시간을 늘리거나 음악을 듣거나 그림을 그리는 등의 방법들로 도움을 받을 수 있다면 시도해보는 것이 좋다.
 
만일 이 모든 활동을 할 수 있는 에너지가 필요하다면 운동이 어느 정도의 도움은 분명히 줄 수 있을 것이다. 적어도 치료를 받아야겠다는 의지가 생길 때까지 도와주는 역할은 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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