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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카운셀러 재일조선인, 선진유를 만나다
“그때는 내가 ‘재일조선인’이라는 사실을 생각하는 것 자체를 포기했었다. 그런 생각은 내게 아무런 이익 될 것이 없다고 여겼다. 내 정체성에 대한 인식 자체를 지워버리게 된 것이다.” (선진유/ 32세 여성)
재일조선인, 정서적 친근감을 넘어 ‘이해’를
▲ 재일조선인 코-카운셀러 선진유(32세)씨. © 일다
남아프리카공화국 월드컵에서 북한 대표선수로 뛴 정대세 선수의 활약으로 인해, 국내에서 ‘재일조선인’에 대한 관심이 조금 커졌다. 그러나 한국인들이 재일동포에 대해 같은 민족으로서 정서적 친근감을 느낀다는 것 외에 재일조선인, 그들이 누구인지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지 질문을 던져볼 필요가 있다.
재일조선인이 누구인지 이해하려면, 우리가 배우지 못한 많은 ‘이야기’를 들어보아야 한다. 남과 북이 갈라지기 전의 상황, 해방이후 가해국인 일본에 체류하게 된 조선인들의 삶 이야기. 그리고 일본에서 나고 자란 그들의 자녀 2세, 3세들의 또 다른 삶 이야기.
그런 다음에서야 재일조선인들에게 ‘국적’이란 어떤 의미인지 생각해볼 수 있다. 나아가 우리의 ‘역사’에 대한, 그리고 ‘국가’에 대한 인식의 변화를 꾀할 여지도 생긴다.
일본 도쿄에서 만난 재일조선인 선진유(32세)씨는 한국사회가 재일동포의 현실을 이해할 수 있도록, 기꺼이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녀는 현재 코-카운셀링(Co-Counseling)을 배우며 상담가로서 성장하고 있고, 한국에도 소개된 일본 장애여성운동가 아사카 유호의 활동보조인으로 일하고 있다.
내 어린시절을 지배한 것은 ‘공포감’이었다
선진유씨가 만나자 마자 한 말은 “최근에 와서야 비로소 내 이름(본명)을 사용할 수 있게 됐다”는 자기 소개였다. 일본 사회에 적응하기 위해 많은 재일조선인들이 일본식 이름을 사용하며, 자신의 정체성을 감춘 채 일본인인양 살아간다. 자신의 정체성을 부정하면서 살아야 하는 삶 자체가 일본사회에서 재일조선인의 위치를 드러내주고 있다.
제주도 출신의 재일조선인 1세인 아버지와 3세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선진유씨는 ‘거북선어린이모임’이라는 일종의 대안어린이집에 다니면서, 처음 “내가 일본인이 아니라 한국인”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고 한다.
학교에 들어가 역사를 배우면서, “일본문화 속에서 살아온 조선인”으로서 혼란은 커져 갔다. “역사는 보는 입장에 따라 다르게 해석”되는 것, 조선 침략자인 도요토미 히데요시를 영웅이라고 칭송하고, 정성껏 신사참배하는 주위 사람들의 모습을 보며 혼란스러웠다. 일본 미디어가 북한에 대해 보도할 때면 마음이 복잡해졌다.
▲ '일본 안의 조선인'으로 살아온 진유씨는 "나의 어린시절을 지배한 감정은 공포감"이라고 말한다. ©일다
진유씨는 “나의 어린시절을 지배한 감정은 공포감”이라고 말했다. “관동대지진 이야기를 듣고 너무 큰 충격을 받았고, 그 공포는 망상을 일으켰다. 나도 언젠가 일본인에게 죽임을 당할 지 모르겠다는 두려움이 깊이 들어왔다. 그러나 공포에 대해 이야기를 나눌 친구가 한 명도 없었다. 친구가 칼로 나를 찌르는 꿈을 종종 꾸곤 했다.”
1923년 9월 1일 일본 관동지역에 대지진이 발생해 많은 이들이 사망했다. 불안과 혼란 속에 국민들이 폭동을 일으킬 것을 우려한 일본 정부는 조선인을 희생양으로 삼았는데, 이른바 ‘관동대지진 조선인 학살’ 사건이다. 조선인이 우물에 독을 쳤다는 식의 루머가 퍼져나갔고, 대대적인 ‘조선인 색출작업’이 벌어졌으며, 수많은 조선인들이 살해당했다. 재일조선인들은 희생자 수를 6천여 명으로 추정하지만, 당시 일본정부의 공식발표는 233명에 불과해 진상은 아직도 규명되지 않았다.
비교적 최근인 2000년4월 9일, 도쿄도지사 이시하라의 ‘삼국인’ 발언을 들었을 때도, 선진유씨는 관동대학살을 떠올리며 “문을 열고 나설 수 없을 만큼 충격을 받았다.” (이시하라 도지사는 ‘삼국인과 외국인이 흉악범죄를 저지르고 있어 큰 재해가 예상된다며, 치안을 위해 자위대가 진압해야 한다’는 요지의 발언을 했다. ‘삼국인’은 일본에 남아있는 조선인과 중국인, 대만인 등 식민지 출신자들을 일컫는 차별적 용어다.)
진유씨가 고등학교 졸업 후 3년간 틀어박힌 채 조울증을 앓았고, 대학 다니던 시절에도 과민성대장증후군으로 자주 기절하곤 했다는 사실이 놀라운 일은 아니다. 그도 그럴 것이 조선인으로 태어나 일본사회에서 적응해 살아간다는 것은, 한 사람이 정서적으로 건강하게 살아가는데 필요한 ‘안전’이나 ‘신뢰’, ‘소통’ 같은 요소를 기대하기 어려웠다.
‘국적’이란 권력이 선을 그은 시스템일 뿐
일본에서 태어나 일본어를 모어(母語)로 사용하면서 일본 문화 속에서 자란 재일조선인. 선진유씨는 “국민이라는 소속감이 없어 늘 불안했다”고 털어놓았다.
재일조선인들은 일본국적으로 귀화하기도 하고, 남한 또는 북한 국적을 택하기도 하고, 어느 쪽도 선택하지 않고 분단 이전의 한반도인 ‘조선적’(朝鮮籍, 법적으로는 무국적자)을 유지하며 살아가는 이들도 있다. 남북 갈등과 동아시아의 긴장된 정세를 떠올려본다면, ‘국적’이란 재일조선인에게 얼마나 복잡한 문제들을 끌어오는가.
선진유씨는 “나에겐 국가에 대한 신뢰가 없다. ‘국적’은 권력이 선을 그은 시스템일 뿐이다”라고 강조했다. ‘조선적’(朝鮮籍)을 유지하며 살아가는 재일조선인들이 그러하듯, 그녀도 역시 “재일동포에겐 남한과 북한이 아닌 한반도가 조국”이라고 말했다.
실제 그녀의 국적은 한국이다. 진유씨는 “외갓집의 생명이 이어진 곳, 나를 연결해주는 생명에 대한 존경심이 있어서 한국 국적을 선택한 것”이며, “일본인이 되고 싶단 생각은 안 한다”고 덧붙였다.
‘말할 기회를 만들고, 듣고, 연대하자’
▲ 장애여성운동가 아사카 유호와의 만남을 통해, 진유씨는 일본사회에서 ‘말할 기회’를 갖지 못해 힘들어 하는 동포들의 말을 경청하는 것을 “평생의 일(life work)”로 삼기로 했다. ©일다
한때 대기업 건설회사에 취직해 일하기도 했던 선진유씨는 지금 전혀 다른 삶의 방식을 찾아 상담가이자 장애인 활동보조인으로서 살아가고 있다.
특히 코-카운셀링(Co-Counseling, 나이와 성별, 지위에 관련 없이 함께 모인 사람들이 시간을 공평하게 나누어 이야기하는 방식으로 진행)을 함께한 장애여성운동가 아사카 유호와의 만남은 그녀의 인생에 중요한 전환이 되었다.
“그녀가 ‘당신은 재일조선인이지? 진짜 이름이 뭐냐’고 물었을 때 나는 몹시 당황했다. ‘내 이름은 선진유라고 한다’고 말하는데 눈물이 나왔다. 그땐 내가 재일동포라는 사실을 생각하는 것 자체를 포기한 상태였다. 유호는 진짜 이름을 사용할 수 없는 건 일본사회의 탓이지 당신 탓이 아니라고 이야기해줬고, 나는 많이 울었다. 그녀 역시 (장애인으로서) 차별과 맞싸우는 사람이므로, 나를 격려해준 것 같다.”
아사카 유호씨와 선진유씨는 장애인과 비장애인으로 나뉜 구조 속에서, 또 일본인과 조선인으로 나뉜 구조 속에서 서로 억압 받고 억압하는 위치에서 함께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리고 상담을 배우며 진유씨는 일본사회에서 ‘말할 기회’를 갖지 못해 힘들어 하는 동포들의 말을 경청하는 것을 “평생의 일(life work)”로 삼기로 했다.
“재일조선인의 정체성은 긴 ‘설명이 필요하다.’ 그러나 일본사회도, 한국사회도 그 이야기를 들어주지 않는다. 우리에겐 자신을 부정하는 마음을 극복할 수 있는 기회가 필요하다. 같은 생각과 의문을 가지고 있는 사람과 만나는 경험이 꼭 필요하다. 조선인들이 서로 치유하고 연대해나갈 수 있도록 돕는 것이 나의 ‘평생의 일’이라고 생각한다.”
선진유씨는 “나쁜 것, 좋은 것을 떠나서 눈앞의 사람과 소통하고 손 잡는 것”이 코-카운셀링의 원칙이라고 소개하며, “피억압자의 상처를 들을 수 있는 상담자가 되고 싶다”고 밝혔다.
“일본 사회도 많이 변화했고 제도도 바뀌었지만, 사람들 사이에 차별의식과 피해의식은 고스란히 남아있다. 죽음을 당한 이도 상처 받았지만, 죽여야 했던 이도 죄악감을 가졌을 것이고 상처 받았을 것이다. 일본사회에선 이 부분이 전혀 평가가 되지 않았다. 갈등을 해소하는 최고의 해결책은 ‘듣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일다 | 조이여울 기자| 통역: 림혜영)
<이 기사는 한국언론진흥재단의 언론진흥기금지원을 받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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