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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온전히 나에 집중하는 삶                                                                                          
   장애여성 몸 이야기⑱ 비혼 선택하기
                                                                                                                <여성주의 저널 일다> 푸훗 
 
 
그림을 시작하다 
 
▲ 주사랑님의 작품 아사셀양.   

 
해사한 외모, 거침없는 언변의 주사랑님이 사무실로 들어오셨다. 4년 동안 내가 속한 장애여성단체 운영위원회 회의가 있을 때마다, 프로그램이나 행사가 있을 때마다 만나왔던 주사랑님이지만 인터뷰를 하려고 마음먹으니 그녀에 대해 아는 것이 별로 없음을 깨달았다. 50대, 화가, 약사, 비혼, 기독교인... 이것이 내가 아는 주사랑님에 대한 정보였다.
 
장애의 원인에 대해 묻는 것으로 인터뷰를 시작했다. 돌 즈음 사고로 척수장애를 갖게 되었다는 답변을 듣고 나서 솔직하게 고백했다. “짧지 않은 시간 동안 알고 지냈는데, 제가 주사랑님에 대해 아는 것이 별로 없네요. 전 으레 소아마비시려니 여겼거든요.”
 
그리고 다음 질문으로 이어갔다. “민감한 질문일 수도 있는데 비혼을 선택한 계기가 있으세요?”
 
“사실 비혼으로 살겠다고 마음먹은 지는 얼마 되지 않았어요. 2, 3년쯤 된 것 같아요. 그 전까진 결혼에 대한 여지가 늘 있었거든요. 그런데 그림을 시작하고 나서부터는 완전히 비혼을 수용했죠.”
 
그림을 통해 비혼을 선택했다는 주사랑님. 생업을 접고 그림에 전념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2004년까지 약국을 경영하다가 그 뒤부턴 직장에 다녔어요. 직장에 다니게 되면서 그림을 시작했는데 2008년부턴 직장도 그만두고 그림에 전념하기 시작했어요. 그 전까진 견딜 수 없던 외로움이 그림을 그리면서부터 충족이 되었거든요.”
 
비혼을 선택하기 전까지 계속된 끊임없는 자아 찾기가 정말 힘들었다고 털어놓는 주사랑님. 시작부터 분위기가 좀 무거워진 것 같아 의료 관련해 평소 묻고 싶었던 질문으로 넘어갔다. 비혼의 경우 부인과질환에 걸릴 가능성이 훨씬 많으냐는 것이었는데, 의외의 대답이 돌아왔다.
 
“비혼일수록 유방암 발병이 높고 기혼일수록 자궁암 발병이 높다는 얘기가 있긴 해요. 그런데 난 아직 산부인과에 가본 적이 없어서...”
 
깜짝 놀랐다. 오십 평생 산부인과에 한번도 가지 않았다는 사실은 1년에 서너 차례는 산부인과에 다니며 신경을 쓰고 있는 30대인 나와 대비되어서였다.
 
6학년 때 다리 수술을 한 이후로는 의사들을 불신하게 되었다는 주사랑님. 당시 굉장히 유명하고 실력 있다는 의사한테 진료 받았지만 그의 전문분야는 소아마비였다. 척수손상으로 인한 마비인 주사랑님의 상황에는 맞지 않는 의사였던 것. 예민하지 않게 처신한 의사로 인해(그러게 본인 전문분야 아니면 넘기던가! 뭔 고집이람!) 상태는 악화되었고 그 뒤로도 다른 질환으로 병원에 가면 늘 상태가 악화되었다. 지금도 부인과질환에 대한 불안이 있긴 하지만 평생 의사들한테 당한 것에서 오는 불안보단 약하다는 것이었다.
 
자신에 대한 책임과 의무가 중요
 
다시 비혼으로서의 삶에 대해 질문했다. 흔히들 비혼이면 책임과 의무가 없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비혼 여성에게도 분명 책임과 의무가 있다.
 
“나에 대한 책임과 의무가 있는 거죠. 현재는 자립생활을 하고 있지만 얼마 전까진 가족과 함께 살았잖아요. 그런데 생각해보면 그땐 정말 나를 위해서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어요. 가족을 부양하고 그들을 위해서만 살았지요. 정말 이타적인 삶이었어요. 지금보다 장애는 경증이었어도 몸과 마음이 힘들고 고통스러웠어요.”
 
이 말을 듣자 작년 초까진 목발을 짚고 다녔던 그녀의 모습이 생각났다. 휠체어도 가끔 사용하긴 했지만 대부분 목발을 사용하던 그녀는 요즘 휠체어만 이용하고 있다.
 
“나를 위한 책임과 의무를 소홀히 하면서까지 가족에 헌신하고 얻은 것은 망가진 자아밖에 없었어요. 나를 찾는 고통스러운 과정을 지나면서 상황을 올바로 직시하려고 노력했지요. 나를 찾는 지난한 과정에 미술이 있었고 미술에 안착하면서 비로써 비혼을 온전히 선택했어요.”
 
비혼이 대인관계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묻자 그녀는 떨어져 앉아있던 활동보조인을 가리키며 말했다.
 
“내 활동보조를 하고 있는 저 분의 남편이 경찰이거든요. 근데 나이가 있으니 간부급이지. 그런 관료조직에선 서열화 현상이 심하죠. 내가 속한 어떤 사회에서도 남편의 직업과 지위에 따라 아내들의 발언권이 달라지더군요. 그런데 난 남편이 없으니 서열화에서조차 제외되는 열외인 셈이에요”
 
작년 드라마 <내조의 여왕>에서 보았던 상황이 실제상황이라고 생각하니 기분이 이상했다. 남편의 지위에 따른 서열화에 비혼 여성은 낄 자리가 없다는 사실을 새삼 확인하고 나니 그 드라마를 보며 불편하게 꿈틀거리던 느낌이 되살아나는 듯했다.
 
자신에게 집중하는 삶 
 
▲ 비혼을 선택하고 나서 자신에게 집중하게 되니 심각했던 천식, 변비, 부종질환이 사라져 질환으로부터 자유로워졌다고 말하는 주사랑님.  ©정선아 
 
 
비혼을 선택하고 달라진 점이 있는지 질문했다.
 
“나에 대해 집중하게 되니 질환이 사라졌어요. 천식, 변비, 부종이 정말 심했는데 천식은 사라지고 변비와 부종은 감소되었죠.” “아, 정말 천식흡입기인가 그런 거 가지고 다니셨잖아요. 굉장한데요~ 변비랑 부종은 그런데 어떻게 된 거에요?” “내가 관리를 하니까, 건강에 대해 신경 쓰니까 감소되더라구요. 활동보조서비스제도로 자립생활을 시작하고 온전하게 비혼을 받아들이니 나에 대해 더 많이 생각하게 되었고, 그 뒤 건강이 좋아졌어요.”
 
여기까지 듣자 지금까지 둥둥 떠다니던 인터뷰가 한방에 정리되었다. 주사랑님은 헤매던 내게 현답을 주었다.
 
온전히 혼자가 아니면 스스로에게 집중하기 어렵다. 나부터도 동생에게 도시락을 싸주기 시작한 후로 내 도시락은 뒷전이 되어버렸다. 이렇게 사소한 것부터 차이가 나는데, 그간 가족과 함께 살아오면서 늘 여지를 뒀던 결혼까지 생각했을 땐 얼마나 많은 차이가 날지 상상도 못하겠다.
 
자아를 찾는 과정에서 비혼을 선택하고 그 선택이 질환을 감소시켰다는 대답은 나 스스로에게도 많은 생각을 하게 했다. 하나의 선택으로 연쇄적인 상승반응이 일어나는 것은 분명 멋진 일이다. 주사랑님의 사는 이야기를 들으며 실제 장애에도 불구하고 돌봄노동으로 인해 많은 에너지를 소비하며 그것으로 만성질환에 시달리는 장애여성들이 떠올랐다. 물론 비혼만이 정답은 아니다. 하지만 주사랑님의 선택과 이후 달라진 그녀의 삶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
(푸훗) 일다 www.ildar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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