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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다 논평] 지난 9월15일 새벽 전라남도 나주에서, 몽골에서 온 결혼이주여성인 K씨(26세)가 한국인 Y씨(33세)씨의 칼에 찔려 사망한 사건이 발생하였다. 베트남에서 온 결혼이주여성 탓티황옥씨가 입국 8일 만에 남편에게 살해당한 사건이 있은 지 겨우 두 달여 만에 또 다시 들려온 끔찍한 소식에 아연실색할 따름이다.
 
가해자 Y씨는 K씨의 친구인 또 다른 몽골 결혼이주여성 E씨의 남편으로, 2009년 10월 E씨와 결혼한 이후 계속적으로 아내에게 폭력을 일삼았다고 한다. E씨의 진술에 따르면, Y씨는 직업이 없었고 술을 자주 마셨으며 술을 마실 때마다 E씨에게 폭력을 행사하며 괴롭혔다고 한다.
 
견디다 못한 E씨는 이를 피해 친구인 K씨의 집으로 피신해 있던 참이었다. 9월15일 만취한 상태에서 K씨의 집으로 찾아간 Y씨는 아내를 내놓으라고 협박을 하였고, K씨는 ‘맑은 정신으로 다시 와서 얘기 하자’고 만류했다. 그러자 Y씨는 미리 준비한 흉기로 K씨를 수차례 찔러 사망케 하였다.
 
아내폭력 방관하는 한국 사회 속에서 일어난 비극 
 

▲한국이주여성인권센터에서는 몽골여성 K씨의 죽음을 애도하기 위해 센터 내에 분향소를 마련했다.  이주여성인권센터는 정부의 적극적인 대책마련을 촉구하고 나섰다. ©한국이주여성인권센터
 
이번 사건은 일차적으로, 가정폭력에 대한 대응 시스템이 척박한 한국사회의 현실이 고스란히 드러난 비극이다. 결혼 후 1년 가까이 폭력을 당하는 동안, 아내 E씨가 기댈 곳은 같은 고향 친구 K씨뿐이었다.
 
이번 사건이 발생하기 전, 집안에서 남편과의 다툼으로 쫓겨난 E씨는 살해당한 K씨의 도움으로 한 공장에서 일을 하고 있었다. 남편이 이곳을 알고 찾아왔고, E씨는 두려움에 K씨 부부에게 연락하였다. 이에 Y씨가 경찰을 불러 경찰이 왔으나 ‘부부간의 문제이니 잘 해결하라’고 하며 돌아갔다고 한다.
 
2007년 여성가족부의 가정폭력 실태조사에 따르면, 한국의 아내폭력발생률은 33.1%로 집계되었다. 또한 2009년 한국여성의전화는 2008년 한해 언론에 보도된 살인사건을 분석한 결과, 남편이나 남자친구에 의해 살해된 여성의 수가 70명에 달한다고 밝혔다. 살인 시도가 미수에 그쳐 살아남은 7명과, 자녀나 부모 등 지인이 살해된 경우인 16명까지 합해 총 93명의 희생자가 발생했다. 이는 ‘보도된’ 사건만 집계한 것으로 실제 희생된 여성들의 숫자는 더 많을 것으로 추측된다.
 
그러나 피해자 보호와 가해 방지를 위한 제도적 노력은 거의 뒷받침되지 못하고 있는 현실이다. 가정폭력은 집안일이라는 통념이 우세해 경찰조차도 개입의지를 보이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전문가들은 아내폭력에 대한 경찰의 초기개입이 중요하다고 강조하지만, 이를 가능하게 할 정책은 없는 상태다.
 
이런 현실 속에서 이주여성은 취약한 사회적 지위로 인해 폭력에 더 쉽게 노출되고, 더 저항할 수 없게 되기 쉽다. 2007년 여성가족부의 가정폭력 실태조사에 따르면, 실제로 다문화가정의 아내폭력발생률은 38.8%로 전체 아내폭력발생률 33.1%보다 높은 수치를 보였다.
 
불안정한 신분, 국제결혼 중개업체의 폐해도 여전
 
결혼이주여성은 국적 취득을 위한 2년간의 유예기간 동안 모든 신분이 남편에게 달려 있다. 그 전에 이혼하게 되면 여성의 체류자격은 박탈된다. 현행 국적법은 가정폭력 피해로 이혼한 여성들이 체류연장 및 귀화신청이 가능하도록 규정하고 있으나, 현실적으로 피해를 입증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또한 결혼이주여성들이 정확한 정보를 얻지 못한 상태에서 한국에 오도록 만드는 국제결혼중개업체의 문제도 여전히 크다.
 
지난 7월 9일 베트남에서 온 결혼이주여성 탓티황옥씨는 입국한지 8일 만에 남편에게 살해당했다. 남편은 8년 동안 정신분열증으로 약을 먹고 있는 환자로, 정신병원에 57회나 입원한 전력이 있었다. 그러나 탓티황옥씨는 이런 사실을 전혀 모른 채 한국에 왔다. 남편 장씨는 정신착란 상황에서 아내를 심하게 구타한 후 “아내를 죽여라”는 환청을 듣고 흉기로 아내를 살해하였다고 말했다.
 
이번 살해사건의 가해자 Y씨는 K씨의 집으로 찾아와 E씨와 이혼하는 것에 대한 위자료로 2,000만원을 요구하였는데 이는 중개업 계약서에 기재된 내용이라고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Y씨와 E씨의 결혼이 ‘인신매매성’으로 이루어졌음을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돈을 주고 사온 상품’이라는 인식이 폭력으로 연결되기 쉽다는 점은 주지의 사실이다. 또한 E씨도 탓티황옥씨와 마찬가지로 결혼과정에서 남편의 음주벽이나 폭력에 대해 알지 못했을 것이다. 이러한 ‘인신매매성’ 국제결혼중개를 뿌리 뽑기 위한 노력이 진행되고 있지만, 이미 형성된 시장과 이윤을 포기하지 못하는 업체들의 불법적 영업은 계속되고 있다.
 
탓티황옥씨의 끔찍한 죽음이후 경찰청 외사수사과는 7월19일부터 8월18일까지 <국제결혼 중개업체의 불법행위>에 대해 일제단속을 실시했다. 그 결과, 무등록영업과 허위·과장광고 등이 적발되어 총 761명을 검거해 6명을 구속했고 755명을 불구속 조치했다. 관계당국의 지속적이고 강력한 단속 노력이 절실함을 보여주는 결과다.
 
다문화정책 많은 예산 투입됐지만, 정작 이주여성의 권리는?
 
‘다문화사회’를 위해 정부와 민간에서 많은 자원이 투입되었다. 그러나 결혼이주여성들에게는 ‘며느리’나 ‘엄마’의 역할만을 요구하는데 치중하면서, 시민으로의 권리를 갖추어 주는 것에는 소홀해왔던 것이 현실이다. 그 결과로 여전히 이주여성들은 가족 안에 묶여 취약한 위치에 머물고 있다.
 
이번 사건의 가해자 Y씨의 가족들은 아내인 E씨가 외출을 하지 못하게 하는 등 한국에서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없게 했다고 한다. 아마 친구인 K씨마저 없었다면, E씨는 그야말로 고립된 노예생활을 해야 했을 것이다.
 
현재 가해자는 수배 중에 있으며, 가해자의 아내인 몽골여성 E씨는 쉼터에서 보호받고 있지만 불안함과 두려움으로 고통 받고 있다고 한다. E씨는 친구가 살해당한 슬픔과 함께, 어쩌면 죄책감까지 느끼고 있을지도 모른다.
 
최근 잇따르는 비극을, 다시 한 번 현실을 돌아보는 계기로 삼아야 할 것이다. 그것이, 이들의 고통스런 죽음이 헛되이 되지 않도록 우리사회가 보여야할 최소한의 노력일 것이다. 결혼이주여성들을 위한 다문화 정책은, 결혼이주여성들에게 시민으로 가져야할 기본적인 권리를 갖추어주는 관점에서 구체적이고 통합적인 접근이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자신을 보호하고 지킬 수 있는 현실적 토대가 갖추어질 때 결혼이주여성들은 당당한 목소리를 내는 우리 사회의 구성원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을 것이다.  (박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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