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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병드는 노동’이 만드는 밥
[기획] 식당여성노동자의 인권적 노동환경 만들기 ②
<여성주의 저널 일다> 나우
<일다는 한국여성민우회와 함께 식당여성노동자의 노동현실을 돌아보는 기획기사를 4회에 걸쳐 연재합니다. 현재 민우회에서는 식당여성노동자의 인권적 노동환경만들기 프로젝트 ‘함께 짓는 맛있는 노동’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필자 나우님은 민우회 활동가로 이 프로젝트의 진행을 맡고 있습니다 *이 기사는 '한국언론진흥재단'의 언론진흥기금지원을 받아 작성되었습니다. -편집자 주>
‘가진 재주도 없고, 그냥 내 몸뚱이 하나가 전부’라고 말하는 식당여성노동자에게, 건강은 신체적 안녕을 넘어 ‘생존’과 직결되는 문제다. 그렇기에 건강을 유지하며 일할 수 있는 직무환경과 노동조건의 보장은 더욱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하지만 식당여성노동자는 10시간이 넘는 장시간노동, 불규칙적이고 짧은 휴일과 휴식, 칼이나 가열기구 사용으로 인한 사고의 위험 등 건강을 해치기 쉬운 노동환경에 노출되어 있다. 더구나 소규모 영세사업장에 속한 경우가 많아 사회적 보장에서 배제되기 쉽다는 점 또한 큰 문제다.
낮은 4대보험 가입률, 사회적 보장에서 배제 돼
▲ 하지만, 식당노동자의 4대보험 가입비율은 매우 낮다. 특히 사업장이 영세하고 소규모일수록 극단적으로 낮아지는 경향을 보인다.
임금을 받고 일하는 노동자라면, 누구든 4대보험(산재보험, 건강보험, 국민연금, 고용보험)을 통해 사회적 보장을 받을 권리를 갖는다. 하지만, 식당노동자의 4대보험 가입비율은 매우 낮다. 특히 사업장이 영세하고 소규모일수록 극단적으로 낮아지는 경향을 보인다.
취약한 계층일수록 사회적 보장이 필요함에도, 식당노동자들은 오히려 사회적 안전장치가 적용되지 않는 늪 속에 빠져 있는 모순적 현실이다.
‘산업재해보상보험’은 일하다 다치는 경우 치료비를 지원하고, 상해로 인해 일하게 되지 못하게 되는 경우를 대비해 급여보상 등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때문에 몸이 곧 생존과 직결되는 식당여성노동자에게는 더욱 필수적인 장치다.
그러나 식당여성노동자가 업무상 재해와 질병으로 인해 산재보상을 신청한 경우도 적고, 산재로 인정된 예도 드물다. 산재보험에 가입하지 않았어도 산재보험적용대상 사업장에서 근로하다 업무상재해를 입은 경우에는 산재보험급여를 지급받을 수 있다. 그러나 상담을 통해 만나본 식당노동자들은 이러한 사실을 몰라 아예 신청할 생각을 못한 경우도 많았다.
또한 사업주가 산재보험으로 처리하길 원하지 않는 경우나, ‘가족처럼’ 지내는 사장과 껄끄럽기 싫어 그저 개인이 알아서 치료하고 넘기는 경우도 많다. 그리고 산재를 신청하더라도 업무상 재해 및 질병의 인과관계를 밝히기도 쉽지 않다.
게다가 식당에 많이 진입해 있는 이주여성노동자의 경우는 명백한 업무상 재해임에도 불구하고 불법이라는 멍에로 인해 산재는커녕 의료보험도 되지 않은 상태에서 적지 않은 치료비용을 스스로 부담하게 되는 경우도 많다.
숨 돌릴 짬도 없는 휴식시간
하루 8시간이라는 법정근로시간이 규정될 수 있었던 데에는, 살인적인 장시간 노동에 대한 문제의식이 있었다. 인간은 ‘쉼’없이 달릴 수 없다. 12시간의 반복적이고 강도 높은 노동이라면 그 누구라도 건강이 상할 수밖에 없다.
사람들은 휴식과 휴일을 통해 삶을 설계하기도 하고, 그 안에서 다시 일할 수 있는 에너지를 얻기도 한다. 필요한 날에 사용할 수 있는 휴가, 최소한 일주일에 한번은 정기적으로 주어지는 휴일, 일하는 시간 사이에서의 ‘자유로운’ 휴식은 필수적인 것이다. 그 최소한의 쉴 시간을 보장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 주휴일 유급휴가, 휴식시간, 연차유급휴가 등이다.
하지만 당연히 권리로서 주어져야 할 식당노동자 ‘쉼’은 손님과 사업주의 편의에 좌우된다. 한 달에 2~3번 ‘식당이 한가한 날’에 비정기적으로 휴일을 맞고, 휴식과 식사는 ‘손님이 없는’ 때에 이루어지며 그조차 ‘손님이 오면’ 언제든 깨지는 불안정한 상황이다. 이렇듯 식당노동자의 노동조건은 식당노동자의 신체적, 정신적 과로를 가져올 수밖에 없도록 구성되어 있다.
그런데 식당노동자의 장시간 노동을 단지 소규모식당과 식당문화를 원인으로만 단정할 수도 없다. 노동을 공급하는 노동자의 입장에서 식당노동의 대가가 저임금으로 구성되지 않는다면, 장시간을 고집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저임금이 곧 장시간의 원인이 되어, 10시간, 12시간씩 일을 할 수 밖에 없는 현실을 만들어 낸다. 노동조건 하나하나가 서로 물고 물리는 원인이 되어 식당노동자의 건강을 흔들고 있는 것이다.
미끄럽고, 뜨겁고, 무겁고, 베이고…
▲ 장시간에 걸쳐 식당업무 전반을 수행하는 고단함 속에, 식당여성노동자들은 다양한 질병에 시달리고 있다.
식당여성노동자는 밥하기, 반찬하기, 식재료 다듬기, 설거지, 홀 및 주방 청소업무, 배달준비 업무 등 식당 전반의 업무를 수행한다. 음식을 만들거나 설거지, 서빙 등은 장시간 서서 일하게 되는 경우가 많아 하지정맥류, 다리 붓기 등으로 이어진다.
또한, 좌식문화로 인해 음식을 서빙할 때 하루에도 수십 번씩 무릎을 굽히게 되어 손목과 팔목, 무릎 등의 관절통과 허리통증에 시달리는 경우가 다반사다. 특히 우리나라는 반찬가짓수도 많고, 수시로 반찬을 다시 담아 내가야 한다. 게다가 고기를 구워주고 밥을 볶아주는 등 고객에게 서비스해야 하는 가짓수도 세분화되어 있어 식당여성노동자의 몸은 고단할 수밖에 없다.
“갈비집이었는데 얼마 못가 그만둬야 했다. 우선 반찬가짓수가 많아 나르는데 너무 힘이 들었고, 허리를 숙이고 고기를 구워야 하는데 오후 들어서니 허리가 펴지지 않았다. 그렇다고 쉬는 시간이 별도로 있는 것이 아니고 오전11시에서 오후10시까지 일하는 조건으로 갔기 때문에 잠깐 밥 먹고 화장실 가는 시간 외에는 생각조차 못했다.”(전직 식당노동자)
고양시에서 만난 이 여성은 “다시는 하고 싶지 않다”는 말로 힘들었던 식당일을 회고했다. 장시간 동안 반복적인 동작을 수행하면서 휴식시간조차 맘 편히 가질 수 없다보니, ‘도저히 감당할 수 없어’ 일을 그만둘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식당노동자는 작업특성상 불 옆에서 일하다 화상을 입기도 하고 뜨거운 열기로 인해 두통에 시달리기도 한다. 그리고 식재료를 다듬거나, 음식을 만들 때 칼을 사용하는 경우도 많은데 이때 상해를 입는 경우 또한 많다.
식당은 평균 산업재해율의 2배
▲ 2008년도 음식업에서의 사고부상자 및 질병자수와 주요 발생원인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 제공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에 따르면, 음식업의 경우 지난해 11월말 기준으로 서비스업에서 가장 높은 재해자수 점유율(22%, 6614명)을 보이고 있다. 기타 평균재해율에 비해서도 2배 이상 높은 수치라고 한다.
재해의 유형을 보면 작업장 바닥에 미끄러지거나 넘어지는 사고, 칼이나 분쇄기 등 조리 기구에 의한 부상, 재료낙하에 의한 부상, 뜨거운 냄비 등 증기와 기름 등에 의한 화상, 배달 중 도로교통사고 등 다양하다. 그리고 일하는 전 과정에 있어 중량물(부피에 비해 무거운 물건) 취급 중에 근골격계질환의 위험이 크다.
이러한 재해와 질병이 심각하게 많이 발생하고, 업무상 상해가 명확함에도 불구하고 식당노동자가 산업재해로 인정받아 안정적으로 치료받을 수 있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이는 사회적 보장장치에서의 배제와 인식 부족 등에 연유한다.
그 중 드물게, 산업재해로 인정받은 경우도 있어 기쁜 마음으로 살폈다. 그러나 산업재해 인정례에서 발견할 수 있는 것은 희망이 아니라 오히려 식당여성노동자의 건강을 위협하는 극단적인 노동의 현실이었다.
식당여성노동자의 업무상질병 인정례1.
근무시간은 오전 8시부터 오후 8시 30분까지이며 토요일도 평일과 같이 근무하고, 일요일도 격주로 출근함으로 인해, 피재자의 한 주간의 총 근무시간은 무려 73시간이나 됨. 피재자가 근무했던 식당 주방은 2평 정도의 좁은 주방이었고 냉방기구하나 없이 많은 가열 기구를 동시에 사용하고 있어, 한낮 주방내부온도가 35℃ 이상 올라갈 정도로 상당히 고온의 작업장이었음. 재해발병당일도 29℃가 넘는 무더위 속에서 많은 가열기구가 있는 좁은 주방에서 하루 종일 힘든 식당업무를 수행하다 뇌출혈의 전조증상인 두통 및 어지럼증을 보이며 ‘뇌지주막하출혈’이라는 상병진단을 받음. 발병 전 1주간은 단 하루도 쉬지 않고 고된 육체적 작업을 수행함으로 인해 육체적 피로가 극에 달하고 있었던 점으로 보아, 이는 "급격한 작업환경의 변화로 인해 근로자의 현저한 생리적인 변화가 초래되었다"라고 하여 업무상질병으로 인정받음.
식당여성노동자의 업무상질병 인정례 2.
근무시간은 오전8시-밤10시까지, 특별히 휴일이 정해져 있지 않았고 한 달에 한번 정도 한가한 날에나 쉴 수 있었으며, 주휴일 및 연월차 또한 별도로 없음. 주방 및 홀 업무 전반에 관한 업무를 수행하며, 근무한 식당은 15평 정도의 소규모 업소이기 때문에 특별한 휴식 공간이 마련되어 있지 않았고, 식사 중에도 손님이 들어오면 접객 준비를 하여야 하는 근로조건이었음. 특히 재해발생 2~3개월 전부터는 주방 아주머니가 일을 그만두어 그 아주머니의 일까지 모두 신청인이 담당할 수밖에 없었기에 더욱 과로가 누적되어 왔음. 업무 중 사고로 인하여 손등의 화상과 손가락을 크게 베여 꿰매는 사고가 발생해서 신청인의 자녀분이 휴가를 요청하였는데 사업주는 “그럴 바에는 그만두고 집에서 푹 쉬어라” 라는 말을 할 정도였음. 이러한 사업주를 의식하며 일할 수밖에 없었기에 업무가 힘들어도 내색 한번 하지 못하고 묵묵히 참고 일해 왔음. 그러다 가열기구가 있는 좁은 주방에서 하루 종일 식당 업무를 수행하다 쓰러져 ‘지주막하출혈’이라는 상병진단을 받아, 산재승인을 받음.
아프면 아프다고 말하고, 쉴 수 있어야 한다
상담을 통해 만난 한 식당여성노동자는 아파서 일하러 나가지 못했던 날에, ‘오후에는 나올 수 없겠냐’고 연락하는 사장의 전화를 받고 아픈 몸을 이끌고 나갈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종업원이 자신을 포함해 두 명인 곳에서, 자신의 공백이 다른 사람의 부담으로 가는 현실을 외면할 수 없었던 것이다.
소규모로 운영되는 식당일수록, 노동력의 공백을 대체할 수 없기 때문에 아프면 아프다고 이야기하는 것 자체가 개인의 죄책감을 불러일으켜 몸을 치유할 생각을 뒤로 미루게 되는 악순환을 만들어낸다.
그런데 대체인력의 부재로 인해 병가를 내는 것이 어렵기도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음식업 전반은 또 너무 쉽게 노동력이 대체되기 때문에 ‘사장의 신경을 거스르는’ 병가는 일자리를 잃을 수 있는 위험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건강을 유지하며 일할 수 있는 것은 노동자의 기본권이다. 아프면 아프다고 말하고, 건강을 위해 치료받을 시간이 당연하게 주어져야 한다. 그러나 이 너무나 당연한 명제가 실현되기 어려운 곳에서 바로 우리가 먹을 밥을 만드는 식당여성노동자가 병들어가고 있다.
*이 기사는 <한국언론진흥재단>의 언론진흥기금지원을 받아 작성되었습니다.
이어진 기사 보기> 12시간 노동, 최저임금... 식당노동자의 현실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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