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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딸과 느릿느릿 아시아여행>인도 ④아그라, 바라나시, 꼴까따 
 
*풍경보다는 사람을, 사진 찍기보다는 이야기하기를, 많이 돌아다니기보다는 한 곳에 오래 머물기를 선택한 어느 엄마와 세 딸의 아시아 여행기입니다. 11개월 간 이어진 여행, 그 길목 길목에서 만났던 평범하고도 특별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같이 나누고자 합니다.

인도 구석구석 뻗어있는 기차 풍경
 

▲인도의 옛 수도 꼴까따에서는 아직도 인력거를 볼 수 있다. 
 
뉴델리(New Delhi) 기차역이다. 인도의 옛 수도 꼴까따(Kolkata)까지 가려고 기차시간표를 들여다보다가 인도가 얼마나 큰 나라인지 불현듯 실감하였다. 기차 타고 이틀씩 또는 사흘씩 달려보는 건 우리나라에선 아무래도 할 수 없는 일이니 말이다. 인도는 남한의 서른 배가 넘는 거대한 땅덩어리를 가지고 있었고, 영국 식민지 시절 그 뼈대를 놓았다는 기찻길이 구석구석 잘도 뻗어있었다.
 
인도 기차는 밥 먹듯이 연착하는 것으로 유명하였다. 저녁 6시 출발이라던 기차가 밤 10시 쯤 어슬렁대며 나타났지만 누구도 타박하지 않고 그냥 그러려니 올라탔다. 뭔 일인가 싶어 조마조마하던 우리는 괜히 맥이 풀렸다. 기차에 올라타니 우리 자리에 웬 인도 아저씨들이 버젓이 앉아 땅콩을 까먹고 있다. 우리 자리라고 표를 보여주니 미안하단 말도 없이 엉덩이 끙 들어 바로 옆자리로 옮겨간다. 나중에 보니 그 자리도 남의 자리였다. 기차표만 있으면 빈자리 아무데나 적당히 앉아가도 무방한 분위기이다.
 
기차가 어느 역 앞에선가 잠시 멈추자 기차 안 통로가 순식간에 부산해진다. 사람들 타고 내리는 틈으로 도시락 파는 아저씨와 짜이 파는 아저씨들이 잰 걸음 놀리며 호객을 하는데, 어디선가 청소하는 아이가 나타났다. 아이는 맨발에 누더기 옷을 걸치고 다 모지라진 빗자루를 들고 있다. 바닥에 납작 몸 붙이고 앉은 아이는 통로와 의자 밑 쓰레기들을 삭삭 쓸어가며 틈틈이 사람들에게 손 벌려 구걸을 하였다. 동전 몇 개 던져주는 사람도 있고 발길질하며 뭐라 소리치는 사람도 있다. 이리저리 발에 채이면서도 아이에겐 별다른 표정이 없다.
 
기차 너머에는 거리의 아이들이 떼 지어 몰려다니고 있다. 때가 눌어붙은 얼굴에 눈빛이 흐린 아이들은 창문 안으로 불쑥불쑥 손 넣어 돈을 달라 하거나 창가에 놓인 물건들을 슬그머니 집어갔다. 깜짝 놀라 물건을 되잡으면 저희끼리 킬킬 웃다가 침을 뱉고는 사라졌다. 기찻길 옆으로 까마득하게 산을 이룬 쓰레기더미들이 그 아이들의 놀이터이자 잠자리인 듯했다. 인도의 빈곤은 내가 아는 그 어떤 빈곤보다 지독해 보였다. 아직 완고하게 남아있는 계급의 잔재 위에 윤회적 사고까지 얽히고설키어 가난도, 모멸도 당연한 일상이 되어버렸다.
 
타지마할, '위대한 사랑'의 껍데기를 들추면 
 
▲ 타지마할, 그 모든 성취 뒤편에 가리어진 것들로 인해 나는 마음이 불편하였다. 

 
아그라(Agra)에 잠시 내렸다. 타지마할(Taj Mahal)을 그냥 지나치기 어려워서였다.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타지마할은 무굴제국의 황제 샤자한(Shah Jahan)이 사랑하던 아내의 죽음을 기리기 위해 무려 22년 동안 지어 완공하였다는 무덤 궁전이다.
 
그런데 입장료 때문에 한참을 망설였다. 현지인 요금이 달랑 20루피(우리 돈으로 약 500원)인데 반해 외국인 입장료는 자그마치 750루피(약 19,000원)였기 때문이다. 우리가 얼마 전 떠나온 북인도 맥로드간즈의 하루 방값이 200루피라는 걸 감안하면 가히 천문학적인 요금이다.
 
외국인들을 겨냥한 정부의 장삿속이 이러하니, 릭샤 아저씨들의 바가지요금만을 탓할 것도 아니다. 분한 생각 없지 않지만 코앞의 타지마할을 놓치기 어려워 결국 표를 끊는데, 15세 이하는 무료입장이란다. 간당간당 만 14세에 멈춘 큰 아이가 얼마나 기특한지 끌어안고 춤이라도 추고 싶다.
 
궁전은 듣던 대로 아름다웠다. 대리석과 보석들 모두 우아하고 찬란하여 그냥 무덤으로 쓰고 말기엔 심히 아까울 정도이다. 그런데 삐딱한 나는 그 모든 성취 뒤편에 가리어진 것들로 인해 마음이 좀 불편하다. 스무 해 넘는 세월 동안 무거운 대리석 나르고 일일이 보석 박아 넣었을 수많은 기능공들과 허드레 일꾼들은 먼지처럼 사라지고, 오로지 명령하고 지시하고 감독하였을 왕 샤자한의 것으로만 남은 이 ‘위대한 사랑의 궁전’이 어째 영 떨떠름한 것이다. 목숨을 담보한 숱한 노동을 사랑의 이름으로 부려 쓸 수 있었던 건 그가 권력자였기 때문이지 그의 사랑이 남들 것보다 위대해서가 아니다. 사랑 노래를 폄하할 생각은 없지만 사랑의 껍데기 안에 무엇이 숨어있는지 한번쯤 들춰볼 일이다.
 
삶을 씻고 죽음을 거두는 곳, 강가(Ganga) 
 
 
▲ 종이 접시 위에 꽃잎과 조그만 초 얹은 디아(Dia)를 강가에 띄우면 바라는 것이 다 이루어진다고 했다. 
 
아그라에서 다시 기차를 기다려 타고 열두 시간을 가니 바라나시(Varanasi)이다. 좁고 눅눅한 바라나시 골목을 헤매어 숙소를 잡은 뒤 해지는 강을 보러 갔다. 영혼의 강 갠지즈(Ganges), 인도 힌디어로는 강가(Ganga)라고 했다. 흙탕치며 흐르는 강이 소문만큼 신령스럽지 않아 머뭇거리는데, 종소리 뎅뎅 울리며 강 한쪽에서 뿌자(pooja)가 시작되었다. 힌두교 기도의식 뿌자를 보려고 사람들이 우물우물 모여든다.
 
가까이 가보니 대여섯 명의 브라만 사제들이 강가를 향해 화려한 초와 향과 깃털을 흔들며 의식을 이끌고 있다. 여느 종교 의식들 보다 힘차고 격하여 남자들의 역동적인 군무를 보는 듯하다. 뿌자가 끝나갈 무렵 작은 아이들이 바구니에 담긴 디아(Dia)를 팔러 다녔다. 종이 접시 위에 조그만 초 얹은 디아를 강물에 띄우면 바라는 것이 다 이루어진다고 했다. 사람들이 하나둘 저의 소망에 불 밝혀 디아를 띄우기 시작한다. 순식간에 강이 환해졌다. 그런데 어둔 물길 따라 멀어져가는 디아를 보고 있자니, 내 사는 모양이 딱 저렇겠구나 싶다. 강은 길고 어둠 집요하여 불빛이 자꾸만 휘청거린다.
 
새벽같이 다시 강에 나왔다. 배를 타고 싶어서였다. 인도인 뱃사공 중 한국말 잘 하는 이가 있다기에 부러 찾아가 새벽 배를 부탁해 두었다. 체구가 작은 뱃사공이 인사를 건넨다. 이름이 철수라고 했다. 엊저녁 예약을 받았던 뱃사공의 동생은 제 이름이 만수라고 했었다. 오래 전 길게 여행 중이던 한국인 친구에게 말을 배웠다는데, 형제의 반듯한 한국말 솜씨가 고맙고 유쾌하였다.
 
쪽배가 물살을 타고 나아간다. 아직 어둠 걷히지도 않았는데, 한 무리의 사람들이 강에 발 담그고 빨래를 하고 있다. 이불이며 옷들을 바닥에 텅텅 내리꽂으며 빠는 이들은 궂은 빨래 일 도맡아 하는 도비왈라(Dobhiwallah)들이다. 카스트 내에서는 불가촉천민에 해당하는 낮은 계급이라 했다. 법으로 금지되었다고는 하나, 뿌리 깊은 신분제 카스트는 대물림되는 직업군을 통해 아직 그 위세를 떨치는 중이다.
 
마지막 구원의 순간에도 둘러쳐진 빈부의 경계 
 
▲ 바라나시 강가에서도 보기드문 여자 뱃사공

 
조금 더 내려오니 목욕하는 이들이 보인다. 몸을 씻고, 기도를 올리고, 가져온 통에 강물을 담는 사람들의 몸짓에서 정직한 기쁨이 느껴진다. 힌두교도들에게는 강가에 몸 한번 담그는 것이 평생의 소원이며 실제로 먼 길 걸어 순례 오는 이들이 끊이질 않는다 하니, 물의 더러움 운운하는 것이 모두 무의미하다. 사람들이 목욕하는 바로 윗물에서 빨래를 하고 소들을 씻긴다 한들 그 물은 여전히 성스럽고 초월적인 것이니 말이다.
 
강 아래쪽 노천 화장터에서는 종일 연기가 피어오른다. 화장터 가까이에선 절대 사진 찍지 말라고 사람들이 여러 번 주의를 주었다. 죽은 자의 영혼을 앗아 간다고 믿어 유가족들이 사진 찍히는 걸 질겁한다고 했다. 화장터 옆 사원을 빠져나온 몇 구의 시신이 강물에 씻긴 뒤 나뭇짐 위에 얹어지고 있다. 화장하여 강가(Ganga)에 뿌리면 오랜 윤회의 고리를 끊고 해탈에 이른다니, 지켜보는 이들에겐 퍽 부러운 죽음들이겠다.
 
그런데 얼핏 보기에 나뭇짐의 모양새가 서로 꽤나 다르다. 시신의 크기가 달라서인가 물었더니 유가족이 치른 나무 값이 다르기 때문이란다. 있는 자들이 잘 타는 나무를 양껏 사서 남김없이 몸을 태우는 죽음의 호사를 누리는 동안, 가난한 자들은 질 나쁜 나무에 겨우 얹어져 끝내 다 타지 못한 몸뚱이를 미적미적 강에 흘려보내야 하는 것이다. 마지막 구원의 순간에조차 있고 없는 자들의 경계가 이와 같다니 허탈한 일이다. 신의 사업도 사람의 손을 빌리면 별 수 없이 이 지경이 되고 만다.
 
오기로 한 것은 결국 오게 마련이다
  
▲ 인도 기차는 연착하기로 아주 유명하다. 인도 2등급 침대 열차 안.  

 
자정 너머 밤기차에 올라탔다. 2등급 침대열차 좁은 틈새에 누워 잠을 청한다. 아무데나 자리 차지하고 눕는 아저씨들도, 열리지 않거나 닫히지 않는 창문들도, 벽을 타고 횡단하는 가지가지 바퀴벌레들도 이제는 아무렇지도 않다. 산다는 건 원래 익숙해지는 일이나 다름없다.
 
인도의 동쪽 끝 꼴까따(Kolkata)에서 방콕 행 비행기를 기다리는 중이다. 출발시간이 아침 7시라기에 새벽같이 짐 꾸려 공항으로 달려왔는데 몇 시간 째 연착이라는 말만 반복하고 있다. 시간은 벌써 오후 1시를 넘어섰고 항공회사에서 제공하는 점심까지 얻어먹었건만 비행기는 아직도 꿩 구워 먹은 소식이다.
 
막내가 의젓하게 “여긴 인도잖아.” 한다. 정말 여기가 인도라 그런 건지, 우리 비행기가 저가항공이라 그런 건지, 여행이란 게 본시 다 그런 것인지 알 길 없지만 우리는 더 이상 개의치 않는다. 나도 아이들도 기다리는 일에 도 텄고, 오기로 한 것은 결국 오게 마련이다. (진형민 / 일다  www.ildar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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