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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대강, 두리반 등 정부관련 사안 '긴급구제' 요청 외면 

국가인권위원회는 환경운동연합이 지난 8월 10일 여주 남한강 이포보 위에 오른 활동가들의 안전이 심각하게 위협받고 있다며 긴급구제를 요청한 것에 대해 13일 기각 결정을 내렸다. ‘물과 식량이 일부 반입되고 있어 긴급구제 결정 요건에 해당되지 않는다’는 것이 그 이유다.

 
인권위가 제시한 기각 이유는 쉽게 납득하기 힘들다. 환경운동연합의 긴급구제 요청서에 따르면 현장에서 일어나는 있는 일들은 가혹행위에 가까운 수준이다. “물과 식량이 일부 반입”되고 있다며 긴급구제 요청을 기각한 인권위의 판단은 납득이 어렵다.
 
반입되는 식량은 선식가루 뿐, 인권위 기각결정 납득 힘들어
  
▲  8월 16일 인권위의 이포보 고공농성 활동가 긴급구제 기각결정에 항의서한을 전달하기 위해 국가인권위원회 앞에서 기자회견 중인 4대강사업저지범국민대책위원회 © 환경운동연합 시민환경정보센터 박종학  

 
인권위가 언급한 “일부 반입”되고 있다는 식량은 선식가루 조금 뿐이라고 한다. 폭염과 폭우에 노출된 채 염분 공급도 없이 농성중인 활동가들은 한달 가까운 시간 동안 사실상의 ‘준 단식 상태’에 놓여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또한 환경운동연합은 긴급구제를 요청하면서 심각한 수준의 “경찰의 괴롭힘”을 주장했다. 경찰이 소음과 강한 빛을 이용해 농성자들이 잠을 자지 못하도록 괴롭히고 있다는 것이다. 밤에는 “2∼3시간 간격으로 사이렌을 울리고”, “난간을 두드리고 손뼉을 치고 소리는 지르는 위협을 가하며”, “서치라이트를 밤새 쏘아서 대낮같이 환하게 만들어” 활동가들이 고통과 어지럼증을 호소하고 있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대낮에도 뜨거운 서치라이트를 쏘아 폭염으로 인한 고통을 배가시키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인권위는 이와 같은 경찰의 가혹행위에 대해 이렇다 할 판단을 제시하지 않았다.
 
인권위의 기각결정에 반발한 4대강사업저지범국민대책위원회와 인권단체연석회의는 16일 항의서한을 보내면서 농성자들에 대한 가혹행위가 유엔고문방지협약에서 밝힌 대로 "협박 강요할 목적으로, 극심한 신체적 또는 정신적 통증과 고통을 한 개인에게 의도적으로 가하는 행위”에 해당한다고 지적했다. “농성자들을 농성장으로부터 이탈시키기 위해 의도적인 고통을 지속적으로 가하고 있다”는 판단에서다.
 
더구나 이포보 위의 활동가들은 외부와 유일한 소통수단인 무전기와 휴대전화의 배터리를 공급받지 못해 고립상태에 놓여 있다. 유엔의 입을 빌리지 않고 ‘상식적 수준’에서 판단해도 눈앞이 아찔해지는 상황임이 틀림없다.
 
국가인권위원회 법 제48조(긴급구제조치의 권고)에 따르면 “인권침해행위가 계속 중에 있다는 상당한 개연성이 있고, 이를 방치할 경우 회복하기 어려운 피해발생의 우려가 있다고 인정할 때” 긴급구제조치를 취하도록 되어 있다. 따라서 타당한 이유제시 없이 기각결정을 내린 인권위의 조치는 직무유기나 다름이 없다.
 
전기공급 끊긴 두리반의 긴급구제 요청도 기각
 
인권위가 미온적 태도로 비판에 직면하고 있는 것은 이 뿐만이 아니다. ‘작은 용산’으로 불리는 두리반에 대한 긴급구제 신청 기각도 역시 납득하기 어려운 점들이 있다.
 
▲ 8월 5일 마포구청 앞에서 전기공급 재개를 요청하는 기자회견 중인 두리반의 운영자 유채림 작가와 부인 안종녀씨. © 박김형준       

 
두리반은 소설가 유채림씨가 마포구 홍익대 인근에서 운영하던 국숫집으로 재개발로 철거대상이 되면서 순식간에 생계의 터전을 잃게 될 상황에 처했다. ‘지구단위계획지역이라 법적으로 보상 의무가 없다’는 이유로 가게를 잃고 쫓겨날 처지가 된 것이다. 이에 ‘영업을 다시 시작할 수 있는 공간을 얻을 수 있게 해줄 것’을 요구하면서 지난해 연말부터 예술가, 시민활동가 등이 연대해 농성을 벌이고 있다.
 
그런데 지난 7월 21일 재개발 시행사가 전기선을 끊어 8월 17일 현재 28일째 정전이 이어지고 있다. 두리반 측은 7월23일 인권위에 긴급구제를 요청했으나 ‘한전은 조사대상이 아니다’는 이유로 기각되었다. ‘국가기관 및 지방자치단체’만이 인권위의 조사대상이라는 것이 기각결정의 이유였다.
 
표면적인 이유만 보자면 인권위의 결정이 틀렸다고는 할 수 없다. 그러나 아쉬움은 남는다. 두리반은 지난 용산참사에서 불거진 문제와 마찬가지로 국가권력에 의해 개인의 인권이 침해되는 현장이다. 따라서 인권위는 단순한 기각결정을 내리기 이전에 적극적인 태도를 가지고 현장의 문제를 살펴야 할 책임이 있다.
 
그러나 인권위는 두리반 문제에 대한 개입을 회피하고 있는 듯한 인상을 준다. 두리반 측이 8월 6일 한국전력공사 대신 마포구청을 대상으로 해 인권위에 두 번째 긴급구제 신청을 했으나 인권위는 8월 11일 현장조사 이후로 이렇다 할 답을 내놓지 않고 있다. 인권위의 이 같은 태도에 인권단체들은 한 목소리로 “필수재인 전기를 무기화해선 안된다”며 신속히 긴급구제에 나설 것을 요청하고 있다.
 
독립성이 생명인 인권위, 존재이유를 의심케 한다

 
2008년 초 대통령직 인수위원회는 국가인권위원회를 대통령직속기구로 전환하는 방안을 검토한바 있다. 인권단체와 여론의 강한 반발에 부딪히자 이명박 정부는 인권위 직제에 손을 대 정원을 감축했고, 2009년 7월에는 인권 관련 경험이 전무한 현병철 위원장이 취임해 인권위 위상과 독립성 훼손 논란에 휩싸였다.
 
현 위원장 취임 후 인권위는 정부에 부담되는 의견표명이나 결정을 피하고 있다는 비판에 직면해 있다. 앞선 두 기각 결정도 그러한 의혹을 피하기 어렵다. 두리반의 경우 마포구청의 도시계획으로 강제철거의 위기에 몰렸지만, 결국 ‘개발사업’ 위주의 정부정책과 토건기업 특혜주기에 맞닿아 있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개발사업자들과 정부의 눈치보기에 급급하더라도 ‘국가인권위원회’라는 이름을 달고 있는 이상 반드시 지켜야 할 최소한의 선은 있어야 한다. 인간의 가장 기본권이라 할 수 있는 생명권과 관련된 사안마저 외면한다면, 이는 인권위의 존재 의미를 상실케하는 것과 다름없는 일이다. (박희정) 관련: 
'불통'정부에 '강살리자' 시민저항 거세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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