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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딸과 느릿느릿 아시아여행> 인도① 델리에서 다람살라까지 
 

▲삶에 필요한 모든 것을 가방 하나에 짊어진 아이들. 뉴델리 기차역 앞.   
 
인도로 건너왔다. 아이들과 인도에 간다고 하자 사람들 반응이 크게 둘로 갈렸다. “오, 인도. 나도 인도에 가보는 게 꿈이야.” 하는 이들과 “제 정신이야? 애들 잃어버리지 않게 잘 챙겨.” 하는 이들. 나는 그 모든 반응에 대해 무덤덤하였다. 인도에 대한 넘치는 기대도 없지만 특별한 경계와 우려가 있는 것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여행도 어느 새 막바지를 향하고 있었고, 어디서든 그 곳 사람들처럼 살면 얼추 살아질 거란 뱃심이 우리를 느긋하게 했다.
 
아무리 그래도 이건 너무했다. 델리(Delhi)에 있는 여행자 거리로 들어서자 함부로 버린 쓰레기들이며 소와 개들이 싸놓은 분비물, 누렇게 굴러다니는 흙먼지들로 발 디딜 데가 없다. 골목 안에선 남자들이 오가며 찍찍 갈겨놓은 오줌 지린내가 진동하였고, 왕파리 떼 붕붕 몰려다니는 담벼락 밑으로 주먹만 한 시궁쥐가 슬금슬금 지나갔다.
 
바가지요금도 잊게 해 준 ‘짜이(chai)’의 특별한 맛
  
릭샤나 택시를 탈 때마다 운전수들은 눈도 깜짝 않고 현지인 요금의 수십 배를 불러댔다. 어이없단 얼굴로 손사래 쳐 절반 깎고, 인도 온 지 오래 됐다고 배짱부려 또 절반 깎고, 비싸서 안탈 거라고 가는 척 하며 또 절반 깎고, 어떻게든 깎고 또 깎지 않으면 바가지 된통 쓰는 건 시간문제다. 깎느라 깎아도 50루피 거리를 두세 배씩 더 주고 다니기 일쑤였다. 물건을 사거나 방을 구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여행자 요금과 현지인 요금 사이의 황당한 간극을 어떻게든 메워보려 입 아프게 깎고 또 깎다가 나는 그만 지쳐버렸다.
  
▲ 인도의 대표적인 마실거리 짜이. 거리에서는 5루피에 한 잔을 사마실 수 있다. 우리 돈으로 150원이 채 안 되는 값이다. © mohit-gupta.com 

 
그 거리에 정 붙일 수 있었던 건 오로지 짜이(chai) 덕분이었다. 짜이는 홍차 우린 물에 우유와 설탕을 넣어 팔팔 끓인 인도식 차인데, 때로 생강을 저며 넣거나 인도 특유의 향신료 맛살라(masala)를 첨가하기도 한다. 짜이 한 잔 마시기 전에는 하루를 시작하지 않는다 할 정도로는 인도의 짜이 문화는 깊고 오랜 것이었다.
 
음식점에서 한 주전자씩 시켜 마시는 짜이도 맛있지만, 길가에 터 잡은 짜이왈라(chaiwallah, 짜이를 만드는 사람)가 찌그러진 냄비에 끓여 내는 거리의 짜이는 입안에 착 감기는 별미였다. 누구는 그 맛의 비결이 짜이왈라 아저씨의 냄비에 있다고 했다. 언제 씻었는지 알 수 없는 오래된 냄비 안에는 누런 차 찌꺼기가 더께처럼 두껍게 달라붙어 있는데, 그 집 짜이의 맛은 그 묵은 차 찌꺼기에서 우러난다는 것이다. 맛있기로 소문난 짜이왈라의 차 냄비를 웃돈 얹어 사가는 사람도 있다니 아주 허튼 소리만은 아닌가 보다. 나는 생강 들어가 맵싸한 짜이를 특히 좋아했다. 아침이라 마시고, 심심해서 마시고, 오다가다 마시고 하다보면 하루 서너 잔이 금방이었다.
 
이틀 동안 북인도 다람살라(Dharamshala)로 올라가는 버스표를 구하러 다녔다. 현지인들이 주로 타는 공영버스부터 최고급 볼보버스까지 버스의 종류도 가지가지인데다, 같은 버스라 해도 부르는 차표 값이 여행사마다 다 달랐다. 게다가 같은 자리의 표가 두세 장씩 동시에 팔려나가 버스 안에서 서로 자기 자리라 우기는 실랑이가 하루걸러 벌어진다고 했다. 열 몇 시간씩 타고 가는 버스, 이왕이면 좋은 좌석 얻으려는 사람들을 상대로 여행사들이 부리는 수작이었다.
 
여행자 거리 빠하르간지(Paharganji) 골목을 누비며 여행사마다의 차표 값을 좀 훑고 나서 너무 싸지도, 비싸지도 않게 값을 부른 인도 청년과 흥정을 하기로 했다. 싼 값에 덜컥 표를 샀더니 운전석 옆자리 임시 보조석이더라는 웃지 못 할 얘기도 들었더랬다. 청년은 순한 눈매를 가지고 있었고, 우리 좌석이라고 알려준 번호가 썩 좋은 자리가 아니어서 외려 안심이 되기도 했다.
 
이제 흥정을 시작해볼까 하는데, 청년이 이건 아주 정직한 값이라며 깎으면 곤란하다고 한다. 인도에 과연 정직한 값이란 게 있을까 잠시 고민하다가 그냥 청년이 달라는 대로 돈을 주었다. 청년의 말을 다 믿어서가 아니라 내 기운이 바닥났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다람살라에 와보니 우리는 제 값에 버스를 타고 온 몇 안 되는 여행자였다. 이 땅에서 나는 어쩌다가 마음 곤두세워 의심하는 것부터 배우고 말았다.
 
티베트 난민들이 모여 만든 산간마을 맥로드간즈 
 
▲ 티베트 난민들이 모여사는 거리 맥로드간즈에서는 중국의 티베트 침공을 비판하는 스티커들을 자주 볼 수 있다.   
 

다람살라 윗동네 맥로드간즈(McLeod Ganj) 버스 정류장에 내린 것이 아침 일곱 시. 엊저녁 다섯 시쯤 버스를 탔으니 열네 시간을 꼬박 달렸다. 밤새 비포장도로를 덜컹대며 오느라 엉덩이가 다 얼얼한데, 아이들은 그 와중에도 쌕쌕 잘 자고 일어났다. 아침 먹을 곳을 찾느라  왔다갔다 해보니, 어수선한 델리와는 딴판으로 골목들이 오밀조밀 정겹다. 그동안 시달렸던 마음이 한결 누그러진다.

 
히말라야의 또 다른 자락을 두르고 있는 산간마을 맥로드간즈에는 티베트 난민들이 모여 살고 있다. 중국의 티베트 침공 이후 수많은 티베트인들이 힘겹게 히말라야 국경지대를 넘어 인도 안에 그들의 마을을 이룬 것이다. 정치적 탄압을 피해 망명한 달라이라마 14세도 티베트 망명정부와 함께 여기 머물고 있다. 우리는 이곳에 있는 작은 NGO ‘록빠'를 찾아왔다. ‘록빠(Rogpa)’는 일하는 티베트 엄마 아빠들을 위해 아가들을 대신 돌봐주는 무료탁아소인데, 우리는 그곳에서 자원 활동을 하며 한동안 지내볼 생각이다.
 
부엌 딸린 방을 구하여 짐을 풀고는 아이들과 동네 익히기에 나섰다. 버스정류장 근처 노점에서는 아침 요기에 좋을 옥수수 티베트 빵을 팔고, 야채랑 과일은 골목 안에 전을 펼친 티베트 아저씨들한테 사면 될 것 같고, 인도 할아버지 슈퍼마켓에는 없는 게 없지만 쌀이랑 밀가루는 조금씩 덜어 파는 구멍가게가 더 싸고, 한국 책을 공짜로 빌려 볼 수 있는 한국 식당은 위엣 골목 끄트머리에 있다는 걸 하나하나 발로 찾아가 알아내는 것이다. 그건 세상에 둘도 없는 재미난 놀이였다. 새로 이사 온 아이처럼 이리저리 동네를 탐험하며 이러쿵저러쿵 일상의 새 틀을 같이 만들어가는 일을 우리는 아주 좋아했다. 그러다 보면 어느 새 머릿속에 동네 지도가 그려졌고 이제 아이들끼리 척척 심부름 내보낼 수도 있으니, 나로선 꿩 먹고 알 먹는 일이기도 했다.
 
록빠에 찾아가니 그동안 메일을 통해 전후 사정 풀어두었던 한국인 빼마(Pema)는 없고 티베트인 매니저 남겔(Namgel)만 있다. 빼마는 급한 일 있어 한국 들어갔고 우리 얘기는 따로 전해들은 것이 없다고 한다. 별 수 없이 주절주절 다시 얘기를 털어놓는다. 우리는 지금 아시아 여행 중이고 이곳에 두 달쯤 머물 생각인데, 매일 한나절씩 탁아소 자원 활동을 하고 싶다고 했다. 그런데 남겔이 걱정스런 얼굴로 아이들에게 나이가 몇이냐 묻는다. 열, 열둘, 열넷. 나라 밖에서는 한국 나이보다 한 살씩 더 손해 보게 마련이다. 남겔이 난감한 얼굴을 한다.
 
탁아소 아가들은 웃을 때보다 울고 떼쓰고 싸울 때가 더 많다, 밥도 먹여야 하고 똥오줌 누는 것도 봐줘야 해서 생각보다 일이 훨씬 힘들다, 그러니 어린 친구들에게는 좀 어렵지 않을까? 하는 것이 남겔의 생각이었다. 아이들에게 남겔 말을 전하니 그래도 자기들은 한번 해보고 싶단다. 나는 남겔과 아이들 사이를 중재하기로 한다. 그럼 딱 하루만 해보고 나서 결정하면 어떨까? 아이들에게는 탁아소 일이 어떤 건지 알 수 있는, 탁아소 쪽에선 이 아이들이 도움은커녕 방해만 되는 건 아닌지 살펴볼 수 있는, 서로를 위한 딱 하루. 오케이? 오케이~!
 
첫날 일을 마친 아이들은 남겔 앞에서 일이 너무 재미있다고 환호하였고, 다행히 탁아소 교사들도 나이어린 자원 활동가들을 어여삐 봐주었다. 여전히 걱정 많은 남겔에게는 좀 미안한 일이었지만, 우리는 결국 록빠의 새 식구가 되었다. (진형민/ 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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