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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여성 몸 이야기⑫ 다가가기 "낯선 타인에서 친근한 동료가 되기까지"
  
“내가 들어가니까 기다리고 있던 사람들이 모두 일어나 날 보더군요. 사무실에는 그때까지 전화로만 소통하던 김세라를 직접 만나겠다고 공연 관련자들이 다 모여 있었어요. 과연 그 화통한 목소리의 여자 김세라는 어떻게 생겼을까, 어디 얼굴 좀 보자 이거였죠. 나중에 들으니까 잔뜩 기대하고 있었다고 하더군요. 근데 막상 절 본 사람들 반응이 어땠겠어요. 놀라고 당황해서 어쩔 줄 모르고 우왕좌왕해서는... (웃음). 결국 15분 만에 회의 끝내고 계약도 완벽하게 끝냈어요.”
 
공연기획사 ‘세라컴패니’의 김세라 대표가 강원도청 문화체육과의 행사 기획을 맡았을 때의 에피소드다. 과연 듣던 대로였다. 처음 만난 김세라씨는 굽힘없이 당당한 느낌이었다.
 
“고객과의 첫 미팅은 언제나 떨려요”
 
▲화통한 목소리의 김세라씨. 공연기획사 ‘세라컴패니’ 대표를 맡고 있다. ©이남희 

 
추적추적 비가 내려 공기 중에 습기가 꽉 찬 오후, 리더십 프로그램에 참여하기 위해 대방동 서울여성플라자에 들른 김세라 대표를 만났다. 날씨의 영향인지 만나는 사람들마다 기운 없이 늘어져 있을 때 김세라 대표는 활기가 넘쳤다. 1m가 좀 넘는 작은 키, 힘 있고 화통한 목소리, 생기 있는 표정의 김세라씨는 ‘저신장장애인(short stature)’으로 ‘한국작은키모임’의 회장이기도 하다.
 
공연기획은 발로 뛰고 감각으로 승부해야 하는 일이다. 자기들의 행사를 치러야 할 공연기획 대표로 낯선 작은키의 여성과 마주했을 때 고객들의 반응은 어땠을까. 첫인상에서 갖게 되는 편견과 싸워야 할 텐데. 궁금했다.
 
“기획사를 차리고 초기엔 고객과 직접 만나지 않았어요. 일의 능력과 상관없이 저를 보면 사람들이 편견을 갖게 되거든요. 우선 동료를 보내 프레젠테이션을 하고 일을 따 내면 제가 전화로 세부사항을 의논했어요. 그런데 강원도청에서 열린 행사를 맡게 됐을 때 계속 전화로 소통하다가 어느 날 그쪽 담당자들이 ‘이렇게는 못하겠다’고 하더군요. 아무래도 전화로만 얘기하는 건 못 미더웠던 거죠. ‘김대표가 직접 와서 계약해라.’ 그래서 직접 강원도로 갔어요. 저는 속으로 긴장하고 그쪽 사람들은 안팎으로 다 당황했지만 일은 잘 진행되었어요. 그 뒤로 그쪽 일을 많이 했어요. 그 일을 계기로 첫 미팅에도 제가 직접 나가서 고객과 만나요. 그래도 고객과의 첫 미팅은 언제나 떨려요.”
 
‘떨린다’는 말을 하며 시원스레 웃는 김세라씨의 모습은 전혀 떨리거나 약해보이지 않았다.
 
낯선 사람들의 마음이 열리던 순간
 
대학에서 스페인어를 전공한 김세라씨는 성적이 좋았지만 취직할 방법이 없었다. 저신장장애인에게 사회의 벽은 너무 높았다. 결국 교수님의 추천으로 편집디자인 일을 하게 되었지만 처음에는 동료들의 냉대로 직장생활이 쉽지 않았다.
 
“사람들의 엉덩이에 짓눌리는 만원지하철보다, 엘리베이터 없는 건물의 5층 계단을 오르는 것보다 더 힘들었던 건 동료들의 무시와 냉대였어요. 인사도 안 받아주고 일도 가르쳐주지 않아 저도 지쳐서 인사를 하지 않게 됐는데 출근 3일째 마음이 가라앉고 나서야 사무실 구조가 눈에 들어왔어요. 그때 깨달았어요. 내가 이틀 동안 출퇴근하면서 회사 구조가 낯설었듯이 저 사람들도 내가 낯설었겠구나. 새로운 물건도 낯선데 사람이라면 얼마나 낯설게 느껴질까. 저들에게 시간을 주자. 내가 눈에 들어올 때까지, 내가 익숙해질 때까지.”
 
마음을 달리 먹으니까 여유가 생기고 다시 인사를 시작했다. 그러니까 한두 사람씩 돌아보며 인사가 오갔다.
 
“‘안녕하세요, 김세라씨. 커피 마실래요?’ 별 것 아닌 말이지만 진심이 느껴지고 사람들의 마음이 열리는 것이 느껴졌어요. 낯선 제가 동료들에게 익숙해진 거죠. 편견을 깨고 싶어서 남들보다 더 열심히 일했어요. 큰 키가 아니라 능력으로 보여주고 싶었거든요. 나중에는 꽤 인정을 받았어요. 덕분에 장애인에 대한 이미지가 좋아져서 회사에서 장애인 한 명을 추가로 채용했어요. 지금은 일 관계로 만나는 사람들 대부분이 제 장애를 보지 않아요. 생각해 보면 사회생활 초기에 어려웠던 시기는 타인들과 소통의 방법을 찾는 시기였어요.”
 
김세라씨에게 편견은 어느 한쪽만 애쓴다고 깨지는 게 아니고 ‘서로 깨뜨리기 위해 애써야 하는 것’이라고 했다. 동감이다. 비장애인이 잔혹한 편견에서 깨어나도록 장애인도 굳건한 편견에 끊임없이 망치질을 해야 한다.
 
“어둠을 깨고 나와 자신을 표현하면 모든 게 달라져요”
 
▲ 편견은 '서로 깨뜨리기 위해 애써야 하는 것'이라는  김세라씨.  © 이남희 

 
‘세라컴패니’에는 6명의 동료가 있지만 아직까지 장애인 동료가 없다. (김세라씨는 직원이라는 말은 싫다며 동료라고 고쳐 말했다.) 그만큼 사회에 진출하는 저신장여성장애인이 드물다. 아니 어렵다.
 
“후배들이 자신감을 가지고 사회로 나왔으면 좋겠어요. 우리 저신장장애인은 다른 장애인에 비해 더 사회진출이 어려워요. 그래도 용기를 가지고 적극적으로 나와야 해요. 험한 말을 듣는 건 한 번의 상처에 불과해요. 하지만 세상엔 어둠만 있는 게 아니니까 깨고 나와서 자신을 표현하면 모든 게 달라져요.”
 
공연기획일은 쉽지 않다. 그러나 김대표는 ‘일을 즐길 줄 알고 용기 있는 후배라면 얼마든지 받아들이고 같이 나아가고 싶다’고 말한다. 그러기 위해서 회장으로 있는 ‘한국작은키모임’에서도 적극적으로 활동하며 후배들을 위해 장학회도 후원하고 있다. 그는 후배들의 사회진출을 위해 무엇보다 장애인식개선 교육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성인에게 장애인식개선을 하는 것보다 유아 및 초등학교 저학년부터 해야 효과가 커요. 그렇기 때문에 어린이를 대상으로 하는 장애인식개선 교육에는 꼭 참여해요. 어린이들에게 세상에는 큰 사람, 작은 사람, 또 여러 종류의 사람이 있다고 말해주고 저 자신을 보여줘요. 익숙해지는 게 중요하니까요. 많이 만나고 자주 접하다 보면 스스럼없어지고... 절 보면 아이들은 사심 없이 물어요, 왜 이렇게 키가 작아요? 그럼 어렸을 때 햄버거만 먹어서 못 컸다고 말해주죠.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춰 설명해주면 아이들은 잘 알아들어요. '아~ 난 햄버거 조금만 먹어야지!' 하고 대답해요. 아직 편견이 없을 때, 있어도 딱딱하게 굳지 않았을 때 자연스럽게 다가가 알려줘야 해요. 장애인, 비장애인 모두 이상할 것 없는 것이라고요.”
 
정말 그의 말대로 장애인이거나 비장애인이거나 여성이거나 남성이거나 이 세상 모두가 이상할 것 하나 없는 사람들로 살 수 있었으면 좋겠다. 장애를 낯설어하는 수많은 타인들에게 먼저 다가가는 김세라씨, 그리고 그 뒤를 잇는 후배들이 그런 세상을 만들어갈 것이리라. (다비다)
 
장애여성의 몸 이야기->  장애여성에게도 애인은 있다 |  8년 만에 새로운 내 몸을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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