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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진창아가 만난 사람] 30년째 <바우식당>을 운영 중인 이복자씨
  
문득 누군가의 인생을 마주하는 것이 마치 제주바당(바다)에서 ‘보말 줍는 일’ 같다는 생각이 든다. 보말은 ‘고둥’을 뜻하는 제주말로 먹보말, 코트다기보말, 수두리보말, 매옹이 등 제각각 생김 다른 것이 몇 가지나 된다. 제주바당 동네에서 나고 자란 나에게 보말은 여름날 간식거리이자 간장 종지 안에 탐스럽게 또아리 튼 밥반찬이었는데 난 늘 밥상머리에서 그 보말을 비행접시 보듯이 유심히 응시하곤 했었다.
 
해녀인 어머니가 보말을 해올 때도 있고 할머니, 친구들과 물 싼 바당에서 보말을 줍기도 했다. 그것을 삶아 식힌 후에 굿가시낭(굿가시나무)으로 돌돌 휘감겨있는 보말 속살을, 그야말로 생긴 대로 쏘옥~꺼내는 고난도의 손놀림은 종종 아이들의 내기시합이 되기도 했으니.
 
어디다 내놓을만한 특별한 삶이 아니라며 쑥스러운 얼굴빛을 주방으로 돌리는 그분을 보는 찰나, 그만 보말이 떠올라서는 서두가 길다. 누군가의 삶의 속살을 들여다보는 일이 보말의  휘감겨진 속사연을 가만히 바라볼 때처럼 신기하다. 
 
제주시청이 위치한 야구장사거리에서 30년째 바우식당을 운영하고 있는 이복자님(60세)을 만났다.
 
‘특별한 비법 없음이 비법’ 인생내공으로 버무린 음식들
 
‘집에서 먹는 음식 그대로 파는 거’라는 특별한 비법 없음이 핵심 비법인 8평짜리 식당 인기메뉴는 몸국과 돔베고기. 몸국은 돼지고기 삶은 육수에 해초인 몸(모자반)을 넣어 만든 음식으로 나 같은 술꾼에게는 마음이 헛헛한 날이나 비 오는 날에는 어떤 위로삼아 꼭 먹어줘야 하는 메뉴라고나 할까. '도마'를 뜻하는 돔베 위에서 썰어먹은 데에서 유래한 돔베고기 외에도 갈치국, 각재기국, 순대 등의 메뉴가 더 있다.

 
오랜만에 만나는 이들의 기억 속에 시인이나 소설가가 되어 있을 줄 알았다는 말에 제주도 모슬포 대정골 동네유지인 '대정상회' 집 큰딸인 그녀는 ‘배운 년이나 못 배운 년이나 지혜로 살지, 지식으로 안사는’ 육십 줄에 들어선 관록 있는 미소를 뿌린다.
 
“결혼하면 남편이 다 해줘서 사는 줄 알았지… 자기 능력이 있어야 되겠더라. 남편이 경찰시험에 합격했지만 그 당시 월급(75년 당시 5만원)이 옷 한 벌 값도 안 되던 시절이었어. 아이 둘 낳아 키우면서 80년도에 설렁탕 식당을 크게 시작했는데 폭삭 망했지. 사람다룰 줄도 음식을 할 줄도 모르고 식당 차리면 돈이 그냥 들어오는 줄 알았던 거지.”
 
삼십대에 저지른 자만심의 결과는 3천만 원의 부채로 되돌아왔다. 번듯한 집 한 채 값이 2천5백만 원 하던 시절이었다. 빚도 재산이라고 했던가. 82년도에 새벽바다를 홀로 출항하는 어선처럼 8평 식당에서 혼자 세상으로 나아갔다.
 
 열기에 데고 칼에 베이고 쓴 소리로 구멍 난 마음을 젓갈에 무치며 10년 걸려 빚을 다 갚았을 때 비로소 마흔을 넘기고 있었다. 그리고 빌딩을 사도 몇 개를 샀을 만큼 돈을 벌던 사십대에 열 식구 먹여 살리는 사주팔자를 가진 그녀는 동생들이며 자식들 거념하는 (돌보고 챙기며)사이 오십이 되고 육십이 되어 있었다.
 
 인생 뭐 별거 없듯이 나이 먹는 일이 참 별게 아니지 싶을 때가 있다. 유년 시절 담벼락에서 기대어 길어진 자기 그림자를 응시하던 때나 구름 속으로 사라지는 비행기 꽁무니를 아득히 바라보던 때, 살아가기 너무 힘들다고 서럽게 우는 엄마를 대할 때, 가난이 부끄러워 무작정 도망치고 싶어 화끈거리던 시절에 나는 빨리빨리 나이를 먹고 싶었다. 강하고 불안하지 않은 어른이 되고 싶었다.
 
 하지만 마흔을 넘긴 지금은 안다. 강하고 불안하지 않은 어른도, 인생도 없다는 것을. '살암시난 살아졌주'(살다보니 살아지더라)라며 숨 한번 돌리며 내뱉는 말처럼, 앞을 보고 걸으라고 눈이 앞에 달렸다고 하는 것처럼 그냥 살아내야 하는 생이 있을 따름임을.
 
번화가 구석 모진 생명력으로 살아가는 <바우식당>
 
젊은이들의 활기가 길거리를 메우고 있는 토요일 오후, 번화가에 위치한 식당은 한산하다. 그녀의 음식 맛을 찾아 문지방을 넘나들던 오랜 손님들이, 친구들이 한두 명씩 세상을 뜨는 시절이다.

 
“남은 사람 마음이 쓸쓸하지…이런 메뉴가 나이든 사람들한테나 맞는 입맛이지. 요즘 젊은이들이 좋아하는 음식은 아니잖어.”
 
나이 들어가며 알게 되는 맛은 당연한 수순처럼 번화가 바우(구석)에서 모진 생명력으로 살아간다. 그래서 그녀의 음식에 위로받는 나 같은 젊은이는 갈 곳이 없어질까 봐 서럽다.
 
작은 식당에서 30년 세월을 돌보고 챙기며 '돈 안 되는 일'을 하는 두 아들을 키워냈다.  운명 교향곡 테이프를 엄마에게 선물하던 큰아들, 잘되면 잘되고 아니면 그만인 둘째아들은 모두 서울에서 음악하며 살고 있다.
 
"자기 좋아하는 한 가지에 집중하며 살면 그걸로 된 거지. 한 가지라도 자기 관리를 잘해야 가질 수 있는 거고, 모든 걸 버려서 하나를 가져야 성공하는 건데…"
 
어쩌다 이야기가 흘러가더니 결혼은 해보고 후회하는 것이 낫다는 말에 마흔 줄에 들어 더 이상 결혼과는 무관한 자유를 누리던 나는 그만 ‘허걱’하고야 말았다. 팔팔한 20, 30대라면 나는 눈빛 활활 태우며 결혼의 모순과 자유의지를 들이대는 여전사였으리. 하지만 40대의 나는 그냥 알아듣는다.
 
"염라대왕이 호적에 왜 빨간줄 그었냐고 욕은 안할 테니 한번 해봐라. 나이 들다보니 남편 없으면 못살 것 같아. 친구 같아…" 살 비비며 삶의 순간순간을 같이 공유한 이들의 삶이 석류 알처럼 영글어 참 고울 때 있다. 뭐 어떤가! 결혼은 아니더라도 같이 늙어갈 친구는 있어야지 싶다. 칠순이 되면 '돈 있으나 없으나 같은 년', 팔순이면 '산 년이나 죽은 년이나 똑같은 년'이라는 말처럼 별거 없이 흘러갈 인생이지 않은가.
 
 곧 환갑 맞이하는 그녀가 챙겨주는 밥상 인증샷은 안올린다. 30년 인생내공 버무려진 맛을 서툰 솜씨로 찍는 건 진정 무례하므로. 제주 여행길에 후드득 비를 맞는 날이거나, 낯선 동네 사거리에서 어떤 위로가 그립거든 바우식당으로 오시라. (박진창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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