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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시대그리스도교연구소, 퀴어신학자 테드 제닝스 강연회 개최



“호모포비아(동성애 혐오)의 희생자는 성서 그 자체이다.”
 
이론신학(데리다와 신학)과 퀴어 신학의 권위자, 시카고 신학대학 테드 제닝스(Theodore W.Jennings, Jr)는 7일 제3시대그리스도교연구소 주관으로 열린 한국강연회에서 교회의 동성애혐오를 비판하며 이같이 말했다. 교회가 성서를 왜곡해 동성애혐오를 조장한다는 주장이다.

게이 커플이 등장한 SBS 드라마 "인생은 아름다워" ©SBS

우리나라에서는 최근 게이 커플이 등장하는 SBS의 주말 드라마 <인생은 아름다워>가 방영되면서 일부 기독교 단체들을 중심으로 노골적으로 동성애혐오를 드러내는 움직임들이 표출되고 있다.
 
해당 드라마 방영을 반대하며 “SBS 시청거부 및 광고안내기 운동”을 선동하고 있는 ‘동성애허용법안반대국민연합’은 최근 조선일보 1면 연속 기획광고(5월 27일, 30일, 31일, 6월 3일 등)를 내보냈다. 이 광고들은 동성애가 AIDS의 주범이며 저출산 확산에 일조하고, 동성애가 용인되면 더욱 확산될 것이라는 내용을 사실인 것처럼 담고 있다.
 
이에 대해 ‘차별없는 세상을 위한 기독인연대’ 등 또다른 기독교인들은 “신앙과 성경을 폭력의 도구로 사용하는 것은 용서받기 어려운 범죄행위”라며 호모포비아 광고를 즉각 중지할 것을 요청하고 나섰다.
 
제닝스 교수는 성서를 근거로 동성애혐오를 정당화하는 기독교인들의 행동에 대해 “교회가 성서의 좋은 복음을 사람을 때려잡는 무기로 둔갑시켰다”며 강하게 비판했다. “성경을 한 두 구절만 똑 따서 인용하지 말고 전체를 자세히 읽어”본다면 이 같은 주장은 할 수 없다는 설명이다.
 
소돔과 고모라의 죄에 ‘동성애’ 언급되지 않아
 
제닝스 교수는 소돔과 고모라의 예를 들었다. 남성간의 성적 관계를 지칭하는 용어로 소도미(sodomy)가 사용될 정도로 소돔과 고모라는 동성애를 죄악시 하는 사람들에게 자주 인용되는 성서의 이야기 중 하나다.
 
그러나 제닝스 교수에 따르면 “어떤 문서에도 소돔의 죄로 동성애를 언급하지 않고 있다.” 성서에서 말하는 소돔과 고모라의 죄는 교만, 폭력, 미움 등일 뿐이다.
 
고대 아랍, 그리스, 중동에서는 길을 가는 낯선 사람이 ‘하나님의 천사’라는 생각이 있었고 ‘이방인에 대한 환대’가 윤리의 기초였다고 한다. “외국인이나 여행자 또는 이주 노동자는 씨족이나 부족의 유대에 의해 보호받지 못하는 사회의 가장 취약한 구성원”이고 이스라엘 사람들 자신도 이집트 땅에서 ”외국인”이었으므로 이주민을 특별한 배려로 대하는 태도가 윤리적 행위로 강조되었다는 것이다.
 
제닝스 교수는 소돔의 죄가 “약한 이방인을 대상으로 집단적인 강간을 저지르려 하는 형태를 취했던 소돔의 불의를 말하는 것”이라고 지적한다. 이것은 ”성서 윤리의 기반에 대한 극단적 위반”이기 때문에 비판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로마 황제 유스티아누스 시대부터 이 성서 본문은 왜곡되어 사회의 약한 구성원들(동성애자)에 대한 폭행을 허가하는 핑계가 되었다”는 것이 제닝스 교수의 분석이다.
 
이러한 왜곡의 예는 교회가 동성애혐오를 뒷받침하는 근거로 이용하는 다른 성경구절에서도 볼 수 있다. 사도 바울이 로마의 죄를 지적하면서 “여자들이 본성에 반해 행동한다”고 했을 때도 그것은 “섹스에 대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라고 한다.
 
‘황제들을 지배하고 남편, 아버지 심지어 아들을 암살하며 권력게임에 성을 사용하는 제국의 여자들을 지칭한 것’이 동성애혐오를 위해 왜곡되어 인용되었다는 것이다.
 
“황제들의 극단적인 성적 잔인성을 비난했던” 이교도나 바울이 “동의와 상호성에 의한 일반인들의 성적 관계에는 관심을 두지 않는” 태도를 취한 점도 이러한 주장을 뒷받침해준다.
 
성서가 바라보는 동성애는 '사랑'
 

"룻과 나오미" 펜과 잉크에 의한 소묘, 1635년경

제닝스 교수는 교회가 “성서에서 지극히 적은 몇 구절만 뽑아서” 이를 왜곡해 동성애를 공격하는 데 사용하고 있지만 “성서의 나머지 방대한 부분에는 동성애를 긍정하는 내용들이 들어 있다”고 지적한다.
 
구약성서만 보아도 “삼손과 데릴라, 다윗과 밧세바 같은 성서의 이야기가 할리우드 대작영화들의 주제로 사용”될 정도로 “인간의 섹슈얼리티에 대해 놀라울 정도로 진솔”하며 “다윗과 요나단, 룻과 나오미처럼 명백한 동성애 관계”의 이야기 또한 담고 있다는 것.
 
제닝스 교수에 따르면, ‘룻과 나오미’의 이야기는 서구 문학에 최초로 등장하는 레즈비언 로맨스다. “룻과 나오미 간에 오가는 사랑의 말은 이성 간의 결혼을 축하하는 예전(예배)에서 종종 등장한다. 서로에 대한 사랑으로 가부장적 세계에서 위험을 무릅쓰고 늙은 보아스를 유혹하는 이야기다.”
 
두 사람의 동성애 관계는 마을여자들의 말을 통해서도 드러난다. “룻의 아들이 태어났을 때 ‘룻이 보아스에게 아들을 안겼다는 말을 하지 않고, 룻이 나오미에게 아들을 안겼다’고 말한다.” 제3자인 남성을 통해 아이를 얻는 레즈비언 커플의 이야기가 상기되는 대목이다.
 
성서가 동성애를 적대시하지 않는다는 것은 “예수를 두려운 힘을 갖고 있는 유대인 마술사로 여기고 찾아왔던 로마 백부장의 이야기”에서도 엿볼 수 있다. 이 백부장은 한 소년에 대한 사랑으로 예수를 찾아왔다. 그는 이 소년을 ‘남자애인’을 뜻하는 그리스어 ‘파이스’로 지칭한다.
 
“팔레스타인 지역에 대한 군사적 통치권을 쥔 로마 군인이 아픈 소년 애인의 치료를 간청하기 위해 찾아온 것”을 보고 예수는 적대시하거나 혐오하지 않았다. 오히려 기꺼이 병을 고치기 위해 ‘너의 집에 가겠다’고 한다. 제닝스 교수는 “예수가 백부장의 사랑만을 보았”으며 “사랑 때문에 모든 것을 감수하는 것, 그것이 백부장의 믿음의 본질”이라고 지적했다.
 
죄는, 동성애를 혐오하는 교회에게 있어
 
제닝스 교수가 보는 교회는 고통을 받는 자를 구원하려 한다지만 오히려 성(sexuality)에 대한 억압을 통해 사람들에게 고통을 주고 있으며, “성에 대한 진실을 말하는데 겁에 질려있다.”
 
성서에서 죄는 “억압와 불의, 탐욕과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무관심”과 관련되어 있다. 그러나 교회가 “성서적으로 사회 지도층의 죄를 비판하는 것은 두려운 일”이기 때문에 “죄에 대한 모든 이야기들을 친밀함(intimacy)의 분야로 집어넣고 성(sexuality)을 희생양으로 삼았다”는 분석이다.
 
즉, ‘동성애에 대한 정죄’는 “성서가 죄라고 판정하는 것이 탐욕과 교만과 폭력이라는 것”을 잊게 하고, “부유한 자들과 권력자들의 비위를 맞추는 자들의 이익에 봉사”하는 결과를 낳고 있다는 것이다.
 
제닝스 교수는 이렇게 “죄의 교리를 왜곡한 것은 우리가 예언자들의 하나님 또는 예수의 아버지가 아니라 세속적 성공이라는 맘몬을 숭배한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비판했다.
 
교회의 호모포비아는 십대 동성애자들을 제물로 삼고 있다. 이들의 자살이 유난히 많은 것은 “내면화된 호모포비아의 산물”이다. 기독교 가정에서 자라는 동성애자들이 ‘나는 아무 가치가 없다’는 생각을 갖고 자라난다. 가정과 교회로부터 ‘게이인 것보다 죽는 게 낫다’ 는 메시지를 듣고 자란다. 그 결과 매해 수많은 아이들이 죽음을 택하는 현실이 이어지고 있다.
 
제닝스 교수는 “사랑은 죄가 아니라 오히려 율법의 본질을 완수하게 해주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정의를 실현하는 유일한 수단”임을 강조했다. 그는 단호한 어조로 다음의 말로써 강의를 마무리 했다.
 
“동성애자라는 것은 저주도 아니고, 범죄도 아니다. 하나님이 주신 놀라운 선물이다.
▣ 박희정 www.ildaro.com   [관련기사] 교회개혁, 동성애 차별도 시정하자 | 한 동성애자의 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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