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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ver the rainbow’ 인터뷰칼럼(11) 
 
‘인터뷰칼럼’이라는 독특한 형식으로 동성애자 여성의 기록을 담은 ‘Over the rainbow’ 코너를 통해, 박김수진님이 가족, 친구, 동료, 사회에서 만난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며 레즈비언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줄 것입니다. -편집자 주 
 
지난 4월, 서울 상수동에서 [인터뷰 칼럼]의 열한 번째 주인공인 로마님을 만났습니다. 로마님과 저는 4년 전 한국레즈비언상담소에서 회원과 활동가로 만났어요. 상담소에서 활동하는 내내 동갑인 회원 만나기가 참 어려웠는데, 아주 오래간만에 동갑인 회원이 가입을 했고, 그래서 반가운 마음을 가졌던 기억이 있습니다.
 
당시에 로마님은 이제 막 레즈비언 커뮤니티에 발을 들여놓은 때여서 사람들과 단체 활동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고, 제게도 관심을 가져주셨죠. 그런데 성격 까칠한 저는 동갑 회원을 만난 반가운 마음을 뒤로 하고는, 로마님과 거리를 유지하면서 쌀쌀맞게 대하고는 했죠. 그저, 활동가로서 회원을 대하듯 그렇게 ‘일’처럼 로마님과 관계를 맺었어요. 서로 당시의 상황을 입에 올린 적이 없어 확실하지는 않지만, 로마님의 눈에는 제가 참 재수 없게 보였을 것 같아요. 저라도 그렇게 느꼈을 것 같거든요.
 
예쁜 짓 한 것이 하나 없는데도, 로마님은 저의 인터뷰 제안을 흔쾌히 들어주셨습니다. 이런저런 이유로 서먹서먹한 관계이기는 하나, 현재는 30대 이상 여성이반모임 '그루터기' 회원으로 한 달에 한 번씩은 꼭 얼굴을 보며 관계를 개선해 나가고 있는 중이라 가능했는지 모릅니다. 여전히 서먹하고 썰렁한 분위기 속에서 만나, 마주 보고 앉아 이야기를 시작했습니다. 물론 '공식질문'으로 시작했지요. "로마님은 왜 레즈비언인가요?"
 
"저는 제 자신이 레즈비언이 아닐 수 있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어요. 아주 어린 시절부터 저는 제가 레즈비언이라고 생각해 와서, 왜 레즈비언이냐는 질문이 당황스러워요. '양성애자'라는 개념이 있잖아요? 제 머릿속에는 그런 개념조차 없었어요. '양성애자'라는 낱말에는 어떤 '선택'의 의미가 담겨 있는 것 같은데, 제 경우에는 그 '선택'이라는 것이 들어올 수 없을 정도로 확실하게 나는 언제나 레즈비언이었어요."
 
로마님은 아주 어린 시절부터 이성을 좋아할 수 있다는 가능성 자체를 생각해본 적이 없다고 합니다. 그저, 당연히 자신은 레즈비언이라고 생각하며 살아왔다고 해요. 의심이 없었다는 것이죠. 물론 '정체화를 확실하게 했다'는 것이 곧 '정체화를 긍정적으로 했다'는 것을 의미하는 건 아닙니다.
 
"비정상적인 감정이라는 생각들을 은연중에 하기도 했죠. 고민도 많았어요. 지난 일기장을 살피다보면 어린 시절의 내가 나 자신을 얼마나 비하하며 지냈던가를 알 수 있어요. '레즈비언', '동성애' 같은 낱말을 알지도 못한 상황에서 나는 '여자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는 확신을 가졌지만, 그 용어들을 굉장히 부정적으로 이해하고는 했어요. 특히 '레즈비언'이라는 용어에 굉장한 거부감이 있었어요. 차라리 '게이'라고 생각하는 게 나았어요. '레즈비언'에 관한 부정적인 이미지는 상담소에 가입을 하고 활동을 하면서 차츰 사라졌어요."
 
‘레즈비언’에 비해 ‘게이’가 더 긍정적인 느낌
 
로마님이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려주셨는데요. 로마님은 '레즈비언'보다는 '게이'라는 낱말을 훨씬 편안하게 받아들였다는 겁니다. '게이'라는 낱말이 긍정적인 느낌이었다고 해요. 그래서 물었어요. "어떤 의미에서 '게이'가 '레즈비언'에 비해 긍정적인 이미지라고 말하는 거예요?"
 
"제 생각에는 정보량의 차이 때문에 그런 이미지들이 생긴 것 같아요. '레즈비언'에 관한 정보보다는 '게이'에 관한 정보가 더 많잖아요. '게이'에 관해서는 정보도 많고 자주 접할 기회가 있으니까 덜 불편한데, '레즈비언'은 접할 기회도 없고 이상한 루트를 통해서 접하게 되니까 아무래도 더 불편하고, 혐오스러운 느낌이 들고 그랬어요. 예전에 박통도 그런 말을 했잖아요. 레이디경향에서 나온 레즈비언 이미지 때문에 레즈비언에 대해서 부정적인 이미지를 가지게 되었다고요. 저 역시 마찬가지 경험이 있어요. 그래서 '레즈비언'하면 '섹스만 하는 사람들'이라는 이미지가 떠올랐던 것 같아요."
 
사실 '게이'는 텔레비전 프로그램이나 신문을 통해서 '동성애자'가 아닌, '트랜스젠더'를 의미하는 낱말로 자주 사용되었잖아요. PD수첩이나 시사매거진2580 같은 프로그램에서 특히 그랬죠. 그런데 로마님의 경우에는 그런 루트를 통해 그 용어를 접한 것이 아니라, 책을 통해서 '게이'라는 용어를 접했다고 합니다.
 
"저의 경우 '게이'라고 할 때 '트랜스젠더'가 떠오르지 않아요. 20대 초에 최 안드레아씨가 쓴 <터부에서 상식으로의 전환>이라는 책을 읽었는데, 그 책에 소개되어 있는 용어 덕에 그런가 봐요. 그 책의 영향을 많이 받았어요. 동성애자가 그렇게 혐오스럽기만 한 사람들이 아니라는 것도 알게 되었고요. 그 책이 저를 굉장히 안도하게 해줬어요."
 
서른두 살, 동굴에서 나와 사람들과 교류하다
 
레즈비언으로서의 로마님의 인생은 서른두 살을 기점으로 나누어 설명할 수 있다고 합니다. 서른두 살 이전에는 혼자서 도서관을 돌아다니면서 동성애나 동성애자에 관한 책이나 자료들을 찾아 읽었다고 해요. 혼자 아주 부지런하게 자신의 정체성을 설명해줄 수 있는 자료들을 찾아왔단 겁니다. 서른두 살 이후에는 책에서 머물지 않고 실제로 사람들과 직접 교류를 하면서 스스로의 정체성을 더욱 더 견고하게 만들기 위해 노력해왔고요.
 
"서른두 살 이전에는 나 홀로 동굴 안에 앉아서 '나는 레즈비언이야!'라고 외쳤다면, 서른두 살 이후부터는 세상 밖으로 나와서 사람들 틈 안에서 살면서 '나는 레즈비언이야!'라고 외치고 있는 거죠."
 
서른두 살. 로마님은 한국레즈비언상담소에 가입을 하면서부터 처음으로 '레즈비언'이라는 사람들을 만나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불과 4년 전의 일이네요. 같은 나이인데, 저의 경우에는 스물두 살부터 '레즈비언'이라는 사람들을 만났는데, 로마님은 서른두 살이 되어서야 그 만남을 시작한 겁니다. 안타까운 마음이 들어요.
 
그래도 더 늦은 나이 아니, 평생 레즈비언이라고 하는 이들과 교류하지 않고 지내는 사람들도 있을 테니, 깊이 안타까워할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이제라도 이렇게 교류할 수 있게 되었으니 다행입니다. 상담소나 그루터기 회원 활동을 시작하면서 생각의 변화 같은 것이 있었는지 궁금했어요.
 
"상담소 활동가들은 대부분 학생이잖아요. 학생들이어서 그런지 사고방식도 굉장히 자유분방한 것 같고, 뭔가 모를 거리감 같은 게 느껴졌어요. 뭐랄까, 그저 '정치적으로 굉장히 올바른 사람들의 집단'으로만 느껴졌어요. 아무래도 운동단체라고 생각해서 그렇게 느꼈던 게 아닐까 싶어요. 처음에는 정말이지 평범한 레즈비언들로 보이지 않았어요. 그런데 그루터기에서 만난 레즈비언들은 너무나도 '평범한 사람들'인 거예요. 그게 얼마나 놀라운 일이었는지 몰라요. 그냥 길거리에서 만날 수 있는 '아주 평범한 사람들'이 레즈비언인 것이죠. 나도 그렇게 평범한 사람이라는 거잖아요. 그래서 충격이었고, 그래서 기뻤어요."
 
“엄마에게 커밍아웃 할 계획이 있거든요”

 
로마님은 현재 공무원 시험공부를 하고 있습니다. 햇수로 5년 째 공부를 하고 있어요. 이름 하여 '장수생'인 것이지요. 공무원 시험 준비만 했던 시간이 3년이고, 일을 병행하면서 공부를 한 시간이 2년입니다. 그 전에는 안경사로 일을 했는데, 보다 '안정적인 직업'을 가져야겠다는 생각으로 공무원 시험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어떤 의미에서의 '안정적인 직업'을 원했는지 물어봤어요.
 
"독립성이요. 안경사로 일을 하면서 같은 공간에 12시간씩 사장님과 함께 일을 해야 했는데, 쉽지 않았어요. 사장님으로부터 직접적인 영향을 많이 받잖아요. 생각이 비슷하고 소통할 수 있는 것들이 있으면 그나마 견딜 수 있을 텐데, 대개는 그렇지 않으니까요. 사장님이 언제고 '너, 나가!'라고 말하면 나와야 하잖아요. 그런 부분에서 항상 불안을 느꼈거든요."
 
공부하는 5년 동안 필요했던 생활비의 대부분은 로마님이 스스로 벌어 해결해 왔다고 합니다. 전단지 돌리는 일, 극장 매점 아르바이트, 공공기관에서 실시한 통계조사 업무, 건설현장에서 '닥트 보온'하는 일 등을 해왔다고 해요. 이야기를 듣는데, 이런저런 고생이 참 많았겠다는 생각이 들면서 안타까운 마음이 들더군요. 이렇게까지 열심히 시험 준비를 하고 도전을 하는 이유에 무엇인지 물었어요.
 
"제가 근성이 있어서 이렇게 지속적으로 도전하는 것 같지는 않고요. 처음 시작은 그렇지 않았지만, 결국 이렇게 '장수생'이 된 마당에 이것 말고 도전할 수 있는 일이 더는 없는 것 같아요. 취업 연령이라는 것이 있는데, 이미 그 연령을 지나버린 것도 계속 도전하게 되는 중요한 이유에요. 저와 비슷한 나이의 사람들, 아마 대부분 비슷한 상황에서 비슷한 이유로 재도전하고 있을 거예요. 그래도 올 해에는 끝내고 싶어요."
 
부디 올해에는 로마님이 원하는 좋은 결과를 얻기를 바랍니다. 그런데 워낙 공무원 시험이라는 것이 경쟁률이 대단하잖아요. 그래서 이렇게 물었어요. "혹, 이번 시험에도 합격하지 못 하면, 차선책이랄까. 다른 가능성에 관해서도 생각해 둔 것이 있나요?"
 
"그 질문은... 이 비유가 어떨지 모르겠지만, 평생 농사만 지어오던 사람의 땅을 빼앗고는 '너, 다른 일 뭐할래?'라고 묻는 것처럼 들려요."
 
이상한 질문했다가 이렇게 혼났습니다. 짧지 않은 시험 준비 기간 동안, 가족들의 지원과 지지가 있는지 궁금했어요.
 
"어머니만 계시는데, 어머니는 '네가 원하면 무엇이든 다 해봐라!' 하세요. 딸 하나 있는 것이 나이는 먹어서 도서관에 앉아 공부만 하고 있으니 안타까운 마음을 가지시기도 하지만, 도전을 계속하든 포기를 하든 어떤 선택이든 지지해주실 분이에요."
 
로마님의 어머님은 로마님이 레즈비언이라는 사실을 전혀 모르고 계신다고 합니다. 하지만 로마님이 아주 어릴 때부터 엄마에게 '나는 결혼 안 해요'라고 열심히 말해 와서 그런지, 가끔 생각날 때마다 한 말씀씩 하시지 결혼문제로 스트레스 주거나 하지는 않는다고 해요.
 
"언젠가 엄마와 동성애에 관한 대화를 한번 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입을 열었는데, 엄마가 기본적인 용어 자체를 모르고 계시더라고요. 대화가 불가능하더라고요. 용어부터해서 어떻게 알려드려야 할 지 고민 중이에요. 저는 커밍아웃 계획이 있거든요. 충격을 최소화하면서 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고 있어요. 당신의 딸이 꼭 남자와 살지 않아도 잘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을 알려드리고 싶어요. 엄마는 결국 저를 이해해주실 거예요. 제게 이렇게 말씀해주실 것 같아요. '동성애에 관한 인식이 좋지 않은 건 사실이지만, 그래도 내 딸이 레즈비언이라면 엄마는 우리 딸 인생 지지한다!' 이렇게요."
 
자기 정체성을 유지하기 위해서 필요한 ‘일’

 
시험 준비 중인 로마님은 특별히 만나는 이성애자인 친구들은 없다고 합니다. 하지만 바쁘고 힘든 와중에도 레즈비언 지인들은 꾸준하게 만나고, 상담소와 그루터기 회원 활동은 지속하고 있다고 해요.
 
"서른두 살 이전까지 레즈비언들을 만난 적이 없었잖아요. 레즈비언 모임 활동을 하는 것은 제게 있어 일종의 '의무'라고 할 수 있어요. 인간관계를 너무 소홀히 해왔는데, 나는 인간관계를 잘 하는 훈련이 필요한 사람이기도 하고요."
 
로마님에게 마지막 질문을 던졌어요.
"로마님에게 일은 뭡니까? 일하는 로마님에게 레즈비언은 뭡니까?"
 
"명개님 인터뷰에도 잠시 언급되던데요. 제 생각에도 레즈비언이 자기 정체성을 유지하기 위해서 일, 경제력은 정말 중요한 요소인 것 같아요. 최소한의 자기 독립성을 유지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생활인으로서, 레즈비언으로서 제게는 일이 중요하고, 그래서 지금 이렇게 노력하고 있어요."
 
상수동에서 만나 인터뷰를 시작하기 전에, 로마님과 식사를 했어요. 식사를 하고 식사비용을 제가 내겠다고 했죠. 그랬더니 로마님이 극구 사양을 하는 겁니다. 그래서 제가 이렇게 말했어요. "평소에 친한 척도 하지 않다가 이렇게 자기가 아쉬우니까 인터뷰 해달라며 부탁이나 하는 저 같은 사람이 식사 대접하는 건 당연한 일입니다. 그러니 사양 말아요."
 
인간관계에 있어 '시간'을 중시하는 저는 1년 전에 로마님에게 "이제, 우리 말 놓고 친구 하죠"라고 말했어요. 이해심 많은 로마님은 "알겠다" 답해주었고요. 하지만 우리는 아직도 만나기만하면 존칭을 쓰고, 둘만 남게 되면 서로 어색해하는 사이랍니다. 지난 번 인터뷰를 위해서 만난 자리에서도 우리는 어김없이 썰렁한 분위기를 연출했답니다.
 
아무래도 얼굴 보고 직접 말하기는 부끄러울 것 같으니, 지금 [인터뷰 칼럼]을 통해 로마님에게 한 마디 해야겠습니다.
 
로마님, 4년 전 쌀쌀맞게, '재수 없게' 군 것 사과할게요. 1년 전 '친구하자'던 것 기억하죠? 우리 앞으로 조금 더 자주 연락하고, 덜 썰렁할 수 있도록 함께 노력하기로 해요. 저도 정말 노력할게요. 로마님도 말씀하신 '의무감'으로라도 내게 관심을 가져주세요. 그리고 엄마에게 할 커밍아웃 준비과정에서 제가 도움이 될 일이 있다면 무엇이든 도울게요. 언제든, 무엇이든 말해주어요. 그리고 다섯 번째 도전, 좋은 결과가 있기를 바랍니다. 다음 그루터기 정모에서 다시 만나요. 인터뷰 청 들어주어서 정말 고맙습니다. 
일다 www.ildaro.com [이전 칼럼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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