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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 매력에 반하다

제주도에 커피나무 심는 여자, 노진이

그 여자들의 물결 일다 2010. 5. 25. 08:30
[박진창아가 만난 사람] 커피농사꾼 노진이의 모험

1980년대 초입, 중학생이던 나는 시험을 앞두고 바짝 긴장했다. ‘마시면 잠이 안 온다’는 신기한 물질에 대한 정보를 들은바 있어, 기어이 어른들이 마시는 일제 커피의 쓰디쓴 커피 맛을 알게 되었으니. 시험결과는 기억이 안 나지만, 분명한 것은 그때부터 나는 커피의 충실한 노예가 되었다는 것이다.

 
커피를 마셔서 피부가 까무잡잡하다는 놀림을 받더라도 포기할 수 없었던 그 맛은, 황금비율 커피믹스가 나온 이후로도 하루 7~8잔은 기본으로 이어졌다. 그 달달한 맛이 헝클어지고 부서지고 건조하던 시절에 위로가 되어주고 나름 창조적 활동에 기여한바 크니, 몸에 해로운 것이 정신에 이로운 이놈의 독한 '중독'이라니.
 
게다가 요즘은 핸드드립 커피 맛을 알게 되어 핸드밀과 드립주전자를 이고 다니는 달팽이족이 되었다. 나의 커피중독은 어쩌면 한국 사람의 커피소비 바로미터라고도 할 수 있으리라.
 
로스팅 전문가에서 커피농사꾼이 되다
 
제주도에서 커피나무를 키우는 그녀, 노진이(42)님을 만났다.
 
적도를 중심으로 남북위 25도의 커피벨트 지역을 벗어난 곳에서 커피나무를 키우는 무대뽀 여자! 어떻게 커피나무를 심을 생각을 했냐고 물었더니, 안경너머로 흘러나오는 눈웃음에 버무려진 짧은 대답이 돌아온다. “신선한 커피를 볶으면 어떤 맛일까 궁금했거든요.”

 
커피 로스팅(커피를 마실 수 있는 상태로 굽는 것) 전문가인 그녀의 호기심 가득한 모험은 북위 33도에 위치한 제주도에서 3년 전에 시작되었다.
 
2008년 미국 종묘사를 통해 해발 1000m 이상에서만 자라는 아라비카종 씨앗을 들여왔는데, 파종이 잘 안되어 실패하기를 여러 차례! 커피를 아는 전문가는 검정 고무신을 신은 커피농사꾼이 되어야만 했다.
 
말 그대로 ‘처녀 농군’. 난(蘭)전문가인 노명철님(노진이 커피공동체의 든든한 일꾼이기도 한)의 도움으로, 커피나무의 생장점을 따고 절개하여 배지에 생장점을 심고, 무균 병에 넣어 6개월을 기다리는 배양과정과 6만 번이 넘는 화분갈이를 통해 2만주의 커피나무를 키워낸 것이다.
 
지금은 파종한 것까지 포함해서 2만5천주의 커피나무가 제주 땅에서 씩씩하게 자라고 있다. 왜 제주도였을까?
 
나 자신을 정면으로 바라본 순간
 
‘화산토, 적당한 해양풍, 15~25도 사이의 기온’이 커피나무를 키우기에 딱 들어맞았다는 제주 땅은 바로 어머니의 고향이기도 했다.

 
“어머니가 워낙 병약하세요. 심부전증이라는 지병이 있어서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는 상태지요. 집에 환자가 있다는 거는 (누군가에게는) 아주 고통스러운 것 같아요.”
 
오랫동안 신어서 많이 낡은 버선코를 덧대고 기워낸 듯한 생활의 피로감과 부지런함이 느껴진다. “어머니가 환자인 탓에 직장생활은 엄두를 낼 수가 없었어요. 대학생 때부터 과외를 하며 용돈을 벌고, 어쩌다 돈이 필요하면 신문배달, 촬영보조, 화실에서 그림 배우며 일을 하기도 하고... 늘 뭔가 배우는 게 재밌었어요.”
 
수학교육과를 졸업하여 수학 과외만 10여년을 한 그녀에게 세상은 어쩌면 영어처럼 어려운 곳이었다. “직장생활을 안 해봐서인지 사람을 상대하는 것이 굉장히 부담스럽고 어려웠어요. 지금은 많이 나아졌지만.”
 
사소한 일에도 어떤 식으로 말해야 할지 되새김질 하듯 조심스러워하는 모습을 본 적이 있는데 비로소 이해가 되는 것이었다. 그냥 너무 어려웠던 거다.
 
질 좋은 커피가 만들어지기 위해 까다로운 조건이 필요하듯이 한 사람이 온전한 자신을 찾는 길 역시 때가 있나보다.
 
“어느 날부턴가 남의 집에 신발 벗고 들어가는 것이 이상한 거예요. 알바비를 깎거나, 제때에 주지 않는 경우도 많고, 우리 아이는 이러니까 저러니까하는 요구 사항들이 많아지고… 과외에 환멸이 생기기 시작하는 거예요.”
 
스스로에게 1년의 파업기간을 주고 생전 처음 일본으로 여행을 떠났다. 짧은 기간의 여행이었지만 일본이라는 나라에 한껏 매력을 느껴 일본어 공부까지 하는 열정까지. 문득 말괄량이 삐삐가 떠오른다. 호기심 많고, 모험가인데다 하고픈 것은 해야만 하는 기질이 쏙 빼닮았다.
 
“어느 날 어머니가 대단히 아파서 병원에 입원한 적이 있어요. 그때 엄마가 의식도 없고, 돌아가신다고 생각하니 갑자기 먹먹해지는 거예요. 그동안의 내 삶을 돌아보는데 해놓은 것도 없고, 결혼은 생각도 안 해봤고, 뭘 하고 살아야할지도 모르겠고… 내 자신을 정면으로 바라본 순간이었죠.”
 
떡잎을 드러낸 ‘노진이 커피공동체’
 
어머니 병수발을 하며 전문적으로 커피를 배우기 위해 아카데미를 다니며 바리스타와 로스팅(커피콩 볶기) 전문가과정을 밟았다. 까다로운 눈썰미와 입맛으로 취미를 직업으로 바꾸며 카페컨설턴트로 활동하기 시작했다. 제주도에서 커피마니아들 사이에 잘 알려져 있는 이레하우스, 신비의 사랑, 쇼코아르, 슬로우가든 등의 공간들이 그녀의 꼼꼼한 카페 컨설팅을 거쳐 탄생하였다.

 
커피나무가 2~3년이 지나서야 빨간 체리를 맺듯이 그녀도 그렇게 자신의 열매를 알차게 키워낸 것이었다.
 
“커피 열매는 산지에서는 1년에 두 번 수확한다는데 열매가 맺히고 6개월 뒤에 커피체리를 수확할 예정이에요. 올해 10월~11월중에는 직접 수확한 커피 체리를 로스팅한 제주도산 커피를 맛볼 수도 있죠.” 땀 냄새나는 커피농사꾼의 얼굴이 커피나무 꽃처럼 활짝 피어난다.
 
제주도 제주시 삼양동에 위치한 그녀의 1700여평 커피농장에는 커피가 좋아 함께하는 ‘노진이 커피공동체’의 멤버인 노명철, 선우경애님이 있다. 그들은 무대뽀인 그녀를 두고 대놓고 이렇게 말한다.
 
“계산이 없는 사람 같아요. 똥인지 된장인지 구분 못하고 덤벼드는데 뭔가 된단 말이죠.” 수학 과외만 10여년을 했다는데 계산이 없다니…
 
커피가 워낙 노동집약형 농산물인데다 처음 시도하는 거라 어찌될지도 모르고 빚도 많고, 커피가 나도 잘 안 팔리면 어쩌나 걱정인데다, 인건비며 기름 값이며 여러모로 걱정이 많은 것이 사실이다. 어쩌겠는가! 뒤로 물러설 수 없을 때는 앞으로 나아가야 할뿐이니.
 
제주도에는 ‘노진이’라는 멋진 이름을 내건 행복한 커피공동체가 튼실한 떡잎을 드러내고 있다.  일다 2010 스토리텔링 좌 "풀뿌리 활동가 13인"과 만나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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