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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춘신의 생활문학’ (13) 
 
안부를 묻는다.  때로는 내가 때로는 그가 서로의 근황을 묻는 전화를 한다.  며칠 전 통화를 하게 된 J선생은 ‘당신이 시골로 떠난다는 기별을 듣고 참담했으며, 어떻게 살려고 저러지’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J선생은 내가 처한 빈곤한 여성가장. 염병할 놈의 돈에 기진맥진한 내 경제력에 대한 용어를 선택했다. 그들이 조언이나 충고를 하고 싶은 열망에 가득 찬 표정을 지을 때마다 그가 내 정보 중에 어떤 것을 선택하는지 알게 된다.
 
어제만 해도 땅바닥에 납작 엎드려 있던 냉이 꽃대가 성큼 자라났다.  봄은 밤사이에 달음질을 친다. 한눈 팔 겨를도 없이 숨 가쁘다.
 
그때도 지금처럼 봄 한가운데 서 있었다. 기척도 없이 밥풀 같은 꽃망울부터 먼저 터트린 목련을 바라보았다. 사무실 앞 건물에 있는 한 그루의 목련 앞에서 깊은 사색에 잠겨 있었다.
 
“못 참겠지?”
“응? 뭘?”
“시치미 떼지 마.  남자 생각나서 그러지?”
“재미있는 말이네. 그런가?”
“성격차이네 뭐네 이유도 많지만, 속궁합만 맞아봐. 우리 옆집 사는 여자는 서방이 두들겨 패고 나면 그렇게 잘해준대. 그 맛에 산다더라.”
 
커피잔을 들고 슬그머니 내 옆에서 귀엣말을 하는 동료의 눈이 시궁창속 쥐새끼의 그것과 닮았다. 그 눈빛 앞에서 두려움을 느낀다.
 
내가 처한 환경이 드러날 때 절반이 넘는 사람들이 선택하는 용어는 여자의 성이다. 이혼의 동기가 그 무엇일지라도 ‘성’보다 우선 하는 게 없다는 정형화된 결론을 내려준다. 과연 그럴까. 내가 교류하는 몇몇의 친구들 또한 다양한 경로를 통해 혼자 사는 여자이다. 사별을 빼고 이혼이라는 과정으로 이별을 고한 그녀들에게 물어보았다.
 
성격차이를 빌미로 ‘성’적 차이 때문이었는가 말이다. 당신이 이혼한 여자라면 그러한가.
 
들판에 피는 꽃을 보라. 하다못해 도로변에 핀 개나리나 진달래를 보라. 저마다 만개한 기쁨을 누린다. 키 작은 채송화 꽃잎 앞에서 외줄기로 우뚝 선 해바라기 꽃이야말로 만개한 것이라고 말할 수 없다.
인생이 그 한가지 로 통일된 행복이라면 그 보다 좋을 수가 없다.
그러니, 이제 그 음침한 낯빛을 내게서 거두어 달라.
한 처음. 신이 보시기에도 참 좋았다고 표현한 사람 아니겠는가.
여자를 성교(섹스)만으로 조종할 수 있다고 믿는 것은. 
 
글을 마칩니다.
저는 쓰느라 고생했고
당신은 읽느라 고생했습니다.
문학이라는 이름으로 포장은 했으나 졸필임을 저 또한 알고 있습니다.
우리 다시 만나게요.
고맙습니다. 
 
ⓒ일다 www.ildar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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