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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춘신의 생활문학’ (10) <일다>는 개인의 입체적인 경험을 통해 ‘여성의 삶’을 반추해보는 생활문학 칼럼을 개설했습니다. 필자 윤춘신님은 50여 년간의 생애를 돌아보며 한부모로 살아온 삶 이야기, 어머니와 할머니와 외숙모 이야기, 일터 이야기, 그리고 딸과 함께 거창으로 귀농한 현재이야기를 들려줄 것입니다. -편집자 주

“무슨 일이야?”

 
“하이고 뭐 이런 일이 다있노”
 
어지간한 일에는 호들갑을 떨지 않는 친구 얼굴이 벌겋게 달아 올라있었다.
 
아랫목에 깔아놓은 이불이 불룩하니 배를 내밀고 있다. 내 발이 들어가니, 들어가 있던 발들이 꿈지럭거린다. 이불 한 자락에 여덟 개의 엄지발가락이 모여 작은 산봉우리를 만들었다.
 
“나도 처음에는 진짜 당황했어”
 
자신도 일년 전에 겪었다는 이 일을 두고, 마흔 둘인 상아 엄마는 일년을 버티다 주민등록등본과 도장을 가져다주었다고 했다.
 
다섯살바기 상아와 아홉살 인주는 밥상에서 신이 나있다. 인주는 상아 같은 동생이 있으면 좋겠다고 말하지만, 상아와 인주에게는 아빠가 없으니 언니나 동생이 생길 까닭이 없을 것이다.
 
딸기밭 비닐하우스에서 선별 작업을 하는 서른아홉의 인주 엄마 앞머리가 젖어있다. 얼마나 젖어있었는지 이마에 착 달라붙은채 한 올도 떠 있지 않았다. 머리 마를 새도 없었나보다.
 
허리가 끊어 질 것 같은데도 시골살이가 재미나 죽겠다고 한다. 우리 마을 이장님은 그런 거 안 물어 보더라며, 혼자 산다고 하는 것 보다는 혼자 살되 자식이 있는 자신의 처지가 유리했음을 다행스러워 한다.
 
“마을일을 보는데 등본하고 도장이야 필요하다치자. 그래도 이번일은 너무해”
 
“뭐가 너무하냐. 이장은 남자잖니. 여자 혼자 시골로 이사 온다고 빈 집 치우고 있는데 이상하게 보는 거 당연하지. 그러니까 불러다가 주민등록번호하고 이름부터 대라고 했겠지”
 
“다짜고짜 불러다가 주민등록번호에다, 이름에, 본적지까지 물어보는 건 인권침해잖아”
 
“인권 같은 소리하네. 우리한테 인권이 어디 있어”
 
바퀴 달린 가방을 돌돌돌 굴리며 훌쩍이면서 가더란다. 읍까지 태워다 준다 해도 걷고 싶다며 뿌리치고 걸어서 갔다고 한다. 자신은 채식주의자라며 된장국에 허연 알배추 속살을 오물거린 던 입매가 생각났다.
 
그녀. 자유에 대한 갈증을 토로하던 그 날도 이렇게 서로에게 발등을 기대고 앉아 있었다.  내가 사는 아랫마을에 암 수술을 하고 이사 오려던 친구가 기어이 마을 반대에 부딪힌 일을 두고 오늘처럼 ‘너무해’ 그랬었다.
 
그 마을에서는 여자 잘못 들이면 도둑질을 하거나 마을 남자들과 바람이 날 수도 있다는 것이었다. 마을마다 실제로 있었다는 사례의 주인공은 전부 여자들이냐며 키득거리기까지 했다. 객지 사람 들이는데 죄 짓고 도망 온 건 아닌지 불안한 심정을 이해하자는 말도 했다. 불과 일주일 전 일이었다.
 
“이장한테 이유나 한번 물어 봐라”
 
“애가 그렇게 떠났는데 마음이 편했겠나? 물어봤다 아이가”
 
벌겋게 달아오른 친구 낯색이 돌아올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이 마을 산 지 제법 세월이 흘렀음에도 운신의 폭이 좁아 보였다.
 
“마을에 들어올라믄 쓸모 있는 사람이 들어와 한다고 하는데 뭐라고 말을 할끼가”
 
마치, 면전에서 그 말을 들은 듯 황급히 뻗었던 다리를 거두었다. 발등 빠져나간 이불이 쓸려 내린 생선의 창자처럼 흐물거렸다. 구들장 식는다며 반듯하게 펴놓을 생각을 아무도 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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