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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험으로 말하다/이경신의 죽음연습

아름답게 늙는다는 것

그 여자들의 물결 일다 2010. 4. 12. 11:06
도보여행자 베르나르 올리비에의 노년을 엿보며
 
도서관에서 ‘희망도서’가 종합자료실에 비치되었으니, ‘우선대출’할 수 있다는 연락을 보내왔다. 난 서둘러 도서관을 향했다. 이 혜택을 받을 수 있는 기간이 3일뿐이기 때문이다.
 
나는 매 달 3권 정도의 책을 신청하고 있다. 읽어보고는 싶지만 내 좁은 서가를 채우고 싶지 않은 책, 하지만 다른 사람들과 함께 보고 싶은 책, 관심은 가지만 구매 확신이 들지 않아 검토해보고 싶은 책 등을 신청한다.
 
신청 후 책이 도착하려면, 한 달 반에서 두 달 정도의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진득하게 기다리는 여유도 필요하다. 이 ‘희망도서신청제도’를 알게 된 지는 3년 정도 되었는데, 좀더 일찍 알았다면, 내 책장의 책이 지금보다 줄어들었을 지도 모르겠다.
 
저녁 노을빛을 닮은 노년을 꿈꾸며 
 
이번에 내가 희망도서로 신청한 책들 가운데 한 권은 바로 도보여행자로 유명한 프랑스인 베르나르 올리비에의 <떠나든, 머물든>이다. ‘인생은 60세에 시작한다 (La vie commence à 60 ans)’라는 원제에서 짐작할 수 있듯, 저자가 은퇴 후 꾸려나가는 삶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이미 난 <나는 걷는다>라는 제목의 책을 통해 그의 노년의 삶을 감동적으로 접한 바 있다. 아무튼, 나는 소위 ‘노년기에 속해 있는 사람’의 삶과 관련된, 이런 류의 책들을 즐겨 읽는 편이다.

 
노년이라... 정확히 몇 살부터 노년이 시작된다고 꼬집어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생명체가 겪는 탄생, 성장, 노쇠, 소멸의 변화 과정은 칼로 싹둑 자를 수 없이 자연스레 이어져 있는 것이니 말이다. 그래도 오늘날 ‘노년’은 엄연히 존재하고 있으며, 그것은 평균 수명, 사회적 은퇴의 시기 등과 맞물려 이해되고 있다. 늙는다는 지극히 연속적이고 자연스러운 삶의 과정이 인간사회 속에서 불연속적 시기로 구획되어 체험될 뿐만 아니라, 그리 환영받지도 못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피할 수 없어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야 하는, 아니 죽음이 두려워서 할 수만 있다면 무한히 연장하고 싶은 시간일 뿐이다.
 
하지만 나는 어릴 때부터, ‘인생의 노년은 마치 하루 중 해지기 직전, 하늘이 노을빛으로 아름답게 물드는 일몰시간과 닮아 있지 않을까?’ 하고 늘 생각해왔다. 죽음에 이르기 전, 늙어 쇠약해지는 그 시기야말로 내 인생의 가장 아름다운 시간이 되리라 막연히 꿈꿔왔던 것 같다.
 
잔병을 달고 살아온 개인적인 경험 때문에, 게다가 50대 중반에 생을 마감한 부모님을 둔 탓에, 노년의 문턱이 너무 멀고 아득하게 느껴져, 사실은 노년 자체가 크게 실감나지도 않고 노년을 살 수 있을지도 여전히 의문이 들지만, 내가 그 시기를 살 수 있다면 난 행운으로 여길 것이 분명하다. 그리고 기왕이면, 성숙해서 아름다운, 저녁 노을빛을 닮은, 그런 노년을 맞고 싶은 것이다.
 
‘한 번 더 튀어 오르기’
 
“사람은 나이가 들면서 얼마나 천박해지는가! 무덤 안처럼 케케묵은 냄새가 난다. 노인들의 지혜는 흙을 연상시킨다. 그 속에서 불멸의 징조는 조금도 찾아볼 수 없다. 그들은 나에게 지렁이와 땅강아지를 연상시킨다.” /헨리 데이빗 소로우 <소로우의 일기>(도솔 1996) ‘8월 16일’자
 
소로우가 경멸하듯 내뱉고 있는 것처럼 우리 주변의 많은 노인들은 무기력하고 답답한 존재, 거추장스러운 존재로 전락한다. 대개는 젊은 시절 죽도록 일하다보니 은퇴 후 시간을 어떻게 보내야 할지 몰라 방황한다. 모아둔 돈이 있으며, 소비적 즐거움에 시간을 소모하고, 하던 일마저 빼앗겨 빈곤의 나락으로 떨어진 노인은 하루하루 생존하기도 버겁다. 경제적으로 누군가에게 의지해야 한다면 삶은 이전보다 확실히 더 위축된다. 질병과 고독까지 가세하면 노년의 삶은 더욱더 초라하고 고통스러워진다. 죽음 이외 더 이상의 미래는 없는 듯 연명할 따름이다. 자의건 타의건 세상과도 높은 담을 쌓는다. 게다가 세상에 대한 생각은 그 얼마나 편협하고 보수적인지!
 
그러나 올리비에 할아버지는 다른 노년을 선택한다. 우선, 그는 은퇴 후의 삶을 대다수가 생각하듯 바라보지 않았다.
 
“‘제3기’라고 불리는 이 시기는 인생 전체를 통틀어 가장 진지한 사건이다. 이 시기를 긴 휴가와 혼동하는 일은 나로선 이해할 수 없거니와, 심지어 마치 휴식처럼 간주한다면, 이는 큰 실수다. 당신이 회사를 떠나야 할 때, 사람들은 심지어 은퇴할 나이가 되기 전에도 당신을 출구 쪽으로 떠밀며, 그리고 ‘노동의 가치’ 따위의 뻔한 말로 찬양하며, 당신에게 샴페인을 권하고 DVD플레이어 따위를 선물한다. 그것이 ‘충분히 누릴 자격이 있는 휴식’이다. “늙은 일꾼이여, 이제 쉬시라. 당신은 그럴 자격이 충분하다. 앞으로는 매일매일이 일요일일 것이다.” 허튼 소리. 빈 시간을 메우는 데 충분히 공을 들이지 않는다면, 첫 달 첫 날부터 목요일건 일요이건 날마다 흐리고 공허하고 슬플 것이다.” /베르나르 올리비에 <떠나든, 머물든> (효형출판 2009) ‘인생은 60에 시작한다’
 
물론 그도 많은 노인들이 그렇듯이, 노년의 삶을 기쁨으로 시작하지는 못했다. 더 이상 쓸모없다고 사회에서 퇴물로 버려진 느낌, 가까운 사람들의 상실로 인한 극단적 고독감. 그는 자살을 고민할 정도로 고통스러웠다. 하지만 그는 주저앉지 않고, 죽기 전에 ‘한 번 더 튀어 오르기’로 한다.

 
“나를 버리고, 이 모든 요란한 옷을 벗고, 벌거벗어야 했다. 여행은 또한 죽음의 신이 휘두르는 거대한 낫이 생의 밧줄을 끊어버릴 때, 최후로 출발하는 법을 배울 수 있게 해주기 때문이다. 죽음이라? 그렇다. 모든 사람들이 거쳐야 하는 죽음의 통로를 나라고 해서 벗어날 이유가 있겠는가... 하지만 마지막 순간이 오기 전, 나는 다시 튀어오르고 싶다. 사람들이 턱을 바르르 떨면서 말하는 ‘나이’를 먹어감에 따라 늙어서 쇠약해지다가 죽음으로 이어진다. 내게도 그 순간들이 다가오고 있다. 나는 노인들이 하나둘 가입하는 클럽에 들어가기 전, 다시 한 번 내 젊음을 누리고 싶었다. 아직 다리도 튼튼하고, 눈도 밝다는 것을 내 자신에게 증명해 보이고 싶었다.” /베르나르 올리비에 <나는 걷는다>(효형출판 2003) 3권 ‘스텝에 부는 바람’ 
 
그리고 길을 떠난다. 낯설고 먼 길을. 그것도 걸어서. ‘소파에 앉아 근근이 연명하기 보다는 위험하게 사는 것이 더 낫다’면서.
 
윌리암 코프스웨이트는 “휴가나 은퇴를 맞아 ‘어디론가 떠날 필요’를 느끼는 사람은 아직 자신에게 맞는 일을 찾는 기쁨을 누려보지 못한 사람”이라며 안타까와하고 있지만, 자신에게 맞는 일을 찾지 못했다면 길을 떠나서라도 그 일을 찾아보는 것이 현명하고 용기 있는 행동이라 생각한다. 올리비에 할아버지는 장거리 도보여행길에서 자신의 이전 삶을 정리하고, 즐기고 몰입할 수 있는 일, 의미 있고 신뢰할 수 있는 일을 찾아내는 소중한 기회를 얻는다.
 
첫 번째 장거리 도보여행, 즉 ‘셍 자크 드 콤포스텔라’ 길을 걸으면서, ‘문턱(Seuil)’이라는 단체를 만들어 보자는 멋진 생각의 단초를 찾는다. 이 단체는 비행청소년, 범죄청년이 감옥이나 보호소에 들어가지 않고 장거리 걷기 프로그램에 참여함으로써 새 삶을 살 수 있는 희망과 의지를 얻을 수 있도록 도와준다. 그리고 이후 ‘실크로드’를 걸으며 썼던 글을 책으로 출판해 받은 인세를 그 단체의 운영자금에 보탠다.
 
올리비에 할아버지의 노년은 확실히 특별하다. 젊은 시절보다 더 지혜롭게 세상과 소통하고 사회에 기여하는 법을 찾아낸다. 또 젊은이 이상으로 모험적이고 진취적이며 창의적이고 생산적이다. 노년에도 여전히 꿈꿀 수 있고, 자신에게 어울리는 일을 찾을 수 있다는 것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몸과 마음은 다르게 늙는다
 
그렇다. 늙어서는, 할 수 있을 것 같은 모든 일을 할 수는 없다. 하지만 할 수 있는 일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비록 젊은 시절보다 욕망의 제약이 더 클 수는 있겠지만 나이가 들었다고 욕망이 모두 사라지는 것도 아니다. 시간이 우리의 몸을 마모시키더라도, 청력, 시력과 같은 육체적 능력이 떨어지는 것이 사실이라 하더라도, 마음은 육체와는 별개의 달력에 따라 늙어간다는 말을 놓쳐서는 안 된다.
 
나이가 들어도 마음의 젊음은 유지할 수 있고, 그리고 그 마음의 나이는 몸의 나이와는 다를 수 있다. 오히려 젊은 사람들 가운데, 이미 노인 이상으로 노쇠해버린 이들이 얼마나 많은가. 누구든 꿈과 이상을 접고, 흥미로운 일을 찾지 못하고, 성장의 노력을 중단하면 그 순간 늙어버리는 것이 당연하다.
 
반면, 육신은 늙었어도 정신은 끊임없이 자기껍질을 벗어내고 성숙한 존재로 아름다워질 수 있다. 우리는 젊어서 실수도 하고 어리석은 일을 수없이 저지르지만, 자신이 지니고 있는 소중한 씨앗들을 정성껏 키워나가면서 성장의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는다면, 나이가 들어 더 지혜롭고 더 성숙해질 수 있다. 이런 점에서 인생의 가장 아름다운 시기는 청년기가 아니라 노년기라고 말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내가 꿈꾸는 노년이 바로 이런 것이다. 올리비에 할아버지가 부럽다. 
 
[이경신의 도서관 나들이] 빗물의 진실을 아시나요? |  ‘일’이 나를 만든다  www.ildar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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