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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춘신의 생활문학’ (9) <일다>는 개인의 입체적인 경험을 통해 ‘여성의 삶’을 반추해보는 생활문학 칼럼을 개설했습니다. 필자 윤춘신님은 50여 년간의 생애를 돌아보며 한부모로 살아온 삶 이야기, 어머니와 할머니와 외숙모 이야기, 일터 이야기, 그리고 딸과 함께 거창으로 귀농한 현재이야기를 들려줄 것입니다. -편집자 주

엄마는 서서 밥을 먹는다. 밥 먹을 시간조차 없다는 듯이 국 대접에 말아놓은 밥을 한 숟가락 퍼 넣고 움질거리는 동안 일거리를 찾는다.

 
몇 번인가를 물었다. 엄마 왜 그래. 무슨 밥을 그렇게 먹어, 라고 물어본 적이 있다. 서서 먹는 밥이 편하다는 엄마가 천덕스럽게 보였다.
 
논둑에 번지는 개망초 한 움큼을 캤다. 빨간 플라스틱 바구니에 쑥이며 냉이까지 범벅이 되게 캐서 담았다. 실 가닥 같은 뿌리에 달라붙은 흙덩이가 떨어질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호미 끝으로 살살 문질러 떼다가 미안해졌다.
 
들풀 하나도 제 목숨 내어놓기가 저리 어려운가 보다. 야생으로 자라는 고들빼기의 뿌리는 어찌나 단단하게 흙을 움켜쥐고 있는지, 털어내려다 뿌리째 잘리곤 한다.
 
흐르는 물에 말끔해진 얼굴로 생생해진 나물을 바라보다 차마 해먹을 엄두를 내지 못했다. 풀만 보면 징글맞다며 도리질부터 해대는 엄마 몸은 아직도 풀독이 채 빠지지 않았다.
 
어떻게 해서든 새끼들 데리고 살고 싶었다는 엄마의 첫 직장은 서울 선생네 집 식모였다. 선생네 이웃에 살던 언니네 집까지 두 집을 왔다 갔다 하며 허드렛일로 돈을 모았다.
 
그날.  이리 역으로 가는 기차를 기다리고 있었다.
 
“가시나들은 다 델고 어디 간다요?”
 
“행이 만나러 간당게, 그 집 선상이 새끼덜 만나라고 이리역꺼징 차에 태와가꼬 온당만.”
 
“거까정 오믄서 여그는 못 온 당가.”
 
“넘의 집 식모 사는디.. 왔다갔다 헐 수 있능가.”
 
“허긴 그려.”
 
“가시나들 델다 놓고 얼매 만에 오능겨 솔차니 되았고만.”
 
“큰년이 사학년잉게 이년만에 오는 갑네.”
 
할머니 치맛자락을 꼭 움켜쥐고 이리역 대합실에서 엄마를 기다렸다. 기미가 턱까지 몰려 내려 온 엄마는 내 손을 잡거나 안아보질 않았다. 할머니 손만 부여잡고 엄니 좀만 기다리시오 그 말만 연거푸 해댔다.
 
“엄니 선상 내외가 차에서 지달링게 언능 가야혀요.”
 
“그려 언능 가그라, 밥이라도 배불리 먹어야 헐 것인디.”
 
할머니도 엄마도 나와 두 아우들도 서서 서로를 바라보았다. 엄마는 그렇게 눈만 맞추어 보고 선생네 차를 타고 돌아갔다.
 
신태인역 기차표를 끊어 놓고 할머니가 울었다. 너거 엄니를 쪼깐 갈쳐 놓았으면 공장이라도 갔을 것인디, 라며 아쉬워했다. 그런디는 쉬는 날이 있응게 쪼깐 편헐 것이라며 치맛자락에 코를 펭하니 풀었다.
 
외가에서 살던 삼년동안 허락된 단 한 번의 시간이었다. 그 삼년의 흔적이 엄마 등에 새겨졌다. 이제는 밥 좀 편히 먹자는 내 말이 엄마 어깨에 부딪혀 툭 하니 떨어진다.
 
몸으로 겪었을 그 시간의 흔적이 칠순을 넘긴 나이의 엄마 발꿈치에 들러 붙어있다. 차려진 밥상에 손목을 끌고 앉혀야 마지못해 앉아서 밥을 먹는 엄마한테 한번쯤은 말을 해주었어야 했다.
 
밥은 앉아서 먹는 것이라고... www.ildaro.com

[윤춘신의 생활문학]
 
 위자료는 누가 받을 수 있지 | 아담이 떠난 자리 | 언 땅에서 딸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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