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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일을 해야 하는 두 가지 이유 
 
눈이 오다 비가 오다 날씨가 변덕이 심하다. 필요한 책이 있어 주섬주섬 입은 옷에 비옷을 걸치고 우산을 챙겨서 도서관을 향했다. 지난번에 빌린 책을 반납하고, 도서관 서가의 책들도 검토해보고, 또 집에서 참고할 책도 빌려와야 하니 말이다. 집에다 필요한 책 모두를 갖춰놓고 일할 처지도 아니지만, 무엇보다도 동네 도서관을 나의 도서관으로 삼기로 했으니, 읽고 싶은 책, 읽어야 하는 책을 구하려면 몸을 부지런히 움직여야 한다.
 
나처럼 도시에서 정신노동으로 먹고 사는 사람은 몸을 움직일 일이 많다고 할 수 없다. 전업주부였던 어머니처럼 집안일에 최선을 다하는 것도 아니니, 도서관까지 책을 구하러 다니는 몸수고는 내게 꼭 필요한 일인 셈이다. 인간이 정신과 몸을 가진 생명체라는 사실을 되새기며, 몸수고와 머리수고가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도록 애쓰고 있는 중이다. 말이 나온 김에 ‘일’에 대해 생각해 보고 싶다.
 
하기 싫은 일을 하며 먹고 살아야 하는 사람들
 
마침 반납한 책이 ‘일’에 대한 것이기도 했다. 미국에서 1972년에 출간된 스터즈 터클(Studs Teckel)의 <일>(Working)이라는 책이었는데, 한국에서는 <누구나 하고 싶어하지만 모두들 하기 싫어하고 아무도 하지 못하는 일>(이매진, 2007)이라는, 외우기도 힘들 정도로  긴 제목을 달고 번역되었다. 무려 850페이지가 넘는 분량을 생각하면 번역자의 노고에 절로 머리가 숙여진다. 아무튼 1960~1970년대의 일하는 미국인 133명의 생생한 목소리를 그대로 담고 있어, 일단 책을 펼쳐 들면 그들의 목소리에 빠져들게 된다.

 
“저는 왜 사람들이 발끈하지 않는지 모르겠습니다. 이런 일을 하다 보면 제가 기계보다 나을 게 없잖아요. 회사에서는 저보다 기계를 더 애지중지합니다. 기계를 더 배려하고 관심을 쏟죠. 이건 동의하실 겁니다. 기계가 저보다 낫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는 것을요.
 
정말 궁금한 게 있습니다. 저는 회사에 얼마짜리 존재일까요? 기계에 붙이는 가격을 좀 보십시오. 기계가 고장 나면 누군가 대기하고 있다가 즉시 수리를 합니다. 그런데 제가 몸이 망가지면 구석 자리로 밀려나서 다른 사람이 제 자리를 차지하는 걸 보게 됩니다. 회사에서는 오로지 라인을 계속 돌리는 데만 관심이 있습니다.” (필 스톨링스/용접공)
 
“제가 하는 일이 꼭 필요하다거나 사회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 안 해요. (…) 우리가 판매하는 것은 이미지와 소망에 지나지 않거든요. 관절염 치료제나 암 치료약만큼이나 엉터리라고요. 말하자면 여자들한테 이렇게 말하는 거예요. “심해의 조류에서 추출한 이 오일을 바르면 여러분의 얼굴은 시간을 잊을 겁니다.” 터무니없는 헛소리예요. 하지만 이게 제 일인걸요. 제 친구처럼 고집을 부렸다면 일자리를 잃었을 거예요. 그럴 수 없어요. 뭐든 시키는 대로 써내야 해요.” (바버라 헤릭/작가, 프로듀서)
 
살아 남기 위해서는 기계처럼 일하고, 감시당하고, 폐품처럼 도태되지 않기 위해 경쟁해서 돈을 벌어야 한다는 것, 일이 반복적이라 지루하고 무의미하고, 심지어 남을 속이고, 위험하고 비인간적이기까지 해도, 내 목숨을 부지하고 내 가족을 먹여 살리려면 하기 싫어도 그만둘 수 없는 것, 바로 그것이 직업이며 일이라고 많은 이들이 입을 모아 말한다. 이것은 수십 년 전 미국 노동자의 이야기만은 아니다. 오늘을 살아가는 한국인들에게도 여전히 일은 대체로 그렇다.
 
원래 일을 하는 근본적인 이유가 생존을 위해 필요한 의식주를 얻는 데 있는 것이 사실이다(물론 일하지 않아도 생리적, 물질적 욕구를 해결할 수 있는 극소수의 사람은 제외하자).  그런데 우리 대부분은 돈을 주고 필요한 것을 사야 하는 세상에서 살고 있다. 돈이 없으면 필요한 것을 구하지 못해 죽어야 하니까, 고되고 힘들더라도 돈을 벌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그리고 기왕이면 돈은 많이 벌수록 좋다는 것이 다수의 생각이다. 살아 남는 데 충분한 돈을 벌고 있는 사람도 더 많은 돈을 벌기 위해 혼신의 힘을 다한다. 돈을 많이 벌어둬야 나중에 편히 놀고 먹을 수 있다거나 돈을 많이 벌어야 지금 충분히 잘 쓰고 살 수 있다면서 말이다. 아무튼, 다른 사람의 노역을 자신의 이윤추구에 동원한다면 더 이상 생존을 위한 돈벌이는 아닌 것이 분명하다. 심지어, ‘돈’ 자체가 삶의 목적이자 의미인 사람이 등장한다고 해도 놀랄 일은 아니다.
 
급기야 일은 돈벌이에 갇힌다. 돈을 벌지 못하는 일, 돈을 조금 버는 일은 ‘일’의 지위에서 밀려난다. 아니, 더 이상 ‘일’은 아무래도 상관없다. 중요한 것은 ‘돈벌이’이다. 아니, ‘돈을 많이 버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수는 생존을 위해, 무의미하게 돈을 벌고 있을 뿐이다.
 
일을 통한 자기 정체화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겠지만, 나만 하더라도 어린 시절의 꿈은 나를 만족시키는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사는 것이었다. 좀더 자라면서는 ‘의미 있는 일’, ‘남을 돕는 일’, ‘자유로운 일’, ‘생산적인 일’이 차례로 어수선하게 덧붙여졌다. 그때마다 내가 내세웠던 연주자, 외교관, 자선사업가, 농부, 여행가와 같은 구체적인 직업은 사실 생각해보면 그다지 중요하지도 않았다. 직업은 아무래도 좋았다 싶다.
 
아무튼 어린 시절, 자신의 미래를 그리면서, 어른이 되면 하고 싶은 일, 얻고 싶은 직업을 꿈꾸는 것은 바로 자기를 만들어가는 과정, 즉 자기 정체화 과정이다. 이 자기 정체화는 청소년기에 끝나는 것이 아니라 평생동안 지속되는데, 바로 각자가 하는 ‘일’이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
 
‘그 사람이 누구인지를 알려면, 그가 어떤 일을 하고 있는지를 보면 된다’는 이야기를 흘려 들어서는 안 된다. 내가 어떤 일을 하건, 그 일을 하는 동안, 내가 형성되어가는 것이다. 알지 못하는 사이, 내 일은 나와 떼어놓을 수 없는 내 일부, 내 정체성이 되어 있다. 내가 지루하고 답답한 일을 하고 있다면, 내가 지루하고 답답한 사람이 되는 것은 당연하다. 또 자부심 없는 일을 하면서, 어떻게 자긍심이 높은 사람이 될 수 있겠는가!
 
내가 돈을 벌건, 못 벌건, 돈을 많이 벌건, 적게 벌건, 그 일은 나를 만들어 나간다. 내가 좋아하건, 싫어하건, 즐거워하건, 괴로워하건, 희망에 부풀건, 절망에 빠지건, 성공하건, 실패하건, 그 일은 내 자아를 변화시킨다. 자유로운 일이건, 억압적인 일이건, 가치 있는 일이건, 무가치한 일이건, 창조적인 일이건, 무의미한 일이건, 그 일을 통해 내가 완성된다.
 
따라서 그 동기가 무엇이건,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일이야말로 더도 덜도 아니고, 바로 나 자신임을 직시해야 하는 것은, 경우에 따라서 지독히도 끔찍한 진실이다. 내가 이해하는 나 자신도, 밖에서 남이 바라보는 나 자신도 내 일과 동일시될 수 밖에 없다는 것을 부인하기 어렵다.
 
좋은 삶을 살기 위해서도 일을 해야 한다
 
우리는 일을 통해 성격을 좋게도, 나쁘게도 바꿀 수 있다. 잠재력을 개발하고, 독창성을 발휘할 수도 있지만, 오히려 능력이 감퇴하거나 잠재력의 싹조차 제거해 버릴 수도 있다. 또, 하고 싶은 일을 즐겁고 재미나게 함으로써, 또는 남을 도움으로써 스스로 만족하는, 행복한 삶을 영위할 수도 있겠지만, 마지못해 억지로 일을 하다 보면, 불만, 좌절, 소외감, 불행감만 가중될 뿐이다.
 
일은 이처럼 우리를 삶의 수렁으로 내몰거나, 나락으로 내동댕이치기도 하지만, 반대로 우리에게 삶의 의미와 보람을 찾게 하고, 더 자유롭고, 더 지혜롭고, 더 성숙해질 기회를 안겨주기도 한다. 여기에 우리가 일을 해야 하는 또 다른 중요한 이유가 있다. 좋은 삶을 살기 위해, 성장하기 위해서라도 일은 해야 한다는 것이다. 바로 그 점이 일을 단순히 돈벌이에만 가둬놓을 수 없는 까닭이다. 일은 생존의 필요인 외적 필요뿐만 아니라 내적 필요 모두에 부응하기 위해 반드시 해야 하는 것임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우리가 하고 일이 최소한의 생계를 꾸릴 정도의 돈을 안겨준다면, 굳이 돈을 많이 벌려고 애쓸 필요가 없다는 결론에 쉽게 도달할 수 있다. 게다가, 그 일이 자존심을 지켜주고, 재미도 있고, 능력도 발휘케 하고, 나름의 의미도 주고, 남에게 도움도 된다면, 좋은 일이라 봐야 할 것이다.
 
아무튼 일하는 행복을 꿈꾸지 않는 사람은 없겠지만, 그것이 내적 성장과 더불어 가능하다는 것을 잊고 있는 사람은 많다. 유감스럽지만, 우리 주변엔 내적 성장 자체를 가로막는 일이 적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엇보다도 ‘싫어하는 일의 함정’에 빠지지 않아야겠다. 하지만 쉬운 일은 아니다. 그래서 행복한 사람이 드문 모양이다.
 
도서관 문을 나서는 데 밖이 어둑어둑하다. 가로등은 벌써 불을 밝히고 있었다. 빗줄기는 더 거세어졌다. 공원길로 해서 돌아오는 데 구름다리에 이르니 갑자기 비가 눈으로 바뀐다. 빌린 책들로 가득 찬, 묵직한 배낭이 재촉하는 발걸음을 자꾸 뒤로 잡아 끈다. (이경신의 도서관 나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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