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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를 고스란히 담고 있는 서민가옥
일본 교토 여행기②
 
[여성주의 저널 일다] 조윤정

한국과 일본은 많은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일본을 여행하다 보면 이런 사실을 더 자주 느끼게 된다. 법과 제도뿐만 아니라 언어나 생활풍속 등 문화적인 면에서도 유사점을 찾는 게 어렵지 않다. 지리적 역사적으로 가까웠기 때문이기도 하거니와 가슴 아픈 이유지만 35년 간 식민지 시대의 영향도 크게 작용했을 것이다.

 
작은 동네 목욕탕 센토우(錢湯)
 
▲ 쇼와(昭和)시대 모습을 담고 있는 전통가옥
교토 외곽의 작은 동네에 머물던 둘째 날 밤, 몸을 씻기 위해 들어갔던 동네 목욕탕도 그런 공통점을 느끼게 해 준 곳이었다. 센토우(錢湯)라고 불리는 공중목욕탕은 딱 우리가 상상하는 동네 목욕탕의 모습이다. 표를 내고, 신발장에 신발을 넣고, 옷장에 옷을 벗어 넣은 후 욕탕에 들어가 아줌마와 할머니들 사이에서 작은 의자에 쭈그리고 앉아 몸을 씻는다. 낯설고
말도 통하지 않는 곳에서 벌거벗고 있는데도 큰 위화감이 느껴지지 않는다.
 
일본의 센토우는 에도시대(江戶時代, 1603~1867)에 생겨났다고 한다. 이 센토우가 식민지시대를 거쳐서 한국에 공중목욕탕 문화를 심었다고 유추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한국 최초의 대중목욕탕이 등장한 1905년 이전에는 한국사람들에게 남들과 함께 하는 ‘공중목욕’의 개념이 없었기 때문이다. 때문에 초창기 한국의 대중목욕탕은 문화적 저항감에 부딪혀야 했다.

 
기본적인 구조와 운영은 비슷하지만 몇 가지 차이점도 있다. 일단 ‘이태리 타올’이 없고, 때밀이 아주머니도 없다. 영업시간도 오후 4시 정도부터 12시까지다. 바쁜 하루 일과를 끝내고 느긋이 탕에 들어가 하루를 마무리하는 게 일본식 목욕문화인 듯 하다.


특히 눈에 띄었던 건 남탕과 여탕의 탈의실이 커튼 하나로 가려져 있다는 거였다. 입구에서 표를 받는 아주머니가 이쪽 저쪽을 모두 볼 수도 있는 구조였다. 야릇한 상상을 해 봤자 헛일이다. 석상처럼 무심하고 권태로운 그녀의 표정에서는 그저 무료한 반복작업의 고단함만이 묻어 나왔다.
 
이 목욕탕은 동행했던 일본인 친구가 ‘보기 드물게 작다’고 했을 정도니, 현재 평균적인 일본 센토우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고는 할 수 없다. 자유로운 재건축이 제한되고 있는 교토의 특성 상, 또한 중심지에서 다소 벗어나 있는 지역이었다는 점을 고려해보면 옛날 공중목욕탕의 모습에 더 가깝다고 봐야 할 것이다. 

▲ 작은 정원에 놓인 너구리인형. 일본에서는 자주 볼 수 있는 친근한 캐릭터이다.

80년 된 가정집, 옛 것은 낡은 것이 아니다
 
목욕을 끝내고 숙소로 돌아왔다. 둘째 날 묵게 된 곳은 쇼와(昭和, 1926∼1989)시대의 모습을 그대로 담고 있는 80년 된 2층 전통가옥이었다. 중년의 부부가 운영하는 이 숙소는 집 전체를 여행자들에게 빌려주고 전통적인 서민가옥의 형태와 생활모습을 체험할 수 있게 하고 있다. 우리로 치면 ‘한옥마을에서 하루 밤 묵기’ 쯤 될 것이다.

 
그러나 이 숙소가 인상적이었던 것은 관광객을 위해 고풍스런 공간을 꾸며 놓은 것이 아니라, 자신들이 살아왔던 흔적을 고스란히 보존해 놓은 집을 그대로 내어주고 있다는 점이었다. 주인의 소박하면서도 고상한 성품을 느낄 수 있는 소품들, 가정용품들. 반질반질한 나무 계단의 틈새 등 곳곳에서 사람과 집의 역사가 읽혔다.

 
교토에서 받은 전체 인상도 그러했지만, 교토의 사람들은 전통과 문화를 어떻게 가꾸고 보여줄 것인가에 대해 능숙하게 이해하고 실천하고 있다. 때문에 교토는 도시 전체가 하나의 거대한 문화재라는 느낌을 준다.

 
▲ 처마끝에 매달린 풍경(風磬)
옛 것은 어떤 의미를 부여하는가에 따라서 그저 낡은 것일 수도 있고 무엇보다도 새로운 것이 될 수도 있다. 근대화 이후 한국에서는 개발을 통해 새 것을 만들고 이윤을 창출하는 것에만 골몰해 옛 것은 그저 낡은 것으로 치부하는 경향이 생겼다.

 
특히 건축물의 개발 사이클은 점점 빨라져 지은 지 10년만 지나도 이미 낡은 집이 되어버리고 20년이 지나면 재건축 대열에 들어선다. 옛 모습을 간직한 거리는 불편하고 시대에 뒤떨어진 것으로 여겨진다. 문화적 가치를 보존하기 위해서 불편함을 감수한다는 것은 경제적이지 않은 것일 뿐이다. 그 와중에 매일같이 현대사의 많은 흔적들이 너무나 쉽게 사라져가고 있다.

 
이러한 가치관은 ‘낡은 건물’에 국한되지 않는다. 문화재라고 해도 당장 돈이 되는 것이 아니라면 가치가 없는 것으로 여긴다. 2000년 5월 13일 풍납토성 발굴현장에서는 주민들이 굴삭기로 발굴현장을 갈아 엎는 사건이 있었다. 재개발을 추진하고 있던 주민들과 보상 문제로 인한 갈등이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도 전국 각지의 개발현장에서 소리소문 없이 묻히는 문화재들이 상당수일 것으로 추정된다. 청계천 복원을 위해 훼손된 수많은 문화재들이 있다는 사실도 큰 이슈가 되지 못했다.

 
우리에게도 우리만의 색깔을 가진 수많은 문화자원들이 있다. 문화의 풍요로움은 ‘얼마나 가졌냐’ 가 아니라 ‘얼마나 가꾸는가’에 달려 있다. 무조건 갈아엎지 않고 정신적 역사적 풍요로움을 지키면서 문화 자원을 통해 이윤을 창출할 방법들을 얼마든지 고안할 수 있는데, 이미 ‘개발’ 만 주입된 머리는 다른 생각을 하려 들지 않는다. 아니 못한다. 제주도의 수많은 관광자원을 두고도 골프장이 대안이라는 이 삽질들을 어쩌면 좋을까 싶다.
 

2008/05/20 [19:56] 여성주의 저널 일다 ⓒ www.ildar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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