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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Q를 이유로 한 차별
<빵가게 찰리의 행복하고도 슬픈 날들>
 
[여성주의 저널 일다] 김윤은미

<빵가게 찰리의 행복하고도 슬픈 날들>(원제 “앨저논에게 꽃을” Flowers for Algernon)은 지능을 높이는 실험을 받은 한 청년의 이야기로, KBS드라마 <안녕하세요? 하느님>의 원작이기도 하다. 지능지수 70의 빵가게 직원 찰리 고든. 빵가게 직원들은 지능이 낮다는 이유로 찰리를 놀림거리로 삼고 있다. 그래서 찰리는 ‘머리가 좋아져서 다른 사람과 똑같아지고 싶다’는 일념 하에 지능을 높이는 수술을 받아서 지능지수 185의 소유자가 된다. 찰리가 첫 번째 실험 대상이므로, 결과가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장담하지 못한다.

이 소설은 찰리의 내면을 독자들에게 생생하게 전달하기 위해 형식적인 장치를 적재적소에 구사했다. 찰리는 보고서 형식으로 일기를 쓴다. 처음에는 맞춤법도 제대로 익히지 못해서 뒤죽박죽 한 찰리의 일기는 점차 날카롭고 정연된 형태로 다듬어진다. 그런데 찰리의 글이 다듬어질수록 찰리의 고뇌도 깊어간다. 지능이 높아지면서 찰리는 유년시절, 지능이 낮은 탓에 겪었던 충격적인 일들을 기억해낸다. 엉뚱한 전기충격실험을 당한 일, 동생에게 모욕당한 일, 어머니에게 두들겨 맞은 일….

찰리는 억압되었다가 수면 위로 떠오른 이 모든 기억들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모른다. 그는 급속하게 지적인 기능을 높였지만, 다른 기능들-감정을 추스르는 법이나 타인의 마음을 읽어내는 방법-을 배우지 못했다. 그래서 찰리는 자신을 가르치던 여성 앨리스에게 애정을 느끼지만 감정을 쉽게 표현하지 못한다. 마음 속의 응어리진 상처들은 찰리의 애정 표현을 방해한다.

찰리가 받은 상처를 통해 독자들은 지능과 차별의 문제, 나아가 사람을 사람 그 자체로 대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곰곰이 생각하게 된다. 지능이 낮은 사람은 으레 선량하고 착해야 한다고 여기는 이유는 무엇일까? 지능이 낮은 사람을 인간적으로 대한다는 것은 무엇을 뜻할까? 찰리의 주변인들은 찰리의 변화에 대응하지 못한다. 빵가게 점원들은 찰리가 너무 똑똑해서 같이 있을 수 없다고 주장한다. 실험실 교수들 또한 찰리의 박식함에 묘한 이질감과 열등감을 느끼며, 그를 통제하는데 급급하다. 찰리는 지능을 무기 삼아 상대를 희롱하며 우월감을 느끼는 사람들의 행태에 심한 분노를 느낀다.

“(사람들은) 나를 조롱할 수 있는 한, 나를 노리개 삼아 우월감을 느낄 수 있다. 하지만 지금은 그 백치에게 열등감을 느끼고 있다…. 그래서 나를 미워하는 것이다.”

지능을 이유로 사람을 차별해서는 안 된다는 찰리의 주장은 소설 전반을 관통하는 주제의식이다. 찰리는 사회 곳곳에 만연해있는 차별의식을 날카롭게 비판한다. 그런데 사람을 사람 그 자체로 대한다는 일은 말처럼 쉽지 않다. 아이러니하게도 찰리가 똑똑해질수록, 찰리와 앨리스와의 관계는 멀어진다. 앨리스는 찰리가 지나치게 똑똑해서 다른 세계에 있는 사람처럼 느껴진다고 털어놓는다. 현실세계에서 지능은, 어쩔 수 없이 관계를 좌지우지하는 요인으로 작동한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수많은 시행착오가 필요하다. 소설은 가까워졌다 멀어지기를 반복하는 찰리와 앨리스를 통해 인간적인 관계가 무엇인지 깊게 고찰한다.

찰리와 같은 수술을 받아 영리해진 쥐 앨저넌은 찰리의 운명을 상징한다. 앨저넌과 찰리는 같은 미로 게임을 풀던 처지다. 심리학대회에서 찰리는 자신과 앨저넌이 모두 ‘백치’였던 실험도구로 취급 당하고 있는 상황에 분노한다. 그래서 찰리는 앨저넌을 데리고 대회장을 뛰쳐나온다. 찰리는 이제 자신만의 연구를 해내겠다고 자신한다.

그런데 앨저넌이 퇴행의 징조를 보인다. 성격이 난폭해지는가 하면 기억력이 감퇴해서 예전처럼 미로를 제대로 통과하지 못한다. 찰리는 자신 또한 앨저넌처럼 되리라 예감하고, 가능하면 지능이 높은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 잠도 자지 않고 연구에 매달린다. 또한 오래 전 연락이 끊어졌던 가족들과의 화해를 시도한다. 현재를 조금이나마 늘리고자 하는 찰리의 악전고투는 서글프게 다가온다.

“내가 다른 사람과 같다”는 사실을 깨달아서 기쁘다는 찰리의 고백은, 결국 지능이 낮다는 이유로 사람을 차별하는 사회의 관습이 한 개인에게 얼마나 깊은 상처를 남겼는가를 역설적으로 보여준다.



2006/01/23 [21:54] ⓒ www.ildar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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