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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획] 재일조선인 여성 조경희 인터뷰 한국서 5년 넘게 거주하고 있는 재일조선인 조경희씨 ▲ 딸 한음이와 함께
<일다>는 2008년 <재일조선인 여성, 나의 삶>이라는 주제로, 30대의 재일조선인 여성 조경희씨와 림혜영씨 두 사람의 칼럼을 연속 10회 연재했다.
두 사람은 모두 일본에서 태어나 유년과 학창시절을 보내고 현재는 한국에서 거주하고 있는 재일조선인 여성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그러나 자라온 환경을 보면 그 배경이 사뭇 다르다. 조경희씨는 조총련계 조선학교에서 민족교육을 받으며 성장했고, 림혜영씨는 어릴 적부터 일본학교에 다니며 일본인 학생들과 함께 고등교육을 받았다.
그 동안 칼럼을 통해 한국사회에 재일조선인 여성들이 말하는 정체성과 경험, 그리고 역사 이야기를 들려주었던 두 사람을 각각 만나, 글로는 못다한 이야기를 나누고 칼럼을 연재하는 동안 생겨난 고민과 변화에 대해 들어보았다.
재일조선인 문제, 반일감정 앞세우는 건 도움 안돼
경희씨의 글을 통해 재일조선인은 “한국사회에서 분단의 현실을 상기시키고 한반도의 역사적 현실을 함께 나누는 존재로서” 다가왔다. 그러나 정작 당사자는 한국사회에 재일조선인 여성으로서의 차별경험을 드러내고 정체성 이야기를 꺼내는 것이 쉽지 않았다고 털어놓았다.
“일본사회에서 재일조선인이 처한 현실은 한국인들이 모르는 부분이기 때문에 알린다는데 의미가 있었지요. 하지만 ‘우리 일본에서 이렇게 살고 있다. 이걸 알아달라’ 하면, 한국인들은 (재일조선인) 불쌍하다, 도와주자 할 뿐 자신의 문제로 받아들이지는 않는 것 같아요.”
그래서 글을 쓰다 보니 일본사회에서의 경험보다는 “분단과 한국정부의 문제, (일본보다는) 한국사회와 나의 관계, 이쪽을 강조”하게 되었다고 한다.
“재일조선인 문제에 대한 강의를 하면서 학생들을 만나보면, (학생들은) 반일감정으로 일본 정말 너무하다고, 그런 식으로밖에 안 와 닿나 봐요. 재일조선인은 참정권도 없구나 하고 불쌍하게만 생각하고 마는 것 같아 안타깝죠. 정말 바라는 건, (그런 반응이 아니라) 재일조선인과 자신들이 어떤 관계를 맺어나갈까를 고민하는 것인데 말이에요.”
조선학교와 총련 내부의 성차별 문제에 대하여
조경희씨는 글을 연재하면서 가장 이야기하기 어려웠던 것은 “재일조선인 내부의 여성문제”라고 했다.
“아쉬운 것이…. 재일조선인 여성들의 삶에 대해 더 이야기하고 싶었지만 어려웠어요. 재일조선인 문제를 민족문제 대 여성문제처럼 이야기한다는 게 어렵지요. 재일조선인 1세 남성들은 폭력적이고 전형적인 모습이 있습니다. 그건 일반적인 남성폭력의 문제도 있지만, 재일조선인이라는 사회적으로 소외된 사람들의 문제와 관련이 분명 있다고 봐요.”
경희씨는 특히 조선학교와 총련문화 내부의 여성문제에 대해 짚었다.
“여성차별의 문제는 단지 치마저고리만의 문제가 아니에요. 총련남성들은 (성차별에 대해) 문제의식이 없고, 여성들에게는 현모양처와 ‘어머니의 모습’이 있지요. 지식인 여성들 눈에는 그게 너무 한심해 보이는 거죠. 그런 비판의 내용이 거의 다 맞지만, 저의 입장에선 ‘그렇죠!’ 라고 말할 수 없는 면이 있어요.”
그는 “왜 여성들이 조직 내부를 변혁하지 않는가, 혹은 왜 폐쇄적인 총련조직을 빠져 나오지 않는가 라고 비판하기 망설여진다”고 했다.
“총련문화가 그런 모습(성차별)을 하고 있는 이유를 보면, 정치적인 원인들이 많잖아요. 그런데 눈으로 보이는 현상을 보고 이렇게 비판해도 좋은 걸까, 대안은 무엇일까 고민이 되었어요. 조직과 관련한 이야기는 나의 경험이 부족해서 어떻게 말로 풀어야 할지 모르겠더군요. 한편으로는 그러한 화제를 한국사회에 ‘판다’는 느낌이 들어 조심스러웠어요.”
재일조선인들도 각자의 경험에 따라 정체성 달라
“재일조선인들도 서로 다르죠. 한국에 와서 림혜영씨와 친하게 되고, 다른 재일조선인들과도 만나게 되었는데, 친한 관계이면서도 서로 정말 다르다는 걸 느꼈어요. 일본학교 출신자들에게선 개인화된 자아를 느끼게 되죠. 반면, 내 안에는 조선학교문화가 있어요. 개인적인 것보다는 공동체적인 문화죠.”
조선학교를 다닌 경희씨는 일본학교에 다니는 재일조선인처럼 정체성을 감추며 살거나, 감추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선택해야 하는 상황에 놓이지 않았기 때문에, 성인이 되어서도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불안정하게 흔들리지 않았다”고 했다. “정체성은 당연한 것이니까.”
그러나 한편으로는 어린 시절부터 일본학교에 다니며 정체성 혼란과 고민을 겪어온 재일조선인보다, 오히려 십대까지 직접적인 차별과 갈등에 직면하지 않았던 조선학교 출신자들이 사회에 나가서는 충격을 더 많이 받고 이중적인 삶을 살아가는 경우도 있다고 덧붙였다.
“내가 어딘가 속해있다는 것, 어려움 처했을 때 뒤에 누군가 있다는 것, 누군지는 모르지만 뭔가가 있다고 느끼는 거예요. 공동체 의식이 있는 거죠. 조선학교 교육이 컸어요. 파편화된 정체성이 아니라, 내가 역사에 속해있다는 의식을 가지고 있는 거예요.”
북송사업, 남한사회가 간과해선 안될 이야기
조경희씨에겐 조선학교에 대한 이야기뿐 아니라, 북송사업(1959년부터 1980년대까지 진행된 재일조선인 북조선 귀환사업으로 9만 명 이상 이주했다. 북한으로 간 재일조선인 다수가 제주도, 경상도 등 남한 출신이며, 떠난 이들은 다시 일본땅을 밞지 못하고 있다)에 얽힌 사연도 더 자세히 듣고 싶었다.
“당시 북송사업에 참여했던 사람들, 지금 많이 후회하고 힘들어합니다. 가지 않기를 다행이라고 하는 사람들도 물론 많지요. 하지만 왜 그들이 그렇게 많이 북으로 향했을까 하는 부분을 생각해볼 필요가 있어요. 북한이 옳다고는 전혀 생각지 않습니다. 현재적 정당성은 민주화된 한국에 더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보았을 때는 이야기가 다르죠. 남한은 간첩을 만들던 시기에, 북한은 북송사업을 한 것이니까요. 재일조선인들 입장에서 자신을 일원으로 받아주는 조국은 북한이었던 거예요.”
경희씨는 최근 호주의 한 연구자가 북송사업에 대해 쓴 책이 나왔다며 새로운 정보들을 소개했다.
“북송사업은 북한이 동포들을 끌어들인 것보다는 일본정부가 조선인을 추방하려 했던 맥락이 있었다고 해요. 1960년대에 가장 많이 갔는데, 일본이 고도경제성장기 들어서던 시기였죠.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나라가 되려고 하는 일본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인 북조선으로 귀국을 했다는 것에 주목하더군요. 재일조선인들의 처지가 그만큼 비참했다는 것을 의미할 수도 있고요.”
역사적 성찰을 통한 관계 맺기 고민하길
북송사업에 대한 이야기를 하며, 조경희씨는 다시금 남한사회의 모습을 성찰해보기를 권했다.
“그 역사 속에 남쪽은 아예 빠져있었지요. 비록 ‘민단’이라는 조직이 있긴 했지만, 재일조선인에 대해 한국정부는 무관심했습니다. 한국사회는 재일조선인 역사에서 빠져있다가 2000년대 들어와서야 관심을 갖고 있지요. 과거를 생각해봐야 하지 않을까요? 어떻게 관계가 형성되었는지 역사적인 접근이 꼭 필요합니다.”
경희씨는 일상적으로 한반도의 분단현실과 마주해야 하는 재일조선인에 비해, 정작 남한사회는 역사의식이 희미한 것에 대해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남한사회가 민주화되고, 재일조선인을 바라보는 시선도 1990년대처럼 큰 불안감을 느끼지는 않게 된 것 같아요. 한국사회는 변화가 빠르고 현재에 대한 적응을 잘 하죠. 그런데 젊은 사람들은 정말 쉽게 선을 넘어버려요. 지금 학생들이 (재일조선인 역사가 아니라) 1980년대 남한사회의 역사에 대해서조차 모른다면, 왜 민주화되었는지도 모른다면, 그것은 문제가 있는 것 아닐까요?”
2000년대 들어 조선학교 아이들이 소개되고, 우토로 마을 지키기 운동이 전개되고, 재일조선인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영화가 속속 개봉되고 있지만, 경희씨는 한국사회가 재일조선인 사회에 관심을 갖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다고 했다.
“학생들에게 조선학교에 대한 비디오를 보여주면, ‘예쁘다, 귀엽다, 분위기 좋다, 그런데 왜 불쌍하게 북한말투를 쓰고 북한교육을 받을까, 한국사회가 이들을 끌어들여야 하지 않을까’ 이야기합니다. 당사자 입장에선 말도 안 되는 소리에요. 한국사회가 재일조선인들에 대해 배제도, 포섭도 아닌 ‘대상화시키지 않는’ 관계 맺기를 할 수 있었으면 합니다.” (조이여울 기자) [조경희 첫 연재칼럼-> 나는 어떤 경계를 넘은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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