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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갖고 싶어도 가질 수 없는 것들이 있다
지난 1월, 베란다에서 겨울을 보내고 있던 화초들 중 여러 아이들이 얼어 죽었다. 겨울을 거기서 늘 견뎌왔지만, 평소 경험하지 못했던 갑작스런 한파를 신경 쓰지 못한 것이 원인이었다. 그렇게 죽은 것들 중에는 프랑스에서 키우다가 가져온 것도 하나 있었다. 화초가 얼어 죽은 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지금도 그렇지만, 프랑스에서 공부를 할 때도 난 화초를 많이 키웠었다. 겨울을 제외한 계절에는 창밖, 넓은 물받이 위에 분들을 줄지어 놓고 높은 창틀에 걸터앉아 그들을 돌보곤 했다. 잘 키운 것은 가까운 친구들에게 선물로 주기도 했고, 또 벼룩시장에서 팔기도 했다.
그리고 귀국할 때는 모두 그곳 식물원에 기증을 했다. 하지만 욕심이 나는 것들은 한 조각씩 떼어 짐 속에 몰래 숨겨가지고 돌아왔다. 지금 생각하면, 공항 레이저 투시장치에 걸리지 않은 것이 신기할 뿐이다. 아마도 그것이 화초였으리라고는 상상이 안 돼, 그렇게 쉽게 들여올 수 있지 않았나 싶다.
또, 그것들 가운데는 식물원에서 떼어와 키운 것들도 있었다. 마음에 든다면 어디서고 망설임 없이 슬쩍 떼어오기도 하고 ‘밀반입’도 서슴지 않는 등, 화초와 관련한 불법행위에는 왜 이렇게 용감한지 모르겠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위험을 무릅써가며 데려온 화초들이 우리나라 기후에 적응을 모두 잘 한 건 아니다. 귀국한 첫 해 겨울, 많은 다육식물들이 죽었다. 화초들이 죽는 것을 보면서, 마음을 비우지 못하고 가져온 건 정말 어리석은 짓이었다고 생각했다. ‘세상에는 아무리 갖고 싶어도 가질 수 없는 것들이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으면서, 왜 이렇게 중요한 사실을 잊는지 모르겠다며 나 자신을 한탄했다.
프랑스에서 유학을 시작한 이듬해 봄, 살고 있던 집 근처 들판에서 마치 모네의 그림 속에서 튀어나온 듯한 풍경에 놀란 적이 있다. ‘꼬끌리꼬’라 불리는 양귀비과의 들풀이 흐드러지게 지천으로 피어있는 모습은 참으로 장관이었다. 나는 이렇게 예쁜 꽃을 태어나서 처음 보았다. 물빛 빠알간, 나비날개처럼 푸슬거리는 꼬끌리꼬에 흥분하기 시작했다. 저렇게 예쁜 꽃이 내 것이 아니라는 게 안타까웠고, 마음은 갖고 싶은 욕망으로 불타올랐다.
문밖만 나서면 지천으로 피어있는 것이 꼬끌리꼬였건만, 결국 그 꽃을 키워보겠다며 화분에 담아왔다. 그러나 채 하루를 견디지 못하고 시들어 죽고 말았다. 꼬끌리꼬는 화분에서는 키울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 꽃을 보기 위해서는 들로 나서야 했고, 햇빛 아래 서 있어야 했다. 세상에는 아무리 갖고 싶어도 내 것으로 만들 수 없는 것이 있다는 걸 가슴속 깊이 깨달은 건 그때였다.
그러나 몇 년 새, 그 사실을 까맣게 잊고 말았다. 그래서 프랑스를 떠날 때, 꼬끌리꼬를 볼 수 없다는 안타까움에 마음이 너무 아팠고, 화초들은 밀반입해서 들여왔다. 화초들이 겨울을 견디지 못해 죽어가는 걸 지켜보면서야, 거기에 그것들을 놓고 그냥 기억만 가지고 돌아왔어야 했다고 후회를 했다.
나이 40이 넘어, 이제는 화초 같은 건 여기 저기 가지고 다니지 않겠다고 다짐하면서, 또 우리나라에서 꼬끌리꼬는 볼 수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며, 잘 살고 있다.
화초와 관련한 일련의 사건들을 통해, 난 삶을 여한 없이 살 수 없다는 걸 잘 배웠다. 그러나 그걸 잊지 말자고 다짐하지만, 항상 잘 기억하는 건 아니다. 욕망을 자극하는 작은 손짓들 앞에서 나도 모르게 자꾸 잊게 된다. 그래서 지난 가을 우리나라에도 꼬끌리꼬가 지천으로 피어있다는 곳을 알아냈고, 또 내년에는 씨앗을 받아주겠다는 분에게 거절하지 않고 넙죽 고맙다는 인사부터 했다.
꼬끌리꼬를 화분에서 키울 수 없다는 걸 잘 알고 있으니, 난 그것을 시도하지 않을 것이다. 대신 즐겨 산책을 다니는 하천 둑에 씨를 뿌릴 생각이다. 어쩜 지천으로 피어있는 꼬끌리꼬를 보면서 살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나는 어느새 또 잊고, 손에 잡힐 듯한 욕망의 그림자를 붙들고 히죽거리고 있다. (정인진의 교육일기) ⓒ www.ildaro.com
지난 1월, 베란다에서 겨울을 보내고 있던 화초들 중 여러 아이들이 얼어 죽었다. 겨울을 거기서 늘 견뎌왔지만, 평소 경험하지 못했던 갑작스런 한파를 신경 쓰지 못한 것이 원인이었다. 그렇게 죽은 것들 중에는 프랑스에서 키우다가 가져온 것도 하나 있었다. 화초가 얼어 죽은 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지금도 그렇지만, 프랑스에서 공부를 할 때도 난 화초를 많이 키웠었다. 겨울을 제외한 계절에는 창밖, 넓은 물받이 위에 분들을 줄지어 놓고 높은 창틀에 걸터앉아 그들을 돌보곤 했다. 잘 키운 것은 가까운 친구들에게 선물로 주기도 했고, 또 벼룩시장에서 팔기도 했다.
그리고 귀국할 때는 모두 그곳 식물원에 기증을 했다. 하지만 욕심이 나는 것들은 한 조각씩 떼어 짐 속에 몰래 숨겨가지고 돌아왔다. 지금 생각하면, 공항 레이저 투시장치에 걸리지 않은 것이 신기할 뿐이다. 아마도 그것이 화초였으리라고는 상상이 안 돼, 그렇게 쉽게 들여올 수 있지 않았나 싶다.
또, 그것들 가운데는 식물원에서 떼어와 키운 것들도 있었다. 마음에 든다면 어디서고 망설임 없이 슬쩍 떼어오기도 하고 ‘밀반입’도 서슴지 않는 등, 화초와 관련한 불법행위에는 왜 이렇게 용감한지 모르겠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위험을 무릅써가며 데려온 화초들이 우리나라 기후에 적응을 모두 잘 한 건 아니다. 귀국한 첫 해 겨울, 많은 다육식물들이 죽었다. 화초들이 죽는 것을 보면서, 마음을 비우지 못하고 가져온 건 정말 어리석은 짓이었다고 생각했다. ‘세상에는 아무리 갖고 싶어도 가질 수 없는 것들이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으면서, 왜 이렇게 중요한 사실을 잊는지 모르겠다며 나 자신을 한탄했다.
프랑스에서 유학을 시작한 이듬해 봄, 살고 있던 집 근처 들판에서 마치 모네의 그림 속에서 튀어나온 듯한 풍경에 놀란 적이 있다. ‘꼬끌리꼬’라 불리는 양귀비과의 들풀이 흐드러지게 지천으로 피어있는 모습은 참으로 장관이었다. 나는 이렇게 예쁜 꽃을 태어나서 처음 보았다. 물빛 빠알간, 나비날개처럼 푸슬거리는 꼬끌리꼬에 흥분하기 시작했다. 저렇게 예쁜 꽃이 내 것이 아니라는 게 안타까웠고, 마음은 갖고 싶은 욕망으로 불타올랐다.
문밖만 나서면 지천으로 피어있는 것이 꼬끌리꼬였건만, 결국 그 꽃을 키워보겠다며 화분에 담아왔다. 그러나 채 하루를 견디지 못하고 시들어 죽고 말았다. 꼬끌리꼬는 화분에서는 키울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 꽃을 보기 위해서는 들로 나서야 했고, 햇빛 아래 서 있어야 했다. 세상에는 아무리 갖고 싶어도 내 것으로 만들 수 없는 것이 있다는 걸 가슴속 깊이 깨달은 건 그때였다.
그러나 몇 년 새, 그 사실을 까맣게 잊고 말았다. 그래서 프랑스를 떠날 때, 꼬끌리꼬를 볼 수 없다는 안타까움에 마음이 너무 아팠고, 화초들은 밀반입해서 들여왔다. 화초들이 겨울을 견디지 못해 죽어가는 걸 지켜보면서야, 거기에 그것들을 놓고 그냥 기억만 가지고 돌아왔어야 했다고 후회를 했다.
나이 40이 넘어, 이제는 화초 같은 건 여기 저기 가지고 다니지 않겠다고 다짐하면서, 또 우리나라에서 꼬끌리꼬는 볼 수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며, 잘 살고 있다.
화초와 관련한 일련의 사건들을 통해, 난 삶을 여한 없이 살 수 없다는 걸 잘 배웠다. 그러나 그걸 잊지 말자고 다짐하지만, 항상 잘 기억하는 건 아니다. 욕망을 자극하는 작은 손짓들 앞에서 나도 모르게 자꾸 잊게 된다. 그래서 지난 가을 우리나라에도 꼬끌리꼬가 지천으로 피어있다는 곳을 알아냈고, 또 내년에는 씨앗을 받아주겠다는 분에게 거절하지 않고 넙죽 고맙다는 인사부터 했다.
꼬끌리꼬를 화분에서 키울 수 없다는 걸 잘 알고 있으니, 난 그것을 시도하지 않을 것이다. 대신 즐겨 산책을 다니는 하천 둑에 씨를 뿌릴 생각이다. 어쩜 지천으로 피어있는 꼬끌리꼬를 보면서 살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나는 어느새 또 잊고, 손에 잡힐 듯한 욕망의 그림자를 붙들고 히죽거리고 있다. (정인진의 교육일기) ⓒ www.ildar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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