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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신의 철학하는 일상] 밤하늘의 별을 바라보며 
 
추위가 누그러져 오랜만에 늦은 밤, 공원으로 산책길에 나섰다. 고층아파트 창문으로 새나오는 푸르스름한 불빛, 길가의 가로등이 내뿜는 주황색 빛, 상점들 간판의 현란한, 색색깔 네온사인 등으로 도시의 밤은 낮과는 또 다른 빛들로 가득하다. 이 빛 덕분에 감히 밤 늦게도 산책할 용기를 내게 되는 것이겠지만, 그 때문에 아쉽게도 별빛을 잃었다. 별빛을 포기한 대가로 도시의 불빛을 얻은 것, 아무래도 밑지는 거래인 것 같다.
 
저녁식사를 끝낸 후 공원길을 따라, 또는 하천을 따라 느긋하게 산책하다 보면, 하늘이 눈을 가득 채워오는 느낌을 받곤 한다. 날마다 변하는 달의 모양이 빛과 더불어 눈길을 끌고, 달빛에서 눈을 돌려 별을 찾아 하늘을 훑어 내린다. 도시의 빛이 가린 별 찾기가 쉬운 일은 아니다. 그래서 발걸음을 멈추고, 하늘을 뚫어져라 바라봐야 한다. 시력이 나쁜 나도 운 좋은 날에는 반짝이는 별을 여럿 발견하기도 한다.
 
과거의 빛, 사라진 존재의 메시지
 

▲ 사진 출처- ESA / NASA

이렇게 우리가 맨눈으로 볼 수 있는 별은 우리 은하의 수천 억 개의 별 가운데 하나라고 한다. 별은 중력이 만들어낸 것으로, 뜨거워진 별들은 에너지를 방출하며 빛을 내뿜는다. 우리가 밤하늘에서 감동하며 바라보는 것이 바로 그 빛이다.

 
그런데 그것은 ‘과거의 빛’이다. 빛이 놀라운 속도-초당 30만km-로 우주를 가로질러 달려오긴 하지만, 워낙 머나먼 여행인지라 시간이 걸리는 것도 당연하다. 그나마 지구 가까이-그래도 38만4천km나 떨어져 있는- 달이 보내는 빛은 1초면 우리 눈에 도달한다. 하지만 훨씬 더 멀리 떨어져 있는 별들이라면, 그 빛이 우리에게 도착하는 데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따라서 그것은 더 오래 전의 빛일 수 밖에 없다.
 
그래서 ‘지금 이 순간’ 밤하늘을 올려 보더라도, 별빛이 전하는 ‘아득한 과거’만 엿보게 되는 것이다. 우리는 별의 현재를 절대로 같은 시간에 체험할 수 없다. 때로는 이미 죽어 존재하지 않는 별의 빛을 현재 사건처럼 목격하게 된다. 물론 우리는 전혀 의식하지 못하겠지만 말이다. 사라진 존재의 메시지라니, 신비롭지 않은가!
 
‘별의 죽음’이 낳은 우리 존재
 
별은 태어나서 죽는다. 별이 속해 있는 지금의 우주도 140,150억 년 전에 태어났다고 한다. 그리고 앞으로 400억년 동안 팽창할 것이라는 것이 현대과학자들의 지배적인 생각이다.
 
그들은 최초의 우주를 뜨겁고, 밝고, 밀도가 높은 ‘혼돈’으로 가정하고 있다. 이 ‘빅뱅이론’에 의하면, 빛의 폭발이 일어나면서 혼돈으로부터 시간과 공간이 존재하는 우주가 생겨났고, 그것은 지속적으로 진화하고 팽창해나갔다. 즉, 빅뱅 이후, 우주가 식기 시작해 밀도가 낮아지고 복잡하게 조직화되어 왔다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생성되고 뜨거워져 빛을 내게 된 별들은 유한한 존재로, 우주가 끊임없이 변화하고 있다는 증거가 되고 있다.
 
죽어 먼지로 흩어지고 다시 다른 별들로 뭉쳐지는 우주의 별들, 별이 별의 어머니인 셈이다. 고대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가 가정한 우주의 ‘제 5원소’ 같은 것은 없다. 지구와 지구의 생명체를 구성하는 물질들도 바로 우주에서 날아온 것이니까.
 
“우리 피 속에 있는 철, 뼈 속의 칼슘, 숨을 쉴 때마다 우리 폐를 채우는 산소는 모두 지구가 태어나기 훨씬 전에 죽어간 별의 용광로 속에서 만들어졌다”는 이야기는 흥미로운 사실이다. 수많은 별들이 생성되고 폭발한 이후에야 인간이 탄생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우리 존재는 ‘우주의 티끌’이 분명하다.
 
죽은 별의 메시지는 다름 아닌 그것 아닐까? 별이 영원하지 않아 어둡다는 밤하늘, 그 하늘에서 반짝이는 별을 바라보며, 숙연해진다.
 
무한한 우주가 되는 상상
 

▲ 사진 출처- ESA / NASA

우리 존재는 이미 우주에 뿌리를 두고 있지만, 우리의 일상에서 우주는 잊혀진다. 그런데 하늘, 아니 별이 빛나는 밤하늘이야말로 유한한 나를 무한한 우주로 열어주는 통로가 되어 준다. 나를 깨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별이 무한히 멀어지고, 우주가 무한히 팽창된다는 이야기가 실감이 나질 않는다. 우리는 무한을 이해하기 어렵다. 그래서 바슐라르처럼 ‘무한’을 몽상적 차원에 맡기는 것이 나을지도 모른다. 압도되어 우주에 빨려 드는 느낌을 통해, 끝없이 확장되는 우주 속에서 자아가 소멸되어 우주와 하나되는 몽상에 빠져보자. 내가 무한한 우주가 되고 무한이 되어 버리는 것을 상상해보자.
 
그런데 끝없이 넓은 우주와의 합일은 끝없이 깊은 내면으로의 침잠으로 이어진다. 바슐라르는 우리 밖의 공간인 우주와 우리 안의 공간인 내면이 무한하다는 점에서 서로 맞닿아 있고 혼동된다고 말하고 있다. 어쩌면 우리의 존재 자체가 우주의 일부이기에 우주의 무한을 내면에 끌어안을 수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어느덧 상상은 명상이 된다. 고요와 평화가 밀려온다. 더 이상 무한을 이해하려 할 필요는 없다. 이미 우리의 내면이 그 속으로 깊이 가라앉고 있으니까.
 
별을 보면 떠오르는 오래된 기억이 있다. 여행 중에 잠시 시골길가에 멈춰선 적이 있었다. 주위는 불빛 하나 없는 어둠에 잠겨 있었고, 가끔씩 지나가는 자동차 헤드라이트 불빛만 도깨비불 모양 나타났다 사라져갔다. 다음 순간, 무심코 밤하늘을 올려다 보았을 때였다. 내 생애 처음 본 놀라운 광경이 펼쳐졌다. 수많은 별들이 마치 불꽃놀이처럼 동시에 빛을 뿜으며 한꺼번에 쏟아져 내리는 듯 했다. 별빛에 압도당한 나는 한동안 멍하니 서 있었다. 무한으로 열린 순간이랄까!
 
이후 두 번 다시, 그토록 멋진 별무리를 만난 적은 없지만, 밤하늘의 별들은 여전히 경이롭고 아름답다. 도시의 밤길에서 어렵사리 만나는, 몇 안 되는 별들도 우리를 광활한 우주로, 무한으로 안내할 수 있다. 적어도, 내면을 일깨워 줄 정도로 밝다.
 
그럼에도 별빛을 잃어가는 만큼, 우리의 마음도 날로 어두워지고 있음을 부인할 수는 없다. 우리는 우리 자신이 얼마나 미미한 존재인지 나날이 잊어가고 있는 중이다.
 
*함께 읽자 - 위베르 레브, 조엘 드 로네 & 도미니크 시모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야기> (가람기획, 2001)    일다는 어떤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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