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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은지가 만난 사람] 심리치료사 신진원 
 
퇴근하고, 자주 가는 가게에 어김없이 자리를 잡고 앉아 있다. 그녀의 입가엔 연신 미소가 떠날 줄 모른다. 싱글벙글, 꿈을 꾸는 듯한 표정도 짓다가. “오늘은 아이들만 생각할래.” 한마디.
 
아이들이 그렇게 사랑스러웠냐고 물으니, “아이들이 나에게 믿음을 주네.” 라는 답변이 돌아온다.
 
“튼튼하게 서른을 맞이했고, 하고 싶은 공부를 다 해도 마흔이 채 되지 않는 나이야. 내가 하는 일에 정말 감사해. 이 일을 하게 돼서 얼마나 다행인지 몰라.”
 
이렇게 말하는 그녀, 신진원씨는 심리치료사다.
 
“내가 아직 상담초심자니까, 믿음이 흔들릴 때가 있어. 아, 과연 될까? 그런 생각부터가 잘못된 것이, 내가 사람들을 치료하는 게 아니거든. 나는 내가 만난 사람들이 뭔가 변화될 수 있게끔 환경을 조성해 주는 역할을 하는 거야.”

아이들을 향한 그녀의 메시지 ‘믿어도 좋아’
 
그녀가 만드는 환경은 ‘네가 어떤 시도를 해봐도 좋을 만큼 안전해. 나를 믿어도 좋아.’ 라고 무언의 말을 건네는 것과도 같다.
 
진원씨가 만나는 아이들은 초반엔 조금씩 조금씩 시도해보다가, ‘환경’에 대한 믿음이 생기면 정말 다양한 방법으로 여러 가지 모습을 드러내고, 결국 자기가 갖고 있는 본래 모습을 찾아간다고 한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하는 게 아니고, 아이들이 변하는 거야. 그들이 힘을 가지고 있는 거고.”
 

근데, 이렇게 믿고 있다가도 간혹 불안할 때가 온단다. “그럴 때면 다시 한번 내가 만나는 사람들이 나에게 힘을 줘. ‘나는 변화할 힘이 있어요.’ 라는 느낌을 줘. 그럼 나는 다시 그 힘을 믿게 되는 거야.”
 
진원씨와 같은 공간에서 일하며, 그녀가 만나는 아이들을 자주 접했다. 굉장히 불안정해서 잠시도 가만히 있지 못하는 아이, 말을 아예 하지 않는 아이, 고개와 허리를 푹 숙이고 마치 시체처럼 걷는 아이 등은 눈으로 봐서도 꽤 충격적이었다.
 
그저 멀리서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을 무겁게 하는 아이들과 함께하는 그녀를 보며, ‘과연 저 아이들의 상태가 좋아질까?’ 하는 의혹을 가진 게 한두 번이 아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아이들은 점점 마음의 안정을 찾고, 입을 열고, 처음으로 친구를 사귀었다. 눈빛에 생기가 살아나고, 얼굴빛이 밝아지고, 표정이 편안해지면서 아이들은 날이 갈수록 너무너무 예뻐졌다.
 
“나는 내 노동의 가치를 높게 평가해” 
  
진원씨는 하고 싶지 않은 일을 하면서 산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 누구보다 잘 안다고 했다. “정말 많은 사람들이 적성에 맞지 않는 일을 하면서 살아가는 거 같아. 그러니 얼마나 힘들겠어.”
 
그녀는 20대 초반에 골프웨어를 만드는 회사에 취직했다. 그리고 누구보다 열심히, 힘들게 일했다.
 
“그곳에선 납기일을 맞추기 위해 실로 엄청난 노력을 들이는데, ‘옷’을 봐야 하고 ‘옷’에 모든 걸 맞추는 건 당연한 일이었지. 그런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어. (나에게) 이 옷이 그렇게 중요한 건가.”
 
옷 만드는 일을 싫어해서 피하는 건지, 엄살인 건지 확인하기 위해 4년의 시간을 그곳에서 보냈다고 했다. 그녀가 일을 그만둔다고 했을 때, 회사에선 근무환경을 개선해주고, 월급도 올려 주고, 원하는 조건이 있으면 다 들어주겠다고 했단다. 과거 얘기까지 해가며 너무 고마워서 그런다면서 따로 돈을 주겠다는 제의까지 받았다.

 
“나는 일 잘해. 내 노동의 가치를 높게 평가해. 이런 내 노동을 다른 곳에 쓰고 싶었어. 상품을 만드는데 희열을 느끼는 사람은 그 일이 잘 맞겠지만, 난 아니었어.”
 
그렇게 생각이 정해지자, 회사를 그만둠과 동시에 대학 아동복지과에 편입했다. 돈 버는 게 얼마나 힘든지 알기에, 돈을 들이지 않으려고 정말 열심히 공부했다.
 
유아기 때부터 평가를 받는 아이들, 안타까워
 
진원씨는 대학을 졸업하고 아동상담을 하고 싶었는데, 실제로 아이들을 가까이에서 본 적이 없었다고 했다. 그래서 ‘요즘 아이들은 어떤지’ 경험을 쌓기 위해, 대학원에 합격하고도 어린이 집에서 6개월을 일했다.
 
일을 하면서, 요즘 아이들은 여러 이유로 보육생활을 일찍 시작한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그런데 염려되는 부분이 많았다고 한다.
 
“아이들이 그 나름 가지고 있는 개성대로 자라지 못하고, 벌써 평가를 받기 시작하더라고.”
 
서너 살 아이들은 그들이 가지고 있는 모습대로 ‘잘한다’, ‘어 잘하네’, ‘어 굉장히 잘하네’라고 교육할 수도 있는데, 벌써 ‘기다’, ‘아니다’라고 평가되고, ‘얘는 잘난 애’, ‘얘는 못난 애’ 하고 나뉘어져 버린다는 것이다. 그리고 어른들이 세운 나름의 기준에서 벗어나면 ‘이상한 아이’가 된다.
 
진원씨는 이렇게 말한다. “그 나이에는 원래 이상한 모습들이 많이 나오는 나이야. 배워가는 과정이니까.”
 
그녀는 상담소를 찾는 아이들을 보며, 교육이 정말 무너진 걸까? 라는 의구심이 생기곤 했다. 교육이 해야 할 일을 치료가 대신하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아이에게 부정적 영향을 더 많이 주는 사회

 
진원씨는 아이들을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힘을 받지만, 스스로 아동심리치료사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나는 그저 심리치료사”라고 말한다.

 
“어찌 보면 난 성인을 위해 상담을 하는 거야. 아이는 성인이 된 그를 생각하면서 만나.”
 
아동기가 정말 중요한 이유는, 세상을 바라보는 기본적인 틀을 형성해가는 시기이기 때문이다, 지금 아이들은 특히나 세상에 대해 긍정적인 시각을 갖지 못하게 될 요인들이 많고, 그만큼 성인이 되었을 때 타인의 영역을 침해하는 범죄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아질 거라는 생각이 든단다.
 
“개인적인 사건으로 발생하겠지만, 그게 개인적인 문제만은 아닐 거야. 어찌됐건 한 개인을 둘러싸고 있는 건 환경이잖아. 그 환경이란 게 부모가 될 수도 있고, 경제적 요건이 될 수도 있고, 더 나아가 학교나 동네가 될 수도 있지. 모든 교육환경이 개인에게 영향을 미치잖아. 그런데 아이한테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게 요즘은 더 많은 것 같아. 그러니 ‘비행아동’이 늘어나는 게 그 아동 개인의 문제로만 볼 순 없는 거야.”
 
나는 학교나 센터에서 아이들을 만나며, 가난이 어떻게 대물림 되는가를 직접 목격하는 일이 내가 하는 일인 것 같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악순환을 끝내기 위해선 사회를 움직이는 큰 시스템을 바꾸어야 하는데, 어른들의 무관심과 무지가 아이들을 어떤 환경 속에 놓이게끔 하는가를 보고 있자면 답답해진다.
 
진원씨 또한 이 일을 하면서, 어쩔 수 없이 사회구조적인 문제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고 했다. “그 아이가 설사 나중에 범죄를 저질러도, 다시 자기 모습을 찾을 수 있는 권리를 누려야 한다고 생각해.”
 
버스를 타고 가다가도 순간순간 ‘상담을 요하는 일이 많은 사회’라는 생각이 들어, 결국 ‘더 전문성을 키우자’ 라고 스스로에게 이야기하곤 한다는 진원씨. 분명히 그녀만의 또렷한 인생의 지도를 그려나갈 것이라 믿는다. 그 길에서, 본연의 ‘눈빛’과 ‘얼굴빛’을 찾아가는 아이들은 또 얼마나 예뻐질까. (석은지

[일다가 만난 사람->] 비포장도로를 달리는 스물아홉 | 그녀가 꿈꾸는 ‘요가적인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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