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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ver the rainbow’ 인터뷰칼럼 <‘인터뷰칼럼’이라는 독특한 형식으로 동성애자 여성의 기록을 담은 ‘Over the rainbow’ 코너를 통해, 필자 박김수진님이 가족, 친구, 동료, 사회에서 만난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며 레즈비언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줄 것입니다. 이 칼럼은 격주로 연재됩니다.>
엄마를 만나러 가는 길에 어려움이 많았습니다. 평상시에는 아무렇지 않게 잘도 가서 엄마를 만날 수 있었는데, 이번에는 두 번의 폭설과 초대받지 않은 손님의 갑작스러운 방문으로 엄마는 번번이 “다음에 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엄마와 레즈비언 얘기 한번 제대로 나누어 보려고 하는데, 하늘도 사람도 돕지를 않는구나’ 생각하고 몇날몇일 신세한탄하며 지냈죠.
다시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엄마, 나 엄마 만나서 레즈비언인 딸을 둔 엄마의 심정을 들어야 해요.”
다음은 엄마의 대답입니다.
“그냥, 네가 지어서 써. 엄마 마음 네가 다 알잖아”
나는 펄쩍 뛰면서 내가 어떻게 엄마의 마음을 아느냐고, 안 된다고, 엄마를 꼭 만나서 인터뷰를 해야 한다고 말했어요. 그랬는데도 엄마는 “참새들이 와서 내가 뿌려놓은 쌀을 주워 먹어야 하는데, 눈이 쌓여서 이 애들이 앉지를 않으니 내가 어서 가서 눈을 치워야 한다”며 전화를 끊어버렸습니다. 하늘도, 손님도 심지어 참새들까지 이렇게 비협조적일 수 있나요. 그래도 저는 꿋꿋하게 재시도를 하였고, 드디어 엄마를 만났습니다.
집에 들어서자마자 엄마는 제게 이런 말씀을 하셨어요.
“이슬람국가에서는 동성애자들을 종신형에 처하기도 하고, 사형시키기도 한대. 이슬람국가에는 가지 마라.”
몇 년 전에도 엄마는 저와 마주하자마자 “레즈비언이 에이즈에 많이 걸린다며 조심하라”고 말씀하신 적이 있어요. 이렇게 엄마는 딸인 제가 레즈비언이어서 그렇겠지만 동성애자 관련 뉴스에 관심을 많이 가지고, 제게 전해주시고는 한답니다.
물론,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닙니다. 약 10년의 시간 동안 저는 엄마를 만나면 정말 열심히 동성애, 동성애자, 레즈비언, 게이, 트랜스젠더에 관한 바른 정보를 전하려고 노력해왔습니다. 이를테면 ‘레즈비언이어서 HIV에 감염되는 것이 아니라, 안전한 성관계를 하지 않은 모든 사람들이 감염에 노출되어 있다, 그리고 감염 경로는 수혈, 출산 등에 의해서도 가능하다.’
저는 내 자신이 동성애자인 것을 엄마가 알고 있다고, 그것으로 모든 것이 끝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엄마도 딸이 레즈비언이기는 하지만, 너무나도 오랜 시간 동안 잘못된 정보와 상식을 가지고 계셨던 분인 거죠. 그러니 엄마도 자긍심까지는 아니더라도 레즈비언인 딸을 둔 엄마로서 바른 이해를 하실 수 있도록 제가 도와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지난 10년 동안, 정말 노력 많이 했습니다. 물론, 갈 길이 멀어요. 그래도 가야죠.
영상촬영을 위한 카메라를 설치하고, 인터뷰 녹음을 위한 녹음기마이크를 엄마 가슴에 달고 엄마와 저는 카메라를 사이에 두고 마주 앉았습니다. 그리고 저는 단도직입적으로 질문했어요.
“레즈비언 딸을 둔 엄마의 심정을 말씀해주세요”
정확하게 10년 전인 2000년 1월의 어느 날, 일요일 아침이었어요. 당시에 교제를 하던 여자친구의 엄마가 우리 집 안방으로 전화를 걸어왔어요. 당시 애인의 어머니가 하고자 했던 말씀을 요악하면 내용은 이래요.
“우리 딸은 남자 사귀었던 정상적인 아이인데, 동성애자인 당신 딸이 우리 애를 꼬여서 ‘동성연애질’을 하게했다. 자녀 관리감독을 좀 잘해라.”
엄마는 그날 이후의 일들에 관해 회상하면서 나의 단도직입적인 질문에 답해주셨어요.
“나는 처음에 우리 딸이 레즈비언이라는 소리를 듣고, ‘이게 대체 무슨 소리인가’ 생각했어. 너무너무 황당하고 기가 막히고, 마치 꿈을 꾸고 있는 것 같았어. 나는 동성애자가 뭔지 생각해 본 적도 없고 들어본 적도 없는데, 도대체 이게 무슨 소리인가 하고. 그런데 네가 동성애자라는 거야. 그래서 엄마가 얼마나 울었는지 몰라. 기억 안나? 네 앞에서도 울고, 엄마 혼자 있을 때도 울고, 그렇게 울면서 ‘내가 세상을 잘못 살았구나. 내가 저 애를 잘못 키웠구나’ 하는 생각에 많이 괴롭고, 힘들었어.”
특히, 엄마는 “왜 하필, 내 자식인가? 왜 하필, 우리 수진이인가” 하는 생각에 그렇게 슬프고 힘들었다고 말씀하셨어요. 이야기를 듣는데, 진심으로 죄송한 마음이 들더라고요. 엄마 마음을 너무 아프게 했구나 하는 생각에, 당연한 이야기인데도 머리를 못 들고 있겠더라고요.
그런데 이상한 점이 하나 있었습니다. 제 기억에 엄마는 아주 오래 전부터 저를 있는 그대로 인정해주시는 눈치였거든요. 제가 동성애자인 사실을 안 이후에도 저에게 그와 관련해서 단 한번도 부담을 주지 않으셨거든요. 갑자기 언제, 무슨 이유로, 그렇게 슬픈 와중에도 저에게 그 어떤 부담도 주지 않으셨는지 궁금했어요.
“도대체 어디에서부터 무슨 생각을 어떻게 하면 좋을지 모르겠어서 한동안 너무너무 힘들었지. 그런데 엄마는 괴로운 것을 빨리 정리하는 성격이야. 받아들일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것도 받아들여야 한다면 빨리 받아들이고, 생각을 빨리 바꾸는 것이 현명하다고 생각하는 편이야. 네가 동성애자라는데 이런 생각이 들더라고. ‘이것은 내가 우리 애를 바꾸어야 하는 일이 아니구나. 이것은 내가 빨리 받아들여야 하는 일이구나.’ 이렇게 생각하기 시작했어. ‘내 아이가 저렇게 평범하게 살아 갈 팔자가 아닌데, 별 수가 있나? 빨리 받아들여야지’ 라고.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면 어떻게 해?”
“물론, 그 과정이 절대로 쉬웠던 것은 아니야. 웃을 일이 있어서 웃다가도 네 생각만하면 눈물이 주르륵 흐르고 우울해지고 하는 시간들이 반복됐어. 그 와중에 계속 마음을 바꾸려고 노력을 한 거야. 그리고 무엇보다 내가 너를 잘 아니까. 그리고 내가 내 자식이라고 자식들의 인생을 전부 책임질 수 있는 것은 아니잖아. 내가 네 인생을 대신 살아주는 게 아니잖아. 그러니 네 삶을 받아들이고 존중을 해주자고 결심한 것이지. 그렇게 긴 터널을 빠져 나왔지.”
내용에는 다소 차이가 있지만, 저도 제가 스스로를 동성애자로 정체화하기까지의 과정을 “긴 터널”에 비유해 생각하고는 했어요. 그러고 보니, 저도 엄마도 각자의 긴 터널을 지혜롭게, 현명하게 잘 빠져 나온 것 같네요. 딸이 레즈비언이라는 사실을 이렇게 명쾌하게 받아들여주셨다는 사실에 감동이 밀려 왔습니다. 감사한 마음도 가득했습니다.
하지만 세상 모든 동성애자의 부모님이 이런 반응을 보이시는 것은 아닙니다. 당연한 얘기지요. 실제로 부모가 동성애자인 딸이나 아들을 감금하고, 자녀들을 이성애자로 만들기 위해서 강제로 결혼을 시키거나, 병원치료나 해외선교 등을 강요하는 사례는 얼마든지 있습니다. 이런 부모님들의 심정, 이런 상황에 관해 엄마가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궁금했습니다. 엄마의 입장은 단호했습니다. 그런 부모는 “이기적”이라는 것입니다.
“그 부모들은 너무 이기적인 거야. 애가 아니라 부모가 이기적인 거야. 엄마의 가치관으로 자식을 바꾸려고만 하는 거잖아. 그 애가 그렇게 살기로 선택한 것인데, 받아들이고 존중해주는 게 현명한 거야. 레즈비언 아닌 자식들도 결혼해서 살면서 부모 속상하게 하는 일이 얼마나 많은데! 배신당하는 기분 들 때도 한 두 번이 아니고. 레즈비언 아닌 자식들도 부모 속 많이 썩이면서 살아. 무엇보다도 부모 스스로의 인생이 피곤해지는 거야. 결국 자식과 부모 사이가 멀어질 수밖에 없을 것이고. 더 불행해 지는 거야.”
“물론, 걱정스러운 마음에서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해. 내 자식이 살아 갈 길이 평탄하지 않겠다고 생각하면 왜 걱정스럽지 않겠어. 하지만, 다른 사람들이 다 비정상이라고 보고 생각하는데 부모까지 자식을 인정하지 않고 바꾸려고만 하면, 그 관계는 오히려 꼬이고 꼬여서 서로가 더 힘들어지고 불행해지지 않을까?”
자식들이야 그렇다 치고, 부모는 그런 자식을 둔 탓에 불행하다고 느낄 수도 있을 터인데, 이 문제에 관한 엄마의 생각이 궁금했습니다. 그런데 이 질문은 제게도 다소 민감한 문제여서, 약간 뜸을 들이다가 조심스럽게 물었어요.
“엄마도 불행할 수 있잖아요. 남들에게 딸이 레즈비언이라고 말할 수도 없는 일이고 말이에요.”
엄마는 이에 대해서도 단호하게 대답하셨어요.
“자식이 동성애자라고 해서 내가 왜 불행해? 내 자식 인생은 내 자식의 인생이고, 내 인생은 내 인생이고. 내 인생이 따로 있는 것인데. 나는 네가 한 그 질문이 이상한 질문인 것 같아. 네 인생은 네 인생인 것이고, 내 인생은 내 인생인 것이야. 이모든, 고모든 누군가가 물으면 나는 답할 자신 있어. 우리 딸 레즈비언이라고.”
이 대답을 듣는 순간, 저는 우리 엄마가 아닌 줄 착각했습니다. 엄마가 이렇게까지 단호하고 대범하게 생각하리라고는 상상도 못 했어요. 4년 전만해도 엄마는 이런 분이 아니었거든요. 저에게 “멀쩡한 애들, 괜히 꼬여서 너처럼 만들지 말아야 한다”거나 “여자애들하고 이상한 짓 같은 것 하지 말아야 한다”고 늘 당부하던 분이었어요. 그런데 어느새 엄마가 이렇게 많이 변했구나 하는 생각에 충격을 받았습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엄마는 제게 더 큰 충격을 주셨습니다.
“심지어 나는 레즈비언으로 사는 것에 장점도 있다고 생각해. 나는 안 할 수 있다면, 꼭 남자 만나서 결혼해서 살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 자식도 안 낳고 살면 더 좋을 것 같아. 가고 싶은데 얼마든지 갈 수 있고, 하고 싶은 것 해보고 살 수 있고, 게다가 여자들끼리 마음도 더 잘 맞을 것 같고 말이야.”
연속해서 충격적인 엄마의 대답을 듣고 있으니 용기가 생겼어요. 그래서 저도 대범하게 이런 질문을 던져 보았지요.
“엄마, 나중에 사람으로 환생하면, 동성애자로 한 번 살아 볼 생각 없어요? 계속 이성애자로 살 거에요?”
이번에도 역시, 엄마는 저를 실망시키지 않았습니다.
“얼마 전에 엄마 친구가 이런 말을 하더라고. 나이 먹어서는 여자들끼리 사는 게 참 좋을 것 같다고. 나도 같은 생각이야. 여자친구하고 의지하면서 사는 것도 좋을 것 같아. 불가능하다고 생각하지 않아. 만일, 다시 사람으로 태어난다면, 나는 결혼 안 하고 마음 맞는 여자 친구 있으면 같이 살아보고 싶어.”
저는 ‘아무리 엄마가 대범하다고 해도, 뽀뽀 문제에 관해서 만큼은 대범할 수 없겠지?’라고 생각하며 질문을 이어갔습니다.
“그 여자친구하고 뽀뽀도 할 수 있겠어요?”
단도직입적인 질문들에 대한 엄마의 마지막 답변입니다.
“뽀뽀? 왜 안 되겠어? 좋아하면 뽀뽀도 하는 거지.”
인터뷰를 정리하면서, 마지막으로 제게 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해주십사 부탁 드렸습니다.
“‘레즈비언인 딸, 우리 박통’은 어차피 레즈비언으로 살기로 했으니까 괜히 남의 눈치 보지 말고, 주눅 들지 말고 씩씩하게 살아. 네가 다른 누구에게 피해를 주는 것도 아니고, 욕먹을 짓을 하고 있는 것도 아니니까 당당하게 살면 되는 거야. 그리고 ‘그냥 딸, 우리 수진이’는 건강하게, 언제나 인간미를 간직한 그런 사람으로 살았으면 좋겠어. 살아 갈 날이 더 많으니까. 엄마야 살아 온 날보다 살아갈 날들이 더 짧지. 그래도 누구나 다 이렇게 왔다가 가는 거니까. 엄마도 사는 날까지 건강하게 살았으면 좋겠고.”
엄마와의 짧은 인터뷰를 마치고 집에 돌아오는 길에 줄곧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엄마에게 정말 감사하다는 생각, 엄마에게 좋은 딸이 되도록 더욱 노력해야겠다는 생각, 앞으로도 더 열심히 동성애자에 관해, 엄마의 삶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어봐야겠다는 생각을요. (박김수진) ▣ 일다는 어떤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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