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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김수진의 인터뷰칼럼 ‘Over the rainbow’ : 언니로부터 온 편지 
 
지난 번 엄마를 인터뷰했던 그대로 언니에게도 처음으로 물어보고 싶었습니다. ‘레즈비언인 동생을 둔 언니의 심정’을 들어보고 싶었던 것이죠. 전화를 걸어 언니에게 인터뷰가 가능하겠느냐고 물었더니 매우 흔쾌하게 허락해주었습니다.
 
언니와 저는 다섯 살의 나이 차가 있지만, 마음의 거리에는 별 차이가 없는 사이 좋은 자매라고 할 수 있습니다. 언니는 매사 긍정적인 사고를 하는 편이어서, 어려운 일이 있어도 언제나 오뚝이처럼 다시 일어나 훌훌 털어버리고 즐겁게 생활하는 멋진 여성입니다. 언니의 발랄함과 톡톡 튀는 개성은 가끔씩 주위사람들을 놀라게도 하지만, 언니는 함께 있으면 단 한 순간도 지루함을 느낄 수 없도록 하는 귀여움과 위트를 지닌 사람입니다.
 
지난주에 저는 파트너와 함께 언니의 집을 찾았습니다. 집에 도착하니 예쁘고 맛있게 생긴 음식들과 음료를 내주더군요. 우리들의 방문을 기념하여 손수 만든 과자라고 했습니다. 좋은 분위기 속에서 인터뷰를 시작했어요. “언니, 레즈비언인 동생을 둔 심정을 총체적으로 말해줘.” 제가 이 말을 하자마자, 언니의 반응은 별로 좋지 않았습니다.
 
“야, 꼭 그렇게 무겁게 ‘심정’이라고 표현을 해야만 하니? 그냥 ‘느낌’이나 ‘생각’이라고 하면 안 돼?”
 
왜 안 되겠어요. 그래서 “알겠다. 느낌이나 생각을 말하라”고 했지요. 처음부터 뭔가 분위기가 심상치 않을 것이라는 예감이 들더군요. 왜, 그런 것 있잖아요. 무엇인가를 시작함과 동시에 ‘이것이 어떻게 어떤 분위기로 종료되겠구나’ 하는 막연함 감을 느끼는 것 말이에요. ‘레즈비언인 동생을 둔 언니의 느낌이나 생각’은 이렇다고 하네요.
 
“사실, 별 생각이나 느낌은 없어. 그냥 너는 다섯 살 어린 내 동생이지. 그렇게 큰 의미를 두지는 않아. 그래서인지 딱히 심정이니, 심경이니 하는 것들에 관해 할 얘기가 없어. 나는 그냥 ‘내 동생 박수진은 레즈비언이구나’ 정도로만 생각할 뿐이야.”
 
언니가 너무나도 간단명료하게 답변을 하기에 “그래도, 처음부터 그렇게 받아들이지는 않았을 것 아니야?”라고 물었지요.
 
“처음에 그 말을 들었을 때, 평소에 내가 너에 관해서 가지고 궁금증이 해결되었어. 고등학교 때 친구가 나한테 ‘수진이가 무엇인가 때문에 많이 힘들어하는 것 같다’고 말한 적이 있었는데, ‘아…. 그래서 수진이가 그런 문제로 힘들어 했던 것이구나’ 라는 생각으로 정리가 되더라고.”
 
저는 중학교 2학년 때부터 정체성 문제로 고민을 시작했어요. 그때부터 스물여섯 살이 될 때까지 가족들은 물론이거니와 가까운 친구 중 그 누구도 제가 정체성 문제로 고민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들이 없었지요. 그렇게 15살 때부터 26살 때까지 저는 주로 집에 들어가면 제 방으로 들어가 문을 걸어 잠그고, 혼자 이런저런 고민을 하면서 시간을 보내는 일이 많았습니다. 가족들과 깊이 제 마음을 나누고 하는 일이 없었어요.
 
그래서 아마도 언니의 친한 친구가 그런 저를 보면서 ‘수진이가 힘들어 하는구나’ 느꼈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렇게라도 눈치를 챘던 언니 친구가 있었다니, 지금에 와서 하는 말이지만 고마운 마음이 드네요. 언니의 생각을 조금 더 자세하게 들어보고 싶었습니다.
 
“가끔씩 다른 사람들이 (이 사실을) 알게 되면 문제가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은 해. (동성애자에 대해) 대단한 혐오감과 거부감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의 경우가 그렇겠지. 하지만,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는 것이고, 나에게는 내 생각이 중요한 거야. 그냥, 그렇게 차이를 인정하면 될 일이라고 생각해. 모르겠어. 미국에서 생활할 때 수도 없이 많은 레즈비언, 게이 커플들을 봤거든. 그래서 그렇게 쉽게 받아들였는지도 몰라. 레즈비언, 게이 커플들이 손을 잡고 걸어 다니고, 공원에서 키스를 하고, 서로 애무하고 하는 모습들이 처음에는 생경해서 놀랍기도 했는데, 금방 익숙해졌어. 익숙해지면 더 이상 이상하게 느껴지지 않잖아. 그저, 생활이 되는 거니까.”
 
언니는 그렇게 단순하고 명쾌하게 동생이 레즈비언이라는 사실을 생각하고, 받아들였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언니는 결혼을 했지요. 그러니까 제게는 형부가 있습니다. 얼마 전에 알게 된 일인데, 이미 오래 전에 언니는 형부에게 제가 레즈비언이라는 사실을 말했다고 합니다. 그 과정의 이야기가 궁금했어요.
 
“나는 기본적으로 형부와 대화를 많이 해. 말이 통하는 배우자야. 기본적인 코드가 비슷하다고 할까. 그 점이 결정적으로 결혼을 하기로 결정한 중요한 이유이기도 해. 처음부터 생각했어. 내 동생이 레즈비언이라는 사실을 굳이 숨길 필요가 없겠다 싶었어. 집 근처 공원에 가서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다가 가족 이야기가 나왔어. 그러니까 당연히 네 얘기도 나왔지. 그래서 그냥 내가 말했어. 수진이 레즈비언이라고. 그랬더니 형부가 그러더라고. ‘의외다. 우리 가족 중에도 동성애자가 있다니!’ 정도로 반응하더라.
 
그 후에 가끔 네 이야기를 하는데, ‘수진이는 힘들겠다. 우리가 모르고 지내는 부당함을 피부로 다 느끼면서 살려면 얼마나 힘들겠나.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부분이 있을 게다’ 이런 생각을 나누고는 했지. 아, 그런데 좀 다르게 생각하는 부분도 있기는 하더라. 내가 언젠가 형부한테 ‘수진이 결혼식 하면, 같이 가야지’ 했더니 형부가 놀라더라고. 그래서 그 순간 생각했어. ‘아, 이건 또 다른 문제인가?’라고 말이야.”
 
언니가 형부에게 제 이야기를 했다는 소식을 듣고 처음에는 깜짝 놀랐어요. 아주 오래 전에 제가 결혼한 언니에게 “언니, 형부한테는 언제 말해?”라고 물었더니 언니는 “형부는 보수적이어서 안돼” 라고 답했었거든요. 그래서 언니가 형부에게 그렇게 빨리 제 이야기를 전할 줄 몰랐던 거죠. 형부에게 말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제일 처음 든 생각이 ‘우리 언니 괜찮은가?’였죠. 무엇이 두려웠는지는 모르지만, 형부가 알게 되면 괜히 언니가 난처해지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 있었거든요. 그런데 저렇게 ‘가족 중에 특이한 사람이 있네’ 하는 정도로 생각해주시고, 심지어 걱정까지 해주신다니 형부에게도 진심으로 고마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형부와 저는 서로 만나면 레즈비언의 ‘레’자도 꺼내지 않고 지냅니다. 저도 형부에게 그와 관련한 어떠한 이야기도 꺼내지 않고 있고, 형부도 그저 ‘어, 수진이 잘 지내지?’ 정도의 안부만 묻고는 하지요. 조금 더 시간이 흐르고, 저도 형부도 조금 더 나이가 들면 자연스럽게 제 사는 이야기를 담담하게 나눌 수 있게 되지 않겠나 하는 생각을 해요. 엄마에게 그런 시간이 필요했듯이, 언니도 그리고 형부도 그런 시간이 필요하겠지요. 물론, 그 시간은 제게도 필요하고요.
 
지난 번 엄마 인터뷰에 이어 진행한 언니의 인터뷰에서도 “수진아. 그저 씩씩하게 살아가라. 레즈비언인 게 다 뭔 상관이란 말이냐!”라는 긍정적인 메시지를 많이 받았습니다. 그래서 언니에게는 조금 더 구체적으로 물었어요. 동생의 삶을 생각하면 안타깝게 느껴지는 부분은 없는가 하고요.
 
“나는 다른 것이 안타까운 게 아니라, 네가 정도 이상으로 힘들어 하는 게 안타까워. 네가 레즈비언인 것이 뭐가 그렇게 큰일이라고 그러는지 모르겠다. 너는 그냥 레즈비언이고, 나는 이성애자인 거잖아. 이 세상에는 정말 많은 편견과 차별이 있어. 학력 차별, 장애/비장애 차별 등 존재하는 편견과 차별이 얼마나 많니. 나는 네가 너만의 특수한 문제를 겪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핸디캡일 뿐이야. 어디에 가나 차별은 존재하는 거야. 그건 피해의식일 뿐이야. 사람은 누구나 원하지 않는 상황 속에 놓이기 마련이야. 인정하기 싫지만, 그게 현실이야. 단지 현실을 수긍하는 일이 어려울 뿐이야. 이왕 한번 사는 것, 편안하게 살자고!”
 
언니의 이야기를 듣고 있는데, 약간 억울한 마음이 들었어요.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내게 무엇이 어떻게 힘들었는지 묻지 않았던 언니가 “너만 힘든 것 아니니까,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살면 돼” 라고 하니까, 그저 긍정의 메시지로만 와 닿지가 않았다고 할까요. 갑자기 기분이 상해서 한 마디 했죠.
 
“언니, 나한테 너무 관심이 없는 건 아니야?”
 
언니의 마음도 상했습니다.
 
“너도 내 결혼생활을 다 이해하고, 관찰할 수는 없잖아. 나도 마찬가지야. 내가 너의 모든 것을 다 알 필요가 있어? 내가 너는 파트너와 어떤 체위를 하는지 알아야 해? 우리 부부가 어떤 체위를 하는지 속속들이 네가 다 알 필요는 없잖아. 마찬가지야. 우리 부부의 재무 상태를 네가 다 알아야 하냐고. 이것은 내가 너에게 관심이 없어서 그런 게 아니잖아. 우리 좀 무뎌지자. 그냥 한 인간으로 살자. 레즈비언이라는 딱지 붙이고 강조하면서 살 필요 없다니까. 이슈화하고 문제화하려면 끝도 절도 없다니까!”
 
저는 언니에게 제가 커밍아웃을 한 이후에 가족성원 중 그 누구에게도 ‘무엇이 왜 힘들었는지, 힘든지’ 질문을 받아본 적이 없다고 말했습니다. 내가 파트너와 어떤 체위를 하는지를 물어봐 달라는 것이 아니라, 어린 시절부터 고민을 하면서 무엇이 어떻게 왜 힘들었는지, 지금 레즈비언으로 살아가면서 어려운 일은 무엇이 있는지 단 한번이라도 물어봐 주었으면 좋겠다고 마음을 전했습니다. 레즈비언으로서 이겨내야 할 짐들의 무게가 아무렇지도 않게 취급되고 있다는 느낌을 받은 저는, 언니에게 일장연설을 하기에 이르렀지요.
 
“언니가 무슨 말을 하려는 것인지 알아. 하지만, 나는 ‘내 고통이 네 고통보다 더 크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야. 레즈비언인 내가 일상적으로 겪는 어려움에 관해서 언니가, 가족들이 그렇게 단순 명쾌하게만 생각하는 게 문제라고 생각해. 이를테면, 현재 나는 파트너의 집에서 함께 살고 있는데, 언제 파트너의 부모님이 집에 들이 닥칠지 모르는 두려움을 느껴. 심지어 아직 커밍아웃을 준비하지 못하고 있는, 아니 할 수 없는 상황에 있는 파트너의 부모님이 우리가 레즈비언이라는 사실을, 우리들이 동거를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이후의 상황에 대한 깊은 두려움이 있어. 함께 사는 1년 반 동안 내 방에 가지고 있는 수많은 레즈비언, 게이 관련한 자료들과 책자들을 가족이나 지인 집에 옮겨두어야 하나 늘 고민하고 살았어. 부모님이 언제 오실지 알 수 없으니까.
 
그래서 동생에게 편지를 써 두었지. ‘동생아, 유사시에 네가 문을 따고 들어와서 벽장 안과 책상 뒤에 있는 박스들을 네가 책임지고 가지고 나오렴’. 세상에 이런 준비를 하고 있는 사람들이 얼마나 있겠어. 예를 들자면 끝도 없어. 오랜 시간 동안 가족, 친구, 학교, 직장, 군대, 지역사회… 숨기고, 숨기면서 살아야 하는 사람들의 얘기, 커밍아웃 이후 겪어야 하는 일상적인 수모 등을 감내해야 하는 사람들에게 그저 쿨하게 ‘긍정적으로 사고해!’라고만 말하는 것은 정말 속상한 일이야!”
 
일장연설을 듣고, 언니는 이렇게 물었습니다.

“보수적인 집안 딸이 백인 남자친구와 사는 것과 다른 문제야?”
 
좋은 분위기로 시작했던 언니와의 인터뷰는 이렇게 고성이 오가는 최악의 상황을 연출하고 있었습니다. 처음의 제 ‘감’대로 말이지요. 언니도 저도, 생각도 말도 꼬여서 일관성 없는 이야기를 주고받기 시작했지요. 그 와중에 자리에 함께 해준 파트너가 한 마디 거들었습니다.
 
“레즈비언 커플과 백인남자를 사귀는 여자 문제의 경우, 비슷하면서도 다른 부분이 있는 것 같아요. 레즈비언은 ‘변태’라고 하잖아요. 내 정보를 끊임없이 숨겨야 하고, 사람들을 속이면서 사는 일상을 일종의 핸디캡이라고 보는 것은 적절하지 않은 것 같아요. 익숙해지기도 하지만, 결코 익숙해지지 않은 상황들이 얼마든지 있거든요. 일상적인 말로 하기 시작하면 끝이 없을 그런 일들이요. 그런 현실에서 ‘나는 상관없어’ 라는 생각을 하기가 쉽지 않아요. 우리 주변에는 우리가 진지하게 들어야만 알게 되는 그런 문제들이 많잖아요? 아마도 수진이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들어야지만 알 수 있는 부분들에 관해 묻고, 듣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요.”
 
언니가 물었어요.

“그럼, 어떻게 하라는 거야?”
 
제가 답했죠.

“나는 더 이상 가족들에게 바랄 것이 없어. 특히, 엄마와 언니에게는 더 이상 바랄 것이 없어. 이미 많은 것을 받았고, 이런 가족들이 없다 싶을 정도로 감사하게 생각해. 하지만, 내가 한 경험들에 관해 아무것도 궁금해 하지도 않으면서 무조건 나를 피해망상에 걸린 환자쯤으로 치부해버리면 나는 정말 속상해. 그리고 언니는 자꾸만 내게 ‘긍정적으로 살아라’ 하는데, 나는 이미 긍정적으로 살고 있어. 그렇지 않고 어떻게 그 동안 레즈비언인권운동 한다면서 10년을 버티고, 온 천지에 커밍아웃 하면서 다니고 했겠어?”
 
이 정도에서 인터뷰를 마무리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했어요. 저는 앞으로도 언니와 이와 같은 이야기들을 나눌 기회들을 많이 만드는 편이 좋겠다고 생각을 정리했어요. 그렇게 인터뷰를 마치고 언니가 물었어요. 갑자기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가득 차서는 이렇게 묻더군요.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산다는 애가 그럼, 동생한테 짐을 처리한다는 둥 그런 유서는 왜 써서 보냈니?”
 
깜짝 놀랐어요. 저는 유서를 쓴 것이 아니었고, 사고 등 급작스러운 상황에 동생이 도움을 주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이런저런 부탁 사항을 정리해서 동생에게 보낸 것이었을 뿐인데, 언니는 제가 자살이라도 하려고 한다고 생각한 모양이었습니다. 갑자기 제 눈에도 눈물이 그렁그렁 차올랐어요.
 
“아! 언니, 그건 그게 아니라…”
 
언니가 소리를 질렀습니다.
 
“야, 너희들 다 집에 가. 머리 아파. 웬 인터뷰하자고 해서 이 난리를 피워? 집에 가! 더 이상 너랑 말하기 싫어.”
 
우리는 그렇게 쫓겨났습니다.
 
인터뷰를 마치고 집에 돌아오는 길 내내, 귀가 후 한참 동안 마음이 무겁고 아팠습니다. 그것은 언니가 레즈비언에 대해 편견을 가지고 있어서도 아니고, 무조건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살라고 한 것이 섭섭해서도 아니었습니다. 결국, 저는 인터뷰를 다 마치고 나서야 언니가 얼마나 저를 깊이 걱정하고, 제가 겪었을 마음의 고통을 짐작하며 같이 슬퍼하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아니, 이미 알고 있었지만, 그 동안 잊고 지냈던 것 같아요.
 
“수진아, 긍정적으로 살자”, “인생 한번 사는데, 좋게 좋게 살자”고 했던 긍정의 메시지는 결국 저를 깊이 안타까워하고 걱정하는 마음에서 언니가 동생을 위해 할 수 있는 최선의 메시지였다는 것을 말입니다. 그런데도 저는 박박 대들면서 호통이나 치고 돌아왔으니, 마음이 무거울 수밖에 없었지요.
 
‘부부 싸움은 칼로 물 베기’라는 말이 있지만, 자매 간 싸움만 하겠어요? 귀가한 후 언니에게 갖은 애교를 담아 사과의 문자메시지를 보냈고, 그렇게 우리는 또 화해를 했습니다. 전혀 극적이지 않은 화해를 한 후, 컴퓨터를 열어 예전에 언니가 제게 보낸 메일을 열어 보았습니다. 제가 레즈비언이라는 사실을 안 이후에 언니가 제 미니홈피에 방문하여 방명록에 남겨 놓았던 글이었죠.
 
메일을 다시 열어 읽고 생각했어요. ‘언니는 나를 걱정해. 잊지 말자. 그리고 언니랑 더 많이 대화하자. 언니가 묻지 않아도, 언제나 그렇게 해왔듯이 내가 먼저 이것저것 많이 설명해주자. 싸우면 어떤가. 이렇게 극적이지 않은 화해 수만 번하면 될 일인데. 언니, 고맙다. 많이 미안하고.’
 
<수진아, 언니다. 네 홈피 보고 며칠 전에 한참 동안 목 놓고 울었다. 서럽게. 지금도 눈물이 쏟아진다. 오늘따라 이소라 노래는 왜 이렇게 가슴 아프게 들리는 거냐! 내가 어찌 네 슬픔을 이해하겠냐? 그 무거운 슬픔을. 나한테 일어났던 그 어떤 일보다도 슬프다, 수진아. 언니가 어떻게 해주지 못해서 미안하다. 미안하다. 어떻게 해야 네가 행복할 수 있을까? 예전에, 아주 오래 전에 우리 어렸을 때, 옛날 친구 OO이가 한말이 기억난다, 갑자기. 수진이가 맘이 복잡하고 근심이 있는 것 같다고…. 그때부터 시작된 것일까? 너의 그 슬픔은, 서러움은…. 그렇게 오랜 시간 동안 계속…
 
수진아, 네가 염려스럽다. 괜찮은 것 같다가도 꼭 그렇지 만도 않은… 한번 휩쓸고 지나가는 열병 같으면 좋으련만. 나이가 들면서 괜찮아지면 좋겠다. 다른 곳에서 살아보면 어떨까? 가끔씩 들를게. 언니가 담 달부터 십만 원씩 보낼게. 필요한데 쓰렴. 수진아, 살아보니까 인생은 참 다를 수 있는 것 같다. 언니는 지금 그 어떤 때보다도 행복한데…. 너도 그럴 수 있을 거다. 인생은 생각지도 못한 일들이 생기니까…. 조금만 견뎌보자. 수진아, 사랑하는 내 동생아.>  *이전 칼럼 보기-> 긴 터널을 빠져 나온 엄마와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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