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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의 평화를 노래해요”
매력적이고 따뜻한 할머니 황순영
 

아리랑 노래는 지역마다 특색이 있고 많은 장소에서 널리 불려진다. 최근에는 <평화 아리랑> 노래를 들었다. 65세의 황순영님이 본조 아리랑에 가사를 만들어 붙여 부르는 노래다.

 
▲ 매력적이고 따뜻한 할머니 황순영
전쟁의 이유는 무엇인가요. 가난의 원인이 무엇인가요. / 스스로 좋아지길 기다리기에는 세상의 고통이 너무 큽니다. / 전쟁의 이유를 날려보내요. 가난의 원인을 날려보내요. / 사람과 세상이 편해지려면 욕심을 버리면 되는 거지요. /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로 넘어간다.

 
얼마 전에 지인으로부터 “매력적이고 따뜻한 할머니”를 소개한다는 추천을 받고서, 황순영님을 만나러 갔다. 그런데 뵙고 보니 눈에 익은 얼굴이다. 시민단체들이 하는 행사에서 종종 만날 수 있는 분, 아마 촛불집회에 참여하는 이들 중에서도 소고를 치며 노래를 부르는 반백의 여성을 눈 여겨본 사람이 꽤 있을 것이다.

 
평화와 인권을 위해서라면 어디든 달려가겠다는 황순영님. 그의 주위로 긍정적인 에너지가 흘러나왔다. 하지만 순영님은 젊은 시절엔 사회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잘 몰랐고, 가사일하고 아이들 키우느라 바쁜 “평범한 주부”였다고 자신을 소개했다.

 
암 투병 “몸이 아픈 것도 평화가 아니더라”

 
“가난해서 초등학교밖에 못 나왔어요. 공부하고 싶었는데 못해서, 마흔이 되도록 꿈에 학교 못 가서 울었어요. 잠에서 깨도 설움이 안 가셔서 흐느껴 울곤 했어요. 배운 것도 없고, 우리 때는 결혼도 일찍 하잖아요. 21살에 결혼해서 애 둘 낳고, 집에만 갇혀 살았죠.”

 
황순영님은 돈을 벌기 위해서 조각장갑 등을 만들어 팔며 가내수공업을 했다. 남편과 안 쓰고 모은 돈으로 자식들의 학비를 댔다. 학교에 다니지 못한 설움이 커서, 자식들은 학비가 없어서 공부를 못하게 되는 일이 없게 하려고 정말 애쓰셨다고 한다.

 
▲ "평범한 주부"로 살다 암 투병을 거치며 세상을 보는 창이 열렸다.
이렇게 “평범한 주부”로 살아온 순영님의 인생에 전환기가 온 것은 ‘암’이라는 무서운 진단을 받고서부터였다. 투병생활이 너무 힘들고 아파서 자살하려 한 적도 있지만, 마흔여덟은 세상을 떠나버리기엔 젊은 나이였다. 남편 김진영씨도 떠나 보내주지 않았다.

 
두 사람은 평소에 병원을 믿지 않았지만, 목숨이 오가게 된 상황에선 어쩔 수 없이 방사선 치료를 받았다고 한다. 하지만 아내가 거의 죽은 것이나 다름없는 모습이 되어가는 것을 보고, 남편은 더 이상 병원이 아닌 자연에서 답을 찾아야겠다고 결심했다. 정성이 담긴 민간요법을 통해 순영님은 차츰 건강을 회복했다.

 
“우린 내 병 내가 고친다 주의에요.” 순영님은 “몸이 아픈 것도 평화가 아니더라” 하고 말한다. 건강을 위해 하는 일이 있다면 평소에 열심히 몸을 움직이며 사는 것, 웬만하면 고기를 먹지 않는 것, 수지침을 배워 몸이 아플 때 직접 침을 놓는 것 정도다.

 
냉장고에 고기를 사다 넣는 법이 없다는 황순영님은 “사육하는 것도 평화가 아니더라” 하고 말했다. “그 애들도 불안한 것 다 알아요. 죽는다는 것도 알고, 죽기 싫어하죠.”

 
아름다운 미래세상에는 종교도, 국경도 없어

 
▲  직접 수를 놓아 만든 지구통일, 세계평화 깃발
암 투병을 하는 과정에서 더욱 더 생태적인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되고, 죽음을 넘나드는 상황을 거치고 나면서 순영님의 삶에도 변화가 생겼다.

 
“신문을 보다가(그때까지만 해도 순영님은 조선일보를 보았다) 2000년에 ‘환경정의’라는 단체를 알게 되었어요. ‘다음을 지키는 사람들’이라는 모임에 대한 기사였거든요. 다음을 지킨다니, 기분이 좋았죠.”

 
그것이 시작이었다. 지금 순영님은 15군데가 넘는 단체들에 회원으로 가입해서 후원도 하고 행사나 집회에도 참여를 한다. “내 일, 네 일이 어딨어요? 다 우리의 일이고, 세상의 문제인데. 단식하고 있는 기륭전자도 많은 사람들이 힘을 모아주면 좋겠어요.”

 
황순영님은 세상의 불의에 대한 걱정과 자신의 소신을 담아 글을 쓰기 시작했다. 남편의 도움을 받아, <가난과 전쟁이 함께 사라진 아리랑 평화세상>이라는 책을 내기도 했다. “아름다운 미래세상”을 현재형으로 기록하고 있는 것이 인상적인데, 거기엔 “종교가 없는 세계평화”와 “국경이 없는 통일 지구”가 있다.

 
“나는 남북통일이 아니라 지구통일을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래야 세계평화가 오죠. 국익 때문에 전쟁을 하고, 동맹국이라는 이유로 파병을 하잖아요. 종교를 이유로도 전쟁이 끊이지 않죠. 종교와 국경이 없는 세상이 평화롭습니다. 굶기지 않고, 죽이지 않고, 서로 사랑하면서 잘 살자는 거예요.”

 
순영님의 솔직하고도 재치 있는 아이디어를 한 구절 소개해보면, 단기 4339년 6.25일 “참다운 재판장 앞”에 보낸 고발장이 있다. 원고는 “전쟁으로 가족을 잃은 통곡이”, 피고는 “사람을 행복하게 하지 못하고 잘못된 욕심으로 전쟁을 하여 사람을 죽인 나라의 대통령과 각료 및 정치인과 군 지휘관”이다.

 
▲ 많은 고생을 함께해 온 남편 김진영씨는 좋은 친구이자 지원자다.
자식 다 키워놓고 나서야 비로소 자신의 이야기를 하며 집밖의 사회로 나가게 된 순영님이지만, 늦게라도 이런 자유를 누릴 수 있는 데엔 남편의 도움이 큰 것 같았다. 필명이 ‘나무꾼’인 김진영씨는 직접 살 집을 짓는 등 재주가 많은 분인데, 살림을 워낙 알뜰하게 해서 아내의 바깥활동을 물심양면으로 지원하고 있다.

 
“사람들은 참 욕심이 많은데, 경우가 없는 욕심이거든요. 해적심리죠. 그런데 아내는 착하고, 경우가 있는 사람입니다. 그런 아내가 세상에 불만이 있어 말해야겠다고 하니 도와줘야죠. (아내가 하는 말이) 다 옳은 말이니, 나는 고맙지요.”

 
“재미있어요. 신이 나요.”

 
황순영님은 세상을 바꾸기 위해, 평화로운 지구를 만들기 위해 노래를 한다. 적대적인 관계를 만드는 방식이 아닌, 춤과 노래로써 의사를 전달하고자 하는 것이다. 춤추고 노래하며 평화를 이야기하면 “평화도 신이 난다”고 한다.

 
“촛불집회 나가서도 사람들에게 우리의 요구를 ‘정중하게’ 하자고 했어요. 감정을 건드리지 말고 말이에요. 나는 말은 별로 못하니, 노래를 해야겠다 싶었죠.”

 
▲ 오늘도 평화의 노래를 만들어 부르느라 시간 가는 줄 모른다.
사람들이 많이 아는 곡에다가 개사한 가사를 붙여서 부르는데, 벌써 수십 곡을 작사했다. “전우의 시체를 넘고 넘어~”로 시작하는 <전우여 잘있거라> 곡에 붙인 노래는, “사람 죽이는 그런 연습 어떻게 할 수 있나요”라고 반문하는 입영반대의 노래 <나는 못해요>다.

 
노래를 부르며 평화를 이야기하며 사람들의 서명을 받아, UN에 “전쟁 종식”을 요구하는 성명도 넣어보려 한다는 계획도 세우고 있다. 지구의 평화를 위해 1인시위도 벌일 예정이다.

 
“앉으나 서나 당신 생각~이라는 노래가 있죠. 지금 제가 딱 그래요. 예전에는 어떻게 돈 벌어서 먹고 살까 고민이었지만, 지금은 노래 생각뿐이에요. 예전엔 내가 왜 살까? 재수가 없어 태어났으니 살지 싶었어요. 지금 이러는 게 좋아요. 재미있어요. 밥 세끼 먹고 사우나 다니고 그러고 살 수도 있겠죠. 하지만 목소리를 내고 여러 사람들과 만나고 신나게 살고 싶어요. 노인들이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해요.”

 

2008/08/26 [10:06] 여성주의 저널 일다 ⓒ www.ildar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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