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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편적 사회보장제도가 필요한 이유 <일다>는 사회안전망이 미흡한 한국사회에서 도처에 널린 ‘빈곤’ 가능성에 주목하고, 가난한 사람들의 사연에 귀 기울이며, 국가의 빈곤대책으로 시행된 지 10년째인 국민기초생활보장법의 문제점 및 보완책을 제시하는 기획기사를 4회에 걸쳐 싣습니다.
 
필자 재인님은 사회복지사로 일하고 있으며, 기초생활수급자들과 만나온 현장경험을 토대로 연재 글을 기고했습니다. –편집자 주

사회보장체계가 부실한 사회에서, 사회구성원들은 도처에 많은 위험들을 안고서 살아간다. ©일다

현대사회를 ‘위험사회’라고 이야기한 독일의 사회학자 울리히 벡은 산업사회에서 경제가 발전할수록 위험요소가 많아지므로, 국가정책의 최우선 과제는 사회적 안전장치를 마련하는 것에 맞춰져야 한고 주장했다.
 
사회복지현장에서 저소득층 사람들과 만나며 안타까움을 많이 느낀다. 그것은 그들이 ‘운이 없다’거나 ‘복이 없다’고 생각해서 느끼게 되는 감정이 아니다. 우리 사회가 사회구성원들이 처하게 되는 갑작스런 위기를 극복해갈 수 있도록 ‘제도가 뒷받침되어 주었더라면’ 하는 안타까움이다.
 
체계적 ‘고용지원 시스템’ 갖춘 사회였다면…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결혼해 전업주부로 살던 이모씨의 사연을 들어보자. 그녀는 남편의 갑작스런 죽음으로, 자녀들 학비와 생계비를 벌기 위해 일자리를 알아보았다고 했다. 하지만 기술이 없는 여성이 일자리를 구하기란 하늘의 별 따기. 더욱이 경제위기로 인해 많은 자영업이 문을 닫고 있는 형편이라, 음식점 아르바이트 자리도 구하기 어려웠다.
 
만약 우리사회에 직업훈련과 교육의 기회 등을 제공하는 체계적인 ‘고용지원 시스템’이 갖춰져 있다면 어떨까. 이씨처럼 경력이나 기술 없이 돈벌이를 해야 할 처지에 놓인 사람도 막막한 상황에서 헤매지 않아도 될 것이다.
 
한부모 여성 박모씨는 내년에 대학생인 자녀가 졸업을 한다. 청년실업문제가 심각한 시기지만, 가족구성원이 대학을 졸업하면 ‘소득원이 생긴다’고 추정되기 때문에 기초생활보장 수급권이 소멸된다. 이제 생계비마저 지급받지 못하게 될 형편이다. 박씨는 지금보다 보수가 많은 일자리를 구해보려 했지만 지금 일자리도 간신히 구한 터라, 자녀가 취직이 되기만을 기다리고 있다.
 
만약 기초생활보장제도가 수급자 가정의 고등교육 졸업생에게 일정 정도의 취업준비 기간을 고려해 준다면 어떨까. 생계비 중단으로 인한 고통이나, 자녀 취직의 어려움으로 가족구성원들이 느끼는 스트레스는 지금보다 훨씬 줄어들 것이다.
 
돌봄, 의료 등 사회서비스가 잘 마련된 사회라면…
 
이혼 후 두 자녀를 어렵사리 키워오고 있는 정모씨는 딸이 자주 아파 진단을 받아보니 희귀 병에 걸렸다고 한다. 딸을 데리고 큰 병원에서 정밀진단을 받고 치료를 받으려면, 지금 하고 있는 일에 지장이 있을 것이 뻔하다. 딸의 치료도, 돈벌이도, 모두 포기할 수 없어 앞날이 까마득하다.
 
만약 한국이 사회서비스가 잘 마련되어 있는 사회라면, 가족이 아프거나 돌봄이 필요해도 경제활동을 하는데 큰 지장을 받지 않을 것이다.
 
혼자 자녀 넷을 키우고 있는 한부모 여성 조모씨의 사연도 안타깝다. 그녀는 현재 월세로 살고 있는 지역이 뉴타운 개발 예정되어, 한두 달 뒤 이주비를 받고 이사를 가야 한다. 지금 사는 곳엔 야간까지 아이들을 맡길 수 있는 지역아동센터도 있고, 오랜 시간 정든 곳이라 근처에서 살고 싶지만, 재개발 되면 집값이 뛰기 때문에 새로운 곳으로 떠나야만 한다.
 
“뉴타운 개발은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일까” 한숨 내쉬는 조씨 앞에서, 어떤 위로의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무분별한 뉴타운 개발 대신 집값 안정을 위한 정책을 폈더라면, 또 만약 정부의 보조 주택정책이 보다 확대된다면, 재개발로 인해 길거리에 나앉게 될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어떤 상황에 처해도 ‘인간답게 살수 있도록’
 
독일사회의 경우를 보자. 사회보장제도가 우리처럼 ‘이혼’이나 ‘장애’ 등 개별 가족구성원들의 문제에 초점을 두지 않는다. 즉, 혼인에 기반을 두지 않고 다양한 가족형태를 받아들이면서, 부모수당이나 아동수당과 같이 전 국민에게 적용되는 ‘보편적’ 사회보장제도가 확립되어 있다. (김혜영 외 <미혼부모의 사회통합 방안 연구> 한국여성정책연구원 2009)
 
서울여대 사회복지학과 정재훈 교수는 ‘자녀나 환자에 대한 돌봄, 의료비, 주택비, 고용 등에 대한 사회보장제도가 탄탄하게 마련되어야, 사회구성원이 어떤 위험에 처하더라도 사회적 경제적 생활에 큰 타격을 받지 않을 수 있다’고 말한다.
 
울리히 벡의 경고처럼, 세계화와 경제위기 등으로 현대사회는 많은 위험을 안고 있다. 국가는 그만큼 사회구성원이 맞게 될 위험을 줄여주는 제도를 시행해야 한다. 민주사회에선 누구라도, 어떤 상황에 처해도 ‘인간답게 살아갈 수 있도록’ 사회적 뒷받침이 탄탄하게 마련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것이 ‘사회적 안전망’이고, 우리사회가 덜 불행해지는 길이다. (재인) [이어진 기사 보기] 빈곤은 남의 일? 누구나 처할 수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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