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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곤층 더욱 배제시키는 ‘신청주의’ (사회복지사가 본 가난한 사람들의 사연)

<일다>는 사회 도처에 널린 ‘빈곤’ 가능성에 주목하고, 국가의 빈곤대책으로 시행된 지 10년째인 국민기초생활보장법의 문제점 및 보완책을 제시하는 기사를 연재했습니다. 필자 재인님은 사회복지사로 일하고 있으며, 기초생활수급자들과 만나온 현장경험을 토대로 글을 기고했습니다. –편집자 주

 
‘차상위계층’(고정재산이 있어 국민기초생활 수급권자에서 제외된 빈곤층과, 최저생계비 대비 1∼1.2배 소득이 있는 ‘잠재적인 빈곤층’이 여기에 해당함)인 김모씨는 몇 달 전 저소득층에 지원되는 보육료 신청 기간을 놓쳐, 그 달의 보육료를 지불해야 했다.
 
김씨 가족은 무직상태의 남편에 대한 추정소득이 60만원 잡혀 있어 생계비 보조를 받지 못하고, 김씨가 자활근로를 통해 받는 70만원으로 네 식구 생계를 유지해가야 한다. 이번에 김씨를 만났을 때, 당시의 보육료는 어떻게 처리되었는지 물어보았다.
 
“70만원으로 네 식구 사는 형편에 어떻게 30만원을 보육료로 내겠느냐고 아무리 사정을 말해도, ‘신청’에 의해서 지원되는 제도라 어쩔 수가 없대요. 그래서 3개월 할부로 10만원씩 내고 있어요. 겨울에 난방비도 걱정인데, 10만원씩 내느라 정말 힘드네요.”
 
국민기초생활보장법의 내용과 수급권자가 지원 받는 생계비 등의 정보를 전혀 모르던 30대 한부모 여성 임모씨는, 1년 전 집주인이 수급권에 대해 알려주어 비로소 동사무소를 찾았다. 그래서 그제서야 수급권을 신청하고 자활근로도 하게 되었다고 한다.
 
임씨는 “3년 전 이혼하고 나서 애들을 키우며 얼마나 힘들었는데…. 진작 (수급권에 대해) 알았더라면 어린 애 분유걱정은 안 했을 텐데…”라며 아쉬움을 토로했다.
 
김씨와 임씨의 사례는, 저소득층을 지원해 빈곤 문제를 해결해보고자 시행된 국민기초생활제도가 원칙으로 삼고 있는 이른바 ‘신청주의’의 문제점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예다.
 
국민기초생활보장법에 따라 ‘수급권’은 당사자가 직접 신청하거나, 혹은 동사무소 직원이나 복지기관 사회복지사가 직권으로 신청하면, 소득과 재산을 일정 비율로 산정한 자산조사를 거친 뒤 최저생계비 미만인 사람에게 주어진다.
 
사회복지기관에서 도우미로 일하면서 저소득층 사람들을 2년째 만나왔던 지인은 ‘신청주의’에 대해 이렇게 꼬집어 말하기도 했다. “기초생활수급권은 전국민 대상이 아니더라고요. 신청 능력이 있는 사람 대상이지” 라고.
 
사회복지현장에서 만나는 저소득층 개개인이 가지고 있는 ‘정보’의 차이는 매우 크다. 최저생계비 미만의 소득에 지급되는 보충급여 규정이나, 자산조사 시 산정되는 재산 비율까지 정확히 알고 있는 사람들도 있지만, 수급권 신청 절차도 모르는 사람들도 있다.
 
‘신청주의’는 정보 획득 능력이 떨어지는 취약계층을 더욱 배제하게 되는 결과를 낳고 있다.
 
그런데 지금의 사회복지현장의 상황을 보면, 이렇게 사각지대에 놓인 새로운 수급권자를 찾아 나서기보다는, 현재의 수급권자에 대해 연간 자산조사를 실시하며 수급권자를 재선별하는 것에만 주력하는 듯하다.
 
“(사전에) 정보를 제대로 알려주지 않고 (사후에) 통보하는 식인데, ‘권리’라는 생각이 안 들죠. 까딱하면 생계비도 끊길 거라는 두려움이 항상 있어요.”
 
수급권자인 황모씨의 이 말이, 우리 사회 저소득층 지원제도의 현실을 보여준다.
 
‘신청주의’의 맹점으로 사각지대에 놓인 빈곤층에 대한 대책이 반드시 필요하다. 일선의 사회복지 전담공무원이나 사회복지사의 인력을 충원하고 교육을 철저히 하여 ‘직권에 의한 신청’을 늘려야 하며, 궁극적으로는 빈곤가구에 대한 ‘정책 안내를 의무화’해야 할 것이다.  (재인) 

[관련 기사 보기] ‘낙인’과 ‘혜택’의 딜레마에 선 사람들 | 빈곤은 남의 일? 누구나 처할 수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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