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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란의 라오스 여행] 일다는 라오스의 문화, 생태, 정치, 생활을 엿볼 수 있는 여행기를 연재합니다. 필자 이영란님은 라오스를 고향처럼 생각할 정도로 특별한 인연이 있는 분으로, <싸바이디 라오스>의 저자입니다.
 
제3세계, 제발 그대로 내버려 두세요…?
 

라오스 사람들에게 전기 없는 고요와 여유를 즐기며 살기를 바라는 게 올바른 일인가.

지난 봄, 라오스에서 사는 2년 동안 쓴 일기와 글을 엮어 <싸바이디 라오스>를 냈을 때 여러 인터넷 매체에 내 책에 대한 서평이나 독후감이 실렸다. 정말 고맙게도 대부분의 글들이 무척 긍정적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좀 불편했다.

 
기자나 본문 게재자의 긴 글들이 다소 낭만적인 면이 없지 않아서기도 했지만, 정작 나를 불편하게 만든 건 주로 짧게 달린 댓글들 때문이었다. 그들은 대체로 조용하고 평화로운 라오스가 그대로 지켜지길 바라고, (직접적으로 언급하지 않았으나 결국 나와 같은) 개발주의의 첨병이나 여행자들 때문에 라오스가 훼손될 것을 염려하는 것이었다. 물론 나와 전혀 다르지 않은 생각들이었다. 그런데 나는 왜 불편했을까? 간접적이나마 내가 개발주의자로 치부되어서?
 
글쎄…. 이제 아직까지도 정리하지 못한 숙제인, 저개발 국가의 ‘발전’을 이야기해야 할 것 같다. 먼저 라오스에서 경험한 전력, 전기이야기로 시작한다.
 
전기수출국 라오스, 그러나 도청소재지에 전기 들어온 해는 1992년
 

전기설비를 손보는 전기기술자들

어머니 강 매컹은 그 이름 그대로 라오스가 풍요로울 수 있는 모든 것의 원천이 되어준다. 라오스는 매컹의 풍부한 수력을 이용해 전기를 생산하고 수출한다. 에너지 전량수입국가라 할 수 있는 한국이 보면 엄청 부러운 일이다.

 
그러나 세상의 모든 거시지표라고 하는 것들이 일상의 생활과 별 상관이 없는 것은 라오스나 한국이나 마찬가지인걸. 나라가 전기를 수출한다고 하나, 대다수의 라오스 사람들이 전기를 넉넉히 쓰지는 못한다. (댐 건설로 인한 다른 문제들은 일단 제쳐두고) 전기를 수입할 주변국은 자기 돈으로 댐을 짓고 직접 송전선을 가설해 전기를 가져간다.
 
국제기구나 선진국의 차관이나 원조로 지은 댐에서 생산되는 전기도 마찬가지다. 라오스 정부는 시골 구석구석까지 송전선을 설치해 전기를 공급할 여력이 없다. 이러니 무역수지, 국민총생산량, 뭐 이런 숫자들은 올라갈 수 있겠지만 그에 비례해 라오스 사람들의 삶은 그다지 나아지지 않는다.
 
우리학교 체육선생님, 아짠 씨파이의 기억에 의하면, 라오스 서북부 싸이냐부리의 도청 소재지인 우리 동네, 싸이냐부리 읍내에 전기가 들어온 것은 1992년 무렵이었다. 아짠은 그때 중학생, 동네전기가 들어올 때와 동시에 아짠 집에 처음 자전거 한 대가 생겼던 일을 또렷이 기억하고 있었다. 그때보다 지금은 당연히(?) 공급범위가 넓어졌겠지만, 그래도 여전히 도로변이 아니라면 읍내를 벗어난 지역에선 전기를 끌어다 쓰기가 쉽지 않다.
 
건축학과 교수가 전기를 모른다?

 

터파기, 거푸집 세우기, 콘크리트 타설, 모든 것이 수작업으로 이루어지는 새 교사 건축공사 현장

2008년 한국국제협력단 해외봉사단원으로서의 나의 일은, 믿따팝 중학교에 새 교사(校舍)를 건축하는 중이었다. 특히 전기가 중요한 컴퓨터실에 설비를 마치고 컴퓨터 21대, 프린터, 빔프로젝터, 에어컨 등 모든 기기를 가동시켜봤다. 모두 정상적으로 작동되었다.

 
나름 뿌듯한 마음에 박수라도 칠까 하는 찰라, 밖에서 퍽 하는 소리와 함께 공사 중인 건물의 모든 전원이 나가버렸다. 건축업자는 문제처리는커녕 제대로 설명도 않고 도망치듯 사라져버렸고.
 
나중에 싸이냐부리 전력공사에 가서 가까스로 파악한 원인은, 컴퓨터실의 전력소비량을 감당할 수 없는 계기를 건물 전체전력을 통제하는 것으로 달았던 것, 아니 그 이전에 건물로 들여오는 전선 자체의 용량을 제대로 계산하지 못해 과부하로 폭발했던 것이다.
 
아무튼 전기에는 문외한인 내가 싸이냐부리의 전기기술자들에게 부탁해 해결한 결과를 쉽게 얘기하자면, 전력공사로부터 학교까지 전선 하나를 더 끌어왔고, (그러고 보니 보통 읍내에 있는 전봇대에는 전선이 3개씩 연결되어 있는데 우리학교로만 전선이 4개가 이어지게 되었다) 외부에서 전선이 들어오는 지점, 신축 건물의 전선이 시작되는 지점에 보다 큰 전기계기를 붙인 것이었다.
 
한국국제협력단 라오스 사무소가 선정해, 공사를 맡긴 건축업자는 라오스국립대학교 건축학과 교수 출신이었다. 사무소가 날림으로 고른 게 아니라면 이건 웃어넘기기에는 좀 심각한 문제다.
 
전기 없이 보내는 하루
  

새로 지은 컴퓨터실, 그러나 낮에 전기가 나가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컴퓨터를 사용할 수 없는 경우도 있다. 아짠 미노가 컴퓨터 시험을 보고 있다.

2007년 5월, 싸이냐부리는 매주 토요일이면 단전을 했다. 24시간은 아니고 해가 뜨면 전기가 나가고 해가 지면 전기가 들어오는 식이었다. 밤에는 불이 들어오니 집안에 촛불을 켤 번거로운 일이 없고, 원래 놀라는 토요일이니 노트북은 안 쓰면 되고, 말도 잘 못 알아들으니 텔레비전도 안 보면 되는 것이었다.

 
다만 처음에 빗자루 하나만 집어 들어도 땀이 비 오듯 떨어지는 더위에 에어컨, 냉장고를 쓸 수 없다는 것이 짜증이 났다. 하지만 이것도 곧, 목표한대로 일하지 못하더라도 덥지 않게 움직이기, 아예 목표를 덥지 않을 정도로 잡는(우리나라 사람들이 일하는 방식대로 하면 정말 그 더위에 죽을지도 모른다. 더운 데 사는 사람들이 우리 눈에 게을러 보이는 것은 그들에겐 필수적인 생존방식일 수도 있다) 라오스 사람들과 같은 지혜(?)가 생기고 난 뒤엔 전혀 불편하지 않게 지낼 수 있었다.
 
싸이냐부리에서 쓰는 전기는 라오스 북부의 중심 도시 루앙파방에서 들어온다. 루앙파방에서 싸이냐부리로 들어오는 유일한 (비포장) 도로를 따라 전봇대가 늘어서 있다. 그게 다다. 그래서 혹시나 그 길 중간에 무슨 사고가 생기면, 이렇게 계획된 단전이 아니라 불시에 싸이냐부리는 통째로 전기가 나가게 된다. 내가 있는 2년 동안은 두어 번 그런 일이 있었던 것 같다. 그러나 여기에도 곧 익숙해졌다.
 
라오스가 전기를 잘 쓰면 안 될까? 

 
처음에 제일 당황했던 건, 당장 쓸 돈이 없어 돈을 찾아야 했는데 정전이라고 은행이 아예 문을 닫아 버린 거였다. 해결책은 있었다. 돈은 주변사람들에게 빌리면 되는 것이었고, 낮에 전기 쓸 일이 없는 수업은 그대로 진행하면 되는 것이고, 우리들이나 하는 컴퓨터 업무는 오늘 쉬고 내일 하면 되는 거였다. 복사해서 전달해야 할 공문도 내일 하면 되는 거고.
 
정전에 대비한 해결책은, 그저 전기가 필요한 모든 일을 하루 미루면 되는 거였다. 동네 전체가 그러니 누가 못했네, 했네 할 것도 아니고 어떻게 혼자라도 해봐야지 할 일도 아니었다.
 
라오스에서 하루 정도 전기 없이 사는 것은 전혀 불편하지 않았다. 오히려 나중엔 전기가 없기에 만들어지는 고요함과 여유로움에 중독될 것만 같았다.
 
그러나 라오스 사람들에게 나와 같이 전기 없는 고요와 여유를 즐기며 살라고 할까, 라오스 사람들이 하루도 이틀도 아니고 계속 복사하지 않고 은행 문 열지 않고 살 수 있을까, 그래서 라오스 사람들이 행복할까, 우리가 라오스가 그러기를 바라는 게 올바른가?

[관련] 나는 왜 라오스에 꽂힌 걸까 | “라오스 물가는 어때요?” | 라오스의 외국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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